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안녕, 토비오!

이 세상은 미쳐돌아간다

-인지認知

 

 

 

 

 

 

 

 

 

 

카게야마 토비오. 그 이름은 배구부에서 유명했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로든 말이다.

 

배구에 있어서의 천재.

 

배구의 강호교인 키타가와 제1에서도 그 수가 적은 편인 세터라는 포지션에서 특출난 재능을 내보이는 1학년으로서는 감독과 코치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으나, 그 외에서는 전혀라고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같은 동급생인 1학년들에게는 각자 포지션을 정하기 전이라 상관없었으나, 2·3학년들은 그렇지 않았다. 갓 입학한 새파란 1학년의 뛰어난 재능은 정식 선수 자리를 빼앗길거라는 경각심을 강하게 심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그 성향이 두드러졌던 것은 현 3학년으로 배구부 주장이기도 한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포지션적으로 카게야마와 경쟁하는 자리에 위치해 있는 오이카와는 그 특유의 눈치 빠름으로 인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그런 배구부의 미묘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배구 삼매경이었다. 공을 올리는 폼이 깔끔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있던 오이카와는 냉큼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정말-”

 

 

 

천재는 짜증나네에.

 

그 중얼거림을 옆에 있던 이와이즈미가 들었는지 흘끔 오이카와를 보고는 사정없이 그 등을 향해 내리치듯 때렸다. 퍼억, 하는 큰 소리가 체육관에 울렸고 곧이어 얻어맞은 등을 문지르며 따지는 오이카와의 말소리가 이어졌다.

 

 

 

“아파앗!! 이와짱, 갑자기 왜 때리는데? 아무 짓도 안 했는데에!!”

“했잖아, 이 쿠소카와!!”

 

 

 

도망갈 퇴로를 차단하듯 사실을 들이미는 이와이즈미를 보고 오이카와는 불만스레 입술을 삐죽였다. 이와짱은 매번 나한테만 뭐라 그래. 작게 꿍얼거리는 그 소리를 들었는지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응…?”

“네놈은 생각이 너무 많아.”

 

 

 

가끔은 그 머릿속을 비우는 것도 도움이 될 거다.

 

그렇게 충고를 하면서 이와이즈미는 얹은 손을 움직여 오이카와의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비교적 얌전하게 그 손길을 받아들이던 오이카와가 상황을 파악한 것은 이 다음이었다. 오이카와가 빼액 소리를 키워 소리쳤다.

 

 

 

“으악, 내 머리!! 이와짱, 일부러 그랬지!!!”

“그걸 이제 알았냐, 멍청아.”

“이와짜앙!!!”

“시끄럽다, 쿠소카와.”

 

 

 

진짜 너무하네!!

 

이미 고정되어 있던 머리라 그렇게 티나는 것도 아니건만 오이카와는 아주 큰 일이 났다는 양 굴고 있었다. 그런 오이카와를 굳이 알면서도 일을 벌인 이와이즈미는 제 잘못을 아는 것처럼 그 투정을 적당히 받아주고 있었다.

 

한쪽에서 그런 만담이 펼쳐지는 사이 카게야마는 아침 연습량을 거의 다 채우고 있었다. 그 속도가 빠른 편이라 조금만 주의 깊게 본다면 카게야마가 배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후우.”

 

 

 

공을 던지고 스파이크를 치는 연습을 하던 카게야마는 그 움직임으로 체온이 올라 발그레해진 양 뺨을 손등으로 문질거렸다. 손등도 뜨끈뜨끈해 문지르는 의미가 전혀 없었으나 카게야마는 그냥 좋았다.

 

배구를, 정말 좋아하는 배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카게야마는 충분할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다. 염원하던 배구부에 들어와 매일 같이 마음껏 배구공을 만질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두근두근거리며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피실거리며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억지로 막았다. 웃는 얼굴은 좀 무서우니까 말이다. 왜 웃는 게 잘 안 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카게야마는 본인의 웃는 얼굴이 굉장한 흉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집중해서, 손 안의 공을 띄우고, 도움닫기 후, 뛰어올라 때린다. 마지막 연습을 끝낸 카게야마가 날아간 공을 주워들고 뒤로 돌았을 때, 이번에는 빤히 바라봐오던 오이카와와 눈이 마주쳤다. 미묘한 공기가 흘렀다.

 

오이카와는 금새 카게야마를 보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지만 카게야마는 여전히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늘한 표정이었다, 고 카게야마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카게야마는 짐작할 수 없었다.

 

카게야마로서는 자신이 천재이기에, 시기와 질투를 받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이미 미묘한 금이 발 밑에서 천천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아직 카게야마는 전혀 알지 못했다.

 

 

 

 

 

***

 

 

 

 

 

수업은 재미없다. 아주 객관적이고 사실인 내용을 상기하면서 카게야마는 이번 수업도 포기하기로 했다. 머릿속에 배구만 가득한 카게야마로서는 도저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배구 생각이 간절했다. 방과 후에 다시 배구 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해도 부족하고 또 부족했다. 배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도 갈증이 일었다. 그것은 배구를 처음 접했던 날부터 계속되었던 목마름이었다.

 

아무리 배구공으로 배구를 하고 있어도 절대로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항상 부족했고, 목이 탔다. 그 정도로 배구를 좋아하는 모습은 곁에서 보면 굉장히 비이상적이었다. 한마디로 비정상이라는 소리였다.

 

카게야마는 가끔이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만약 자신이 배구를 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 때에는.

 

 

 

“…….”

 

 

 

그런 상황을 상상했는지 카게야마는 몸을 떨었다. 그다지 생각하고 싶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한 번 하곤 하는 가정일 뿐이었으니 거기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어째서 미련을 못 버린 것처럼 신경이 쓰이는 걸까.

 

 

 

“하아.”

 

 

 

카게야마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높은 곳에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하늘 너머를 보다가 문득 창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여전히 무결점의 푸른 눈이 그곳에 있었다.

 

카게야마는 문득 그것이 기묘하다, 라고 생각했다. 알지 못하는 가시감(可視-)이 치고 올라오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속삭이는 듯 무언가를 말해오기 시작했지만 아직 카게야마는 그 말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의 불안이 싹을 틔웠다.

 

 

 

 

 

***

 

 

 

 

 

“카게야마. 이리 와 보거라.”

“네.”

 

 

 

결국 감독에게 불리고 만 카게야마였다. 아침 연습 때까지는 멀쩡했는데 어째 방과 후가 되니 자잘한 미스를 많이 내고 있었다. 깔끔했던 자세까지도 일부 무너져서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감독에게 불린 건 잘못했다는 것이니 카게야마는 당연하게도 감독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런 카게야마를 보며 감독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보고 있던 오이카와는 양 손에 쥐고 있던 배구공을 돌렸다.

 

 

 

“흐응.”

 

 

 

별 관심 없다는 반응을 내보이고 있었으나 오이카와의 모든 신경과 관심은 감독과 그 앞에 서 있는 카게야마에게 집중된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아는지 이와이즈미도 오이카와의 옆으로 다가오며 시선은 마찬가지로 카게야마쪽을 향해 있었다.

 

 

 

“이상하네. 아침까지는 분명 절호조라는 느낌이었는데, 카게야마.”

“헹, 저건 그냥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거라구.”

“후배한테 괜한 심술 부리지 마라.”

“심술 아니라구! 오이카와 상은 쪼잔하지 않아!”

 

 

 

네가?

 

절대 믿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이와이즈미에 오이카와는 소소하게 데미지를 입어 풀이 죽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곁눈질로 카게야마를 살피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오이카와에 이와이즈미는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그 머릿속 비우라니까 지지리도 말 안 들어처먹지. 쿠소카와가.

 

 

 

“딴 짓 말고, 토스나 올려라.”

“우왓. 이와짱 의욕 만만! 좋아, 오이카와 상 힘낼게!”

 

 

 

여즉 손 안에서 돌리고 있던 배구공을 꽉 잡으며 오이카와가 먼저 코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 뒤를 따르듯 오이카와를 따라 걷던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다시금 카게야마쪽을 향해 돌아갔다. 이와이즈미는 가만히 생각했다.

 

아마 오이카와의 예측이 맞을 것이다.

 

이와이즈미의 생각대로 실상은 오이카와가 말한 그대로였다. 카게야마는 현재 잠깐 정신이 이곳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것은 아까 수업 도중 가시감을 느꼈던 그 때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카게야마는 가볍게 넘길 수 없었고 지금까지 그것을 끌고 온 것이었다. 자신이 정확히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고, 그게 겉으로 드러나면서 미스가 발생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뭐가 문제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구나.”

“네….”

 

 

 

격려하려 한 말이었겠지만 카게야마는 그것에 오히려 착잡해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만약 지금의 가시감을 해결한다고 해도, 그 뒤가 있을 것 같은 예감 같은 게 문득 든 탓이었다. 자신의 이 가시감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때 아닌 난관에 머리가 아파져오고 있었다.

 

 

[하이큐]안녕, 토비오!

???

 

 

 

 

 

 

 

 

알 수 없는 정체 모를 느낌에 화들짝 놀라서 눈을 떴다. 이미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잠든 자세가 불편했던 것인지 악몽을 꾼 모양이었다. 잠시 눈을 꿈벅이다가 별 생각 없이 자세를 고치고 다시 잠을 청했다.

 

 

 

 

 

***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창 밖은 하늘에 버젓이 떠 있는 해 덕분에 사방이 환해진 뒤였다. 고개를 돌려 침대 머리 위에 놓여져 있는 탁상 시계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7시 반.

 

살짝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침대 위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섰다. 세수를 하려 화장실로 향하는 와중 지나치는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나왔다.

 

식욕이 돌게 만드는 아침 냄새에 빨리 세수를 끝내기로 했다. 걸대에 걸려있는 수건을 끌어내리고 그대로 목 뒤쪽으로 가볍게 둘렀다. 세면대의 물을 틀고 잠깐동안 세수를 한 뒤 목에 걸어놓았던 수건으로 물기를 깨끗하게 닦아냈다.

 

직후 졸음기가 완전히 가신 말끔한 얼굴이 거울에 비쳤고 비친 자신의 눈과 시선이 맞았다. 무결점의 푸른 눈동자가 거울 너머의 자신을 바라봐온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리고 웃어보았다.

