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안녕, 토비오!

이 세상은 미쳐돌아간다

-인지認知

 

 

 

 

 

 

 

 

 

 

카게야마 토비오. 그 이름은 배구부에서 유명했다.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로든 말이다.

 

배구에 있어서의 천재.

 

배구의 강호교인 키타가와 제1에서도 그 수가 적은 편인 세터라는 포지션에서 특출난 재능을 내보이는 1학년으로서는 감독과 코치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으나, 그 외에서는 전혀라고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같은 동급생인 1학년들에게는 각자 포지션을 정하기 전이라 상관없었으나, 2·3학년들은 그렇지 않았다. 갓 입학한 새파란 1학년의 뛰어난 재능은 정식 선수 자리를 빼앗길거라는 경각심을 강하게 심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그 성향이 두드러졌던 것은 현 3학년으로 배구부 주장이기도 한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포지션적으로 카게야마와 경쟁하는 자리에 위치해 있는 오이카와는 그 특유의 눈치 빠름으로 인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그런 배구부의 미묘한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배구 삼매경이었다. 공을 올리는 폼이 깔끔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있던 오이카와는 냉큼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정말-”

 

 

 

천재는 짜증나네에.

 

그 중얼거림을 옆에 있던 이와이즈미가 들었는지 흘끔 오이카와를 보고는 사정없이 그 등을 향해 내리치듯 때렸다. 퍼억, 하는 큰 소리가 체육관에 울렸고 곧이어 얻어맞은 등을 문지르며 따지는 오이카와의 말소리가 이어졌다.

 

 

 

“아파앗!! 이와짱, 갑자기 왜 때리는데? 아무 짓도 안 했는데에!!”

“했잖아, 이 쿠소카와!!”

 

 

 

도망갈 퇴로를 차단하듯 사실을 들이미는 이와이즈미를 보고 오이카와는 불만스레 입술을 삐죽였다. 이와짱은 매번 나한테만 뭐라 그래. 작게 꿍얼거리는 그 소리를 들었는지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응…?”

“네놈은 생각이 너무 많아.”

 

 

 

가끔은 그 머릿속을 비우는 것도 도움이 될 거다.

 

그렇게 충고를 하면서 이와이즈미는 얹은 손을 움직여 오이카와의 머리를 헤집어 놓았다. 비교적 얌전하게 그 손길을 받아들이던 오이카와가 상황을 파악한 것은 이 다음이었다. 오이카와가 빼액 소리를 키워 소리쳤다.

 

 

 

“으악, 내 머리!! 이와짱, 일부러 그랬지!!!”

“그걸 이제 알았냐, 멍청아.”

“이와짜앙!!!”

“시끄럽다, 쿠소카와.”

 

 

 

진짜 너무하네!!

 

이미 고정되어 있던 머리라 그렇게 티나는 것도 아니건만 오이카와는 아주 큰 일이 났다는 양 굴고 있었다. 그런 오이카와를 굳이 알면서도 일을 벌인 이와이즈미는 제 잘못을 아는 것처럼 그 투정을 적당히 받아주고 있었다.

 

한쪽에서 그런 만담이 펼쳐지는 사이 카게야마는 아침 연습량을 거의 다 채우고 있었다. 그 속도가 빠른 편이라 조금만 주의 깊게 본다면 카게야마가 배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후우.”

 

 

 

공을 던지고 스파이크를 치는 연습을 하던 카게야마는 그 움직임으로 체온이 올라 발그레해진 양 뺨을 손등으로 문질거렸다. 손등도 뜨끈뜨끈해 문지르는 의미가 전혀 없었으나 카게야마는 그냥 좋았다.

 

배구를, 정말 좋아하는 배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카게야마는 충분할 정도로 만족하고 있었다. 염원하던 배구부에 들어와 매일 같이 마음껏 배구공을 만질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두근두근거리며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피실거리며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을 억지로 막았다. 웃는 얼굴은 좀 무서우니까 말이다. 왜 웃는 게 잘 안 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카게야마는 본인의 웃는 얼굴이 굉장한 흉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집중해서, 손 안의 공을 띄우고, 도움닫기 후, 뛰어올라 때린다. 마지막 연습을 끝낸 카게야마가 날아간 공을 주워들고 뒤로 돌았을 때, 이번에는 빤히 바라봐오던 오이카와와 눈이 마주쳤다. 미묘한 공기가 흘렀다.

