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이와이즈미는 다치는 바람에 평소라면 생각해본 적도 없을 붕 떠버린 일정에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원치 않게 얻게 된 짧다면 짧은 휴식기이지만 지금 상황은 오히려 자신에게 나쁘게 작용하는 듯 했다. 오히려 몸을 움직이는 게 훨씬 안정될 것만 같았다. 일어나 아직 침대를 벗어나지 않은 이와이즈미의 의식은 자연히 어제의 일로 날아갔다. 의무실에서 켄마에게 치료받고 난 이후의 일이었다.
‘이해하라고 하지 않았어.’
‘나는, 이해해달라고 말하지 않았어, 이와짱.’
어쩌다 오이카와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게 됐더라. 저 말이 나오기 전까지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퓨즈가 나갔다가 오이카와에게서 나온 저 말에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기묘한 공백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이카와에게서 저런 말이 나온 것이 나름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던 듯 했다. 충격요법처럼 저 순간에 이성이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 말을 오이카와가 내뱉은 직후 그대로 내쫓겼다.
‘나가.’
오이카와는 마지막에 그 말만을 했는데 그 말에 따라 순순히 오이카와의 방을 빠져나온 것은 솔직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두글자에 힘이 실린 듯, 그 상황에서 명백히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반기지 않았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이후 오이카와가 방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이와이즈미는 알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듯 인기척도 없이 조용했을 뿐이었다.
“이제 어쩔까.”
본래라면 바로 전의 임무에서 다쳤을 인물은 자신이 아니라 오이카와여야 했다. 그것을 자신이 대신해서 다친 것이었건만, 오이카와는 그 점에 불만을 가졌던 듯 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따지고들던 것도 거기에 대한 것인 것 같았고, 자신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던지 그렇게 퇴출을 명했던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로서도 양보할 수는 없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파트너로서 있었으니까 말이다.
좋건 싫건 일단 마음 맞는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했으니까.
“오이카와 녀석이 뭘 좋아하더라.”
우선 오이카와와의 관계 회복에 힘을 써야한다는 것이 분명해서 이와이즈미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멈칫했다. 그러고보니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그건 아마도 쿠로오나 켄마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금 꺼려하는 것은 있는 모양이었지만 오이카와는 기본적으로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자기주장이 없는 편은 아니었건만 이건 어딘가 이상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이럴 수 있나, 를 생각하던 이와이즈미는 곧 그 생각을 종료했다. 오이카와가 어떤 녀석이건간에 자신도 말하지 못하는 사연 한 두개쯤은 가지고 있지 않던가. 생각해보면 다들 그런 점에 있어서는 피장파장이었다. 과거의 오이카와보다는 현재의 오이카와에 집중하면 될 일이었다. 좋아하는 게 없으면 어떤가. 이미 파트너로서 엮어버린 것을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잖은가. 그거랑 같은 것이다.
“모두 그렇지만 확실히, 오이카와 녀석은 자기 얘기를 더 안 하는 편이지.”
결국 이와이즈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할 오전 아홉 시 무렵. 켄마는 내심 진땀을 빼고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의무실에 들이닥쳐온 인물 때문이었는데, 켄마의 전용 의자 옆에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의자를 멋대로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불만이 있는지 나이에 맞지 않게 입술을 댓발 내밀고 퉁퉁거리며 하소연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라면 이야기하기 가장 편한 인물이 켄마임을 알고 있었기에 상대는 거칠 것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켄마짱! 이와짱 너무하지 않아?”
“자기 몸이나 챙길 것이지, 왜 내 걱정을 하고 앉아있어? 그러니까 다치는 거 아니야!”
“그래놓고 내가 거기에 대해 따지면 뭐라는 줄 알아?”
이렇게 이와이즈미의 뒷담을 하는 인물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오이카와였다. 뒷담까는 장본인이 없다고 밑 빠진 장독대마냥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것이 그동안 쌓아놨던 것을 풀어놓는 것 뿐인데도 듣고 있는 켄마로서는 피곤해져왔다. 오이카와가 떠드는 동안 결국 커피포트에서 진한 커피를 탄 켄마는 머그컴 두 개를 들고 다시 고정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나는 오이카와에게 건네고 나머지 머그컵은 자신의 몫이 되었다.
