밤으로 접어드는 고즈넉한 저녁놀이 으슥하게 내리깔렸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어딘가를 목표로 하는 이인조가 생겨난 밤그림자에 녹아들어 갔다. 그 이인조는 숨소리도 죽이고, 큰 신장도 숨기려 몸을 최대한 낮춘 자세였다.


목표하던 지점에 도착한 것인지 컨테이너 벽에 등을 기대앉아 태세를 정비한다. 한 사람은 허리춤에서 검은색의 매끈한 몸체의 권총을 꺼내 손에 쥐었다. 옆으로 시선을 주자 시선을 받은 상대는 신장에 비례하지 않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건물 위로 몸을 날렸다.


소리를 죽인 몸놀림으로 컨테이너 건물 위에 무사히 착지한 파트너를 확인한 인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제법 날카로운 눈매가 조용한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실패 따위는 있어선 안 된다. 손에 든 총에 장착된 탄환 수를 확인하고는 오른쪽 귓가에 단 무선 이어폰에 대고 작게 속삭이듯 말한다.




"...보쿠토 상. 준비 다 되셨나요?"


-오오, 언제든 오케이라고, 아카아시.




물음에 곧바로 상대에게서 답신이 돌아온다. 전해진 내용을 인식한 아카아시는 눈을 감고, 몸에서 긴장을 풀었다. 성급하게 굴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언제나처럼 보쿠토 상을 믿자. 느릿하게 눈을 뜬 아카아시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사냥 시작이다.




"시작합니다."


-오우.




상황을 파악하고 있기에 보쿠토에게서는 작고 짧은 반응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카아시는 평소의 자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보쿠토 코타로라는 인간은 신기하다. 아카아시는 매번, 순간순간마다 그것을 온전히 실감하고 있었다.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안심감. 조금 위험할지도.




타앙-




컨테이너 안으로 들이닥친 아카아시가 선빵필승으로 저격하는 소리가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있는 보쿠토에게도 어렴풋이 들려왔다. 자신의 역할은 언제나 한복판에서 정신을 차릴 시간을 주지 않고 맘껏 휘저어 놓는 것. 보쿠토는 울리는 총성이 세 발이 되었을 때, 양 허리에 꽂혀있는 길이가 짧은 단검 두 자루를 뽑아들었다.


속도를 살린 교란과 반격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기에, 그 순간이 빨리 다가오기를 보쿠토는 숨죽이며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의 저편을 바라보았다. 총성이 한 발 더 울려 네 발째가 되었을 때, 보쿠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직후 서 있던 곳의 바닥을 세게 구르다시피 차면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부유감과 추락감.


보쿠토가 아래로 떨어져내린 지점은 딱 정중앙. 날뛰기에 이만큼 최적화된 장소는 좀처럼 없다. 굶주렸던 것처럼 입맛을 다시는 보쿠토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샛노랗게 빛났다. 거의 정면에서 위치해 있던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모습을 보고 오싹하며 전율했다.


아, 역시 보쿠토 상은-


갑자기 나타난 보쿠토에 아카아시의 습격으로 정신없던 이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예고없이 들이닥친 아카아시에 혼비백산하며 동료를 네 명이나 잃었던 그들은 보쿠토까지 보자 두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차린 듯 그들 중 누군가가 소리를 냈다.




"후, '후쿠로다니' 다-!!"




그 외침이 시발점이 되어 보쿠토에게 공격이 몰린다. 바닥에 중심을 잡고 낮게 착지한 자세였던 보쿠토가 빗발치며 쏟아지는 총격을 뒤로 몸을 돌리면서 재빠르게 피한다. 몇 번의 백텀블링을 끝으로 한쪽 코너에 몰린 보쿠토는 순간 아카아시 쪽을 보면, 이미 누군가를 향해 총구를 조준하고 있었다.


그것이 누구인지 순간적으로 확인한 보쿠토가 다시 아카아시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두 사람의 시선이 맞았다. 그 시선을 본 보쿠토는 바로 몸을 최대한 낮춰 앞으로 뛰쳐나갔다. 재빠르게 가까워지는 보쿠토의 움직임에 그들이 순간 당황했을 때, 그 일순, 틈이 생긴 그 공백을 아카아시의 총소리가 메웠다.