 

오이카와는 금새 카게야마를 보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았지만 카게야마는 여전히 오이카와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늘한 표정이었다, 고 카게야마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카게야마는 짐작할 수 없었다.

 

카게야마로서는 자신이 천재이기에, 시기와 질투를 받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이미 미묘한 금이 발 밑에서 천천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아직 카게야마는 전혀 알지 못했다.

 

 

 

 

 

***

 

 

 

 

 

수업은 재미없다. 아주 객관적이고 사실인 내용을 상기하면서 카게야마는 이번 수업도 포기하기로 했다. 머릿속에 배구만 가득한 카게야마로서는 도저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배구 생각이 간절했다. 방과 후에 다시 배구 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해도 부족하고 또 부족했다. 배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서도 갈증이 일었다. 그것은 배구를 처음 접했던 날부터 계속되었던 목마름이었다.

 

아무리 배구공으로 배구를 하고 있어도 절대로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다. 항상 부족했고, 목이 탔다. 그 정도로 배구를 좋아하는 모습은 곁에서 보면 굉장히 비이상적이었다. 한마디로 비정상이라는 소리였다.

 

카게야마는 가끔이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만약 자신이 배구를 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그 때에는.

 

 

 

“…….”

 

 

 

그런 상황을 상상했는지 카게야마는 몸을 떨었다. 그다지 생각하고 싶은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한 번 하곤 하는 가정일 뿐이었으니 거기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어째서 미련을 못 버린 것처럼 신경이 쓰이는 걸까.

 

 

 

“하아.”

 

 

 

카게야마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높은 곳에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하늘 너머를 보다가 문득 창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여전히 무결점의 푸른 눈이 그곳에 있었다.

 

카게야마는 문득 그것이 기묘하다, 라고 생각했다. 알지 못하는 가시감(可視-)이 치고 올라오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속삭이는 듯 무언가를 말해오기 시작했지만 아직 카게야마는 그 말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의 불안이 싹을 틔웠다.

 

 

 

 

 

***

 

 

 

 

 

“카게야마. 이리 와 보거라.”

“네.”

 

 

 

결국 감독에게 불리고 만 카게야마였다. 아침 연습 때까지는 멀쩡했는데 어째 방과 후가 되니 자잘한 미스를 많이 내고 있었다. 깔끔했던 자세까지도 일부 무너져서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던 것이다.

 

감독에게 불린 건 잘못했다는 것이니 카게야마는 당연하게도 감독과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런 카게야마를 보며 감독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보고 있던 오이카와는 양 손에 쥐고 있던 배구공을 돌렸다.

 

 

 

“흐응.”

 

 

 

별 관심 없다는 반응을 내보이고 있었으나 오이카와의 모든 신경과 관심은 감독과 그 앞에 서 있는 카게야마에게 집중된 상태였다. 그 사실을 아는지 이와이즈미도 오이카와의 옆으로 다가오며 시선은 마찬가지로 카게야마쪽을 향해 있었다.

 

 

 

“이상하네. 아침까지는 분명 절호조라는 느낌이었는데, 카게야마.”

“헹, 저건 그냥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거라구.”

“후배한테 괜한 심술 부리지 마라.”

“심술 아니라구! 오이카와 상은 쪼잔하지 않아!”

 

 

 

네가?

 

절대 믿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돌아보는 이와이즈미에 오이카와는 소소하게 데미지를 입어 풀이 죽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곁눈질로 카게야마를 살피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그런 오이카와에 이와이즈미는 느릿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복잡한 그 머릿속 비우라니까 지지리도 말 안 들어처먹지. 쿠소카와가.

 

 

 

“딴 짓 말고, 토스나 올려라.”

“우왓. 이와짱 의욕 만만! 좋아, 오이카와 상 힘낼게!”

 

 

 

여즉 손 안에서 돌리고 있던 배구공을 꽉 잡으며 오이카와가 먼저 코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그 뒤를 따르듯 오이카와를 따라 걷던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다시금 카게야마쪽을 향해 돌아갔다. 이와이즈미는 가만히 생각했다.

 

아마 오이카와의 예측이 맞을 것이다.

 

이와이즈미의 생각대로 실상은 오이카와가 말한 그대로였다. 카게야마는 현재 잠깐 정신이 이곳에 있지 않고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것은 아까 수업 도중 가시감을 느꼈던 그 때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카게야마는 가볍게 넘길 수 없었고 지금까지 그것을 끌고 온 것이었다. 자신이 정확히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고, 그게 겉으로 드러나면서 미스가 발생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뭐가 문제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빨리 해결되었으면 좋겠구나.”

