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복한 오이카와
“오, 정말 멀쩡해졌네?”
“앗. 맛층, 맛키! 어서 와아~”
마츠카와와 하나마키가 오이카와의 반에 들어섰을 때 보인 것은 본인의 책상 위에 걸터앉아서 반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그들을 발견한 오이카와였다. 정말 반갑다는 듯이 생글 웃으며 손을 흔들며 반기는 오이카와에 서로 마주본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기본 이런 녀석이었다.
“그제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더니?”
“에헷☆”
“에헷☆은 무슨 놈의 에헷☆이냐. 그러다 이와이즈미한테 맞는다?”
“이와쨩한테는 이미 맞았어! 맛층은 오이카와상이 또 이와쨩한테 맞았음 좋겠다는 거야?”
가볍게 놀려먹는 마츠카와에 오이카와가 망충한 표정을 지으며 에헷☆거렸다. 그에 마츠카와가 이와이즈미를 들먹이며 놀리자 오이카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술을 삐죽대고는 툴툴거렸다. 그런 오이카와의 어린 반응에 하나마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불쌍한 이와이즈미.
“이와이즈미의 고생을 알아야 해.”
“나도 알아! 이와쨩이 나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거! 나도 매번 이와쨩 고생시키는 거 안다고!”
하나마키의 말이 오이카와 안의 어떤 스위치를 건들였는지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그런 오이카와의 반응에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는 잘못 건들였음을 알았으나 오이카와는 무언가 억울한지 계속 목소리를 키우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오이카와?”
“나도 이와쨩한테 면목 없다는 거 아는데….”
중얼거리던 오이카와의 의식이 어제로 날아갔다. 아카아시가 제법 일찍 일을 해결한 것 치고는 오이카와는 그 날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이와이즈미의 집의 이와이즈미 본인의 방 안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을 뜬 게 오랜만이라는 듯 조금 뻑뻑한 느낌에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이와이즈미의 침대 위에 얌전히 누워있던 오이카와의 위에서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침대 옆에 서서 오이카와의 얼굴 위로 머리를 숙인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 더 시선을 마주본 채로 눈을 두어번 더 깜박이던 오이카와가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이, 이와쨩. 에헤, 오랜만. 하하.”
“이제 일어났냐.”
“으응.”
일어났으면 됐다.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쓰는 이와이즈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잠을 못 잔 듯 피곤이 내려앉은 얼굴과 붉게 충혈된 눈이 그제야 오이카와에게 보였다. 눈을 굴리던 오이카와가 곧 깨달은 듯 이와이즈미의 침대 위에서 내려와 떨어져 있던 이와이즈미의 팔을 잡고 끌었다.
밀듯이 눕혀 오이카와가 누워있던 자리에 이와이즈미를 눕힌 오이카와는 그제야 만족한 듯 웃었다. 그런 얼굴을 보던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 이게 아닌가. 아니야 이와쨩 잠 안 잤을 게 분명하니까 이게 맞아. 오이카와가 스스로 자문자답하고 있을 때였다.
“기력 보태고 있었지 너.”
“엣.”
“모든 거 알고 오늘까지라고 한 거지.”
“…….”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오이카와를 올려다보던 이와이즈미가 눈을 감았다가 뜨며 피곤함을 애써 한 층 무시하고는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는 이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말리지 않았다. 막고 싶지도 않았지만.
“네가 모르는 게 있을 리 없잖아.”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웃었다. 그저 웃었다. 양 입꼬리를 올려 미소처럼 보일 그것을 유지한 채 이와이즈미를 바라봤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오이카와를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여기선 언제나처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나. 그렇게 이와이즈미가 생각했을 떄였다.
“응, 맞아.”
“어?”
“맞다고, 이와쨩. 내가 긍정하길 바란 거 아니었어? 언제나처럼의 회피가 아니라.”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말이냐? 이와이즈미의 표정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음을 알아챈 오이카와가 이번에도 웃었다. 변하지 않을 것처럼 웃던 올라간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와 오이카와에게서는 낯선 무표정이 얼굴 위에 자리하는 것을 이와이즈미는 똑똑히 보았다.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이걸’ 가지고 있는 이상, 내가 모르는 건 있을 수 없는 걸.”
