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과 시선을 맞추지 마라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뒤바뀐 거짓이니
히나타는 종이 치자마자 책상 옆에 얌전히 걸려있던 가방을 낚아채듯 집어들고 교실을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지금은 4교시가 끝난 곳이었다. 교실을 빠져나가는 히나타를 클래스메이트들은 조금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심지어 가방까지 갖고 나가니 더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출장.
히나타가 이렇듯 서두르는 이유였다. 목적하는 곳으로 달려가면서 히나타는 어제를 다시금 회상했다. 시미즈의 일을 해결한 그 다음 날, 부활한 오이카와가 말했다. 출장이 뭔지 몰라 어리둥절하게 갸웃거리는 히나타에게 오이카와가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출장이란.
멤버들이 네 학교(여기서는 카라스노, 세이죠, 네코마, 후쿠로다니)를 제외한 바깥의 다른 학교로 나가는 것을 이르는 총칭. 이라는 듯 싶다.
뭐, 그래서 일어난 특이현상을 해결해주는 것까지도 그렇게 부르는 것 같지만. 일차적인 의미는 위의 의미가 맞다고 한다.
“바깥의 다른 학교!!”
히나타가 텐션이 높아진 이유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보이는 타교의 학생들과는 달리, 바깥의 학교에는 처음 가보는 히나타에게는 이것은 엄연히 말해 탐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직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랄까. 일로 인해 가는 거라지만, 그게 어딘가.
게다가 히나타가 걱정한 것이 말끔히 해결된 데에야 두 말 하기도 입 아픈 법이다. 출장에 대해 들으면서 4교시 끝나고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면, 교문 앞 길 건너목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나오라는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히나타의 머리에 물음표가 띄어진 것은.
“저기, 그럼 점심 시간에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렇지. 내일은 그렇지만, 모레부터는 그냥 모이는 버스 정류장으로 나오면 돼- 아, 모레부터는 사복이면 되니까.”
“내일 오후 수업은요?”
히나타의 그 질문에 무엇을 말하고자 하려던 것인지 알아차렸는지 대답해주던 오이카와가 시선을 제각각 앉아있던 멤버들을 향해 돌아보았다. 그런 오이카와의 시선에 시선을 받은 다른 멤버들도 오이카와를 봤다가 스윽 히나타에게로 돌아갔다.
“출장일 경우에는, 수업은 듣지 않아.”
“에? 그럼 출석 일수 부족하잖아요? 수업 진도는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음, 그게 말이지- 그 부분은 말이야.”
“우리의 출장은,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 활동 취급이 되어있어.”
“사회 활동이요?”
“그러니까 말이야-”
학교 측의 허가를 받고 밖으로 나가는 거라는 말이야. 오이카와의 말을 뒤이은 아카아시의 덧붙임이었다. 잠시 갸웃거리며 그 의미를 이해하려했던 히나타는 곧 머리 위에 느낌표를 달은 듯한 얼굴로 변했다. 그 말은 즉, 전혀 영향이 가지 않는다는 말?
“괜찮다는 거예요?”
“맞아. 나가있는 동안에도 수업 일수는 채워지고, 그동안 듣지 못하는 수업일 경우에는-”
여기는 두 가지 패턴이 있지. 첫째, 나가있는 동안에 집합하는 학교측에서 우리의 진도에 맞춰 다음 진도 나갈 곳을 추가적으로 보충해주는 식으로 받는 대리수업 방식. 둘째, 우리는 보통 이 방법을 쓰는데. 멤버 누군가의 집에 모여서 서로 공부를 가르쳐주는 식으로 진도를 따라잡는 자가공부 방식.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네요?”
“그렇지- 우리 활동은 각 학교측과도 이야기가 되어 있어서, 우리 멤버들은 여기에 혜택 받고 있지.”
“단, 어떤 방식으로 하든 진도도 따라잡고, 수업 이해도도 높여야 한다는 과제가 있지만. 뭐어, 히나타도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우우……. 공부 쪽으로는 머리 잘 안 돌아가는데.”
조금의 불안은 있는 날이었지만 당장 오늘이 되자 그딴 건 아무려면 어떠냐 싶어졌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든 일단 그쪽으로는 걱정은 접어두자. 일단 전부 선배들이니까 모르겠는 부분은 물어보면 되잖아? 설마 모른 척 할까.
*
히나타가 교문 앞 길 건너목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뿐이었다. 그런데 다가가며 본 오이카와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것은 어딘지 이와이즈미도 그런 것 같았지만, 오이카와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무슨 일 있었나?
“오이카와상! 이와이즈미상!”
“오, 왔냐.”
“……치비쨩, 안녕.”
