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없이 태어나기 전부터 약속했던거야
 
 
 
 
 
2.
 
 그 길로 LEO코퍼레이션 앞까지 와버린 유우야는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들어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던 유우야는 머리를 들고는 하늘로 높게 뻗어있는 건물을 올려다봤다. LEO코퍼레이션의 정상과 주변에 보이는 푸른 하늘을 함께 시야에 담던 유우야의 시선이 일순 흐려졌지만 그 사실을 유우야 본인은 깨닫지 못했다.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 속이 매우 서러워졌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던 유우야의 뒤쪽에서 인기척이 난 건 그 순간이었다.
 그 때 이미 그렁그렁하게 눈에 물기를 가득 담고 있던 유우야는 뒤쪽에서 나는 인기척에 급히 오른쪽으로 돌려놨던 고양이 가면을 정면으로 돌려 썼다. 뒤쪽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을 뒤돌게 하기 전에 재빨리 먼저 뒤돌아 상대가 누군인지 확인했다. 그러다 시야에 들어온 인물에 마음만 더 심란해진 유우야는 아무 말 없이 상대방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상대는 다름아닌 줄곧 고민하던 대상자, 아카바 레이지였다.
 "……."
 "……."
 아무 말 없이 서로 바라만 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나직히 짧은 한숨을 내쉰 레이지는 유우야를 스쳐 LEO코퍼레이션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멀뚱히 보며 어떡할까 고민하던 유우야는 이내 따라오라는 듯 손짓한 뒤 LEO코퍼레이션으로 들어서는 레이지를 조심스레 따라들어갔다.
 
 "앉아."
 레이지만의 공간인 사장실까지 따라올라온 유우야에게 처음 건네진 말이었다. 그에 잠시 움찔한 유우야는 권해주는대로 눈 앞에 놓여져있는 소파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넒고 깔끔하고 썰렁하다. 유우야는 사장실의 광경에서 그렇게 느꼈다. 쓸데없이 넓고 쓸데없이 깔끔한데다 굉장히 썰렁했다. 사장실을 둘러보는 와중에도 불편한 기색이 쓰고 있는 가면 밖으로도 내비쳐졌다.
 "불편하나?"
 조용한 가운데 자신을 향해 물어오는 말에 흠칫한 유우야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긍정을 표했다. 그에 유우야의 반대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레이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시선을 돌린 유우야는 천친히 무언가를 하는 레이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뒷모습을 보던 유우야의 표정이 가면 속에서 일그러졌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여 주먹쥔 손을 떨던 유우야의 시야 안으로 컵 하나가 불쑥 들어왔다.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자 레이지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어서 유우야는 화들짝 놀라며 반사적으로 머리를 뒤로 뺐다. 그런 유우야의 행동에도 신경 안 쓴다는 듯이 레이지는 무심히 자기 할 말만 하기 시작했다.
 "마셔. 좀 나아지겠지."
 내밀어진 컵 안의 내용물은 코코아였다. 달큰한 향이 퍼졌다. 멍하니 컵을 집어든 유우야의 손 안에서 코코아의 따뜻함이 퍼져왔다. 곧 정신을 차린 유우야는 컵을 입에 대고는 한 모금 마셨다. 그에 몸 안쪽에서도 따뜻한 느낌이 퍼져서인지 짧게 떠는 유우야였다. 그런 것도 있었지만 사장실 안의 공기가 차가웠던 것도 있었다. 날씨에 맞춰 얇은 옷을 입고 있는 유우야에게는 조금 자극이 가는 온도였다.
 "저기, 여긴 보일러나 난방시설 같은 건 없어? 좀… 추운 것 같은데."
 몸을 움츠리는 유우야를 보고는 그제서야 생각이 미친 건지 레이지는 사장실에 놓여있던 유일한 책상쪽으로 향하더니 어떤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곧 누군가와 연결되었는지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용건을 묻는 말에 레이지는 변함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짧게 말했다.
 "나카지마. 사장실에 난방을 틀었으면 좋겠는데."
 -"네? 하지만 사장실에 난방은 단 한번도 킨 적이 없지 않…."
