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시라부는 속에서 들끓는 열에 평소라면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거칠게 마이를 벗어던졌다. 아니 그렇게 끌려나온 것 치고 오늘은 정말 별 일 없었다. 그저 몇 가지 물음과 본인이 의심 가는 물건이 있으면 내일 가지고 오라는 것 뿐으로 끝이었으니까.
수업 시간도 그다지 뺏지 않아 그 수업 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조금 듣지 못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야 시라부에게는 그냥 넘어갈 정도의 양이었으니까. 문제는 시라부를 향한 오이카와의 태도였다. 애초에 시라부가 오이카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경향이라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몰랐지만.
1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주제에, 그 태도는 뭐냐고!
시간상으로는 보통 수업의 1교시의 절반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안에서 몇 번이고 폭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늘이 짧게 끝난 것은 그들 쪽의 1학년 후배 때문이었다.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그 1학년은, 이번이 첫 출장이라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말로는.
그러니까 그들에게 시라부는 고객이면서도, 그 후배에게는 고객과 동시에 첫 일을 배우는 경험치가 되는 셈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고민상담해결소>에 대해서는 시라부도 겉으로 드러난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기본 사항인 겉껍데기 말이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해결하는지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단지 얼핏 도는 소문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라, 조금의 호기심은 존재하고 있었지만.
“열 받아.”
문제는,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고민상담해결소>라고 하면, 멤버 전원을 떠올리기는 하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고민상담해결소>를 문제 없이 돌리고 있는 것은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은근히 떠도는 소문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지금의 멤버를 모은 것이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야기.
오늘 본 1학년은 아직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오이카와 본인의 수완으로 자신쪽으로 끌어들인 것은 확실했다. 현재 3학년인 이들은 특히나. 시라부가 동경하는 우시지마가 오이카와에게 관심을 두는 것도 그런 이유가 가장 컸다. 천재는 아니라도 숨겨진 인재를 찾아내는 재능.
오이카와의 그 점에 주목했을 뿐이었다.
고, 시라부는 생각하고 있었다. 오이카와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그런 모여든 사람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조금 비유를 격하게 해보자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본인이 그렸던 결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재주가 탁월했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사기 같은데, 오이카와는 생각보다도 더 했다. 그리고.
시라부는 인정했다. 어딘가, 정말 미미하기는 하지만 자신과 오늘 본 오이카와는 닮은 부분이 있기는 했다. 물론 그것이 오이카와 토오루에 대한 호감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굳이 따진다면 이것은 동족혐오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 감정이었다.
섞일 수 없다.
“섞일 생각도 없지만.”
시라부는 어쩐지 지치는 감각에 침대에 체중을 실어 앉았다. 조금 멍한 눈빛으로 천장의 형광등을 올려다보던 시라부는 문득 시선을 돌려 책상 위의 한 켠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말했던 의심 가는 물건이라면, 시라부에게도 하나가 존재했다. 지금 시라부의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카메라.
사진 찍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 시라부에게 있어서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지만. 작년 시라부가 시라토리자와 학원에 들어가게 된 기념으로 부모님이 장하다며 사다준 카메라였다. 딱히 그 카메라가 의심 가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냥 넘어가기에는 조금 찜찜한 것도 있었다.
시라부가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건 결코 몇 번 되지 않았다. 사람을 찍을 생각은 없었던지라, 보통 찍는다면 풍경을 찍는 편이었던 시라부였지만 이상하게 카메라로 찍을 때는 왜인지 사람이 찍히고는 했다. 보통은 시라부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어떤 때는 같은 학교 학생이기도 했다.
찍는 장소에 따라 찍히는 사람도 바뀌는 것 같았지만, 시라부는 그것에 딱히 의문점을 품고 있지는 않았었다. 사진 찍는 순간에 어린아이가 달려오는 바람에 흔들리듯 찍히는 경험이야 누구든지 한 번 쯤은 해보지 않던가. 시라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는.
며칠 전이었을까, 시라부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어쩌면 찍을 때마다의 패턴으로 사람이 찍혔고, 학교 내에서 찍었던 거라서인지 찍힌 것은 시라부와도 안면은 있는 2학년의 누군가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터졌다. 찍힌 그 2학년이 돌연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 이야기를 사고를 당한 2학년과는 다른 반이었던 시라부는 소문이 흘러흘러 조금 늦게 접하게 되었다. 그 소문을 듣고서 시라부가 느낀 오싹함이란. 소문을 접한 그 당일 집에 와서는 카메라를 집어들어 보았지만 별 다른 이상은 없었다.
사진도 잘 찍히고, 이상하게 집에서 찍으면 평범하게 찍히고는 했지만.
밖에서 카메라를 이용해 찍으면, 사람이 찍히는 것의 빈도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시라부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하지만,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고 있었다. 시라부의 시선이 카메라의 렌즈에 고정된 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
코즈메 켄마는 시선에 예민했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변함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고, 본인도 그 시선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고는 했다.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켄마 자체가 원래부터 그런 성격이었던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켄마는 지금, 누군가의 시선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서 나름 서두르려는데, 옆에 있는 쿠로오는 그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지 천하태평했다. 켄마는 그런 쿠로오에 시선을 주지 않고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상한 것은 시선이라고 생각되는데, 조금 다른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느껴지는 것에 비해, 지금 켄마가 느끼는 시선은 무언가 한 번 가려진 상태에서 켄마를 주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등줄기가 싸한 것에 켄마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이건 정말 사람의 시선인가. 켄마는 정확하게 장담할 수 없었다.
“뭐야, 켄마. 추워?”
