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이와이즈미는 다치는 바람에 평소라면 생각해본 적도 없을 붕 떠버린 일정에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원치 않게 얻게 된 짧다면 짧은 휴식기이지만 지금 상황은 오히려 자신에게 나쁘게 작용하는 듯 했다. 오히려 몸을 움직이는 게 훨씬 안정될 것만 같았다. 일어나 아직 침대를 벗어나지 않은 이와이즈미의 의식은 자연히 어제의 일로 날아갔다. 의무실에서 켄마에게 치료받고 난 이후의 일이었다.

 

 

 

‘이해하라고 하지 않았어.’

‘나는, 이해해달라고 말하지 않았어, 이와짱.’

 

 

 

어쩌다 오이카와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게 됐더라. 저 말이 나오기 전까지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퓨즈가 나갔다가 오이카와에게서 나온 저 말에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기묘한 공백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이카와에게서 저런 말이 나온 것이 나름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던 듯 했다. 충격요법처럼 저 순간에 이성이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 말을 오이카와가 내뱉은 직후 그대로 내쫓겼다.

 

 

 

‘나가.’

 

 

 

오이카와는 마지막에 그 말만을 했는데 그 말에 따라 순순히 오이카와의 방을 빠져나온 것은 솔직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두글자에 힘이 실린 듯, 그 상황에서 명백히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반기지 않았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이후 오이카와가 방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이와이즈미는 알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듯 인기척도 없이 조용했을 뿐이었다.

 

 

 

“이제 어쩔까.”

 

 

 

본래라면 바로 전의 임무에서 다쳤을 인물은 자신이 아니라 오이카와여야 했다. 그것을 자신이 대신해서 다친 것이었건만, 오이카와는 그 점에 불만을 가졌던 듯 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따지고들던 것도 거기에 대한 것인 것 같았고, 자신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던지 그렇게 퇴출을 명했던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로서도 양보할 수는 없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파트너로서 있었으니까 말이다.

 

좋건 싫건 일단 마음 맞는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했으니까.

 

 

 

“오이카와 녀석이 뭘 좋아하더라.”

 

 

 

우선 오이카와와의 관계 회복에 힘을 써야한다는 것이 분명해서 이와이즈미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멈칫했다. 그러고보니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그건 아마도 쿠로오나 켄마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금 꺼려하는 것은 있는 모양이었지만 오이카와는 기본적으로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자기주장이 없는 편은 아니었건만 이건 어딘가 이상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이럴 수 있나, 를 생각하던 이와이즈미는 곧 그 생각을 종료했다. 오이카와가 어떤 녀석이건간에 자신도 말하지 못하는 사연 한 두개쯤은 가지고 있지 않던가. 생각해보면 다들 그런 점에 있어서는 피장파장이었다. 과거의 오이카와보다는 현재의 오이카와에 집중하면 될 일이었다. 좋아하는 게 없으면 어떤가. 이미 파트너로서 엮어버린 것을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잖은가. 그거랑 같은 것이다.

 

 

 

“모두 그렇지만 확실히, 오이카와 녀석은 자기 얘기를 더 안 하는 편이지.”

 

 

 

결국 이와이즈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할 오전 아홉 시 무렵. 켄마는 내심 진땀을 빼고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의무실에 들이닥쳐온 인물 때문이었는데, 켄마의 전용 의자 옆에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의자를 멋대로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불만이 있는지 나이에 맞지 않게 입술을 댓발 내밀고 퉁퉁거리며 하소연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라면 이야기하기 가장 편한 인물이 켄마임을 알고 있었기에 상대는 거칠 것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켄마짱! 이와짱 너무하지 않아?”

“자기 몸이나 챙길 것이지, 왜 내 걱정을 하고 앉아있어? 그러니까 다치는 거 아니야!”

“그래놓고 내가 거기에 대해 따지면 뭐라는 줄 알아?”

 

 

 

이렇게 이와이즈미의 뒷담을 하는 인물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오이카와였다. 뒷담까는 장본인이 없다고 밑 빠진 장독대마냥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것이 그동안 쌓아놨던 것을 풀어놓는 것 뿐인데도 듣고 있는 켄마로서는 피곤해져왔다. 오이카와가 떠드는 동안 결국 커피포트에서 진한 커피를 탄 켄마는 머그컴 두 개를 들고 다시 고정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나는 오이카와에게 건네고 나머지 머그컵은 자신의 몫이 되었다.