 "…좀 쌀쌀한 것 같아서 조금만 틀려는 거니까 잔말 말고 틀어."
 곧 수긍하는 말을 끝으로 연락을 끊었다. 그 일련의 과정을 보던 유우야는 가면 속에서 살풋 웃었다. 생전 난방을 틀지 않다가 처음으로 난방을 틀려는 이유가 자신이 말을 해서라니. 웃고있는 입매와는 달리 유우야의 눈동자는 가라앉아있었다. 설마 했지만.
 
 잠시 후 사장실 문이 벌컥 열리고 유우야가 뛰쳐나와 급히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버렸다. 왠지 모르게 혼란스러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니, 그 눈동자에 비친 것은 두려움이었을까. 유우야가 사장실에서 나오자 밖에 있던 나카지마는 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실 안에서 레이지는 소파에 푹 파묻힌 채 연신 마른 세수를 하고 있었다. 나카지마가 처음으로 보는 레이지의 피곤한 모습이었다.
 "나카지마, 난방 꺼."
 덥다고 느낀 레이지였다.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그다지 확실하게 찌른 게 아닌 것 같은데도 유우야 안에서 퍼져가던 두려움을. 단순히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에서부터 발생한 궁금증이었을 뿐이었는데, 왜 이런 결과가 됐을까. 하얗게 질려서는 붙잡을 틈도 없이 뛰쳐나가버린 작은 등이 아른거렸다. 내일 다시 보자고 말했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곱씹어보자면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후."
 게다가 더운 것과는 별개로 피곤했다. 한 것도 없는데 유우야가 끼워지자마자 이런 피곤함을 느끼는 것에 레이지는 작은 의문만을 가질 뿐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레이지는 애써 생각나는 유우야에서 시선을 돌려 가만히 눈을 감았다.
 
 사장실을 나온 유우야는 즉시 엘레베이터를 타고 다시 1층으로 내려온 뒤 힘없이 터덜터덜 걸으며 마악 LEO코퍼레이션을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뛰쳐나오기 직전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하던 유우야는 문득 떠오른 희미한 장면을 다시금 회상했다.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의 옆에 있던 것은 분명 지금보다 어렸던 아카바 레이지였다. 고민하는 유우야의 앞에 갑작스레 사와타리가 튀어나왔다.
 사와타리를 보며 의아해하는 유우야였지만 사와타리는 잠시간 아무 말 없이 바라봐오더니 유우야의 팔을 잡아 끌더니 어딘가로 향했다. 그렇게 몇 분이 걸려 LEO코퍼레이션에서 멀어지자 그때까지 잡고 있던 유우야의 팔을 놓아준 사와타리는 유우야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거라고 생각해. 어제 내가 느꼈던 걸 네가 못 느꼈을 리 없어."
 사와타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린 유우야는 흠칫했다. 그런 유우야를 안 건지 사와타리는 묘하게 진지해진 눈으로 유우야를 바라봤다. 어제 아카바 레이지와의 대면에서 느꼈던 감정을 유우야가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카키 유우야는 주변의 분위기나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맞춰 행동하며 자신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처음에 눈치챘을 때 사와타리는 사카키 유우야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다. 무섭다면 굉장히 무서울 정도로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다.
 아카바 레이지에게서 본인에 대한 관심과 아직 여물지 않은 감정까지 읽어냈을 눈 앞의 당사자는 지금 무척 당황스럽고 난처해하는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은근히 불안해하고 있는 듯도 보였다.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유우야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사와타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유우야에게 말했다.
 "괜찮을거다. 넌 은근히 운이 좋으니까. 아카바 레이지가 평생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게다가 너 몰래 널 지켜주는 녀석이 있으니까."
 "뭐? 그게 누군데?"
 "몰라. 그건 네가 직접 알아내야 하는 것 아니겠어? 쉽게 알려주면 재미없잖아? 안 그러냐?"
 비밀이라는 듯 유우야에게 윙크해주고는 돌아가야겠다는 의견을 내비친 사와타리는 태화당으로 돌아가려는 듯 발을 옮겼다.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던 유우야는 슬며시 미소지었다. 물론 그것도 쓰고 있는 가면에 의해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고마워."