“네….”

 

 

 

격려하려 한 말이었겠지만 카게야마는 그것에 오히려 착잡해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만약 지금의 가시감을 해결한다고 해도, 그 뒤가 있을 것 같은 예감 같은 게 문득 든 탓이었다. 자신의 이 가시감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때 아닌 난관에 머리가 아파져오고 있었다.

 

 

[하이큐]안녕, 토비오!

???

 

 

 

 

 

 

 

 

알 수 없는 정체 모를 느낌에 화들짝 놀라서 눈을 떴다. 이미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잠든 자세가 불편했던 것인지 악몽을 꾼 모양이었다. 잠시 눈을 꿈벅이다가 별 생각 없이 자세를 고치고 다시 잠을 청했다.

 

 

 

 

 

***

 

 

 

 

 

다음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창 밖은 하늘에 버젓이 떠 있는 해 덕분에 사방이 환해진 뒤였다. 고개를 돌려 침대 머리 위에 놓여져 있는 탁상 시계에 시선을 고정하고는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7시 반.

 

살짝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침대 위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을 열고 방 밖으로 나섰다. 세수를 하려 화장실로 향하는 와중 지나치는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나왔다.

 

식욕이 돌게 만드는 아침 냄새에 빨리 세수를 끝내기로 했다. 걸대에 걸려있는 수건을 끌어내리고 그대로 목 뒤쪽으로 가볍게 둘렀다. 세면대의 물을 틀고 잠깐동안 세수를 한 뒤 목에 걸어놓았던 수건으로 물기를 깨끗하게 닦아냈다.

 

직후 졸음기가 완전히 가신 말끔한 얼굴이 거울에 비쳤고 비친 자신의 눈과 시선이 맞았다. 무결점의 푸른 눈동자가 거울 너머의 자신을 바라봐온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리고 웃어보았다.

 

곧 거울에 비치는 웃는 얼굴의 모습에 그냥 웃기를 그만두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시각 테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왜 웃는 얼굴이 무시무시한 걸까. 괜히 그런 의문이 들어와 고개를 갸웃거려 보았다.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얼굴이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울 듯한 얼굴로 갸웃거리는 모습을 거울 너머의 자신도 따라한다. 다시 한 번 웃어보려다 관두었다. 얼마나 웃는 게 서툰건지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꼴이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울 너머의 자신을 마주본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법한 굳은 푸른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을 발했다. 그리고 직후, 아주 일순간이었지만 그 눈동자가 빛을 잃고 낮게 가라앉았지만 당사자는 눈치채지 못했다.

 

 

 

“토비오, 일어났니? 이제 슬슬 아침 먹지 않으면 학교에 늦어요.”

 

 

 

화장실 너머 주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제야 겨우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주방으로 들어가니 엄마가 아침상을 차려놓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냉큼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후후. 맛있게 먹으렴, 토비오.”

 

 

 

젓가락을 들고 천천히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차려진 밥상을 깨끗이 전부 먹은 뒤 젓가락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아침을 먹고 있는 동안 물을 갖다놓으신 엄마로 인해 옆에 놓여진 물을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뒤에는 책상 옆에 놓여져 있던 책가방을 등에 둘러맸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배구공을 한 손에 들고 방을 나오면 엄마가 현관에 서 계셨다. 현관으로 급히 가서 놓여져 있던 신발을 신었다.

 

 

 

“오늘도 배구 하고 올거니?”

“네!”

 

 

 

오늘 중에서 가장 생기가 넘치는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그렇게 대답하는 자신에 엄마는 귀여우신 모양인지 웃으셨다. 자신은 배구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한 번도 손에서 놓지 않았던 배구공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배구도.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잘 다녀오렴.”

 

 

 

현관을 열고 집을 나섰다. 학교가 있는 방향으로 뛰어가면서 손에 든 배구공을 놓지 않으려 두 손으로 꼬옥 쥐었다. 아직 아이인지라 배구공은 자신의 손보다는 커서 두 손으로 잡지 않으면 금방 손 안에서 빠져나가곤 했다.

 

 

 

 

 

***

 

 

 

 

 

카게야마 토비오.

배구를 정말 좋아하는 소년으로 현재 초등학교 6학년.

 

얼마 뒤 키타가와 제1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는 배구의 천재였다.


설마하니 이전에 했었던 말이 사실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카게야마/빙의/환생/우울+피폐(1부)/치유+힐링(2부)/갈 길이 멀다/느린 진행/방향성이 다른 원작 파괴/(????)