 

한창 얘기하다 건네진 커피에 그제야 잠시 오이카와의 말소리가 뚝하니 끊겼다. 먼저 커피를 마시는 켄마를 보고 양 손에 들린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빤히 보던 오이카와는 슬슬 목이 말라가고 있던 차라 뜨끈한 커피를 한 모금 입 안에 머금었다. 진한 커피향이 확 하고 풍겨왔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커피는 상당히 진해서 입가심은 되었지만 뭔가 다른 게 끌리고 있었다. 짭짤한 과자가 있으면 딱일 것 같았다.

 

 

 

“이렇게 몰래 불평 늘어놓을 정도로 오이카와 상은 이와이즈미 상 마음에 들어하는 거죠.”

 

 

 

켄마가 오이카와의 입에서 나오는 뒷담 아닌 불평을 들으면서 생각한 것이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입에도 담지 않으면 그만일텐데, 오이카와는 그러지 않는다.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는 꽤나 마음에 드는 상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당사자가 없을 때를 노려서 켄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겠지. 그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로서는 조금 난감하기 그지없지만 말이다.

 

 

 

“좋아해.”

 

 

 

켄마의 말이 꽤나 의외라는 듯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붙이지 않고 그 말만을 했다. 그러면서 웃는 얼굴은 켄마가 지금까지 봐왔던 오이카와와는 어딘가 달랐다. 진심이구나. 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까지 접고 웃는 얼굴을 보고 켄마는 다시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 그런 켄마를 보던 오이카와가 잠시 눈동자를 굴리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싶더니 그 뒷말을 덧붙이듯 속삭여왔다.

 

 

 

“켄마짱도 좋아해. 쿠로짱도 좋아해.”

 

 

 

같은 의미의, 같은 무게의 오이카와의 좋아해를 들은 켄마는 그저 웃었다. 물론 켄마 자신도 쿠로를 좋아한다. 그런 경우로 따지자면 그것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도 마찬가지로 좋아하고 있다. 오이카와와 같은, 좋아해 였다. 서로의 공통적인 부분을 퍼즐처럼 찾아낸 켄마와 오이카와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정말 쓰잘데기 없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자신들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그것이 따뜻했다.

 

 

 

“저도 쿠로가 좋아요. 오이카와 상도, 이와이즈미 상도 물론 좋아해요.”

“그렇지? 켄마짱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나랑 같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뒷말을 덧붙이는 오이카와에 켄마는 주의깊게 살폈다.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이 나온 것인지 파악할 수 없어서 더욱 그랬다. 조심성이 많은 켄마인지라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슬쩍슬쩍 바라봐오는 것에 커피를 마시며 오이카와는 얼굴 위에 떠오른 미소를 가렸다. 머그컵에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술의 선이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켄마는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켄마짱. 방금 건 비밀로 하자.”

“…?”

“혹시나 싶어서야, 혹시나 싶어서.”

 

 

 

의뭉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오이카와에 켄마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크게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오이카와가 하는 말은 어떤 말이라도 결코 허투루 넘겨들을 수 없는 힘이 있었고, 거의 대부분 맞아떨어지고 있었기에 오이카와가 넌지시 주의를 당부하는 말을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는 뜻과 일맥상통 했다. 켄마는 다시 커피를 마셨고 그걸 본 오이카와는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매만지다가 켄마를 따라 남아있는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렇게 서로 커피를 마저 마시며 느긋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끝마쳤다.

 

 

 

 

 

***

 

 

 

 

 

그 뒤로 켄마와 소소하지만 즐거운 수다를 떨었던 오이카와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갔다. 착, 하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짧게 들렸다가 끊어졌다. 답답할 정도로 목에 얌전히 매어져 있는 검은색 넥타이를 아무렇게나 잡아 끌어 느슨하게 만든 뒤에 입고 있던 흰색 와이셔츠의 위쪽 단추 두어개를 풀었다. 그제야 겨우 숨통이 트이는 느낌에 오이카와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독한 양주가 땡겨오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문을 걸어잠그는 것은 방 안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표시였다. 대개 임무에 관련된 내용으로 추가적인 정보를 더 얻고자 하거나, 자료를 꼼꼼히 살피거나, 그 외 기타 등등의 일들로 본인이 바쁜 걸 알리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왼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손목시계를 보며 다음 일정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확인한 오이카와는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

 

 

 

소파 앞인 조금 아래의 정면, 그곳에 있는 탁자 위에는 어제 오이카와가 불편한 심기로 대충 보다가 던져놓은 다음 임무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진 자료가 여전히 그 자리에 놓아져 있었다. 탁자 위에 흩어져 있는 종이를 반듯하게 모아들은 오이카와는 소파에 편하게 앉았다. 집어든 종이를 이번에는 글자 하나하나 꼼꼼하게 훑어나갔다. 중간중간 실려있는 사진이나 첨부 자료등을 엄청난 집중력으로 다 본 오이카와는 피곤한 눈가를 문질거렸다.