켄마가 몸을 떤 것을 본 건지 쿠로오가 물어왔다. 쿠로오를 보던 켄마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걸었다. 쿠로오는 의문에 갸웃거렸지만 켄마가 걸어가니 자신도 얼른 따라붙어 옆에서 걸었다. 등 뒤로 따라붙는 듯한 불쾌한 시선에 켄마의 걸음이 조금씩 쳐졌지만 쿠로오는 눈치채지 못했다.
예정대로 사복 차림으로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그들은 다시 시라토리자와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는 왜인지 시선이 따라붙지 않아 켄마는 조금 안심하며 쿠로오의 어깨에 기대었다. 왠지 아침부터 별로 없는 체력이 팍팍 깎여나가는 느낌이었다.
“피곤해?”
“응.”
“또 밤늦게까지 게임 붙잡고 있었지.”
미안. 켄마는 사과했다. 아침에 켄마가 느낀 시선을 설명하기에는 그 원인을 몰랐기에, 켄마는 차라리 평소처럼 게임을 밤새 해서 잠이 부족한 것으로 하기로 했다. 당연컨데 이 때 켄마가 부정했었으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 지 그건 누구도 몰랐다. 이 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켄마는 결단코 모르고 있었다.
*
시라토리자와에 다시 방문한 그들은 즉시 시라부의 반으로 가기로 했다. 어제 의심 가는 물건이 있냐고 물었을 때, 일단 확실하지는 않지만 있기는 하다고 했기에 가는 발걸음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2-4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라부는 얌전히 자기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시라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업 종 치고 아직 들어오지 않으면 불려서 나갔다고 전해달라며, 옆자리의 친구로 보이는 소년에게 부탁하고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들고 다가왔다. 나가자고 눈치를 주고는 밖으로 나가는 것에 주저는 없었다.
시라부는 잠시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일단 사용하지 않는 빈 교실 하나에 들어갔다. 그런 시라부의 뒤를 따라 들어간 멤버들은 제각각 취향대로 자리를 잡았다. 잠시 바깥에 사람이 지나가는지 확인하던 시라부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빨리 끝낼 요량인지 가져온 것을 즉시 그들에게 보였다.
그것은 아무 문제 없는 듯해 보이는 새 것 처럼 보이는 카메라였다.
“어때, 아카아시?”
“글쎄요, 미묘한데요? 이게 뭐지.”
시라부가 보여준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멤버들이었다. 아카아시의 대답에 확실치는 않다고 생각하던 중, 켄마의 시선이 카메라에 닿았다. 카메라의 정면쪽에 서 있었던 켄마는 시선에 잡혀든 카메라의 렌즈를 보다 오싹하고 올라오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급히 그 자리에서 떨어졌다.
심장이 불길한 느낌으로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켄마는 누가 볼 새라 급하게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마이의 소매로 닦아내었다. 아까 아침에 느껴진 시선은. 문득 깨달은 어떤 사실에 켄마는 다급히 시라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켄마를 보고 있던 시라부의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시라부와 시선이 맞은 켄마는 변화를 전부 목격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하지만 켄마 혼자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아마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켄마는 눈치 빠르게 깨달았다. 켄마는 쿠로오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쿠로는 어쩌지.
‘내가 옆에 있을게, 켄마. 내가 있어줄게.’
과거에 쿠로오가 켄마에게 건넸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떠올리자 상황은 심각해질텐데 이상할 정도로 안심되는 느낌이 컸다. 켄마에게 있어서 쿠로오 테츠로는 빼놓을 수 없는 파츠 중 하나였다. 그 사실만으로도 무서움이 희석되고 있었다. 막을 수 없다고 해도.
켄마는 결심했다. 마음을 다잡고는 느리게 심호흡 했다. 괜찮아. 나에게는 모두가 있어.
쿠로가 있어.
아직까지 시라부의 카메라를 두고 이것저것 의견을 교환하던 멤버들을 보며 켄마는 평상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아직은 아니야. 조금 더. 그들이 알고 있는 코즈메 켄마의 디폴트 모습으로. 쿠로가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되돌아가야. 켄마는 눈을 감았다가 느릿하게 떴다.
그 때에는 이미 켄마는 평상시와 같았다. 의심할 건덕지가 전혀 없을 정도로.
“이상은 느껴지는데, 딱잘라 말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네요.”
“보쿠토도 마찬가지?”
“으음- 위험은 있지만 그다지 크지는 않다는 느낌일까?”
“그럼 괜찮은 걸까요?”
“그건 아니겠지. 이상은 느껴지는 거잖아? 무언가가 따로 개입하고 있을 경우도 있으니까 대비는 해두는 편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 시라부가 말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본 것은 켄마가 유일했다. 멤버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나온 켄마는 시라부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달렸다. 현재의 멤버 중에서도 체력이 없는 켄마였지만 시라부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힘껏 내달렸다.
“허억, 헉….”
켄마가 시라부를 찾은 것은 학교 건물 뒤편의 조금 구석진 자리였다. 시라부를 찾느라 달려서인지 체력이 바닥난 켄마가 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막아야 했다. 여기서 시라부를, 아니 저것을 막아야 했다. 숨을 고르고, 켄마는 다가갔다.
시라부는 켄마의 위치에서 뒤를 돌아보고 있는 채였다.
켄마가 시라부의 뒤에 거의 다다랐을 때, 시라부의 어깨를 잡으려던 켄마였지만 시라부가 뒤도는 것이 더 빨랐다. 그리고 켄마는 미처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 시라부에게 있는 것에 눈을 크게 떴고, 그리고, 나지막히 생각했다. 쿠로. 그리고 그대로 암전되었다.
카메라의 셔터음과 순간적인 빛이 켄마의 바로 앞에서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