 

곧 거울에 비치는 웃는 얼굴의 모습에 그냥 웃기를 그만두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시각 테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왜 웃는 얼굴이 무시무시한 걸까. 괜히 그런 의문이 들어와 고개를 갸웃거려 보았다.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얼굴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울 듯한 얼굴로 갸웃거리는 모습을 거울 너머의 자신도 따라한다. 다시 한 번 웃어보려다 관두었다. 얼마나 웃는 게 서툰건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꼴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울 너머의 자신을 마주본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법한 굳은 푸른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을 발했다. 그리고 직후, 아주 일순간이었지만 그 눈동자가 빛을 잃고 낮게 가라앉았지만 당사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토비오, 일어났니? 이제 슬슬 아침 먹지 않으면 학교에 늦어요.”

 

 

 

화장실 너머 주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제야 겨우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주방으로 들어가니 엄마가 아침상을 차려놓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냉큼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후후. 맛있게 먹으렴, 토비오.”

 

 

 

젓가락을 들고 천천히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차려진 밥상을 깨끗이 전부 먹은 뒤 젓가락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아침을 먹고 있는 동안 물을 갖다놓으신 엄마로 인해 옆에 놓여진 물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뒤에는 책상 옆에 놓여져 있던 책가방을 등에 둘러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배구공을 한 손에 들고 방을 나오면 엄마가 현관에 서 계셨다. 현관으로 급히 가서 놓여져 있던 신발을 신었다.

 

 

 

“오늘도 배구 하고 올거니?”

“네!”

 

 

 

오늘 중에서 가장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대답하는 자신에 엄마는 귀여우신 모양인지 웃으셨다. 자신은 배구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한 번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배구공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배구도.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잘 다녀오렴.”

 

 

 

현관을 열고 집을 나섰다. 학교가 있는 방향으로 뛰어가면서 손에 든 배구공을 놓지 않으려 두 손으로 꼬옥 쥐었다. 아직 아이인지라 배구공은 자신의 손보다는 커서 두 손으로 잡지 않으면 금방 손 안에서 빠져나가곤 했다.

 

 

 

 

 

***

 

 

 

 

 

카게야마 토비오.

배구를 정말 좋아하는 소년으로 현재 초등학교 6학년.

 

얼마 뒤 키타가와 제1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배구의 천재였다.


설마하니 이전에 했었던 말이 사실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빙의/환생/우울+피폐(1부)/치유+힐링(2부)/갈 길이 멀다/느린 진행/방향성이 다른 원작 파괴/(????)

 

우리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이와이즈미는 다치는 바람에 평소라면 생각해본 적도 없을 붕 떠버린 일정에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원치 않게 얻게 된 짧다면 짧은 휴식기이지만 지금 상황은 오히려 자신에게 나쁘게 작용하는 듯 했다. 오히려 몸을 움직이는 게 훨씬 안정될 것만 같았다. 일어나 아직 침대를 벗어나지 않은 이와이즈미의 의식은 자연히 어제의 일로 날아갔다. 의무실에서 켄마에게 치료받고 난 이후의 일이었다.

 

 

 

‘이해하라고 하지 않았어.’

‘나는, 이해해달라고 말하지 않았어, 이와짱.’

 

 

 

어쩌다 오이카와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게 됐더라. 저 말이 나오기 전까지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퓨즈가 나갔다가 오이카와에게서 나온 저 말에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기묘한 공백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이카와에게서 저런 말이 나온 것이 나름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던 듯 했다. 충격요법처럼 저 순간에 이성이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 말을 오이카와가 내뱉은 직후 그대로 내쫓겼다.

 

 

 

‘나가.’

 

 

 

오이카와는 마지막에 그 말만을 했는데 그 말에 따라 순순히 오이카와의 방을 빠져나온 것은 솔직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두글자에 힘이 실린 듯, 그 상황에서 명백히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반기지 않았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이후 오이카와가 방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이와이즈미는 알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듯 인기척도 없이 조용했을 뿐이었다.

 

 

 

“이제 어쩔까.”

 

 

 

본래라면 바로 전의 임무에서 다쳤을 인물은 자신이 아니라 오이카와여야 했다. 그것을 자신이 대신해서 다친 것이었건만, 오이카와는 그 점에 불만을 가졌던 듯 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따지고들던 것도 거기에 대한 것인 것 같았고, 자신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던지 그렇게 퇴출을 명했던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로서도 양보할 수는 없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파트너로서 있었으니까 말이다.

 

좋건 싫건 일단 마음 맞는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했으니까.

 

 

 

“오이카와 녀석이 뭘 좋아하더라.”

 

 

 

우선 오이카와와의 관계 회복에 힘을 써야한다는 것이 분명해서 이와이즈미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멈칫했다. 그러고보니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그건 아마도 쿠로오나 켄마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금 꺼려하는 것은 있는 모양이었지만 오이카와는 기본적으로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자기주장이 없는 편은 아니었건만 이건 어딘가 이상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이럴 수 있나, 를 생각하던 이와이즈미는 곧 그 생각을 종료했다. 오이카와가 어떤 녀석이건간에 자신도 말하지 못하는 사연 한 두개쯤은 가지고 있지 않던가. 생각해보면 다들 그런 점에 있어서는 피장파장이었다. 과거의 오이카와보다는 현재의 오이카와에 집중하면 될 일이었다. 좋아하는 게 없으면 어떤가. 이미 파트너로서 엮어버린 것을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잖은가. 그거랑 같은 것이다.

 

 

 

“모두 그렇지만 확실히, 오이카와 녀석은 자기 얘기를 더 안 하는 편이지.”

 

 

 

결국 이와이즈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할 오전 아홉 시 무렵. 켄마는 내심 진땀을 빼고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의무실에 들이닥쳐온 인물 때문이었는데, 켄마의 전용 의자 옆에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의자를 멋대로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불만이 있는지 나이에 맞지 않게 입술을 댓발 내밀고 퉁퉁거리며 하소연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라면 이야기하기 가장 편한 인물이 켄마임을 알고 있었기에 상대는 거칠 것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켄마짱! 이와짱 너무하지 않아?”

“자기 몸이나 챙길 것이지, 왜 내 걱정을 하고 앉아있어? 그러니까 다치는 거 아니야!”

“그래놓고 내가 거기에 대해 따지면 뭐라는 줄 알아?”

 

 

 

이렇게 이와이즈미의 뒷담을 하는 인물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오이카와였다. 뒷담까는 장본인이 없다고 밑 빠진 장독대마냥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것이 그동안 쌓아놨던 것을 풀어놓는 것 뿐인데도 듣고 있는 켄마로서는 피곤해져왔다. 오이카와가 떠드는 동안 결국 커피포트에서 진한 커피를 탄 켄마는 머그컴 두 개를 들고 다시 고정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나는 오이카와에게 건네고 나머지 머그컵은 자신의 몫이 되었다.

 

한창 얘기하다 건네진 커피에 그제야 잠시 오이카와의 말소리가 뚝하니 끊겼다. 먼저 커피를 마시는 켄마를 보고 양 손에 들린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빤히 보던 오이카와는 슬슬 목이 말라가고 있던 차라 뜨끈한 커피를 한 모금 입 안에 머금었다. 진한 커피향이 확 하고 풍겨왔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커피는 상당히 진해서 입가심은 되었지만 뭔가 다른 게 끌리고 있었다. 짭짤한 과자가 있으면 딱일 것 같았다.

 

 

 

“이렇게 몰래 불평 늘어놓을 정도로 오이카와 상은 이와이즈미 상 마음에 들어하는 거죠.”

 

 

 

켄마가 오이카와의 입에서 나오는 뒷담 아닌 불평을 들으면서 생각한 것이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입에도 담지 않으면 그만일텐데, 오이카와는 그러지 않는다.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는 꽤나 마음에 드는 상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당사자가 없을 때를 노려서 켄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겠지. 그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로서는 조금 난감하기 그지없지만 말이다.

 

 

 

“좋아해.”

 

 

 

켄마의 말이 꽤나 의외라는 듯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붙이지 않고 그 말만을 했다. 그러면서 웃는 얼굴은 켄마가 지금까지 봐왔던 오이카와와는 어딘가 달랐다. 진심이구나. 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까지 접고 웃는 얼굴을 보고 켄마는 다시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 그런 켄마를 보던 오이카와가 잠시 눈동자를 굴리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싶더니 그 뒷말을 덧붙이듯 속삭여왔다.

 

 

 

“켄마짱도 좋아해. 쿠로짱도 좋아해.”

 

 

 

같은 의미의, 같은 무게의 오이카와의 좋아해를 들은 켄마는 그저 웃었다. 물론 켄마 자신도 쿠로를 좋아한다. 그런 경우로 따지자면 그것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도 마찬가지로 좋아하고 있다. 오이카와와 같은, 좋아해 였다. 서로의 공통적인 부분을 퍼즐처럼 찾아낸 켄마와 오이카와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정말 쓰잘데기 없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자신들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그것이 따뜻했다.

 

 

 

“저도 쿠로가 좋아요. 오이카와 상도, 이와이즈미 상도 물론 좋아해요.”

“그렇지? 켄마짱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나랑 같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뒷말을 덧붙이는 오이카와에 켄마는 주의깊게 살폈다.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이 나온 것인지 파악할 수 없어서 더욱 그랬다. 조심성이 많은 켄마인지라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슬쩍슬쩍 바라봐오는 것에 커피를 마시며 오이카와는 얼굴 위에 떠오른 미소를 가렸다. 머그컵에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술의 선이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켄마는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켄마짱. 방금 건 비밀로 하자.”

“…?”

“혹시나 싶어서야, 혹시나 싶어서.”

 

 

 

의뭉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오이카와에 켄마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크게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오이카와가 하는 말은 어떤 말이라도 결코 허투루 넘겨들을 수 없는 힘이 있었고, 거의 대부분 맞아떨어지고 있었기에 오이카와가 넌지시 주의를 당부하는 말을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는 뜻과 일맥상통 했다. 켄마는 다시 커피를 마셨고 그걸 본 오이카와는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매만지다가 켄마를 따라 남아있는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렇게 서로 커피를 마저 마시며 느긋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끝마쳤다.