 

 

 

“으어.”

 

 

 

자료를 보느라 굳어진 몸을 쭉쭉 늘리며 오이카와가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손을 맞잡아 위로 쭈욱 뻗은 오이카와는 그 상태로 잠시 멈췄다. 팔 안쪽이 땡겨오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다 본 자료는 다시 탁자 위에 놓여졌고 그것에 잠시 시선을 둔 오이카와는 슬며시 올라오려는 입꼬리를 애써 잡아내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어이가 없어서 대놓고 폭소를 터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골 때리는 놈들이네-”

 

 

 

나 이렇게까지 골 때리는 놈들 처음이야. 웃음이 터지려고 해 부들부들 떨려오는 입꼬리를 가린 손 안쪽에서 그런 말이 뒤따라 나왔다. 솔직히 마피아라는 것이 딱히 정의롭다고 하기에는 약간 어폐가 있는 것은 사실인데, 그 구성원들은 모두 그것을 잘 숙지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이와이즈미도, 쿠로오도, 켄마도, 그리고 자신도 거기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도 넘치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 중심이 되는 규율은 있고, 그것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마피아다. 일정 선을 과도하게 넘지 않으면 딱히 윗선에서도 터치하지는 않고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한마디로 마피아라는 족속들은 세간에서의 시선은 그다지 좋지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고, 그리고 정의관이 있는 나름 정당한 집단이기는 하다는 것이다. 그런 마피아에 비해 넘쳐나는 갱들은 그런 정의관조차도 없는 그저 그런 폭력 집단일 뿐이다.

 

쿠로오가 전해준 다음 임무는 바로 그 갱들에 대한 것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다면 활발하게 움직이는 녀석들이 모여있는 쪽의 자료였다. 그것 뿐이면 주의를 주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안건이었으나, 이놈들이 미쳤는지 마피아인 우리들의 영역을 건들기 시작했다는 내용으로, 그 주요 인물들의 프로필도 잘 정리되어 자신에게 건네진 것이었다. 갱들도 갱들이었지만 어이 없는 건 따로 있었다.

 

 

 

“이젠 하다하다 갱들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거냐고.”

 

 

 

아, 혈압. 오이카와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째 마피아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한숨만 늘어가는 것 같은 것은 자신의 착각일까. 어째서 오이카와 상의 취급이 이렇게 되었지. 언제 한 번 시간 날 때에 진지하게 고민 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을 내린 오이카와가 소파에서 일어나 방 한쪽의 진열장으로 걸어갔다. 유리로 된 문을 여니 그 안에는 각종 술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쩐지 땡기더라니, 마셔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랬구만.”

 

 

 

담배도 좋아하지만 술도 좋아하는 오이카와는 여럿이서 함께 마시는 술도 좋았지만 혼자서 하는 자작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편해하는 오이카와로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눈을 굴리며 보드카 종류를 찾았다. 스피리터스(Spirytus)도 괜찮겠지만 몇 잔 마시는 걸로 끝낼 생각이 없기에 그냥 다른 걸 마시기로 했다. 그리하여 선정된 것이 에버 클리어. 95도의 도수짜리가 아닌 그보다 낮은 75.5도의 에버 클리어였다.

 

대체로 보드카는 냉동실에 넣어놓았다가 마시는 게 좋지만 오늘은 패스였다. 얼음으로 희석하면 소용이 없으니 그냥 생으로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하고 에버 클리어를 집어들었다. 다시 앉았던 소파의 자리로 돌아와 잔을 놓고 가지고 온 술을 따 따랐다. 적당한 양을 따른 뒤에 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 들이켰다. 아무리 어느 정도 도수를 낮췄다지만 기본적으로 도수가 쎄기 때문에 금새 칼칼함이 치고 올라왔다.

 

 

 

“다음번에는 저번처럼 다 같이 마시러 갈까나.”