한창 얘기하다 건네진 커피에 그제야 잠시 오이카와의 말소리가 뚝하니 끊겼다. 먼저 커피를 마시는 켄마를 보고 양 손에 들린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빤히 보던 오이카와는 슬슬 목이 말라가고 있던 차라 뜨끈한 커피를 한 모금 입 안에 머금었다. 진한 커피향이 확 하고 풍겨왔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커피는 상당히 진해서 입가심은 되었지만 뭔가 다른 게 끌리고 있었다. 짭짤한 과자가 있으면 딱일 것 같았다.
“이렇게 몰래 불평 늘어놓을 정도로 오이카와 상은 이와이즈미 상 마음에 들어하는 거죠.”
켄마가 오이카와의 입에서 나오는 뒷담 아닌 불평을 들으면서 생각한 것이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입에도 담지 않으면 그만일텐데, 오이카와는 그러지 않는다.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는 꽤나 마음에 드는 상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당사자가 없을 때를 노려서 켄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겠지. 그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로서는 조금 난감하기 그지없지만 말이다.
“좋아해.”
켄마의 말이 꽤나 의외라는 듯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붙이지 않고 그 말만을 했다. 그러면서 웃는 얼굴은 켄마가 지금까지 봐왔던 오이카와와는 어딘가 달랐다. 진심이구나. 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까지 접고 웃는 얼굴을 보고 켄마는 다시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 그런 켄마를 보던 오이카와가 잠시 눈동자를 굴리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싶더니 그 뒷말을 덧붙이듯 속삭여왔다.
“켄마짱도 좋아해. 쿠로짱도 좋아해.”
같은 의미의, 같은 무게의 오이카와의 좋아해를 들은 켄마는 그저 웃었다. 물론 켄마 자신도 쿠로를 좋아한다. 그런 경우로 따지자면 그것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도 마찬가지로 좋아하고 있다. 오이카와와 같은, 좋아해 였다. 서로의 공통적인 부분을 퍼즐처럼 찾아낸 켄마와 오이카와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정말 쓰잘데기 없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자신들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그것이 따뜻했다.
“저도 쿠로가 좋아요. 오이카와 상도, 이와이즈미 상도 물론 좋아해요.”
“그렇지? 켄마짱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나랑 같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뒷말을 덧붙이는 오이카와에 켄마는 주의깊게 살폈다.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이 나온 것인지 파악할 수 없어서 더욱 그랬다. 조심성이 많은 켄마인지라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슬쩍슬쩍 바라봐오는 것에 커피를 마시며 오이카와는 얼굴 위에 떠오른 미소를 가렸다. 머그컵에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술의 선이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켄마는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켄마짱. 방금 건 비밀로 하자.”
“…?”
“혹시나 싶어서야, 혹시나 싶어서.”
의뭉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오이카와에 켄마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크게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오이카와가 하는 말은 어떤 말이라도 결코 허투루 넘겨들을 수 없는 힘이 있었고, 거의 대부분 맞아떨어지고 있었기에 오이카와가 넌지시 주의를 당부하는 말을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는 뜻과 일맥상통 했다. 켄마는 다시 커피를 마셨고 그걸 본 오이카와는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매만지다가 켄마를 따라 남아있는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렇게 서로 커피를 마저 마시며 느긋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끝마쳤다.
***
그 뒤로 켄마와 소소하지만 즐거운 수다를 떨었던 오이카와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갔다. 착, 하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짧게 들렸다가 끊어졌다. 답답할 정도로 목에 얌전히 매어져 있는 검은색 넥타이를 아무렇게나 잡아 끌어 느슨하게 만든 뒤에 입고 있던 흰색 와이셔츠의 위쪽 단추 두어개를 풀었다. 그제야 겨우 숨통이 트이는 느낌에 오이카와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독한 양주가 땡겨오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문을 걸어잠그는 것은 방 안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표시였다. 대개 임무에 관련된 내용으로 추가적인 정보를 더 얻고자 하거나, 자료를 꼼꼼히 살피거나, 그 외 기타 등등의 일들로 본인이 바쁜 걸 알리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왼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손목시계를 보며 다음 일정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확인한 오이카와는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
소파 앞인 조금 아래의 정면, 그곳에 있는 탁자 위에는 어제 오이카와가 불편한 심기로 대충 보다가 던져놓은 다음 임무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진 자료가 여전히 그 자리에 놓아져 있었다. 탁자 위에 흩어져 있는 종이를 반듯하게 모아들은 오이카와는 소파에 편하게 앉았다. 집어든 종이를 이번에는 글자 하나하나 꼼꼼하게 훑어나갔다. 중간중간 실려있는 사진이나 첨부 자료등을 엄청난 집중력으로 다 본 오이카와는 피곤한 눈가를 문질거렸다.