 

 

 

 

 

***

 

 

 

 

 

그 뒤로 켄마와 소소하지만 즐거운 수다를 떨었던 오이카와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갔다. 착, 하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짧게 들렸다가 끊어졌다. 답답할 정도로 목에 얌전히 매어져 있는 검은색 넥타이를 아무렇게나 잡아 끌어 느슨하게 만든 뒤에 입고 있던 흰색 와이셔츠의 위쪽 단추 두어개를 풀었다. 그제야 겨우 숨통이 트이는 느낌에 오이카와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독한 양주가 땡겨오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문을 걸어잠그는 것은 방 안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표시였다. 대개 임무에 관련된 내용으로 추가적인 정보를 더 얻고자 하거나, 자료를 꼼꼼히 살피거나, 그 외 기타 등등의 일들로 본인이 바쁜 걸 알리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왼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손목시계를 보며 다음 일정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확인한 오이카와는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

 

 

 

소파 앞인 조금 아래의 정면, 그곳에 있는 탁자 위에는 어제 오이카와가 불편한 심기로 대충 보다가 던져놓은 다음 임무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진 자료가 여전히 그 자리에 놓아져 있었다. 탁자 위에 흩어져 있는 종이를 반듯하게 모아들은 오이카와는 소파에 편하게 앉았다. 집어든 종이를 이번에는 글자 하나하나 꼼꼼하게 훑어나갔다. 중간중간 실려있는 사진이나 첨부 자료등을 엄청난 집중력으로 다 본 오이카와는 피곤한 눈가를 문질거렸다.

 

 

 

“으어.”

 

 

 

자료를 보느라 굳어진 몸을 쭉쭉 늘리며 오이카와가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손을 맞잡아 위로 쭈욱 뻗은 오이카와는 그 상태로 잠시 멈췄다. 팔 안쪽이 땡겨오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다 본 자료는 다시 탁자 위에 놓여졌고 그것에 잠시 시선을 둔 오이카와는 슬며시 올라오려는 입꼬리를 애써 잡아내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어이가 없어서 대놓고 폭소를 터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골 때리는 놈들이네-”

 

 

 

나 이렇게까지 골 때리는 놈들 처음이야. 웃음이 터지려고 해 부들부들 떨려오는 입꼬리를 가린 손 안쪽에서 그런 말이 뒤따라 나왔다. 솔직히 마피아라는 것이 딱히 정의롭다고 하기에는 약간 어폐가 있는 것은 사실인데, 그 구성원들은 모두 그것을 잘 숙지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이와이즈미도, 쿠로오도, 켄마도, 그리고 자신도 거기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도 넘치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 중심이 되는 규율은 있고, 그것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마피아다. 일정 선을 과도하게 넘지 않으면 딱히 윗선에서도 터치하지는 않고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한마디로 마피아라는 족속들은 세간에서의 시선은 그다지 좋지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고, 그리고 정의관이 있는 나름 정당한 집단이기는 하다는 것이다. 그런 마피아에 비해 넘쳐나는 갱들은 그런 정의관조차도 없는 그저 그런 폭력 집단일 뿐이다.

 

쿠로오가 전해준 다음 임무는 바로 그 갱들에 대한 것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다면 활발하게 움직이는 녀석들이 모여있는 쪽의 자료였다. 그것 뿐이면 주의를 주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안건이었으나, 이놈들이 미쳤는지 마피아인 우리들의 영역을 건들기 시작했다는 내용으로, 그 주요 인물들의 프로필도 잘 정리되어 자신에게 건네진 것이었다. 갱들도 갱들이었지만 어이 없는 건 따로 있었다.

 

 

 

“이젠 하다하다 갱들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거냐고.”

 

 

 

아, 혈압. 오이카와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째 마피아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한숨만 늘어가는 것 같은 것은 자신의 착각일까. 어째서 오이카와 상의 취급이 이렇게 되었지. 언제 한 번 시간 날 때에 진지하게 고민 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을 내린 오이카와가 소파에서 일어나 방 한쪽의 진열장으로 걸어갔다. 유리로 된 문을 여니 그 안에는 각종 술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쩐지 땡기더라니, 마셔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랬구만.”

 

 

 

담배도 좋아하지만 술도 좋아하는 오이카와는 여럿이서 함께 마시는 술도 좋았지만 혼자서 하는 자작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편해하는 오이카와로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눈을 굴리며 보드카 종류를 찾았다. 스피리터스(Spirytus)도 괜찮겠지만 몇 잔 마시는 걸로 끝낼 생각이 없기에 그냥 다른 걸 마시기로 했다. 그리하여 선정된 것이 에버 클리어. 95도의 도수짜리가 아닌 그보다 낮은 75.5도의 에버 클리어였다.

 

대체로 보드카는 냉동실에 넣어놓았다가 마시는 게 좋지만 오늘은 패스였다. 얼음으로 희석하면 소용이 없으니 그냥 생으로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하고 에버 클리어를 집어들었다. 다시 앉았던 소파의 자리로 돌아와 잔을 놓고 가지고 온 술을 따 따랐다. 적당한 양을 따른 뒤에 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 들이켰다. 아무리 어느 정도 도수를 낮췄다지만 기본적으로 도수가 쎄기 때문에 금새 칼칼함이 치고 올라왔다.

 

 

 

“다음번에는 저번처럼 다 같이 마시러 갈까나.”

 

 

 

딱히 취하고자 마시는 술이 아니었기에 오이카와는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들고 둥글게 돌렸다. 잔을 따라 안에 있는 술이 똑같이 돌았다. 그 모양새를 눈을 내리깔고 지켜보던 오이카와는 그대로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소파에 편히 기대앉은 오이카와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눈을 굴린 오이카와는 양 손을 들어올려 마른 세수를 하며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이카와의 머릿속에는 아까의 대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네가 나랑 같아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는 오이카와의 눈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쿠로오는 제법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말단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고, 지금은 이곳에서 나름 높은 지위를 가진 쿠로오였으나 이제는 새로 들어오는 신입들을 도맡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대해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아마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이었고, 단지 그것을 자신이 맡게 되었을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신도 신입이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문제라면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의 규칙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자잘한 문제들은 자신이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에 있었다. 한 두번이면 이해를 하겠는데 시도 때도 없이, 줄기차게 문제를 일으키니 아무리 쌩쌩한 쿠로오라도 얼굴 위로 피곤함이 깔리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해야 하니 금방이라도 인내심이 끊어질 것 같았다.

 

 

 

“쿠로, 조금 쉬어.”

“아, 켄마.”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아는건지 켄마가 의무실에서 나와 쿠로오를 직접 찾아오곤 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쿠로오가 폭발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쿠로오에게 다가온 켄마는 손을 잡고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켄마가 이끄는대로 따라간 곳은 휴게실이었다. 켄마는 아무도 없음을 아는지 문을 열고 들어가 도로 닫고, 잠갔다. 그 뒤 휴게실 안에 놓여져 있는 간이 의자에 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앉아있던 쿠로오가 문득 켄마에게 안겼다. 신장도 덩치도 켄마보다 큰 쿠로오였으나 딱히 거부감도 없이 켄마는 안겨오려는 쿠로오를 마주 안아주었다. 품에 파고들려는 쿠로오의 등을 도닥여주던 켄마는 그 정도에 시선을 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쿠로오가 상당히 무리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캐릭터에 맞지 않게 어리광을 부려오는 쿠로오는 제법 오랜만이었다. 얼굴 위로 살풋 미소가 감돌았다.

 

 

 

“힐링 됐어, 쿠로?”

“응. 역시 켄마는 내 힐링제야.”

 

 

 

켄마가 내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이어지는 쿠로오의 말에 켄마 특유의 고양이 눈이 몇 번이고 깜박였다. 그런 켄마의 반응을 바로 앞에서 지켜본 쿠로오는 그저 웃었다. 지금 한 말에 거짓은 없었다. 이미 말 그대로의 의미였으니까. 굳이 왜곡할 필요도 없는 직선적인 의미의 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했기에 켄마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속을 내보인 적이 적은 편이었기에.

 

 

 

“오늘따라 솔직하네.”

“그런가? 스트레스 받을대로 받다가 제대로 힐링 받아서 그런가보지.”

“쿠로 어리광 오랜만에 봤어.”

“어른이 하면 역시 이상하지, 그거.”

“아직 젊잖아.”

 

 

 

큭큭 웃어버리는 쿠로오에 켄마의 작은 타박이 사정없이 날아왔다. 무엇이 그렇게 놀라운 것인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켄마를 바라보는 쿠로오는 미처 자각하지 못하던 것을 겨우 안 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표정이었다. 우리 삼십줄도 안 됐거든. 많아봐야 대학생 나이이면서 그런 걸 따져. 이어지는 팩트 폭력에 쿠로오는 멍하니 있다가 성대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쿠로오로서는 켄마가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리고 이걸로 알았다. 켄마도 쿠로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말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말에서, 그 어투에서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그래 보이지 않아도 코즈메 켄마라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사실 하나를 안 것만 해도 쿠로오는 지금 이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굳이 알리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신뢰관계는 이미 옛적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쿠로는 바보지.”

“이번엔 반대로 디스하는 거야?”

 

 

 

마지막은 끝까지 좋은 말은 해주지 않는 켄마와 그런 모습에 어딘가 풀죽는 쿠로오였다.

 

 

우리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조용한 공간이었다.

 

블라인드가 쳐져 있는 어딘가의 건물 중 하나의 자그마한 방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어딘가의 높은 직책으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이 있는 인물은 블라인드 쳐진 창문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그 앞에 있는 개인 책상 위에 양 손을 얽히고는 턱에 댄 채로 눈 앞의 인물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 앞의 인물에게 그런 시선을 받은 그 상대방은 똑같이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묘한 침묵이 그들 사이에 감돌았다.

 

 

 

“후우.”

 

 

 

그리고 그 긴 침묵 속에서 겨우 한숨을 내쉬는 이. 시선을 받으며 서 있던 쪽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일정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무너졌다. 다만 그 한 번의 한숨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된 듯 무겁기 짝이 없었다. 어딘가 불만스러운 듯, 체념한 듯, 그도 아니면 단순히 귀찮아하는 듯도 들렸다. 그러다 결국 이내 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건지 제법 거칠게 뒷머리를 쓸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드록 하죠, 이번 일.”