 

 

 

딱히 취하고자 마시는 술이 아니었기에 오이카와는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들고 둥글게 돌렸다. 잔을 따라 안에 있는 술이 똑같이 돌았다. 그 모양새를 눈을 내리깔고 지켜보던 오이카와는 그대로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소파에 편히 기대앉은 오이카와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눈을 굴린 오이카와는 양 손을 들어올려 마른 세수를 하며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이카와의 머릿속에는 아까의 대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네가 나랑 같아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는 오이카와의 눈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쿠로오는 제법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말단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고, 지금은 이곳에서 나름 높은 지위를 가진 쿠로오였으나 이제는 새로 들어오는 신입들을 도맡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대해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아마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이었고, 단지 그것을 자신이 맡게 되었을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신도 신입이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문제라면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의 규칙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자잘한 문제들은 자신이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에 있었다. 한 두번이면 이해를 하겠는데 시도 때도 없이, 줄기차게 문제를 일으키니 아무리 쌩쌩한 쿠로오라도 얼굴 위로 피곤함이 깔리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해야 하니 금방이라도 인내심이 끊어질 것 같았다.

 

 

 

“쿠로, 조금 쉬어.”

“아, 켄마.”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아는건지 켄마가 의무실에서 나와 쿠로오를 직접 찾아오곤 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쿠로오가 폭발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쿠로오에게 다가온 켄마는 손을 잡고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켄마가 이끄는대로 따라간 곳은 휴게실이었다. 켄마는 아무도 없음을 아는지 문을 열고 들어가 도로 닫고, 잠갔다. 그 뒤 휴게실 안에 놓여져 있는 간이 의자에 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앉아있던 쿠로오가 문득 켄마에게 안겼다. 신장도 덩치도 켄마보다 큰 쿠로오였으나 딱히 거부감도 없이 켄마는 안겨오려는 쿠로오를 마주 안아주었다. 품에 파고들려는 쿠로오의 등을 도닥여주던 켄마는 그 정도에 시선을 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쿠로오가 상당히 무리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캐릭터에 맞지 않게 어리광을 부려오는 쿠로오는 제법 오랜만이었다. 얼굴 위로 살풋 미소가 감돌았다.

 

 

 

“힐링 됐어, 쿠로?”

“응. 역시 켄마는 내 힐링제야.”

 

 

 

켄마가 내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이어지는 쿠로오의 말에 켄마 특유의 고양이 눈이 몇 번이고 깜박였다. 그런 켄마의 반응을 바로 앞에서 지켜본 쿠로오는 그저 웃었다. 지금 한 말에 거짓은 없었다. 이미 말 그대로의 의미였으니까. 굳이 왜곡할 필요도 없는 직선적인 의미의 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했기에 켄마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속을 내보인 적이 적은 편이었기에.

 

 

 

“오늘따라 솔직하네.”

“그런가? 스트레스 받을대로 받다가 제대로 힐링 받아서 그런가보지.”

“쿠로 어리광 오랜만에 봤어.”

“어른이 하면 역시 이상하지, 그거.”

“아직 젊잖아.”

 

 

 

큭큭 웃어버리는 쿠로오에 켄마의 작은 타박이 사정없이 날아왔다. 무엇이 그렇게 놀라운 것인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켄마를 바라보는 쿠로오는 미처 자각하지 못하던 것을 겨우 안 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표정이었다. 우리 삼십줄도 안 됐거든. 많아봐야 대학생 나이이면서 그런 걸 따져. 이어지는 팩트 폭력에 쿠로오는 멍하니 있다가 성대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쿠로오로서는 켄마가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리고 이걸로 알았다. 켄마도 쿠로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말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말에서, 그 어투에서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그래 보이지 않아도 코즈메 켄마라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사실 하나를 안 것만 해도 쿠로오는 지금 이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굳이 알리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신뢰관계는 이미 옛적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쿠로는 바보지.”

“이번엔 반대로 디스하는 거야?”

 

 

 

마지막은 끝까지 좋은 말은 해주지 않는 켄마와 그런 모습에 어딘가 풀죽는 쿠로오였다.

 

 

우리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조용한 공간이었다.

 

블라인드가 쳐져 있는 어딘가의 건물 중 하나의 자그마한 방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어딘가의 높은 직책으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이 있는 인물은 블라인드 쳐진 창문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그 앞에 있는 개인 책상 위에 양 손을 얽히고는 턱에 댄 채로 눈 앞의 인물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 앞의 인물에게 그런 시선을 받은 그 상대방은 똑같이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묘한 침묵이 그들 사이에 감돌았다.