“으어.”
자료를 보느라 굳어진 몸을 쭉쭉 늘리며 오이카와가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손을 맞잡아 위로 쭈욱 뻗은 오이카와는 그 상태로 잠시 멈췄다. 팔 안쪽이 땡겨오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다 본 자료는 다시 탁자 위에 놓여졌고 그것에 잠시 시선을 둔 오이카와는 슬며시 올라오려는 입꼬리를 애써 잡아내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어이가 없어서 대놓고 폭소를 터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골 때리는 놈들이네-”
나 이렇게까지 골 때리는 놈들 처음이야. 웃음이 터지려고 해 부들부들 떨려오는 입꼬리를 가린 손 안쪽에서 그런 말이 뒤따라 나왔다. 솔직히 마피아라는 것이 딱히 정의롭다고 하기에는 약간 어폐가 있는 것은 사실인데, 그 구성원들은 모두 그것을 잘 숙지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이와이즈미도, 쿠로오도, 켄마도, 그리고 자신도 거기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도 넘치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 중심이 되는 규율은 있고, 그것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마피아다. 일정 선을 과도하게 넘지 않으면 딱히 윗선에서도 터치하지는 않고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한마디로 마피아라는 족속들은 세간에서의 시선은 그다지 좋지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고, 그리고 정의관이 있는 나름 정당한 집단이기는 하다는 것이다. 그런 마피아에 비해 넘쳐나는 갱들은 그런 정의관조차도 없는 그저 그런 폭력 집단일 뿐이다.
쿠로오가 전해준 다음 임무는 바로 그 갱들에 대한 것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다면 활발하게 움직이는 녀석들이 모여있는 쪽의 자료였다. 그것 뿐이면 주의를 주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안건이었으나, 이놈들이 미쳤는지 마피아인 우리들의 영역을 건들기 시작했다는 내용으로, 그 주요 인물들의 프로필도 잘 정리되어 자신에게 건네진 것이었다. 갱들도 갱들이었지만 어이 없는 건 따로 있었다.
“이젠 하다하다 갱들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거냐고.”
아, 혈압. 오이카와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째 마피아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한숨만 늘어가는 것 같은 것은 자신의 착각일까. 어째서 오이카와 상의 취급이 이렇게 되었지. 언제 한 번 시간 날 때에 진지하게 고민 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을 내린 오이카와가 소파에서 일어나 방 한쪽의 진열장으로 걸어갔다. 유리로 된 문을 여니 그 안에는 각종 술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쩐지 땡기더라니, 마셔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랬구만.”
담배도 좋아하지만 술도 좋아하는 오이카와는 여럿이서 함께 마시는 술도 좋았지만 혼자서 하는 자작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편해하는 오이카와로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눈을 굴리며 보드카 종류를 찾았다. 스피리터스(Spirytus)도 괜찮겠지만 몇 잔 마시는 걸로 끝낼 생각이 없기에 그냥 다른 걸 마시기로 했다. 그리하여 선정된 것이 에버 클리어. 95도의 도수짜리가 아닌 그보다 낮은 75.5도의 에버 클리어였다.
대체로 보드카는 냉동실에 넣어놓았다가 마시는 게 좋지만 오늘은 패스였다. 얼음으로 희석하면 소용이 없으니 그냥 생으로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하고 에버 클리어를 집어들었다. 다시 앉았던 소파의 자리로 돌아와 잔을 놓고 가지고 온 술을 따 따랐다. 적당한 양을 따른 뒤에 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 들이켰다. 아무리 어느 정도 도수를 낮췄다지만 기본적으로 도수가 쎄기 때문에 금새 칼칼함이 치고 올라왔다.