 고마워, 사와타리.
 왠지 사와타리와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위기를 잘 읽는 유우야는 평소 사와타리의 행동보다는 그 분위기를 읽곤 했는데 사와타리에게서는 자신을 진심으로 싫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질투 쪽이 더 잘 느껴져서 그 점이 의아할 뿐 평상시에도 사와타리에게는 마이너스적인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는 유우야였다. 그랬기에 오늘 일을 계기로 조금은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유우야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아카바 레이지의 감정은 오히려 유우야에게 있어서 버거울 뿐이었다. 딱히 같은 남자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것이 다른 쪽으로 변해버리면 그것보다 큰 부담감은 없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도 일부 그랬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관심에 그친다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았다.
 오히려 자신이 언제 누구를 좋아했었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면 문제여서 그것이 이상할 뿐이었다. 아직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아카바 레이지가 깨닫지 못한 것이 좋은걸까? 다시 여길 떠나있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이 찾고 싶은 것은 태화당에 있어야만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저버리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소중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찾으려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런 결심을 한 사람의 마음을 눈치챘다고 해서 그만둬버리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 아닐까.
 어떻게 해도 방법이 없는 상황에 유우야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사면초가에 진퇴양난, 설상가상이라고 할 만한 자신의 상황은 뒤도 없고 앞도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유우야였다.
 
 "다녀왔어요."
 "어서오렴, 유우야. …무슨 일 있었니?"
 집으로 돌아온 유우야를 반겨주는 것은 거실에서 나온 모친 사카키 요코였다. 집에 돌아온 유우야를 반겨주다가 얼핏 표정이 어두운 아들을 보고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카바 레이지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유우야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거절의 의사를 내비치고는 2층의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유우야가 저기압이네. 도대체 무슨 일인거지?"
 요코의 중얼거림이 끝나기도 전에 방으로 들어가버린 유우야는 방문을 잠그고는 잠시간 방문에 몸을 기댄 채로 서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아래로 처진 더듬이(?)는 현재 유우야의 기분 상태를 대변해주고 있는 듯했다. 유우야는 사장실에서의 일을 기억을 되집어가면서 거슬러 올라갔다. 그리고 어떤 장면에서부터 다시 재생시키듯 되새겼다.
 
 코코아를 받아서 마시고 난방이 틀어질 때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모든 것은 아카바 레이지가 가면에 대해 묻기 시작했을 때부터 망가져버렸다. 난방이 틀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코코아를 홀짝거리고 있던 유우야를 보던 레이지는 문득 이렇게 물었다.
 "그 우스꽝스러운 가면, 벗어놓고 다니면 안 되는 건가?"
 그건 단순한 중얼거림에 더 가까웠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코아를 마시던 손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머릿속에서는 오로지 가면을 벗는다 라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서서히 안쪽에서부터 퍼지는 무언가를 느끼기도 전에 유우야는 다소 거칠게 탁자 위에 코코아가 담긴 컵을 놓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떨어뜨리든 던지든 깨부실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런 걸 물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 겨우 내뱉을 수 있었던 말은 겨우 그것이었다. 떨려오는 손만큼이나 어설픈 목소리였다.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가 겨우 말한 것처럼 형편없을 정도로 듣기 싫은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떨리는 손을 들키지 않으려 겨우 맞잡고 상대의 말을 기다렸다. 그 순간에도 들키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은 존재했다. 유우야는 코 끝이 찡해진다는 것과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그렇게 가면으로 가려버리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흡, 하고 숨을 멈췄다.
 정곡을 찌르는 말에 어깨를 움찔하는 유우야였지만 반박하려고 해도 그것은 말이 되어서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 말이 없었다는 것이 맞았다. 누군가가 물어볼 저 말에 대한 답 따위는 애초에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누가 묻던 대답을 못할 테지만 왜 레이지의 물음이 자신을 더 몰아붙이는지 그 이유를 유우야도 몰랐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린 유우야의 가면을 어느새 다가온 레이지가 풀어버렸다. 갑자기 드러나는 시야에 유우야가 당황해서 고개를 들자 위에서 내려다보던 레이지의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선명한 빨강과 짙은 자색이 섞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점차 빨강 안에서 퍼져나가는 어떤 것. 그것을 뭐라고 칭하면 좋을까. 혼란일까, 아니 그것은 아직은 공포가 되지 못한 두려움 쪽이 더 가까운 듯 싶었다.