 

 

 

“후우.”

 

 

 

그리고 그 긴 침묵 속에서 겨우 한숨을 내쉬는 이. 시선을 받으며 서 있던 쪽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일정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무너졌다. 다만 그 한 번의 한숨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된 듯 무겁기 짝이 없었다. 어딘가 불만스러운 듯, 체념한 듯, 그도 아니면 단순히 귀찮아하는 듯도 들렸다. 그러다 결국 이내 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건지 제법 거칠게 뒷머리를 쓸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드록 하죠, 이번 일.”

 

 

 

끝내 그 입에서 나온 대답은 긍정이었다.

 

 

 

 

 

***

 

 

 

 

 

뭉게뭉게 퍼져나가는 것은 담배연기였다. 입술 끝에서 떨어질락 말락 하며 아슬하게 담배를 물고 있는 인물은 딱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바닥을 치는 모양이었다. 담배 끄트머리를 솜씨 좋게 베어물고 있는 도중에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는 멈출 줄 몰랐다. 그런 상대에게 볼 일이 있어 왔던 다른 이도 생각 없이 방문을 열었다가 방 안 가득한 담배연기에 순간 멈칫했을 정도였다.

 

 

 

“오이카와.”

“…응?”

 

 

 

한창 담배를 피우는데에 열중하느라 누가 들어온지도 몰랐던 듯 의아한 반응이 돌아오는 것에 상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뭐가 또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방 안에 놓여져 있던 푹신한 소파 위에 편하게 걸터앉아 있던 오이카와라 불린 이의 고개가 문이 있는 뒤쪽으로 돌아가 상대를 확인했다. 방 안 가득한 담배연기 때문에 시야가 조금 흐릿한 게 흠이었지만 누군지 확인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 쿠로짱이다.”

“그래, 나다.”

 

 

 

방을 방문한 이가 누구인지 확인한 오이카와가 다시 고개를 원상복귀하며 마저 담배를 피웠다. 다시 뒤통수만을 보여준 채로 담배연기만 뿜어대는 오이카와에 쿠로짱이라 불리운 상대, 쿠로오 테츠로는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어떻게 보면 파트너보다도 더한 독종이었다. 담배연기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까지 방 안 가득 차 있는 것은 반기지 않는 쿠로오는 빨리 용무를 끝마치고 힐링을 받으러 가고 싶었다.

 

 

 

“다음 임무 배달 왔다.”

“…흐응. 대애-충 그럴 거라 생각했어.”

 

 

 

응, 이라며 뒤로 손을 내민 오이카와에 쿠로오는 다가가서 내밀어진 손 위에 들고 온 몇 장의 자료를 올려주었다. 건네진 자료를 훑어보는 모양새가 상당히 대충이었다. 딱 보아도 건성이라는 느낌이었으니 말 다한 거 아니었을까. 반응으로 봤을 때도 시원찮았는데 진짜 뭔 일 있었나보네. 쿠로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료를 보는 오이카와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고 인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오이카와는 보고 있던 자료를 앞에 있던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그리고 오른쪽의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 안에서 굴려댔다. 굴리면 굴릴수록 점차 짜증났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왼손으로 물려져 있던 담배를 빼내어 집어들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담배를 줄창 피워대서인지 나오는 한숨마저도 희뿌옇게 보이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그 상태 그대로 몸만 뒤로 눕히며 소파에 몸을 파묻는 느낌으로 기대었다. 주사위를 굴리고 있는 오른손을 그대로 들어 소파 등받이 위에 누운 머리의 이마 위에 가볍게 놓았다. 손 안에서 굴려지는 주사위의 감각이 간접적으로나마 오이카와에게 전해져 왔다. 달각달각거리며 움직이는 주사위 소리가 놓여진 손의 위치 때문에 왼쪽 귓가에서 선명하게 울렸다. 오이카와는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역시 나한테는 주사위가 안정이라니까.”

 

 

 

담배연기가 가득한 조용한 방 안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

 

 

 

 

 

오이카와에게 임무를 전달해준 쿠로오는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어떤 곳을 향해 걸어갔다. 이곳에 있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쿠로오 본인에게 힐링제가 되어주는 이가 있는 곳. 의무실이었다. 문 옆쪽의 벽에 붙어있는 명패를 확인하고는 노크도 없이 벌컥 열어젖히자 그 안에는 쿠로오가 찾던 이와 함께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상대를 확인한 쿠로오가 눈을 조금 동그랗게 떠재꼈다.