 

 

 

끝내 그 입에서 나온 대답은 긍정이었다.

 

 

 

 

 

***

 

 

 

 

 

뭉게뭉게 퍼져나가는 것은 담배연기였다. 입술 끝에서 떨어질락 말락 하며 아슬하게 담배를 물고 있는 인물은 딱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바닥을 치는 모양이었다. 담배 끄트머리를 솜씨 좋게 베어물고 있는 도중에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는 멈출 줄 몰랐다. 그런 상대에게 볼 일이 있어 왔던 다른 이도 생각 없이 방문을 열었다가 방 안 가득한 담배연기에 순간 멈칫했을 정도였다.

 

 

 

“오이카와.”

“…응?”

 

 

 

한창 담배를 피우는데에 열중하느라 누가 들어온지도 몰랐던 듯 의아한 반응이 돌아오는 것에 상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뭐가 또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방 안에 놓여져 있던 푹신한 소파 위에 편하게 걸터앉아 있던 오이카와라 불린 이의 고개가 문이 있는 뒤쪽으로 돌아가 상대를 확인했다. 방 안 가득한 담배연기 때문에 시야가 조금 흐릿한 게 흠이었지만 누군지 확인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 쿠로짱이다.”

“그래, 나다.”

 

 

 

방을 방문한 이가 누구인지 확인한 오이카와가 다시 고개를 원상복귀하며 마저 담배를 피웠다. 다시 뒤통수만을 보여준 채로 담배연기만 뿜어대는 오이카와에 쿠로짱이라 불리운 상대, 쿠로오 테츠로는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어떻게 보면 파트너보다도 더한 독종이었다. 담배연기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까지 방 안 가득 차 있는 것은 반기지 않는 쿠로오는 빨리 용무를 끝마치고 힐링을 받으러 가고 싶었다.

 

 

 

“다음 임무 배달 왔다.”

“…흐응. 대애-충 그럴 거라 생각했어.”

 

 

 

응, 이라며 뒤로 손을 내민 오이카와에 쿠로오는 다가가서 내밀어진 손 위에 들고 온 몇 장의 자료를 올려주었다. 건네진 자료를 훑어보는 모양새가 상당히 대충이었다. 딱 보아도 건성이라는 느낌이었으니 말 다한 거 아니었을까. 반응으로 봤을 때도 시원찮았는데 진짜 뭔 일 있었나보네. 쿠로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료를 보는 오이카와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고 인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오이카와는 보고 있던 자료를 앞에 있던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그리고 오른쪽의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 안에서 굴려댔다. 굴리면 굴릴수록 점차 짜증났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왼손으로 물려져 있던 담배를 빼내어 집어들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담배를 줄창 피워대서인지 나오는 한숨마저도 희뿌옇게 보이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그 상태 그대로 몸만 뒤로 눕히며 소파에 몸을 파묻는 느낌으로 기대었다. 주사위를 굴리고 있는 오른손을 그대로 들어 소파 등받이 위에 누운 머리의 이마 위에 가볍게 놓았다. 손 안에서 굴려지는 주사위의 감각이 간접적으로나마 오이카와에게 전해져 왔다. 달각달각거리며 움직이는 주사위 소리가 놓여진 손의 위치 때문에 왼쪽 귓가에서 선명하게 울렸다. 오이카와는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역시 나한테는 주사위가 안정이라니까.”

 

 

 

담배연기가 가득한 조용한 방 안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

 

 

 

 

 

오이카와에게 임무를 전달해준 쿠로오는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어떤 곳을 향해 걸어갔다. 이곳에 있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쿠로오 본인에게 힐링제가 되어주는 이가 있는 곳. 의무실이었다. 문 옆쪽의 벽에 붙어있는 명패를 확인하고는 노크도 없이 벌컥 열어젖히자 그 안에는 쿠로오가 찾던 이와 함께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상대를 확인한 쿠로오가 눈을 조금 동그랗게 떠재꼈다.

 

 

 

“오야? 이거이거, 이와이즈미가 아닌가.”

 

 

 

쿠로오를 확인한 의무실 안쪽에 있던 두 사람의 표정은 극명하게 갈렸다. 한쪽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었고, 쿠로오에게 이와이즈미라 불린 이는 대놓고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들어오지는 않고 문 바깥쪽에 있던 쿠로오는 뒷모습이나마 보이는 이와이즈미의 상태를 훑어보고는 그 견적을 뽑아내었다. 아까의 오이카와의 반응을 보아 분명 이것 때문이었음이 분명했다. 어쩐지 심기가 불편해보이더라니 당연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이와이즈미 하지메와 오이카와 토오루. 가히 최강조합이라 할 만한 파트너 관계였다. 근거리가 이와이즈미라면 당연하게 중장거리는 오이카와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으니 그 실력은 두말해야 입 아프다. 이번에 두 사람이 받은 임무가 좀 까다로웠던 것은 있었지만 그리 어려움은 없었을 텐데. 그런데 오이카와는 멀쩡하고 이와이즈미만 의무실 상태라는 건 임무 도중 뭔가 일이 있었다는 게 되는 것이다.

 

 

 

“뭐야 그거. 궁금한 걸.”

“궁금한 것도 많다.”

 

 

 

무심코 본심이 밖으로 튀어나오자마자 반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 대응을 들으며 언제까지고 밖에 서 있을 수도 없어 의무실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당연하겠지만 의무실 안에는 각종 약품 냄새가 났다. 슬금슬금 그들에게 다가오는 쿠로오를 못마땅한 기색으로 보던 이와이즈미는 곧 눈을 슬그머니 반쯤 접었다. 다가온 쿠로오에게서는 대체 어디에서 묻혀가지고 온 건지 모를 담배냄새가 진하게 베어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어디 갔다왔냐?”

“네 파트너에게.”

“하?”

 

 

 

쿠로오의 말에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와 결국 큭큭 웃었다. 이렇게까지 다친 적이 없었던지라 본인은 전혀 몰랐던 상황이겠지만 그것이 쿠로오에게는 웃길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파트너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모르는 것에. 조금 유쾌해졌다. 갑자기 웃는 쿠로오에게는 당연히 이와이즈미에게서 좋은 반응을 끌어낼 수는 없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이와이즈미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해갔다.

 

 

 

“진정해. 그러다 사람 하나 잡겠다.”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쿠로오에 이와이즈미는 지금 자신이 다친 상황만 아니라면 당장에 쥐어팼을거라며 속으로 화를 눌러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이즈미가 알기로는 이 정도로까지 진한 담배향은 그 누구도 이곳에서는 피우지 않았다. 가끔 입이 심심할 때나 두어 개 피우지, 누가 이렇게 금방 죽을 정도로 담배를 독하게 피워대는지 그 주인공을 상상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런데 그 범인이 오이카와라니, 전혀 금시초문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묻고 있잖아, 검은 고양아.”

“네 파트너의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아.”

“담배가?”

“그래. 오이카와 방에 들어가니까 방 전체가 담배연기에 파묻혀 있었다.”

 

 

 

물론 본인이 피운 건 확실했다구. 담배가 떡하니 입에 물려있는데 모를 수가 없었지. 이어지는 쿠로오의 말에 이와이즈미의 표정이 점차 알쏭달쏭하게 변해갔다. 그런 이와이즈미의 반응을 보던 쿠로오는 그 반응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어서 묘했다. ‘우리들’ 치고는 알기 쉬운 편이었던 이와이즈미의 생각을 모르게 되는 날이 찾아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쿠로오는 결국 이것도 재미라며 웃었다.

 

 

 

“이전 임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불편?”

“짜증이 났다고 할까, 불만이 있다고 할까. 한가지 확실한 건, 그 모든 걸 담배 피우면서 속으로 쌓아두고 있다는 거지.”

“…….”

“조심해라, 이와이즈미. 그렇게 되면 언제 폭발할 지 모른다.”

 

 

 

오이카와를 무슨 폭탄물 보는 듯이 말하지 마라. 충고이나 결코 그렇게 들리지 않음에 순간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이와이즈미는 그냥 입을 다물고 침묵을 선택했다. 그리고 다친 곳에 꼼꼼히 치료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무실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안의 두 사람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고는 한쪽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 방향에 있는 장소들 중 하나를 알아챈 쿠로오는 결국 폭소했다.

 

 

 

“쿠로, 타이밍 나빴어.”

“아- 미안, 켄마. 설마 의무실이라는 공간에 이와이즈미가 있을 줄 몰랐지.”

 

 

 

바로 날아오는 타박 섞인 목소리에 쿠로오는 금새 꼬리를 말고 얌전해졌다. 코즈메 켄마. 그들이 있는 곳의 의사 비스무리한 존재였다. 그리고 쿠로오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힐링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어딘가 기력이 없어보이는 켄마지만 그 솜씨만은 이곳의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만큼 켄마는 이곳에서 없으면 안 될 존재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특성 상 다치는 환자들은 끝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켄마, 이리 와.”

“잠깐 가운 좀 벗고.”

 

 

 

직책이 직책이라 켄마는 항상 의사들이 입곤 하는 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항상 이렇게 권유해 올 때마다 가운을 벗었던 켄마는 이번에도 그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을 벗으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와는 달랐다. 가운을 벗기 위해 움직이는 켄마의 손목을 붙잡아 끌어당겨 품에 안착시켜 안았다. 키가 작은 편인 켄마는 쿠로오의 품 안에 딱 알맞게 들어왔다. 쿠로오가 아래에 보이는 켄마의 머리 위에 얼굴을 묻었다.

 

쿠로오에게 안겨진 켄마는 등 뒤로 느껴지는 타인의 체온에 노곤한 숨을 내쉬었다. 아까 이와이즈미를 치료하느라 한껏 긴장했었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몸 앞쪽으로 단단하게 둘러진 쿠로오의 양 손에 켄마는 확실하게 안심하고 있었다. 켄마는 그저 쿠로오를 따라 이곳에 들어왔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그 선택을 한 것을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이곳에서 쿠로오가 숨 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쿠로, 담배 냄새 나.”

“응, 미안.”