 곧 하얗게 질려가던 유우야는 옆에 떨어져버린 가면을 거칠게 잡아채고는 소파 위에 발을 올려서고는 뒤로 몸을 회전하다시피 빙글 돌아 벗어나고는 사장실을 벗어나버렸다. 빈틈없이 재빠른 동작이었다. 등 뒤에서 내일 다시 보자는 레이지의 말을 들었지만 상관않고 LEO코퍼레이션에서 달아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었다.
 
 생각을 마치고 눈을 뜬 유우야는 침대쪽으로 향했다. 쉬고 싶었다. 침대에 비스듬히 몸을 파묻은 유우야는 복잡하게 얽혀드는 생각들을 멈추고자 그대로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든다면 그거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바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한 번 감았던 눈동자는 하루동안 상당히 지쳐있었는지 다음날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간만에 단잠에 빠진 유우야였다.

 "으앗! 늦었잖아!"
 12시간 이상은 내리 잠들어있던 유우야는 일어나자마자 확인한 시간에 반쯤 기겁하며 급하게 옷장에서 태화당의 신식 법사 전용 옷을 입고 재빠르게 세안을 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방과 1층의 거실을 한번에 이어주는 봉을 재주좋게 타고 내려와 주방의 식탁 위에 차려져 있던 아침용 계란 토스트를 집어들고 입에 문 채 빠르게 집을 나서더니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런 유우야의 모습을 보던 요코는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던 유우야가 늦는 것을 보고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적어도 한번쯤은 이랬어야 했다는 것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요코의 그런 생각도 모르는 채로 태화당으로 향한 유우야는 제일 먼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와타리를 찾았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사와타리의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에 원장실로 가서 슈조에게 물어봐야 하나 하다가 결국 [별읽기]를 슈조에게 보내고 잠시 쉬기로 했다. 전속력으로 뛰어왔던지라 산소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인 몸을 쉬어주며 근처에 있던 큰 나무 하나의 아래 기대어 앉은 유우야는 숨을 돌렸다.
 잠시 그렇게 쉬고 있자 슈조에게서 돌아온 [별읽기]는 사와타리가 현재 LEO코퍼레이션에 있다는 말을 유우야에게 전해주었다. 그에 사와타리가 LEO코퍼레이션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유우야의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떠다녔다. 그러나 곧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제의 일로 가기는 좀 꺼림칙하지만 LEO코퍼레이션에 가야하는 유우야였다. 사와타리가 LEO코퍼레이션에 있다면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겸사겸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유우야는 다시 LEO코퍼레이션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태화당을 나와 번화가 쪽으로 나오기를 느긋하게 30여 분, LEO코퍼레이션에 도착한 유우야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본사 건물을 미묘하게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건물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어제 처음 왔을 때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로비가 너무 썰렁해."
 건물 로비에 사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로비 자체가 돌아다니는데만도 몇 분이 걸릴 것 같이 넓은데다가 한 켠에 안내 데스크와 중앙 쪽에 위치해 있는 TV, 그 앞쪽으로 소파와 의자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빼면 딱히 볼만한 게 없다는 게 이상할 뿐이었다. 어느 건물이든지 처음 들어왔을 때 정면으로 보이게 되는 로비는 건물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주게 된다는 것을 모를 아카바 레이지도 아닐텐데 어째서 로비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걸까.
 게다가 뭐랄까, 투명했다. 로비를 보는 사람들의 태도도 나뉘기 마련인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로비를 매일 볼테니 별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처음 LEO코퍼레이션에 온 사람들이나 낯선 공간에 적응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자신은 당연히 후자 쪽이었고 말이다. 동시에 로비 전체에 난방을 켜놨음에도 불구하고 그 투명함에 추워지는 느낌이 들어 어제와 같이 몸을 움츠리는 건 자연적인 조건반사였다.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는 유우야는 어제 아카바 레이지와 타고 올라갔던 엘레베이터에 몸을 싣고 최상층의 사장실로 올라갔다.