 

 

 

“오야? 이거이거, 이와이즈미가 아닌가.”

 

 

 

쿠로오를 확인한 의무실 안쪽에 있던 두 사람의 표정은 극명하게 갈렸다. 한쪽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었고, 쿠로오에게 이와이즈미라 불린 이는 대놓고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들어오지는 않고 문 바깥쪽에 있던 쿠로오는 뒷모습이나마 보이는 이와이즈미의 상태를 훑어보고는 그 견적을 뽑아내었다. 아까의 오이카와의 반응을 보아 분명 이것 때문이었음이 분명했다. 어쩐지 심기가 불편해보이더라니 당연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이와이즈미 하지메와 오이카와 토오루. 가히 최강조합이라 할 만한 파트너 관계였다. 근거리가 이와이즈미라면 당연하게 중장거리는 오이카와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으니 그 실력은 두말해야 입 아프다. 이번에 두 사람이 받은 임무가 좀 까다로웠던 것은 있었지만 그리 어려움은 없었을 텐데. 그런데 오이카와는 멀쩡하고 이와이즈미만 의무실 상태라는 건 임무 도중 뭔가 일이 있었다는 게 되는 것이다.

 

 

 

“뭐야 그거. 궁금한 걸.”

“궁금한 것도 많다.”

 

 

 

무심코 본심이 밖으로 튀어나오자마자 반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 대응을 들으며 언제까지고 밖에 서 있을 수도 없어 의무실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당연하겠지만 의무실 안에는 각종 약품 냄새가 났다. 슬금슬금 그들에게 다가오는 쿠로오를 못마땅한 기색으로 보던 이와이즈미는 곧 눈을 슬그머니 반쯤 접었다. 다가온 쿠로오에게서는 대체 어디에서 묻혀가지고 온 건지 모를 담배냄새가 진하게 베어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어디 갔다왔냐?”

“네 파트너에게.”

“하?”

 

 

 

쿠로오의 말에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와 결국 큭큭 웃었다. 이렇게까지 다친 적이 없었던지라 본인은 전혀 몰랐던 상황이겠지만 그것이 쿠로오에게는 웃길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파트너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모르는 것에. 조금 유쾌해졌다. 갑자기 웃는 쿠로오에게는 당연히 이와이즈미에게서 좋은 반응을 끌어낼 수는 없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이와이즈미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해갔다.

 

 

 

“진정해. 그러다 사람 하나 잡겠다.”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쿠로오에 이와이즈미는 지금 자신이 다친 상황만 아니라면 당장에 쥐어팼을거라며 속으로 화를 눌러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이즈미가 알기로는 이 정도로까지 진한 담배향은 그 누구도 이곳에서는 피우지 않았다. 가끔 입이 심심할 때나 두어 개 피우지, 누가 이렇게 금방 죽을 정도로 담배를 독하게 피워대는지 그 주인공을 상상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런데 그 범인이 오이카와라니, 전혀 금시초문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묻고 있잖아, 검은 고양아.”

“네 파트너의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아.”

“담배가?”

“그래. 오이카와 방에 들어가니까 방 전체가 담배연기에 파묻혀 있었다.”

 

 

 

물론 본인이 피운 건 확실했다구. 담배가 떡하니 입에 물려있는데 모를 수가 없었지. 이어지는 쿠로오의 말에 이와이즈미의 표정이 점차 알쏭달쏭하게 변해갔다. 그런 이와이즈미의 반응을 보던 쿠로오는 그 반응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어서 묘했다. ‘우리들’ 치고는 알기 쉬운 편이었던 이와이즈미의 생각을 모르게 되는 날이 찾아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쿠로오는 결국 이것도 재미라며 웃었다.

 

 

 

“이전 임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불편?”

“짜증이 났다고 할까, 불만이 있다고 할까. 한가지 확실한 건, 그 모든 걸 담배 피우면서 속으로 쌓아두고 있다는 거지.”

“…….”

“조심해라, 이와이즈미. 그렇게 되면 언제 폭발할 지 모른다.”