 

 

 

그래도 이곳에서도 이곳 나름의 일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

 

 

 

 

 

“고양아-”

 

 

 

다음 날. 아침 댓바람부터 오이카와는 누군가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디 한 군데도 놓치지 않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오이카와는 진짜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구석진 곳, 어딘가의 방들, 그 외 기타 장소 등등. 입 아프게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장소들을 돌아다니는 오이카와에게서는 알 수 없는 압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제 손에서 굴리고 놀던 주사위 두개는 양쪽 귓가에 귀걸이로 걸려 있었다.

 

 

 

“고양아-”

“고양아-”

“고양아-”

 

“어딨니, 고양아.”

 

 

 

그렇게 고양이를 부르며 돌아다니던 끝에 드디어 찾아다니던 고양이를 발견한 오이카와의 발걸음이 주저없이 그쪽으로 향했다. 얼굴 위에는 기본으로 깔고 다니던 스마일을 내걸고 오이카와는 서서히 그 고양이에게로 착실히 다가갔다. 그럴 떄였다. 그 본인이 위험을 감지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가오는 오이카와를 발견했다.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묘한 위기감을 느꼈는지 도망가려는 상대의 어깨를 급히 잡아채었다.

 

 

 

“어디 가, 쿠로짱?”

“오, 오이카와?”

“응, 오이카와 상이야.”

 

 

 

이미 오이카와임을 확인한 쿠로오였지만 재확인 차 되물을만큼 지금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되었다. 분명 오이카와는 웃고 있는 게 분명하건만 뒤쪽에서 은근하게 느껴지는 압박감이 절대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시끄럽게 경고를 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오이카와에 쿠로오는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벗어나려고 했으나 오이카와는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꽉 잡아오는 힘에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쿠로짱, 나한테 뭔가 할 말 없는걸까?”

“하, 할 말?”

“응, 할 말. 나한테 무언가 해야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꽉 잡고 있던 손을 풀어내었다. 느낌상 그 할 말을 들을 때까지 붙들고 있을 듯 했는데 금새 풀어주니 묘한 긴장감이 달렸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상당한 악력으로 붙잡혀 있던 어깨가 은근히 뻐근해 근육이 놀라지 않게 느릿하니 돌리며 쿠로오가 뒤에 있는 오이카와를 향해 돌아보았다. 오이카와는 쿠로오가 다시 도망가려고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어렵지 않게 눈을 맞춰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쿠로오는 눈을 굴렸다. 어디 보자. 오이카와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로 봐서는 자신이 상당히 무언가를 잘못한 모양이었다. 생각을 과거로 되돌리던 쿠로오는 순간 떠오르는 잔상에 설마 싶어 오이카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어제의 일이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게 과연 오이카와가 이렇게까지 나올만한 일이던가. 쿠로오는 그것을 짐작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있지? 나한테 할 말.”

 

 

 

그리고 쿠로오가 무언가를 짐작한 것을 눈치챈 듯 기가 막힌 타이밍에 다시 되묻는 오이카와에 쿠로오는 내심 식은땀을 삐질 흘릴 수밖에 없었다. 기막힐 정도로 눈치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짐작이 있는 것이 맞지만, 그 이후에 어떤 대화가 오갔기에 앞뒤 따지지도 않고 이렇게 나오는가는 듣지 않았기에 쿠로오는 알지 못했다.

 

 

 

“이와이즈미가 뭐라 했어?”

 

 

 

쿠로오의 물음에 오이카와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바로 튀어나올 말이 있음이 분명한데 오이카와는 오히려 침묵했다. 잠시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쿠로오와 마주본 채이던 오이카와는 오른손을 들어 귀걸이로 달고 있던 주사위 하나를 쥐고 놀기 시작했다. 잠시 시선을 내리깐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던 오이카와가 이윽고 다시 쿠로오와 시선을 맞췄을 때에는 이미 무언가가 변해 있었다.

 

 

 

“고양아-”

 

 

 

오이카와의 말에 쿠로오가 흠칫했다. 고양아. 쿠로오를 향해 오이카와가 그런 명칭으로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쿠로짱. 언제나 쿠로짱이었는데 처음으로 불린 그 생소한 명칭에 쿠로오는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심장이 뛰는 것이 생생했다. 제법 나른한 음성으로 늘어지는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는 명백하게 협박이 섞여있었다. 그것을 모를 정도로 쿠로오는 둔하지 않았다.

 

 

 

“이와짱에게 쓰잘데기 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쿠로짱.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줘?”

 

 

 

그 말을 끝으로 오이카와는 굳어있는 쿠로오의 잡았던 곳과는 반대쪽 어깨를 두어번 가볍게 두드리고는 그렇게 멀어져갔다. 대체 어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지금 당한 일종의 화풀이는 원래라면 이와이즈미에게 갔어야 했다는 것을 쿠로오는 알아챘다. 힘내라는 느낌으로 두드려진 어깨가 왠지 모르게 굉장히 무거웠다. 애꿎은 화풀이 대상이 될 정도로 자신이 만만하다는 건가.

 

 

 

“골치 아픈 두 녀석 사이에서 나만 고생하지, 나만.”

 

 

 

 

어쩐지 하루를 시작하는 이른 아침임에도 최악의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마피아조 (우선 결정된 인물) ◀

 

→ 이와이즈미 하지메

→ 오이카와 토오루

→ 쿠로오 테츠로

→ 코즈메 켄마

 

 

 

[하이큐]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을 한다

 

 

 

“죽여.”

 

끝이 나지 않을 듯한 무거운 침묵 속에서 겨우 비정한 한마디가 떨어져 내렸다. 높이가 있는 계단 위의 단상 위에 서 있던 인물은 서늘한 눈매를 띄우고서 아래쪽에 주저앉혀져 등 뒤로 양손을 묶인 채 결박되어 있는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린 시선과 마주본 상대는 다시금 내리깔린 침묵 속에서 서서히 입꼬리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그리고 광소(狂笑)했다.

그 웃음은 자조였고, 애석함이었고, 끝내 닿지 못한 애달픔이었다.

 

우정이기를 바랬건만 이것은 일말의 애정이었다.

한 사람 대 한 사람으로서.

그렇기에 가질 수 있었던 한줌의 애정.

 

끝이 다가와서야 자각할 수 있는 자신에게 조금 평소의 눈치 좋음은 어디다 내팽개친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어졌다.

죽음 따위야 무서울 것 없지만.

죽는다면 너와는 더이상 친구가 아니게 되는 건 싫은걸.

마지막이니까, 조금의 투정은 용서해줄래?

 

“좋아해.”

 

 

 

 

 

조직AU/ALL CHARACTER/일상범죄물/추리/달달 첨가/로맨스X/일부 초능력

 

01. 혼마루 아파트에 어서오세요!

 

 

 

 

 

츠루마루는 이치고와 미카즈키와 안면을 튼 뒤에 두 사람을 따라 이제부터 자신이 지낼 집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미카즈키의 말에 의하면 아직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스무명도 안 된다고. 츠루마루는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이미 충분히 많은 것 같은데. 모두 좋은 사람이라며 웃는 미카즈키와 맞장구 치는 이치고를 보던 츠루마루는 얌전히 입을 다물며 시선을 돌렸다.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한 츠루마루를 슬쩍슬쩍 신경쓰는 이치고와 두 사람이 그러든가 말든가 상관하지 않고 츠루마루의 집으로 향하는 미카즈키였다.

이미 안면을 튼 이치고와 미카즈키는 어쩔 수 없었지만 츠루마루는 딱히 일정거리 이상 가까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괜히 친해졌다가 뒷통수 맞기는 죽기보다 싫단 것이 본심쪽이었다. 다시는 그런 일은 겪고 싶지 않았다. 섣불리 다가가지도, 손을 내밀 수도 없어 츠루마루는 속으로 끙 앓았다. 그런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일상적인 대화를 해가며 겨우 도착했다. 츠루마루가 지낼 곳은 1402호였다. 미카즈키가 품안을 뒤적거리다 츠루마루에게 카드키를 건네주었다.

"맡아두었네. 이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 되었으니 잘 지내보세, 츠루마루."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츠루마루 군."

뒤이은 이치고의 말에 츠루마루는 카드키를 건네받으며 인상을 썼다. 군이 뭔가, 군이. 동갑이면서 굳이 경칭을 붙여야하는 이치고가 이쯤되면 이상해보일 정도다. 대학생인 주제에 갑갑하게 격식을 차리고 싶을까. 츠루마루는 이치고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 츠루마루를 느낀 건지 이치고가 멋쩍게 웃어보인다. 여전히 진심은 아니었다. 미카즈키가 그런 이치고의 모습을 봤지만 별 말 안하고 넘어간다.

"군은 붙이지 말게, 군은. 거리가 생기지 않나."

"아."

"다음부턴 되도록 그러지 말게나."

츠루마루가 그리 말하며 도어락에 카드키를 갖다대고는 문을 열어재꼈다. 불을 키지 않았지만 아직 낮이라 안쪽을 못 볼 정도는 아니었다. 츠루마루가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문이 자동으로 잠기기 위해 닫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츠루마루가 현관을 지나고 문이 거의 닫힐 즈음 미카즈키가 입을 열었다. 묘한 울림을 담고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곳은 사연 있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지. 츠루마루, 자네는 선택된걸세."

갑작스런 미카즈키의 말에 츠루마루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문이 닫히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그 짧은 틈 사이에서 미카즈키와 눈이 마주쳤다고 생각이 들었다. 미카즈키의 눈은 밤이 아닌데도 그 안의 초승달이 선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츠루마루는 문이 완전히 닫히고도 몇 분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



츠루마루가 살게 될 문이 완전히 닫히자 층의 복도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미카즈키는 본인이 내뱉은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고, 그건 옆에 있던 이치고도 마찬가지였다. 미묘한 침묵 속에서 먼저 움직인 건 미카즈키였다. 그 뒤를 자연스럽게 이치고가 따라붙었다.

미카즈키의 말은 틀리지 않다. 이 혼마루 아파트에 들어올 수 있는 조건 중 하나. 그건 어떤 이유에서건 상처 받은 이들뿐이라는 것이다. 이곳에 들어온 이들은 서로가 서로의 치료제가 되어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이치고도 미카즈키도. 그리고 아직 츠루마루가 만나보지 못한 다른 이들도 그 점은 공통적이다.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츠루마루도 무언가에 상처 받고 만 것이겠지.