보쿠토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인물을 향한 아카아시의 조준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명중했다. 지나쳐가는 길목이라 보쿠토에게 일부의 피가 튀었지만 보쿠토의 움직임에 지장을 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얼굴 오른쪽에 튄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쥔 두 자루의 단검을 화려하게 휘두른다.




"크악!"


"큭!"


"커억!"




보쿠토가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피가 낭자하게 퍼졌다. 그리고 마지막은 도움닫기로 공중에 떠오른 보쿠토가 몸을 접으며 떨어져 내리듯 상대의 뒤에서 기습. 사냥의 완료를 확인한 아카아시는 그 자리에 서 있는 보쿠토에게 다가갔다. 처음에 아카아시로 인해 튄 피만이 아니라 이후 보쿠토가 죽인 인간들의 피까지 뒤집어쓰고 있었기에 피에 절은 모습이었다.




"보쿠토 상."




보쿠토는 눈을 감고 있었다. 주어진 사냥을 끝낼 때마다 보쿠토는 마치 기도하듯 눈을 감고 있다. 항상 피에 절어있지만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관대하고 자애로워 보이곤 한다. 어디까지나 모순된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아카아시에게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적시고 있는 질척한 피를 대충이나마 가지고 온 수건으로 닦아냈다.




"후읍-!"




대충 다 닦아낸 것 같자 보쿠토가 눈을 뜨며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그대로 멈췄다. 아카아시는 그런 보쿠토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큰소리를 낼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보쿠토는 릴렉스하듯 숨을 느릿하게 내쉬었다. 매번 보쿠토가 진심으로 숨을 들이마시는 탓에 곧 큰소리를 낼 것이라는 예측이 틀리는 것이 계속 반복된다.




"사냥 완료네요, 보쿠토 상.".


"오우! 오늘도 한 건 해결! 이예-이!!!"




아, 텐션 돌아왔다. 귀찮아. 그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아카아시는 무표정 같은 얼굴이 디폴트이기에 보쿠토에게 들킬 걱정은 없었다. 현장을 뒤로 하고 아카아시와 보쿠토는 컨테이너를 빠져나갔다. 저 멀리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밤이 올라오는 듯 깜깜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






하얀 대리석의 기둥 사이를 걷는 이가 한 명. 아이보리의 벽지에 벽에 장식된 촛불에 비친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듯 흐물거렸다. 정복인듯 군데군데 민트색과 노란색의 조합을 하고 있는 흰 망토를 두른 모습이었다. 망토 안쪽은 하늘색 상의와 옅은 쪽빛의 하의를 입고 있었다.


자신이 어디로 발걸음을 하고 있는지는 자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멍한 정신이 마치 꿈을 꾸는 듯 현실감이 없었다. 깊숙히, 깊숙히. 끝을 모르고 이끌리듯 발걸음을 옮기면 그 끝은 어딘지 허름한 느낌이 드는 문 앞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제정신을 차리듯 현실로 끌어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여기는."




주위를 확인하면 걸어온 방향이 어둠 속에서 아가리를 벌린 채였다. 이미 취침 시간은 한참 지났고, 이런 곳까지 올 일이 없는지라 조금 호기심이 일었다. 눈 앞에는 문 하나. 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손잡이에 손을 대고 돌리자 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매끄럽게 열려왔다. 오히려 그 점에 묘한 긴장이 몸을 달렸다.




꿀꺽.




긴장에 침 넘기는 소리가 고요한 사방에 메아리치듯 울려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 열린 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이곳 자체가 미지의 영역이라 두근두근 뛰는 심장의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리는 느낌이었다. 마치 그를 환영하듯 열린 문의 안으로 들어서면.




"아."




건물의 안쪽, 그것도 이렇게 깊숙히 위치해 있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밝았다. 바람이 불면 금방 꺼질 촛불의 불빛 따위가 아니었다. 자체적으로 빛을 내고 있는 그것은 결정이었다. 에메랄드 빛을 띠는 민트색의, 보석처럼 밝게 빛나는 육각정이었다. 그리고.