낯설은 것이 분명한 오이카와의 무표정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이와이즈미는 낯설다고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언젠가의 기억 속의 오이카와도 무표정이었으니까. 바로 지금의 이 무표정. 오이카와가 진짜로 감정을 숨기고 싶을 때 짓던 표정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마 지금은 울음이겠지.
“오이카와.”
“그래서였잖아? 보쿠토와 쿠로오를 찾아낸 것도.”
‘이거’ 때문이었지. 오이카와가 잠시 실소를 머금었다가 다시 무표정으로 무장했다. 이와이즈미는 이틀 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 해야 했다. 왜 너냐. 어째서 너여야만 했던 거냐. 오이카와가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곳은 서로의 집 뿐이었다.
“이와쨩의 생각대로, 나 다 알고 있었어.”
“오이카와.”
“기력 보탠 것도 맞아. 내 기력을 소모해서 휘말려버린 두 사람을 죽지 않게 막고 있었어.”
“…….”
“내가 눈에 띄여버린 탓에 불행하게 말려든 거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
“이와쨩이 나 걱정해줄 것도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 언제나 이와쨩은 나 때문에 휘말렸으니까 뭐라고 할까.”
“오이카와.”
“응. 그거다.”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면서 머리를 숙여버리는 바람에 오이카와의 표정을 알지 못하게 된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부른 순간, 뭔가 혼자서 납득했는지 이와이즈미를 보는 오이카와였다. 드러난 오이카와의 표정에 이와이즈미가 무언가를 감지하기도 전에 침대에 달라붙은 오이카와가 한 발 빨랐다.
“이와쨩한테 면목 없는 걸.”
오이카와의 말에 순간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짜증이었다. 침대 위에 팔을 놓고 얼굴을 댄 채로 이와이즈미를 보고 있는 오이카와를 향해 베고 있던 베개를 집어 그 얼굴을 향해 날렸다.
“뭐야 이와쨩!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어!”
“이 쿠소카와가! 그딴 데에 신경쓸 시간 있으면 걱정할 일을 만들지를 말던가!”
“나도 이와쨩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데 상황이 그렇게 안 돌아가잖아!”
“그리고 심각한 얘기하다가 왜 그리로 튀는 건데! 논점이 어긋나잖아!”
“그렇지만 오이카와상은 기본적으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분위기 싫어하는 걸!”
결국 그 이후 그대로 헤어져버렸다. 아아 이와쨩 너무해. 오이카와상은 오이카와상 나름대로 이와쨩을 걱정해서 한 말인데. 이와쨩에게 면목 없는 건 진짜인데. 오이카와상의 진심을 이와쨩이 무시해버렸어. 그리하여 오늘 아침에도 따로따로 온 상황이었다. 이와쨩 미워!
오이카와의 반응에 마츠카와와 하나마키가 서로를 보며 머리를 저었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둘이 똑 닮았다니까.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는 오이카와에게 오기 전에 이와이즈미의 반을 보고 온 참이었다. 머리를 감싸쥐며 끙끙 앓던 이와이즈미를 본 둘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뭐, 이와이즈미도 알기야 하겠지. 너희 인연 질기잖냐.”
“그래그래.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면서.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오이카와.”
“뭐야, 맛층, 맛키. 너희가 그렇게 반응해서 닭살 돋았잖아.”
진심으로 충고해줬더니 나온 격한 반응에 마츠카와와 하나마키의 정의의 철권이 오이카와의 머리 위에 사이좋게 떨어졌다. 악! 아프잖아! 맛층, 맛키, 뭐하는 거야! 셔럽. 입 다물어, 오이카와. 징징거리는 오이카와에 자비 없는 하나마키와 마츠카와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는 그들 나름대로 화해했다.
오늘도 평화로운 세이죠 3학년들이었다.
2. 부실에서
“할로, 모두!”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부실에서 오이카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이 꽤나 오랜만이라고 생각되었다. 히나타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오이카와를 반겼다. 오이카와상! 정말 다 나았네요! 안녕, 치비쨩. 당연히 다 나았지! 오이카와상은 무적이에요?