새로운 입주자가 들어올 때마다 아파트에는 공지가 내걸린다. 츠루마루는 모르겠지만 이미 이치고와 미카즈키는 츠루마루를 보자마자 새 입주자임을 알아보았다. 그래서 이치고가 츠루마루와 마주쳤을 때 함께 온 것이었다. 츠루마루가 길을 못 찾고 헤메고 있을 거라는 것은 쉽게 예측 가능했다. 모두가 그랬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미카즈키는 이치고가 츠루마루와 마주칠거라 생각하지는 못하고 심부름을 보낸 것이지만.

츠루마루로서는 천운이었다 할 수 있다. 미카즈키가 심부름을 시키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 될까 말까 한 아주 극악한 확률이었던 것이다. 입주자가 헤메고 있는데 거주자와 못 만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입주자가 오는 날은 입주자 본인 마음인지라 거주자들은 입주자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어서 언젠가 두어번 입주자가 밖에서 며칠간 노숙했던 경험이 있기도 했다.

"괜찮은가요, 미카즈키 상?"

"괜찮지 않을 게 있겠나. 게다가 어차피 자연히 알려질 것이네. 츠루마루는 그리 눈치가 없어보이지 않았으니 모두를 만나보면서 알아차리겠지."

"그건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보다 내가 언젠가 말투 때문에 고생할 거라 했는데, 생각보다는 빨리 지적받았구나."

"윽,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버릇인걸요."

사실을 찔려 얼굴을 붉히는 이치고를 보던 미카즈키는 그저 허허로이 웃었다. 배경 탓일까. 이치고는 늘 단정하고 예의 바르다. 정중하고 상냥하고 성실한, 거기다 빈틈없는 행동거지까지. 그게 오히려 이치고의 숨을 막히게 하는 원인이었다. 완벽한 자의 비애일까. 미카즈키는 이치고를 볼 때 종종 그렇게 생각한다.

 

이치고의 동생들은 전원 이치고와 피가 이어지지 않은 고아원 출신의 아이들이었다. 동생이라고 데리고 다니지만 솔직히 피도 이어지지 않았는데 돌보는 건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걸 이치고는 해냈다. 아니 해야한다고 자신을 몰아붙였지.

미카즈키는 그 당시를 생각했다. 이치고가 미카즈키를 이리 잘 따르는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완벽한 이치고지만 그에겐 쉴 틈이 없었다. 몰아붙이는 이치고를 미카즈키가 숨 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조금이라도 그 어깨 위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게 이치고는 고마웠던 모양이었다.

집안살림이 능숙하지 못한 미카즈키를 대신해 조금씩 도와주다보니 이런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제는 이치고가 없으면 안된다는 걸 미카즈키는 알았다. 그 때에는 이미 늦어 있었다. 미카즈키는 후회했다. 왜 이치고인가. 자신 때문에 짐을 더 얹은 꼴이 될 것 같아 일정선 이상의 것에는 되도록 기대하지 못했다. 그 자신이 애정에 목이 마르더라도, 그리하여 죽더라도 이치고에게 자신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

미카즈키는 그 때 처음으로 침통해했다. 미카즈키는 애정을 갈구한다. 정상적인 사랑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미카즈키는 온전한 애정을 동경한다. 그게 어딘가 비뚤어졌더라도. 이치고는 그야말로 그런 미카즈키에게 적합했던 것이다. 비명을 내지르고 싶은 것을 억지로 집어삼킨다.


이치고라는 인물은 미카즈키에게는 과분했다.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만 당사자인 미카즈키는 오히려 맞다고 생각했다. 미카즈키는 이치고를 슬쩍 돌아다본다. 이치고는 때로는 든든하다. 이 이상 자신이 이치고에게 더 기대게 될까봐 불안하기만 한 미카즈키다. 아직 이치고는 짐을 전부 내려놓지 못했다.

본인으로 인해 이치고가 어깨 위의 짐을 더 짊어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게 한번도 소원이라는 것을 만들지 못한 미카즈키의 현재 유일한 바람이었다. 이치고의 시선이 미카즈키에게 향하자 미카즈키는 기꺼이 시선을 맞춰주며 웃어보인다. 그러면 이치고도 그런 미카즈키를 뒤따르듯 웃는다.

"여전히 벽을 치고 있구나. 츠루마루에게도 진심으로는 웃어주지 않은게지?"

"반사적이랄까요. 진심이 되는 건 동생들과, 그리고, 미카즈키 상 뿐이니까요."

미카즈키의 물음에 이치고는 처음으로 쓰게 웃었다. 어쩔 수 없는 환경 탓에 이렇게 바뀌어 버렸지만 어렸을 때의 자신은 분명 잘 웃고 또 잘 우는 아이였다. 지금에 와서는 이치고는 그 당시의 자신을 선명하게 떠올리지 못했다. 빛바랬달까, 퇴색된 느낌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당시로는 돌아갈 수 없음을 이치고는 너무 잘 알았다.

미카즈키는 이치고의 표정을 들여다보다가 아무 것도 들고있지 않은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치고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손을 그대로 움직여 이치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행동을 하는 미카즈키를 본 이치고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미카즈키에게 그런 표정 짓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전 괜찮아요, 미카즈키 상. 당신이 있고, 동생들이 있고, 그리고 모두가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괜히 마음 쓰지 마세요. 정말 죄 짓는 것 같으니까요."

"누구에게?"

"미카즈키 상이지, 누구겠어요."

"그래."

짖궃은 이치고의 대답에 미카즈키가 그제야 살풋 웃는다. 정말 심장에 안 좋은 사람이라니까. 이치고는 미카즈키를 처음 본 날을 떠올렸다. 아직 몇 달 되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치고의 머리를 쓰다듬던 미카즈키가 다시 걸음을 옮긴다. 이번엔 미카즈키의 옆에서 걷는 이치고였다. 그렇게 츠루마루의 집에서 두 층 내려가 12층에서 걸음을 멈춘다.

1202호 앞에서 멈춘 이치고는 비어있는 한 손으로 품에서 카드키를 꺼내들고는 문을 연다. 열린 문 안으로 미카즈키가 먼저 들어가고 이치고도 뒤따라 들어간다. 곧이어 문이 닫혔다. 들어가서 한동안 나오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



미카즈키에 의해 움직이지 못했던 츠루마루는 애써 정신을 차리며 집을 둘러보기 위해 발을 놀렸다. 현관을 지나자마자 나온 넓은 거실에 츠루마루는 당황했다. 다른 집의 구조가 여기와 똑같다면 모르겠지만 자신의 집이 비정상적으로 넓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게 그 거실에 놓여져 있었다.

"피아노."

분명 손에서 놓았는데 버젓이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앉은 피아노 한 대에 츠루마루는 저도 모르게 피아노가 놓여진 곳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가까이에서 본 피아노는 새 것이었다. 항상 쳤던 예전의 피아노는 아니었지만 결코 나쁘지 않은 피아노임을 츠루마루는 오랫동안 피아노를 접해본 만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피아노는 이미 조율은 끝난 상태였다.

 
츠루마루는 피아노에 손을 올리려다가 관두었다. 아직, 아직은 아니다. 당장에 피아노를 칠 수 있을만큼 츠루마루는 극복하지 못했다. 당분간은 피아노는 건드릴 수 없다. 츠루마루를 배려해 놓아준 것이겠지만 그게 오히려 본인에게는 피해가 된 모양이었다. 피아노를 두어번 쓸어보던 츠루마루는 곧 등을 돌렸다. 나머지 공간도 둘러보아야 했다.
 
거실에 피아노가 있어서인지 상상 이상으로 넓었던 것을 빼고라도 집은 결코 좁지 않았다. 넓고 쾌적한 환경이었다. 침실에 주방, 화장실에 샤워룸까지 있는 것에 츠루마루는 마음에 들었다. 아파트 자체가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건지 전체적으로 깨끗했던 것도 한 몫 했다. 이런 조건의 집이건만 보상으로 조금의 노동력 착취라니, 츠루마루는 내심 혀를 찼다.
 
 "이 조건이라면 사람들이 몰릴만도 한데, 아직 스무명도 안 된단 말이지. 역시 미카즈키의 말 때문인가?"
 
사정이 있는 이들만 모인다는 건 좋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아마 이곳에 있는 입주자들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고 츠루마루와 같이 상처 입은 자들이겠지. 미카즈키의 말에는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 있음을 츠루마루는 간파해낼 수 있었다. 나머지 입주자들이 어떤 이들일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니 안면 정도는 익혀야 할 것이다. 사이좋게 지내는 것까지는 조금 고려해 보아야 하겠지만.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은 츠루마루는 생각을 이어가다 문득 든 생각에 손으로 턱을 잡고 쓸었다. 그렇다면 이치고와 미카즈키도 그런 걸까? 츠루마루가 짧게나마 본 이치고와 미카즈키는 딱히 어딘가 문제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극히 평범했달까. 아직 자세히 관찰한 건 아니었지만 츠루마루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면 이치고와 미카즈키는 어떤 연유로 이 아파트에 있는 것일까.
 
딩동-
 
츠루마루가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아직 츠루마루가 1402호에 묶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치고와 미카즈키 뿐이기에 아마도 둘 중 한 명이라 생각한 츠루마루는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발을 옮겼다. 곧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밖에서부터 뻗어나온 손이 츠루마루의 한쪽 팔을 잡아끌었다. 츠루마루가 반응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속절없이 끌려나온 츠루마루는 상대를 확인했다. 츠루마루를 잡아끈 인물은 예상했던 대로 미카즈키 쪽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츠루마루의 뒷쪽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미카즈키는 내심 짖궃게 웃고 있었다. 이치고도 그 옆에 있었는데 머리를 설레설레 젓는 폼이 이런 일이 한 두번이 아니었음을 츠루마루가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곧 식사시간이라네. 식사시간에는 식당으로 가야 하지. 아직 지리를 잘 모르니 같이 가세나."
 
"평범하게 가도 될 걸 굳이 이렇게 잡아끌어야겠나?"
 
"무슨 소리인가. 가끔 있다네. 자네같이 친목을 도모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그래서 매번 이렇게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있지."
 