“다음번에는 저번처럼 다 같이 마시러 갈까나.”
딱히 취하고자 마시는 술이 아니었기에 오이카와는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들고 둥글게 돌렸다. 잔을 따라 안에 있는 술이 똑같이 돌았다. 그 모양새를 눈을 내리깔고 지켜보던 오이카와는 그대로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소파에 편히 기대앉은 오이카와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눈을 굴린 오이카와는 양 손을 들어올려 마른 세수를 하며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이카와의 머릿속에는 아까의 대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네가 나랑 같아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는 오이카와의 눈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쿠로오는 제법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말단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고, 지금은 이곳에서 나름 높은 지위를 가진 쿠로오였으나 이제는 새로 들어오는 신입들을 도맡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대해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아마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이었고, 단지 그것을 자신이 맡게 되었을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신도 신입이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문제라면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의 규칙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자잘한 문제들은 자신이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에 있었다. 한 두번이면 이해를 하겠는데 시도 때도 없이, 줄기차게 문제를 일으키니 아무리 쌩쌩한 쿠로오라도 얼굴 위로 피곤함이 깔리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해야 하니 금방이라도 인내심이 끊어질 것 같았다.
“쿠로, 조금 쉬어.”
“아, 켄마.”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아는건지 켄마가 의무실에서 나와 쿠로오를 직접 찾아오곤 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쿠로오가 폭발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쿠로오에게 다가온 켄마는 손을 잡고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켄마가 이끄는대로 따라간 곳은 휴게실이었다. 켄마는 아무도 없음을 아는지 문을 열고 들어가 도로 닫고, 잠갔다. 그 뒤 휴게실 안에 놓여져 있는 간이 의자에 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앉아있던 쿠로오가 문득 켄마에게 안겼다. 신장도 덩치도 켄마보다 큰 쿠로오였으나 딱히 거부감도 없이 켄마는 안겨오려는 쿠로오를 마주 안아주었다. 품에 파고들려는 쿠로오의 등을 도닥여주던 켄마는 그 정도에 시선을 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쿠로오가 상당히 무리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캐릭터에 맞지 않게 어리광을 부려오는 쿠로오는 제법 오랜만이었다. 얼굴 위로 살풋 미소가 감돌았다.
“힐링 됐어, 쿠로?”
“응. 역시 켄마는 내 힐링제야.”
켄마가 내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이어지는 쿠로오의 말에 켄마 특유의 고양이 눈이 몇 번이고 깜박였다. 그런 켄마의 반응을 바로 앞에서 지켜본 쿠로오는 그저 웃었다. 지금 한 말에 거짓은 없었다. 이미 말 그대로의 의미였으니까. 굳이 왜곡할 필요도 없는 직선적인 의미의 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했기에 켄마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속을 내보인 적이 적은 편이었기에.
“오늘따라 솔직하네.”
“그런가? 스트레스 받을대로 받다가 제대로 힐링 받아서 그런가보지.”
“쿠로 어리광 오랜만에 봤어.”
“어른이 하면 역시 이상하지, 그거.”
“아직 젊잖아.”
큭큭 웃어버리는 쿠로오에 켄마의 작은 타박이 사정없이 날아왔다. 무엇이 그렇게 놀라운 것인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켄마를 바라보는 쿠로오는 미처 자각하지 못하던 것을 겨우 안 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표정이었다. 우리 삼십줄도 안 됐거든. 많아봐야 대학생 나이이면서 그런 걸 따져. 이어지는 팩트 폭력에 쿠로오는 멍하니 있다가 성대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쿠로오로서는 켄마가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리고 이걸로 알았다. 켄마도 쿠로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말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말에서, 그 어투에서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그래 보이지 않아도 코즈메 켄마라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사실 하나를 안 것만 해도 쿠로오는 지금 이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굳이 알리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신뢰관계는 이미 옛적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쿠로는 바보지.”
“이번엔 반대로 디스하는 거야?”
마지막은 끝까지 좋은 말은 해주지 않는 켄마와 그런 모습에 어딘가 풀죽는 쿠로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