 사장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추는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유우야는 사장실의 앞에서 먼저 비서인 나카지마와 마주쳤다. 어제 한 번 봤던 얼굴이라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확인하자 뭔가 찔리는 듯이 힐끔거리기에 가면 안쪽에서 거리낄 것 없이 인상을 구기는 유우야였다. 나카지마의 반응이 이상해 아카바 레이지가 있을 사장실로 시선을 주던 유우야는 옆에서 말리려는 손길을 뿌리치고 예고없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사와타리? 네가 왜 아카바 레이지랑……?"
 의문을 나타내던 유우야는 이틀 전으로 기억을 날렸다. 분명 자신 대신 LEO코퍼레이션에 먼저 왔던 것은 사와타리였다. 그리고 어제 결국 자신도 왔어야 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사와타리와 아카바 레이지가 함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지? 다른 쪽으로 의문을 느끼는 유우야를 잠시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유우야가 오기 전부터 대화 중이었던 건지 유우야가 들이닥치자마자 끊긴 대화는 사와타리의 우세였던 듯 싶었다.
 멀뚱멀뚱 가만히 서서 사와타리와 아카바 레이지를 몇 번 번갈아 바라보던 유우야는 사와타리를 찾았던 것을 기억하고는 잠깐 보자며 사와타리의 팔을 잡아끌었다. 사장실 한쪽 구석으로 잠시 사와타리를 끌고 간 유우야는 아주 잠깐 어떻게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이런 건 솔직한 게 제일이라며 냅다 고마움부터 표출했다.
 "어제는 고마웠어, 사와타리!"
 유우야의 말을 이해한 건 당사자인 사와타리 뿐이었다. 유우야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듣는 것이 나쁜 기분은 아니라서인지 사와타리는 유우야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런 사와타리의 모습에 답싹 끌어안는 유우야였다. 유우야의 머리카락이 사와타리의 뺨을 간질였고 그 느낌에 작게 웃던 사와타리는 바로 옆에 있는 유우야의 귓가에 작게 말했다.
 "신고."
 "응?"
 갑작스럽게 귓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란 유우야가 여전히 끌어안은 채로 머리만 사와타리 쪽으로 조금 틀고는 잘 못 들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와타리라고 성으로 부르지 말고 신고라고 이름으로 불러. 나도 이름으로 부를 테니까."
 "아, 응."
 사와타리의 반응에 잠시 멍했던 유우야가 끌어안고 있던 팔을 푸르고는 사와타리의 앞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걸 잠시 보고만 있던 사와타리는 곧 어떠랴 싶어서 유우야가 내민 손을 붙잡았다. 유우야는 완전히 기분이 좋았다.
 "그럼 이제부터 친구야!"
 사와타리가 악수를 받아준 게 기쁜지 여전히 가면을 쓰고 있었지만 들려오는 밝은 목소리톤으로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유우야를 보며 사와타리는 웃고있을 뿐이었고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소파에 앉아있던 아카바 레이지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유우야와 사와타리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곧 사와타리는 태화당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내비쳤고 유우야는 될 수 있으면 태화당에서 보자며 먼저 보냈다. 사와타리가 돌아가고 문까지 완전히 닫히자 잠시 사장실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등을 돌린 채 서 있던 유우야는 속으로 엄청나게 갈등을 빚고 있었다. 대화를 할 것이냐, 아니면 오늘 들린 것으로 퉁치고 다음에 만날 것이냐.
 그렇게 고민만 하고 있으려니,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와 같은 무덤덤한 목소리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나온 말인 것 같았다. 그에 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놀랐던 것 같았다.
 "왠지 오늘도 집중이 제대로 될 것 같지는 않으니 다음으로 미루지. 3일 후가 좋을 것 같은데."
 "아아. 여기 있으면 진정이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되면 유즈나 만나러 갈까."