"이치고, 도와주게나."
 
"무리입니다, 츠루마루, 음. 그래요, 츠루마루. 미카즈키 상은 한 번 결심한 것은 실천하고야 마는 사람이라서요. 죄송합니다."
 
미카즈키의 마이페이스에 도움을 요청하는 츠루마루였으나 이치고는 아직 호칭을 부르는데 어색한지 그런 느낌으로 단호히 거절했다. 이치고에게 배신당한 츠루마루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미카즈키에게 끌려 지하 1층까지 오게 되었다. 지하 특유의 어두운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정면에는 떡하니 「식당」이라는 팻말까지 있는 모습에 츠루마루는 끌려온 것도 잊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식당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있는지 제법 떠들썩했다. 망연히 굳어져 있던 츠루마루를 미카즈키가 잡아 끌어 식당 문을 열었다. 식당의 소음이 츠루마루의 귓가에 한꺼번에 달려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미카즈키와 이치고의 등장에 잠시 조용해지는가 싶더니만 두사람의 사이에 어정쩡하니 서있는 츠루마루를 발견한건지 제법 어린 아이가 달려나왔다.
 
"미카즈키, 미카즈키! 옆은 누구? 이번에 온다는 뉴페이스?! 소개해줘요!"
 
"후후. 이마노츠루기는 오늘도 활기차구나. 좋구나, 어린아이들은 이렇게 활발해야지."
 
"와아!"
 
제법 하이텐션을 자랑하는 아이를 이마노츠루기라 부른 미카즈키의 말에 양 손을 번쩍 들며 기뻐하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어린아이였다. 미카즈키의 주변을 몇 번 빙글빙글 돌고는 이치고에게도 인사한 후 아이는 그제야 츠루마루에게 제대로 시선을 준다. 큼지막한 동그란 눈동자가 붉었다. 이마노츠루기의 눈빛 속에서 호기심을 읽은 츠루마루는 그저 웃었다.
 
"이쪽은 츠루마루 쿠니나가라 하네, 이마노츠루기. 츠루마루라 부르게나. 이치고의 말투는 꽤 거북해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츠루마루!"
 
미카즈키가 한 소개에 이마노츠루기가 눈을 반짝이며 새 식구를 반긴다. 츠루마루를 올려다보며 아직 작은 손으로 츠루마루의 비어있는 손을 잡아끌고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이마노츠루기가 츠루마루를 끌고 들어가려하자 미카즈키는 미련 없이 츠루마루의 손을 놓아준다. 얼떨결에 이번에는 이마노츠루기에게 이끌려 식당 안으로 들어선 츠루마루는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시선에 진짜 이 자리를 피하고 싶어졌다.
 
"츠루마루?"
 
그러고 있는데 한 목소리가 식당 안에 울려퍼진다. 목소리에서 당황과 놀람을 읽어낸 츠루마루의 시선이 식당 안을 천천히 훑는다. 그리고 곧이어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을 때, 츠루마루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거짓말, 왜? 츠루마루의 머릿속에서는 그저 저런 물음만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 츠루마루의 패닉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대쪽에서 츠루마루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왜 네가 여기 있는건가, 미츠타다!"
 
그리고 상대,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가 츠루마루에게 완전히 다가가기도 전에 츠루마루의 외침이 식당 안에 메아리치며 울려퍼졌다. 한껏 경악을 담은 목소리였다. 기겁하며 놀라하는 츠루마루의 모습에 식당 안에 모여있던 이들은 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쇼쿠다이키리를 향해 있는 힘껏 삿대질을 하는 츠루마루의 입가가 부들거리며 떨렸다. 애써 웃어보이는 듯 했지만 이미 부자연스러워 오히려 매치가 안 되는 느낌이었다. 츠루마루의 격한 반응을 본 쇼쿠다이키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츠루마루는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0. 프롤로그

 

 

 

 

 

츠루마루 쿠니나가는 골목길 한복판에 멈춰섰다. 골목길 정중앙에 서있던 츠루마루는 손에 쥐고 있던 종이 쪽지를 다시금 펼쳐들었다. 그리고 종이를 뚫어버릴 기세로 쳐다보던 시선을 거둬들이며 본인이 서 있던 곳을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쉰다. 그 모습은 어떻게 보아도 곤란한 상황을 맞닥뜨린 모양새였다.

 

“아아, 곤란하다 곤란해. 분명 이 근처일텐데 말일세. 맞게 찾아온 것 같기는 하건만, 으음.”

 

면목없다는 느낌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는 츠루마루. 발을 옮기고는 싶건만 그러다 방향감각이 완전히 꼬일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계속 이 자리에만 서있는 것도 효율성이 나쁘고. 결국 츠루마루는 무릎을 굽히고 반쯤 주저앉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길을 물어보고자 함이었다.

 

벽에 반쯤 기대어 앉아 멍하니 흘러가는 구름을 올려다보고 있던 츠루마루. 본인이 이런 골목길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되어버린 일을 되새겼다. 멀쩡한 성인이 꼬꼬마 유치원생도 아니건만 미아가 되게 만든 원인인 오랜 친구놈과의 며칠 전의 대화를 말이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아니, 조금 달랐다. 자신의 상태가.

 

 

 

***

 

 

 

츠루마루의 집안은 몇 대에 걸쳐 내려온 유서 깊은 피아니스트 가문이었다. 그만큼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고 할 수 있었다. 츠루마루는 걸음마를 떼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에 몰두했는데 집안 배경도 배경이었지만 그보다는 피아노가 좋았기에 계속 해나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는 별 수 없었지만 고등학교나 대학교는 예고나 예대를 지망할 정도로.

 

그렇게 좋아한 피아노를 지금의 츠루마루는 손에서 놓았다. 놓아버리고 말았다. 그만큼 그럴만한 일이 있었지만 츠루마루는 굳이 그 상황을 떠올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츠루마루는 현재 다니던 예대를 우선 휴학 처리해 놓은 상태였다. 아예 자퇴를 진지하게 고려했을 정도로 그때의 츠루마루는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다. 피아노도 그때 손을 놓았다. 츠루마루가 그렇게 반폐인이 되어가고 있던 때였다.

 

“꼴이 말이 아니네.”

 

“신경 끄시게나.”

 

친구놈의 전화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온 츠루마루를 보자마자 한다는 말이 저 말이었다. 사람 면전에 대고 할 얘긴가 저게.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던 신경에 평소와는 달리 툭 튀어나가는 말은 쏘아붙이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 츠루마루의 반응에도 친구놈은 츠루마루를 이해한다는 듯 그저 어깨를 으쓱였다. 그에 본인의 행동에 본인이 후회하는 츠루마루였다. 한숨부터 먼저 튀어나오는 탓에 다른 곳을 보는 듯하던 친구놈이 대뜸 말해왔다.

 

“지금 갈데도 없을테니 좋은 곳 소개해줄까?”

 

“미친겐가. 나 돈 없네.”

 

지금 츠루마루가 지내는 곳은 예전에 살던 집이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 집은 그저 애물단지에 불과했다. 그래서 월세로 바꿔버렸다. 집 안에 있는 피아노가 걸렸지만 츠루마루는 미련 없이 자신이 반평생 이상을 보낸 집을 팔아치웠다. 꾸질꾸질하게 끌고 가는 취미는 츠루마루에게는 없었다. 그리하여 츠루마루는 현재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정을 아는 친구놈의 제안에 츠루마루는 반갑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수중에 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지금 지내는 단칸방도 나쁘지는 않았다. 혼자 지내기에는 편하기 그지없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츠루마루의 반응에 친구놈이 과장될 정도로 눈을 둥그렇게 뜨며 고개를 저었다.

 

“오, 걱정 말게 친구. 딱히 돈 받는 곳은 아니야. 좀 특이한 곳이라 돈 안 받는 대신 조금 도와달라거든. 말하자면 인력 모집? 한 사람당 집 하나 공짜로 얻는 것치고는 굉장히 싼 값 아니겠냐?”

 

뒤이어진 친구놈의 말에 앞에 놓여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쭈욱 빨아먹던 츠루마루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그 상태로 친구놈을 바라보는 모양새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은 사람의 표정과 흡사했다. 의심은 덤이었다. 의구심을 품은 샛노란 눈동자가 진의를 파악하려 깜박였다.

 

“요즘 세상에 그딴 데가 어디에 있다는 겐가.”

 

“속는 셈 치고 한번쯤 가 봐. 아 그치만 들어가는 조건이 있다는데 츠루마루 넌 아마 통과될 걸? 밑져야 본전이니까 말이야. 주소는 여기다.”

 

그렇게 말하며 왠 종이 쪽지를 본인 쪽으로 던지는 친구놈 때문에 츠루마루는 인상을 팍 써야했다. 주려면 곱게 줄 것이지. 면전에다 대놓고 던져서인지 빈정이 상했다. 친구놈은 종이 쪽지를 던지고는 가야한다며 휑하니 가버렸다. 물론 츠루마루의 몫까지 계산해주고 갔다. 행동은 거칠지만 괜찮은 놈이었다. 그래도 친구는 제대로 사귀었나 보다.

 

어느새 다 먹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꽂혀 있던 빨대를 잘근잘근 짓씹으며 손에 쥔 종이를 복잡미묘하게 바라보는 츠루마루.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친구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집을 공짜로 얻는 대신에 약간의 노동만 해주면 된다니까 입주자 쪽에서 엄청나게 어드밴티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오히려 건물주가 손해인.

 

그로부터 한 삼일 정도를 끙끙 앓으며 고민했다. 들어가고픈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친구놈의 말을 그대로 믿기에는 의심쩍은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이런 조건 좋은 곳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잘 꾸며진 허구처럼 들린 것도 단단히 한몫했긴 했다. 이런 곳은 결코 좋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곳이 없다. 이 바닥 생리를 츠루마루는 너무 생생히 겪었던 것이다.

 

그렇다해도 믿고 싶기는 했다. 이제 의지할 곳도 없는 몸. 속는 셈 치기로 하기로 하고 결국 자신의 감정에 패배한 츠루마루는 종이 쪽지에 써져 있는 주소와 전화번호를 보다가 이내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이것저것 따져가며 정말 들은 그대로인 곳인지 꼼꼼히 확인한 츠루마루는 보내달라는 인적사항을 그쪽으로 보내고, 얼마 후 츠루마루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그리고 현재, 찾아가던 길목 부근에서 길을 잃었다.