스마트폰을 내려보던 이와이즈미가 먼저 히나타의 인사를 받았다. 입술을 삐죽이며 무언가 불만이라는 듯 하던 오이카와는 조금 뒤에 인사를 해 왔다. 뭔가 오이카와의 어투에서도 숨겨지지 않는 불퉁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니, 조금 다른 것이, 짜증?
“이와이즈미상, 이와이즈미상. 오이카와상 왜 저래요?”
“아…….”
히나타가 소리를 죽여가며 묻는 질문에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허공을 배회했다. 이내 한숨을 내쉬더니 이와이즈미가 히나타의 귓가에 대고 답을 해주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학교를 확인한 뒤부터 계속 저 상태다. 목적지인 학교? 히나타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길래 저러지.
“어딘데요?”
“…시라토리자와.”
“엣, 시라토리자와라면 명문이잖아요!”
“야!”
시라토리자와라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히나타가 무심코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이즈미가 그런 히나타를 말리려했지만, 이미 늦었다. 오이카와의 시선이 두 사람 쪽으로 향한 것이다. 왠지 모르게 오이카와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왜! 왜! 왜! 시라토리자와냐고!!”
그리고 폭발했다.
“아, 폭발했다.”
“왜에!!!”
폭발하다 못해 악을 쓰는 오이카와에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째서 백조(반어법이다) 놈들이야! 3학년이 되서 가게 된 첫 출장이 그 놈들이라니! 이럴 순 없어어어!!!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조용한 버스 정류장에 메아리 치며 울려퍼졌다. 그곳에서 사정을 모르는 히나타만이 멀뚱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이카와상은 시라토리자와랑 무슨 원수라도 진 건가.
히나타는 그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어찌어찌 시라토리자와로 향하는 버스 안. 히나타는 눈을 굴렸다. 오이카와는 버스가 점점 시라토리자와에 가까워지고 있음에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를 끌어안고 죽을 상을 짓고 있었다. 끙끙 앓는 모습에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상 함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오이카와상은 시라토리자와의 우시지마 와카토시라는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아.”
“에?”
히나타가 힐끔힐끔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것을 봤는지 아카아시가 옆쪽에 다가와서 말해주었다. 히나타는 그 말에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누구를 말하는거지? 그런 히나타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카아시는 잠시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사이가 좋지 않다기보다는 상성이 나쁘달까.”
“상성?”
“오이카와상과 우시지마상 말이야. 옆에서 보면 순전히 오이카와상이 우시지마상에게 열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열폭?”
“그 사람, 눈치가 없는거지. 눈치가 빠른 오이카와상과는 상성이 안 맞는달까. 성격적으로도 맞지 않고, 여러가지로 맞는 부분이 없던 듯해서. 이제 와서는 앙숙이라고 봐야할 정도.”
뭐야 그게. 히나타는 아카아시의 말을 들으며 얼이 빠졌다.
이와이즈미상의 성격과도 맞지 않아서 이와이즈미상도 현재에 와서는 우시지마상 싫어하는거지. 어느새 옆에 왔는지 켄마가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든 게임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와이즈미상 성격은 좀 다혈질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곧은 직선같지. 그 부분은 어떻게 보면 우시지마상과는 비슷한데.
“방향성이 달랐나 봐. 완전히 정반대. 그 탓에 오이카와상 만큼은 아니지만 이와이즈미상도 시라토리자와, 특히 우시지마상에 관련되면 좀 더 다혈질이랄까, 참지 않는다는 느낌.”
“이와이즈미상도?”
“뭐, 이유는 그것 말고도 더 있는듯 싶지만.”
켄마의 시선이 오이카와를 향해 돌아갔다. 켄마의 시선에 그쪽으로 같이 돌아간 히나타의 시선에는 오이카와가 있었다. 히나타는 머리 위에 다시 물음표를 띄웠다. 뭐지? 아아, 그런가. 옆에서 아카아시가 깨달았는지 이해했다는 듯이 느릿하게 끄덕였다.
“이와이즈미상과 우시지마상 사이에 오이카와상이 있는 느낌이지. 게다가 오이카와상 쟁탈전을 은근히 벌이고 있고.”
우리, 골치 아픈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어. 켄마의 말에 히나타는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해 갸웃거렸지만 아카아시는 켄마의 말에 딱히 부정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했다. 그러고보니 오이카와상과 이와이즈미상만으로도 벅찬 느낌인데 우시지마상까지 끼어들게 되면.
“좀 봐주라…….”
벌어질 상황을 예상했는지 아카아시가 힘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히나타는 아카아시와 켄마 사이에서 아직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해 갸웃거리고만 있었다. 문득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린 곳으로 시라토리자와의 학교 전경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타이밍이었다.
곧 시라토리자와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