 

우리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이와이즈미는 다치는 바람에 평소라면 생각해본 적도 없을 붕 떠버린 일정에 내심 초조해하고 있었다. 원치 않게 얻게 된 짧다면 짧은 휴식기이지만 지금 상황은 오히려 자신에게 나쁘게 작용하는 듯 했다. 오히려 몸을 움직이는 게 훨씬 안정될 것만 같았다. 일어나 아직 침대를 벗어나지 않은 이와이즈미의 의식은 자연히 어제의 일로 날아갔다. 의무실에서 켄마에게 치료받고 난 이후의 일이었다.

 

 

 

‘이해하라고 하지 않았어.’

‘나는, 이해해달라고 말하지 않았어, 이와짱.’

 

 

 

어쩌다 오이카와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게 됐더라. 저 말이 나오기 전까지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 오랜만에 퓨즈가 나갔다가 오이카와에게서 나온 저 말에 그제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듯 기묘한 공백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오이카와에게서 저런 말이 나온 것이 나름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던 듯 했다. 충격요법처럼 저 순간에 이성이 돌아왔으니 말이다. 그 말을 오이카와가 내뱉은 직후 그대로 내쫓겼다.

 

 

 

‘나가.’

 

 

 

오이카와는 마지막에 그 말만을 했는데 그 말에 따라 순순히 오이카와의 방을 빠져나온 것은 솔직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두글자에 힘이 실린 듯, 그 상황에서 명백히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를 반기지 않았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 이후 오이카와가 방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이와이즈미는 알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듯 인기척도 없이 조용했을 뿐이었다.

 

 

 

“이제 어쩔까.”

 

 

 

본래라면 바로 전의 임무에서 다쳤을 인물은 자신이 아니라 오이카와여야 했다. 그것을 자신이 대신해서 다친 것이었건만, 오이카와는 그 점에 불만을 가졌던 듯 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따지고들던 것도 거기에 대한 것인 것 같았고, 자신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던지 그렇게 퇴출을 명했던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로서도 양보할 수는 없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파트너로서 있었으니까 말이다.

 

좋건 싫건 일단 마음 맞는 파트너라는 인식이 강했으니까.

 

 

 

“오이카와 녀석이 뭘 좋아하더라.”

 

 

 

우선 오이카와와의 관계 회복에 힘을 써야한다는 것이 분명해서 이와이즈미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멈칫했다. 그러고보니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그건 아마도 쿠로오나 켄마도 마찬가지 아닐까. 조금 꺼려하는 것은 있는 모양이었지만 오이카와는 기본적으로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았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자기주장이 없는 편은 아니었건만 이건 어딘가 이상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이럴 수 있나, 를 생각하던 이와이즈미는 곧 그 생각을 종료했다. 오이카와가 어떤 녀석이건간에 자신도 말하지 못하는 사연 한 두개쯤은 가지고 있지 않던가. 생각해보면 다들 그런 점에 있어서는 피장파장이었다. 과거의 오이카와보다는 현재의 오이카와에 집중하면 될 일이었다. 좋아하는 게 없으면 어떤가. 이미 파트너로서 엮어버린 것을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잖은가. 그거랑 같은 것이다.

 

 

 

“모두 그렇지만 확실히, 오이카와 녀석은 자기 얘기를 더 안 하는 편이지.”

 

 

 

결국 이와이즈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할 오전 아홉 시 무렵. 켄마는 내심 진땀을 빼고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의무실에 들이닥쳐온 인물 때문이었는데, 켄마의 전용 의자 옆에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의자를 멋대로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불만이 있는지 나이에 맞지 않게 입술을 댓발 내밀고 퉁퉁거리며 하소연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라면 이야기하기 가장 편한 인물이 켄마임을 알고 있었기에 상대는 거칠 것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래서, 켄마짱! 이와짱 너무하지 않아?”

“자기 몸이나 챙길 것이지, 왜 내 걱정을 하고 앉아있어? 그러니까 다치는 거 아니야!”

“그래놓고 내가 거기에 대해 따지면 뭐라는 줄 알아?”

 

 

 

이렇게 이와이즈미의 뒷담을 하는 인물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오이카와였다. 뒷담까는 장본인이 없다고 밑 빠진 장독대마냥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것이 그동안 쌓아놨던 것을 풀어놓는 것 뿐인데도 듣고 있는 켄마로서는 피곤해져왔다. 오이카와가 떠드는 동안 결국 커피포트에서 진한 커피를 탄 켄마는 머그컴 두 개를 들고 다시 고정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하나는 오이카와에게 건네고 나머지 머그컵은 자신의 몫이 되었다.