 

 

 

***

 

 

 

몇 분동안 그러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시간이 지났다는 건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 때, 츠루마루가 있는 골목길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일정하게 울리는 발걸음 소리. 이 정도로 단정한 발소리라니.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 것을 깨닫고 살풋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피아노를 그만뒀다 해도 이런 곳에서 음을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니. 츠루마루의 고개가 절로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돌아갔다.

 

역광이 져 상대가 잘 보이지 않았으나 대충 신장을 어림짐작해 보았을 때 츠루마루는 본인이 상대와 비슷한 연배라고 생각했다. 역광을 등지며 츠루마루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 상대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은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츠루마루를 보고 걸음을 멈춰섰다. 가까이에서 마주친 상대는 하늘의 색을 하고 있었다.

 

츠루마루와 같으면서도 다른 금안을 가지고 밝다못해 환하게까지 보이는 하늘색 머리를 단정히 정리하고 있는 남자는 어울리지 않게 양손 한가득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시선을 굴려 확인하자 각종 야채며 과일 등등, 여하튼 식재료로 보이는 것들 뿐이었다. 그런데 양이 많아도 너무 많지 않나? 도대체 어디에 전부 써먹을 것인지 궁금해지는 양이었다.

 

“무언가 곤란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을 향한 물음에 제정신을 찾은 츠루마루는 문득 생각했다. 보통 이럴 땐 엮이지 않으려고 슬금슬금 피해가려 하지 않던가. 아니 그냥 가버리면 내가 곤란하지만! 무척 곤란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한편 상대의 말투가 정중하리만치 반듯한 것에 상대에 대한 궁금증이 싹텄다. 생김새도 제법 사내치고는 곱상한 편이었고, 어디 사는 집안 자식인가?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정인 것 같았다. 정말 생김새대로 행동하는 것에 츠루마루는 순간 자신이 알던 누군가와 겹쳐보여 심장이 쿡쿡 쑤셔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게다가 자신이 곤란해하고 있다는 걸 확신하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뭐지 이 사람은. 순간적으로 적대감을 느낀 츠루마루의 눈이 모난 세모꼴로 변했다.

 

“아, 아뇨. 다른 게 아니고 제 동생들이 곤란해할 때와 분위기가 닮아있어서 그만. 게다가 딱히 인근의 노숙자 분이라기에는 너무 젊은데다 이 주변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에, 옷도 깨끗한 것으로 보아 이곳에 있은지 아직 그리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거든요.”

 

틀렸나요? 그렇게 말해오며 웃어보이는 남자를 츠루마루는 멍하니 바라봤다. 이 남자는 대체 뭔가. 웃고 있는 모양새가 심히 호감가는 인상이었건만 츠루마루는 괜스레 속이 거북해져 왔다. 이런 것에 민감한 츠루마루는 한 시 바삐 용무를 해결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남자를 피하고 싶었다. 불과 몇 달 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애써 상대를 향해 웃어보이며 여태 계속 들고 있던 종이를 쥔 손을 두어번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아아, 이 근처가 처음이라 길이 헷갈려서 말이네. 그래도 느낌상 거의 다 온 것 같긴 하지만 영 방향을 모르던 참이라 곤란해하고 있었지. 괜찮다면 길 좀 알려주겠나?”

 

츠루마루의 말을 가만히 듣던 상대는 잠시 들고있던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츠루마루의 손에 들려있는 종이를 조심스레 집어들어 펴본다. 종이에 써진 글씨를 보던 상대는 아무 말 없이 돌려주고는 짐을 다시 집어들었다. 츠루마루는 멀뚱히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츠루마루를 보고 다시 웃어보인 상대가 입을 열었다.

 

“마침 저도 이쪽으로 가는 길이라서요. 같이 가면 될 것 같네요. 그래도 여기까지 잘 찾아오셨네요. 도중에 길 잃기 십상이거든요. 저도 처음엔 몇 시간이나 헤멘 경험이 있어서요. 여기서 얼마 안 걸리니까 조금만 더 걷죠.”

 

“아아, 고맙네. 누군가 안 지나갔으면 내일까지 이러고 있을 뻔했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익히려는 츠루마루와 짧은 대화를 나누던 상대는 자신을 이치고 히토후리라 소개했다. 아직 대학에 다니는 중이라고. 그에 츠루마루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지금은 사정상 대학은 휴학했다고 밝혔다. 소개를 받으면 본인도 상대에게 자신을 내보일 것이라고 가르친 것이 이곳에서 발휘되었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은 서로가 동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

 

 

 

혼마루 아파트.

 

이제부터 츠루마루가 살게 될 곳이었다. 아파트를 올려다보던 츠루마루는 곧 이치고가 아파트 안까지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치고가 아파트에 들어가려던 때, 아파트 안쪽에서 누군가가 먼저 나왔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자 저절로 돌아간 시야 안에 담긴 인물은 순간 츠루마루가 넋 빼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운 남자였다. 세상에.

 

상대와 부딪힐 뻔 했던 이치고의 시선이 상대에게 향하고, 곧이어 환하게 웃는다. 그에 츠루마루의 눈이 슬쩍 가늘어진다. 자신과 마주했을 때, 대화하고 있을 때조차도 이치고는 진심으로 웃지 않았다. 그저 예의 상, 버릇처럼 웃던 것을 츠루마루는 그제야 눈치챈다. 그런데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다운 저 남자 앞에서 이치고는 진심으로 웃는다. 접혀진 일이 없던 눈까지 곱게 접어가며.

 

“이치고, 왔구나.”

 

“네. 다녀왔어요, 미카즈키 상. 미카즈키 상이 부탁하신 것들 전부 사 왔어요.”

 

“그런가.”

 

이치고에게 미카즈키라 불린 이가 자연스럽게 이치고의 손에 들려있던 두 봉지 중 하나를 가져가더니 내용물을 들여다본다. 그 모습에 소리 죽여 웃던 이치고의 눈이 부드럽게 휘어진다. 안면이 없는 츠루마루가 소외된 채, 두 사람은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며 대화를 이어간다. 한번도 끊기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에 츠루마루의 눈에 난감함이 드러난다. 나 완전히 잊혀진 것인가.

 

“그런데 이치고, 옆의 분은 누구?”

 

“아, 그러고보니 미카즈키 상과는 통성명도 안 했네요.”

 

한참 대화하다가 자신을 눈치챈 건지 이치고에게 묻는 미카즈키. 그에 츠루마루는 미카즈키를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보인다. 잠시 이치고에게 주던 시선이 느릿하니 츠루마루에게 향해진다. 그제야 츠루마루는 볼 수 있었다. 미카즈키의 눈에 떠 있는 영롱한 초승달을. 미카즈키의 눈에 시선을 주던 츠루마루가 먼저 입을 열어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츠루마루 쿠니나가. 이치고와는 동갑이라네. 잘 부탁하지.”

 

“미카즈키 무네치카라 하네. 가만, 츠루마루라면 이번에 아파트에 새로 들어온다는?”

 

츠루마루가 이름을 댈 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미카즈키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그에 궁금증을 품을 새도 없이 미카즈키가 곱게 웃으며 본인의 소개를 이었다. 미카즈키 무네치카라는 사람은 여러 의미로 심장에 좋지 않은 사람이었다. 한떨기 꽃마냥 활짝 만개하는 느낌의 미카즈키는 정말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 자리에서 츠루마루라고 예외는 되지 못했다.

 

 

 

 

 

 

 

 

 

 

커플링은 없습니다.

그런 느낌은 있을지언정, 커플링은 없습니다. 중요하니 두번!

딱히 주인공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현대물 패러디입니다. 이름은 도파를 딸 수 있으나 그냥 그대로 갑니다.

이 ‘혼마루 아파트의 일상’은 제목과는 달리 일상과 함께 소소하게 어두운 부분이 존재합니다. 딱히 밝지만은 않은 소설입니다.

‘혼마루 아파트’에 거주하는 이들은 모두 각자 사정이 있어 모여든 이들입니다.

‘혼마루 아파트’의 건물주는 누군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거주자들도 정체를 모릅니다.

추가될 수 있으나, 일단은 OK?

 

 

! ATENTION !

전체적으로 공통된 사항은 아래 ↓

 

 

 

※하이큐 스레입니다.

→몇몇 인물은 이쪽[오컬트] 관련 관계자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각자 개별적으로 다른 이야기가 존재합니다만.

→거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푸는 것은 상당수 뒤쪽에 등장할 예정입니다.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되도록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만.

→어쩔 수 없는 편애, 애정 학교에 대한 설정이 다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애정 학교로 가득한 곳들 : 까마귀, 푸른잎, 고양이, 올빼미

 

※대개 오컬트 요소 듬뿍듬뿍인 이야기 위주로 돌아갑니다.

→그에 따른 오컬트 관계자로 설정된 캐릭터의 활약이 듬뿍 들어갑니다.

 

※오컬트 관련자로 설정된 캐릭터들은 서로의 정체를 모릅니다.

→정확히 하자면 《서로의 정체가 밝혀지는 스레》 이전까지는 이름이 아닌 고정닉으로만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전원 배구 관계자이기도 하기에 언젠가는 전부 만난다는 설정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애니판의 내용을 빌려 서로 학교끼리 친하거나, 연습경기, 합숙, 대회에서 만났던 적이 있다면 현실에서도 안면은 존재합니다. 단지 서로가 스레에서도 알고지내는 사이라는 것을 모를 뿐입니다. 그리고 이쪽 관련이라는 것도 모릅니다.

 

※CP 발언은 없을 예정입니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번외격 적인 스레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본편에서는 최대한 CP적인 요소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작가 개인적인 설정이나 그에 따른 여러 요소들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 CHARACTER ◀

모든 설정이 밝혀진 이후, 작성 예정 ↓

 

 

 

1.

 

 

 

 

 

◆ 스레 모음 ◆

이후 작성될 모든 스레 목록 작성 ↓

 

 

 

# 현재(고등학생)

 

 

 

# 과거(초등학생~중학생)

 

 

 

 

 

♥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카라스노 채널을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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