 

 

 

오이카와를 무슨 폭탄물 보는 듯이 말하지 마라. 충고이나 결코 그렇게 들리지 않음에 순간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이와이즈미는 그냥 입을 다물고 침묵을 선택했다. 그리고 다친 곳에 꼼꼼히 치료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무실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안의 두 사람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고는 한쪽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 방향에 있는 장소들 중 하나를 알아챈 쿠로오는 결국 폭소했다.

 

 

 

“쿠로, 타이밍 나빴어.”

“아- 미안, 켄마. 설마 의무실이라는 공간에 이와이즈미가 있을 줄 몰랐지.”

 

 

 

바로 날아오는 타박 섞인 목소리에 쿠로오는 금새 꼬리를 말고 얌전해졌다. 코즈메 켄마. 그들이 있는 곳의 의사 비스무리한 존재였다. 그리고 쿠로오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힐링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어딘가 기력이 없어보이는 켄마지만 그 솜씨만은 이곳의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만큼 켄마는 이곳에서 없으면 안 될 존재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특성 상 다치는 환자들은 끝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켄마, 이리 와.”

“잠깐 가운 좀 벗고.”

 

 

 

직책이 직책이라 켄마는 항상 의사들이 입곤 하는 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항상 이렇게 권유해 올 때마다 가운을 벗었던 켄마는 이번에도 그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을 벗으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와는 달랐다. 가운을 벗기 위해 움직이는 켄마의 손목을 붙잡아 끌어당겨 품에 안착시켜 안았다. 키가 작은 편인 켄마는 쿠로오의 품 안에 딱 알맞게 들어왔다. 쿠로오가 아래에 보이는 켄마의 머리 위에 얼굴을 묻었다.

 

쿠로오에게 안겨진 켄마는 등 뒤로 느껴지는 타인의 체온에 노곤한 숨을 내쉬었다. 아까 이와이즈미를 치료하느라 한껏 긴장했었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몸 앞쪽으로 단단하게 둘러진 쿠로오의 양 손에 켄마는 확실하게 안심하고 있었다. 켄마는 그저 쿠로오를 따라 이곳에 들어왔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그 선택을 한 것을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이곳에서 쿠로오가 숨 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쿠로, 담배 냄새 나.”

“응, 미안.”

 

 

 

그래도 이곳에서도 이곳 나름의 일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

 

 

 

 

 

“고양아-”

 

 

 

다음 날. 아침 댓바람부터 오이카와는 누군가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디 한 군데도 놓치지 않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오이카와는 진짜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구석진 곳, 어딘가의 방들, 그 외 기타 장소 등등. 입 아프게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장소들을 돌아다니는 오이카와에게서는 알 수 없는 압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제 손에서 굴리고 놀던 주사위 두개는 양쪽 귓가에 귀걸이로 걸려 있었다.

 

 

 

“고양아-”

“고양아-”

“고양아-”

 

“어딨니, 고양아.”

 

 

 

그렇게 고양이를 부르며 돌아다니던 끝에 드디어 찾아다니던 고양이를 발견한 오이카와의 발걸음이 주저없이 그쪽으로 향했다. 얼굴 위에는 기본으로 깔고 다니던 스마일을 내걸고 오이카와는 서서히 그 고양이에게로 착실히 다가갔다. 그럴 떄였다. 그 본인이 위험을 감지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가오는 오이카와를 발견했다.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묘한 위기감을 느꼈는지 도망가려는 상대의 어깨를 급히 잡아채었다.

 

 

 

“어디 가, 쿠로짱?”

“오, 오이카와?”

“응, 오이카와 상이야.”

 

 

 

이미 오이카와임을 확인한 쿠로오였지만 재확인 차 되물을만큼 지금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되었다. 분명 오이카와는 웃고 있는 게 분명하건만 뒤쪽에서 은근하게 느껴지는 압박감이 절대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시끄럽게 경고를 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오이카와에 쿠로오는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벗어나려고 했으나 오이카와는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꽉 잡아오는 힘에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쿠로짱, 나한테 뭔가 할 말 없는걸까?”

“하, 할 말?”

“응, 할 말. 나한테 무언가 해야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꽉 잡고 있던 손을 풀어내었다. 느낌상 그 할 말을 들을 때까지 붙들고 있을 듯 했는데 금새 풀어주니 묘한 긴장감이 달렸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상당한 악력으로 붙잡혀 있던 어깨가 은근히 뻐근해 근육이 놀라지 않게 느릿하니 돌리며 쿠로오가 뒤에 있는 오이카와를 향해 돌아보았다. 오이카와는 쿠로오가 다시 도망가려고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어렵지 않게 눈을 맞춰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쿠로오는 눈을 굴렸다. 어디 보자. 오이카와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로 봐서는 자신이 상당히 무언가를 잘못한 모양이었다. 생각을 과거로 되돌리던 쿠로오는 순간 떠오르는 잔상에 설마 싶어 오이카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어제의 일이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게 과연 오이카와가 이렇게까지 나올만한 일이던가. 쿠로오는 그것을 짐작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있지? 나한테 할 말.”