 

한창 얘기하다 건네진 커피에 그제야 잠시 오이카와의 말소리가 뚝하니 끊겼다. 먼저 커피를 마시는 켄마를 보고 양 손에 들린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빤히 보던 오이카와는 슬슬 목이 말라가고 있던 차라 뜨끈한 커피를 한 모금 입 안에 머금었다. 진한 커피향이 확 하고 풍겨왔다. 설탕이 들어가지 않은 커피는 상당히 진해서 입가심은 되었지만 뭔가 다른 게 끌리고 있었다. 짭짤한 과자가 있으면 딱일 것 같았다.

 

 

 

“이렇게 몰래 불평 늘어놓을 정도로 오이카와 상은 이와이즈미 상 마음에 들어하는 거죠.”

 

 

 

켄마가 오이카와의 입에서 나오는 뒷담 아닌 불평을 들으면서 생각한 것이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입에도 담지 않으면 그만일텐데, 오이카와는 그러지 않는다.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는 꽤나 마음에 드는 상대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당사자가 없을 때를 노려서 켄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겠지. 그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로서는 조금 난감하기 그지없지만 말이다.

 

 

 

“좋아해.”

 

 

 

켄마의 말이 꽤나 의외라는 듯 바라보던 오이카와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붙이지 않고 그 말만을 했다. 그러면서 웃는 얼굴은 켄마가 지금까지 봐왔던 오이카와와는 어딘가 달랐다. 진심이구나. 켄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눈까지 접고 웃는 얼굴을 보고 켄마는 다시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 그런 켄마를 보던 오이카와가 잠시 눈동자를 굴리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 싶더니 그 뒷말을 덧붙이듯 속삭여왔다.

 

 

 

“켄마짱도 좋아해. 쿠로짱도 좋아해.”

 

 

 

같은 의미의, 같은 무게의 오이카와의 좋아해를 들은 켄마는 그저 웃었다. 물론 켄마 자신도 쿠로를 좋아한다. 그런 경우로 따지자면 그것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도 마찬가지로 좋아하고 있다. 오이카와와 같은, 좋아해 였다. 서로의 공통적인 부분을 퍼즐처럼 찾아낸 켄마와 오이카와는 서로 마주보며 웃었다. 정말 쓰잘데기 없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무언가를, 자신들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그것이 따뜻했다.

 

 

 

“저도 쿠로가 좋아요. 오이카와 상도, 이와이즈미 상도 물론 좋아해요.”

“그렇지? 켄마짱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네가 나랑 같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뒷말을 덧붙이는 오이카와에 켄마는 주의깊게 살폈다.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이 나온 것인지 파악할 수 없어서 더욱 그랬다. 조심성이 많은 켄마인지라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슬쩍슬쩍 바라봐오는 것에 커피를 마시며 오이카와는 얼굴 위에 떠오른 미소를 가렸다. 머그컵에 호선을 그리고 있는 입술의 선이 완전히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켄마는 그것까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켄마짱. 방금 건 비밀로 하자.”

“…?”

“혹시나 싶어서야, 혹시나 싶어서.”

 

 

 

의뭉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오이카와에 켄마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크게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오이카와가 하는 말은 어떤 말이라도 결코 허투루 넘겨들을 수 없는 힘이 있었고, 거의 대부분 맞아떨어지고 있었기에 오이카와가 넌지시 주의를 당부하는 말을 한다면 그래야만 한다는 뜻과 일맥상통 했다. 켄마는 다시 커피를 마셨고 그걸 본 오이카와는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매만지다가 켄마를 따라 남아있는 커피를 마저 마셨다.

 

그렇게 서로 커피를 마저 마시며 느긋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끝마쳤다.