"...아?"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 그 자체만으로 이미 비현실적이라 육각정 안의 사람이 인간인지조차 의심이 되는 수준이었지만, 문득 이끌리듯 그 육각정을 향해 나아가는 자신을 인식해버린 순간 아무렴 뭐 어떤가 싶었다. 육각정은 그의 신장보다도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어느 것에도 고정되지 않은 육각정은 문득 위태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 안의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듯 굳게 눈을 감은 채였다. 형태만으로 조금이나마 추리해보자면 그 모습은 마치 서서 눈을 감은 상태 그대로 육각정 속에 갇혀버린 모습처럼 보였다. 육각정의 빛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안의 사람은 제법 미형 같았다.




"...어?"




몇 발자국 더 가까이 갔을까. 문득, 공기가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근원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눈앞의 육각정이었다. 결정의 주변은 차가우면서도 뜨거웠다. 정반대의 개념이었지만 정말 그렇게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다른 이질적인 공기에 주춤한 것은 있었으나, 그 외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것이 마치 반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피해는 없다, 라고 생각되자 얌전히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 것인지 지켜보기로 하는 여유가 생겼다. 공기는 계속 요동치고, 그럼에도 건물이나 그 어디에도 영향은 미치지 않는 이상 현상이 얼마나 일어났을까. 다시 문득 떨리는 듯했던 공기가 멎어들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직후.




파창.




육각정에 금이 갔다. 아주 작은 금이었지만 금새 전체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곧 폭발하듯 육각정의 빛이 순식간에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한 빛에 순간 눈가를 가렸던 손을 빛이 잦아들면 머리를 들고 위쪽을 보자마자, 숨을 멈췄다.


육각정이 깨지며 그 안에 있던 사람이 떨어져내릴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의 위로 떨어져내리는 것은 예상에 없었다. 받아들 준비를 하려 한발자국 뒤로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던 이는 지상으로 추락하는 순간에 눈을 뜬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듯 멍한 기운이 있었지만, 느릿하게 뜬 눈으로 아래쪽에 있던 그를 정확히 직시하는 시선이 도저히 놓아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한순간에 옴짝달싹 못하도록 엮여든 시선은 곧 그의 품에 무사히 안착되며 사라졌고, 그 무게와 충돌감에 바닥으로 무너져내렸다. 엉덩방아를 찧은 그 순간에도 품 안의 사람이 무사한가 확인했다.


다행히도 어디 다친 곳은 없는 모양인지 멀쩡해 보였다. 그건을 확인하고 시선을 위로 돌렸다. 천장이 닿을 높이에서 떨어져 내렸는데도 상대는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죽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순간적으로 몸이 강하게 끌어당겨져 앞쪽으로 쏠리듯 했다. 정복을 양손에 그러쥐는 힘이 제법 셌다.



 

"....... ....와, ...쨔앙, ....."


 


 

그리고 무슨 말을 중얼거린다. 느낌상으로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 싶은데 너무 작게 중얼거리는지라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대로 우는 건지 안긴 품이 잘게 떨리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등쪽의 정복을 그러쥔 양손에는 힘이 빠지지 않는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왠지 묘했다. 별 수 없이 상대의 등을 마주 끌어안아 천천히 토닥였다.


남자 둘이서 바닥에 앉아 서로 끌어안고 있는 이 상황은 대체 뭔지.




".....이, 와, ..., .......이와쨩....."




토닥거림에 진정된 건지 어쩐건지 떨림이 잦아들자 중얼거리던 소리가 한층 잘 들려왔다. 안심이 된 거라고 생각하려는데 내뱉는 첫말에 왠지 모르게 움찔하면, 뒤이어 완전해진 문장이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말을 인식하자마자 누군가가 뒷통수를 있는 힘껏 내리치는 듯한 충격이 내달렸다.


뭐야, 이 녀석은? 넌, 뭐야? 어떻게, 왜, 내-


점점 문장에서 멀어지는 단어만을 머릿속에서 나열하고 있는 와중, 어깨에 묻고 있던 머리를 들어올려 시선을 맞춰온다. 예상했던 대로 울고 있었던 듯 홍채에 물막이 반짝반짝하게 맺혀 있었다. 말없이 시선을 맞춰주고 있으면 그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다. 그 움직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눈꼬리의 눈물이 한 방울, 아래로 흘러내린다.




"만나서 반가워, 이와쨩. 나는-"











*

- 올 캐릭터

- 커플링은 글쎄요... 진행하다 보면 있을지도?

- 여기서 학교명은 단체명 같은 의미

- 지부와 구역으로 나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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