 

 

 

그리고 쿠로오가 무언가를 짐작한 것을 눈치챈 듯 기가 막힌 타이밍에 다시 되묻는 오이카와에 쿠로오는 내심 식은땀을 삐질 흘릴 수밖에 없었다. 기막힐 정도로 눈치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짐작이 있는 것이 맞지만, 그 이후에 어떤 대화가 오갔기에 앞뒤 따지지도 않고 이렇게 나오는가는 듣지 않았기에 쿠로오는 알지 못했다.

 

 

 

“이와이즈미가 뭐라 했어?”

 

 

 

쿠로오의 물음에 오이카와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바로 튀어나올 말이 있음이 분명한데 오이카와는 오히려 침묵했다. 잠시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쿠로오와 마주본 채이던 오이카와는 오른손을 들어 귀걸이로 달고 있던 주사위 하나를 쥐고 놀기 시작했다. 잠시 시선을 내리깐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던 오이카와가 이윽고 다시 쿠로오와 시선을 맞췄을 때에는 이미 무언가가 변해 있었다.

 

 

 

“고양아-”

 

 

 

오이카와의 말에 쿠로오가 흠칫했다. 고양아. 쿠로오를 향해 오이카와가 그런 명칭으로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쿠로짱. 언제나 쿠로짱이었는데 처음으로 불린 그 생소한 명칭에 쿠로오는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심장이 뛰는 것이 생생했다. 제법 나른한 음성으로 늘어지는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는 명백하게 협박이 섞여있었다. 그것을 모를 정도로 쿠로오는 둔하지 않았다.

 

 

 

“이와짱에게 쓰잘데기 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쿠로짱.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줘?”

 

 

 

그 말을 끝으로 오이카와는 굳어있는 쿠로오의 잡았던 곳과는 반대쪽 어깨를 두어번 가볍게 두드리고는 그렇게 멀어져갔다. 대체 어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지금 당한 일종의 화풀이는 원래라면 이와이즈미에게 갔어야 했다는 것을 쿠로오는 알아챘다. 힘내라는 느낌으로 두드려진 어깨가 왠지 모르게 굉장히 무거웠다. 애꿎은 화풀이 대상이 될 정도로 자신이 만만하다는 건가.

 

 

 

“골치 아픈 두 녀석 사이에서 나만 고생하지, 나만.”

 

 

 

 

어쩐지 하루를 시작하는 이른 아침임에도 최악의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마피아조 (우선 결정된 인물) ◀

 

→ 이와이즈미 하지메

→ 오이카와 토오루

→ 쿠로오 테츠로

→ 코즈메 켄마

 

 

 

[하이큐]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을 한다

 

 

 

“죽여.”

 

끝이 나지 않을 듯한 무거운 침묵 속에서 겨우 비정한 한마디가 떨어져 내렸다. 높이가 있는 계단 위의 단상 위에 서 있던 인물은 서늘한 눈매를 띄우고서 아래쪽에 주저앉혀져 등 뒤로 양손을 묶인 채 결박되어 있는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린 시선과 마주본 상대는 다시금 내리깔린 침묵 속에서 서서히 입꼬리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그리고 광소(狂笑)했다.

그 웃음은 자조였고, 애석함이었고, 끝내 닿지 못한 애달픔이었다.

 

우정이기를 바랬건만 이것은 일말의 애정이었다.

한 사람 대 한 사람으로서.

그렇기에 가질 수 있었던 한줌의 애정.

 

끝이 다가와서야 자각할 수 있는 자신에게 조금 평소의 눈치 좋음은 어디다 내팽개친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어졌다.

죽음 따위야 무서울 것 없지만.

죽는다면 너와는 더이상 친구가 아니게 되는 건 싫은걸.

마지막이니까, 조금의 투정은 용서해줄래?

 

“좋아해.”

 

 

 

 

 

조직AU/ALL CHARACTER/일상범죄물/추리/달달 첨가/로맨스X/일부 초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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