 조금 뜬금없이 튀어나온 유즈의 이름이었지만 철회할 생각은 없는 유우야였다. 나오는대로 내뱉은 것 뿐이었지만 유즈의 이름을 말한 건 그 와중에 잘한 일이라고까지 생각되는 것이었다. 아카바 레이지와는 어디까지나 사무적인 관계일테니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아서 나온 말이기도 했다. 아카바 레이지가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을 완전히 자각해버리면 그 날로 사무적인 관계는 끝나고 찾아야 할 것도 찾지 못한 채로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있어야 한다. 그것만은 곧 죽어도 싫은 유우야였다. 어떻게 해서 돌아온 보금자리인데 또 떠나있어야한단 말인가. 그럴 바엔 차라리 죽겠다고까지 결심할 수 있는 유우야였다.

 그렇게 헤어지고 유즈를 만나러 가기 위해 유즈가 다니는 일반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는 유의야의 걸음걸이가 상당히 무거워보였다. 신발을 바닥에 직직 끌며 걷고 있는 유우야는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상당히 우울했다. 별다른 접점이 크게 없었는데도 처지는 기분이 들어 유즈나 빨리 만나 이런 우울함은 멀리 던져버리고 싶은 유우야였다. 유즈와 있으면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진다. 예전부터 항상 그랬는데 처음엔 마치 마법인 줄 알았던 유우야였지만 곧 유즈의 분위기에 자신이 익숙해져서 그렇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만큼 유즈는 자신에게 있어 비중이 큰 편이라는 이야기였다.
 "유즈라면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는데. 지금도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유즈를 연애 감정으로서 좋아하지는 않았다. 물론 호감은 가지고 있었지만 거기까지였고 딱히 유즈를 상대로는 사귀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굳이 의미를 붙이자면 가족 같은 느낌으로 좋아하는 느낌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여하튼 자신은 그랬다. 그래도 혹시나 유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은 분명 해야할 일도 제쳐두고 제일 먼저 유즈에게 달려갈 것은 뻔한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유즈에겐 항상 신세지고 있다는 그런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좋겠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일까.
 "어디 보자, 유즈의 학교가……. 아, 저기 있다."
 유즈 유-즈♪ 라며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시야에 들어오는 유즈의 학교를 향해 뛰어가는 유우야를 조금 떨어진 골목사이의 좁은 길에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유우야는 유즈의 학교 담벼락에 기대어 태평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유즈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에 있는 구름의 수를 느릿하게 세고 있던 유우야의 앞에 갑작스럽게 [별읽기]와 [시간읽기]가 나타났다.
 유우야가 그들을 향해 부른 적 없다고 하려던 찰나 벌려진 입은 다시 닫힐 수밖에 없었다. 유우야를 향해 돌연 강풍이 불어닥쳤기 때문이었다. [별읽기]와 [시간읽기]는 그 강풍을 알아서 막으며 동시에 유우야를 강풍에서 보호했다. 강풍이 유우야에게 닿지 못하고 그 주변의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튕겨나간 강풍이 유즈의 학교 담벼락에 부딪혔을 때였다. 강풍과 마찰한 학교의 담벼락은 그대로 부서져내렸고 그 광경을 보게 된 유우야는 기겁했다.
 "…뭐야. 단순한 강풍 아니었어?"
 그렇게 놀라워하는 도중 무언가 떠올랐는지 자신에게로 향하는 강풍을 빙자한 날카로운 무언가를 막아서서 보호해주고 있는 [별읽기]와 [시간읽기]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이 두 사역마는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보통 흔하게 존재하는 사역마는 주인의 말을 듣는 것만을 존재의의로 삼는다. 하지만 이 [별읽기]와 [시간읽기]는 주인인 자신의 명령도 듣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인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지금의 상황처럼.
 그 점에 대해선 어쩐 이유에선지 비밀로 해달라고 처음 자신에게 사역될 때 그런 조건으로 계약했었다. 그 조건으로 인해 유우야는 어떤 상황에서도 생명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일말의 불안감이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똬리를 틀었다. 급작스럽게 밀려오는 불안감에 미미하게 떨려오는 오른손을 꼭 붙잡는 유우야였다.