“무적은 무슨, 일이나 안 키우면 다행이지.”
“뭐야 이와쨩! 내가 일부러 키우는 것도 아니고, 먼저 사건에 말려들어간 적은 없잖아!”
“한 번 빼고.”
“윽. 그래, 한 번 빼고.”
평소와 같이 나누눈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의 만담 아닌 만담에 겨우 모두의 얼굴에서 안도가 스쳤다. 자신들이 아는 오이카와였다. 기본적인 그들의 생활 리듬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모두들 각자의 일을 하며 평소처럼 지내려던 와중이었다.
“이번엔 크게 신세졌으니까! 모두 뭔가 먹고 싶은 거 없어?”
오이카와의 한 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모두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오이카와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런 오이카와가 무엇을 할 지 눈치챈 이와이즈미가 바로 말했다. 난 당연히 튀김두부.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가 웃으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럼 전 간장달걀밥이요!”
“애플파이…….”
“어이, 그건 간식이잖아. 꽁치 소금구이.”
“그건 쿠로오 너도 별 다를 거 없네! 고기!”
“보쿠토상도 남말할 처지는 못 되네요.”
“그러는 아카아시는 뭐 먹고 싶은데?”
“…유채겨자무침이요.”
모두의 의견이 훌륭하게 갈리자 오이카와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했다. 그러다 무언가에 생각이 미친건지 전원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알겠어. 나한테 맡기라구. 올라가 있어~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하고는 1층 저 너머로 사라졌다.
“너희들 그거 아냐?”
“뭐를?”
“우리들, 먹고 싶은 음식 밥과 반찬, 그리고 간식으로 사이좋게 갈렸다.”
“에.”
“물론 그것들 전부 각자가 좋아하는 거지? 나도 그렇지만.”
어? 이와이즈미의 말에 모여있던 그들은 서로 시선을 맞추었다. 이와이즈미의 말대로였다. 그들이 말했던 음식들로 딱 한끼 식단처럼 만들 수 있을 법한 조합이었던 것이다. 우선은 오이카와의 말대로 올라가 있기로 했다. 오이카와가 향한 곳을 한 번 본 이와이즈미도 곧 올라갔다.
“완성~”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이카와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익숙한 고기의 냄새에 보쿠토가 벌떡 일어났다. 고기! 오이카와가 들고 온 쟁반 위에는 주문했던 것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것에 모두의 시선이 오이카와를 향했다.
“어? 왜 그렇게 봐?”
“대체 어디서 만들었어?”
“1층.”
“뭐?”
“1층에 주방 있잖아. 거기서 재료 갖고서 만들었는데. 근데 잘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다. 뭐, 하기에는 고기가 제일 쉬웠지만. 굽기만 하면 되잖아?”
오이카와가 그렇게 말해도 얼떨떨하게 바라보는 모두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오이카와가 깨달은 듯 했다. 주방 있는 거 몰랐어? 여태까지도? 그에 일제히 긍정을 표하는 이들이었다. 이와쨩 모두 몰랐대! 그걸 어떻게 아냐. 기본적으로 우리 주방은 안 쓰잖아. 아.
“뭐,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지! 먹어 먹어!”
그렇게 오이카와가 재촉하는데 누군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그 소리에 오이카와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는 확인했다. 뭔가를 확인하는 듯 이것저것 만지는 듯했던 오이카와가 막 먹으려는 멤버들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에 의문을 품는 멤버들을 보며 오이카와가 웃었다.
“뭐야, 뭔데.”
“갑자기 그렇게 웃지마. 불안하잖아!”
“무슨 일인데요.”
그들의 물음에 오이카와의 웃음이 더욱 깊어진다. 먹으려던 음식을 집어든 채로 바라보고 있는 멤버 하나하나의 면면들을 쭉 둘러본 오이카와의 시선이 히나타에게로 돌아갔다. 갑자기 자신에게로 향한 오이카와의 시선의 의미를 알 수가 없어 물음표를 띄우는 히나타였다.
“‘출장’이야. 치비쨩은 처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