 하교 시간이 가까워지자 하나 둘 학교에서 빠져나오던 학생들은 갑작스럽게 학교의 담벼락이 무너져서인지 그 자리에 서서 무슨 일인가 하고 구경 중에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학교에서 나오던 유즈는 부서져버린 담벼락 너머에서 얼핏 보이는 익숙한 인영에 앞 뒤 생각하지 않고 그쪽으로 달려나갔다. 덤으로 이름까지 부르면서.
 "유우야!"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유우야는 유즈의 학교가 끝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을 부르는 게 유즈의 목소리라는 것도. 유즈가 유우야에게 닿는 것과 유우야가 유즈를 향해 돌아보려던 때에 그 사이로 안개 같은 짙은 연기가 둘의 사이를 가려버려 유즈는 유우야에게 다가가려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유즈는 유우야의 머리가 자신쪽으로 돌아보려던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유우야가 자신을 인지했음을 알았다. 유즈는 곧바로 유우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는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유즈의 목소리를 들은 유우야는 유즈가 있는 곳으로 곧바로 가려다가 주위가 빠르게 짙은 연기로 뒤덮히면서 일순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머릿속으로는 뒤쪽에 부서져버린 담벼락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느쪽이 유즈가 있는 방향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마치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듯했다. 유우야는 섣불리 움직이기보다 일단 눈을 감고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우선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곳이 확실한 땅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박아넣고는 눈을 떴다.
 다행히도 연기 자체는 잠시 혼동을 주는 것 말고는 다른 영향은 끼치지 않는 것 같았다. 만약 연기 자체에 독(毒)이 섞여있었다면 자신은 이미 저세상에 있었을 것이다. 그대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유우야는 연기 너머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형체를 발견하고는 유즈인가 싶어 그쪽으로 향했다. 만약 제대로 생각할 수 있었다면 유즈가 연기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을 거란 것도 생각해 가지 않았겠지만 지금 유우야는 아직 연기 속이었다. 연기가 보여주는 환각 속에 갖혀있는 유우야로서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여유가 되지 않았다.
 "유즈……!"
 유즈라고 생각한 인물에게 손을 뻗으려던 유우야는 그 인물의 지근거리까지 가서야 유즈가 아님을 알았다. 그에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던 유우야는 도망쳐야한다는 생각을 끝까지 할 수 없었다. 유즈라고 생각하고 붙잡으려던 상대와 어느 틈엔가 시선이 마주쳐버렸던 것이다. 상대의 시선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을 읽어버린 유우야는 그저 멍하니 시선을 마주보면서 혼란스러움에 눈동자에 동요를 띄울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간 있었을까. 상대방이 예고 없이 유우야에게 무언가를 들이댄 것과 동시에 들이마셔버린 유우야의 심장이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갈 정도로 크게 한 번 뛴 것은 그 순간이었다.
 두근.
 그 소리를 들어버린 유우야가 놀라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천천히 감기며 몸의 중심이 스르르 무너지더니 앞으로 엎어져버리는 것을 그 앞에 서있던 상대방이 받아냈다. 색색 잠에 들어버린 유우야를 확인한 상대방이 씨익 웃으며 유우야를 어깨 위에 들쳐맨 채로 발걸음을 옮겼으나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별읽기]와 [시간읽기]가 가로막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우야는 잠들어있고 사방은 연기로 가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평소라면 무표정한 얼굴만 하고 있었을 두 사역마는 유우야에게 해를 끼치는 자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매서운 표정으로 유우야를 들쳐맨 상대를 노려보았다. 그에 이상함을 느낀 상대방이었다. 유우야가 잠든 순간 사역마와의 연결이 끊어져 두 사역마는 사라져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유우야의 두 사역마는 마치 스스로 유우야를 지키기로 결심했다는 마냥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적대심을 내비치고 있었다.
 [시간읽기]가 나선모양의 금속을 몸 앞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는 상대방의 머릿속에서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도망가려는 듯 반대편으로 도망치는 상대를 보던 [시간읽기]가 [별읽기]에게 시선을 주었고 그에 [별읽기]는 눈을 감으며 알 수 없는 말을 하자 이 상황에서도 유우야를 들쳐맨 상대방이 무언가에 부딪혀 뒤로 넘어졌다. 그 반동으로 유우야는 바닥에 내팽개쳐졌으나 상대방이 뒤로 넘어가며 떨궈진 것 때문인지 작은 생채기 정도만 생긴 채 여전히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그것까지 확인한 [시간읽기]는 갑자기 생긴 투명한 벽을 짚으며 빠져나가려는 상대방을 향해 나선모양의 금속을 내밀었다.
 무슨 느낌을 받은건지 흠칫한 상대방은 [시간읽기]를 향해 돌아보았고 공격 준비 중인 [시간읽기]의 모습에 유우야를 인질로 삼으려고 유우야를 찾은 상대방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역마들보다는 가까웠지만 꽤 멀리 떨어져버린 유우야의 모습 때문이었다. 자신이 유우야에게 닿는 시간보다 [시간읽기]의 공격이 자신에게 닿는 것이 먼저라는 건 안 봐도 뻔한 결과였다.
 ("유우야 님을 건드린 죗값은 톡톡히 치뤄줘야겠어. '범인' 씨.")
 정중한 것 같으면서도 불량스러운 느낌이 묻어나는 [시간읽기]의 '말'에 상대방은 아까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사역마들의 말은 머릿속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방금 [시간읽기]의 '말'은 머릿속과 동시에 귀로도 들리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그런 사역마는 이 세상에 없다. 주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개별된 행동을 하고 귀로도 들리는 사역마의 '말'은 이 세상의 사역마들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게 한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상대방은 한 가지의 확실한 결론만을 얻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본인으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 이 녀석들은……!"
 이 녀석들은 사역마 따위가 아니야!
 …라는 상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시간읽기]가 자신의 기술로 시간의 한 축에 상대를 가둬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는 [시간읽기]를 [별읽기]가 바라보벼 입을 열었다.
 ("[시간읽기], 차라리 사역마처럼 말하지 그랬어.")
 ("바보같은 말 하지 마. 다시는 만날 일도 없는 인간 따위에게 신경을 써주라 이거야? 신경을 써주는 건 유우야 님이나 친구분들한테만 하면 돼. 지금 이 녀석은 '예외'니까 그에 합당한 걸로 보내버렸어.")
 ("하여간 너란 녀석은…….")
 ("그나저나 이제 어쩔 거야? '녀석들'이라면 눈치챘을 거라구?")
 ("뭐, 어쩔 수 없지. 마스터의 주변을 강화하고 철저히 대비하는 수밖에.")
 ("흐음. 넌 여전히 물러.")
 ("마스터가 바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평화'니까. 그 평화를 어지르는 녀석들만 우선적으로 배제하자.")
 ("…다른 녀석들은?")
 ("곧 이곳에.")
 그렇게 답하며 잠들어있는 유우야를 바라보는 [별읽기]에 [시간읽기]도 유우야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유우야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올리더니 부서지지 않은 학교 담벼락 한 쪽에 기대어 놓은 후 따스하게 한 번 바라봐주고는 연기와 함께 사라져버리는 [별읽기]와 [시간읽기]였다.
 연기가 점점 걷히며 주위를 구분 가능하게 됐을 즈음 연기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유즈가 교문을 넘어서 도로변으로 나와 두리번거렸다. 유우야가 나오기를 기다렸던 유즈는 유우야가 나오지 않자 점차 불안에 떨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러다 학교 담벼락에 누군가가 기대어 누워있는 듯 보여서 몇 걸음 다가선 유즈는 그 인영이 유우야고 작은 생채기를 단 채 눈을 감고 있는 걸 알고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기 위해 유우야의 몸을 흔들었다.
 "유우야! 유우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응? 유우야!"
 하지만 유즈가 아무리 부르고 흔들어봐도 깨지도 않고 유즈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는 유우야를 보며 뭔가 이상함과 동시에 불안감이 가슴 속을 지배해 나갔다. 유즈의 얼굴음 점차 하얗게 질려갔다.
 "유우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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