 

 

 

 

 

***

 

 

 

 

 

그 뒤로 켄마와 소소하지만 즐거운 수다를 떨었던 오이카와는 자신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갔다. 착, 하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짧게 들렸다가 끊어졌다. 답답할 정도로 목에 얌전히 매어져 있는 검은색 넥타이를 아무렇게나 잡아 끌어 느슨하게 만든 뒤에 입고 있던 흰색 와이셔츠의 위쪽 단추 두어개를 풀었다. 그제야 겨우 숨통이 트이는 느낌에 오이카와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독한 양주가 땡겨오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문을 걸어잠그는 것은 방 안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일종의 표시였다. 대개 임무에 관련된 내용으로 추가적인 정보를 더 얻고자 하거나, 자료를 꼼꼼히 살피거나, 그 외 기타 등등의 일들로 본인이 바쁜 걸 알리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왼쪽 손목에 채워져 있는 손목시계를 보며 다음 일정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확인한 오이카와는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

 

 

 

소파 앞인 조금 아래의 정면, 그곳에 있는 탁자 위에는 어제 오이카와가 불편한 심기로 대충 보다가 던져놓은 다음 임무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진 자료가 여전히 그 자리에 놓아져 있었다. 탁자 위에 흩어져 있는 종이를 반듯하게 모아들은 오이카와는 소파에 편하게 앉았다. 집어든 종이를 이번에는 글자 하나하나 꼼꼼하게 훑어나갔다. 중간중간 실려있는 사진이나 첨부 자료등을 엄청난 집중력으로 다 본 오이카와는 피곤한 눈가를 문질거렸다.

 

 

 

“으어.”

 

 

 

자료를 보느라 굳어진 몸을 쭉쭉 늘리며 오이카와가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손을 맞잡아 위로 쭈욱 뻗은 오이카와는 그 상태로 잠시 멈췄다. 팔 안쪽이 땡겨오는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다 본 자료는 다시 탁자 위에 놓여졌고 그것에 잠시 시선을 둔 오이카와는 슬며시 올라오려는 입꼬리를 애써 잡아내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어이가 없어서 대놓고 폭소를 터트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골 때리는 놈들이네-”

 

 

 

나 이렇게까지 골 때리는 놈들 처음이야. 웃음이 터지려고 해 부들부들 떨려오는 입꼬리를 가린 손 안쪽에서 그런 말이 뒤따라 나왔다. 솔직히 마피아라는 것이 딱히 정의롭다고 하기에는 약간 어폐가 있는 것은 사실인데, 그 구성원들은 모두 그것을 잘 숙지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이와이즈미도, 쿠로오도, 켄마도, 그리고 자신도 거기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도 넘치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 중심이 되는 규율은 있고, 그것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마피아다. 일정 선을 과도하게 넘지 않으면 딱히 윗선에서도 터치하지는 않고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한마디로 마피아라는 족속들은 세간에서의 시선은 그다지 좋지 못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명분이 있고, 그리고 정의관이 있는 나름 정당한 집단이기는 하다는 것이다. 그런 마피아에 비해 넘쳐나는 갱들은 그런 정의관조차도 없는 그저 그런 폭력 집단일 뿐이다.

 

쿠로오가 전해준 다음 임무는 바로 그 갱들에 대한 것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다면 활발하게 움직이는 녀석들이 모여있는 쪽의 자료였다. 그것 뿐이면 주의를 주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안건이었으나, 이놈들이 미쳤는지 마피아인 우리들의 영역을 건들기 시작했다는 내용으로, 그 주요 인물들의 프로필도 잘 정리되어 자신에게 건네진 것이었다. 갱들도 갱들이었지만 어이 없는 건 따로 있었다.

 

 

 

“이젠 하다하다 갱들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거냐고.”

 

 

 

아, 혈압. 오이카와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째 마피아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한숨만 늘어가는 것 같은 것은 자신의 착각일까. 어째서 오이카와 상의 취급이 이렇게 되었지. 언제 한 번 시간 날 때에 진지하게 고민 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정을 내린 오이카와가 소파에서 일어나 방 한쪽의 진열장으로 걸어갔다. 유리로 된 문을 여니 그 안에는 각종 술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어쩐지 땡기더라니, 마셔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랬구만.”

 

 

 

담배도 좋아하지만 술도 좋아하는 오이카와는 여럿이서 함께 마시는 술도 좋았지만 혼자서 하는 자작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었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편해하는 오이카와로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눈을 굴리며 보드카 종류를 찾았다. 스피리터스(Spirytus)도 괜찮겠지만 몇 잔 마시는 걸로 끝낼 생각이 없기에 그냥 다른 걸 마시기로 했다. 그리하여 선정된 것이 에버 클리어. 95도의 도수짜리가 아닌 그보다 낮은 75.5도의 에버 클리어였다.

 

대체로 보드카는 냉동실에 넣어놓았다가 마시는 게 좋지만 오늘은 패스였다. 얼음으로 희석하면 소용이 없으니 그냥 생으로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기로 하고 에버 클리어를 집어들었다. 다시 앉았던 소파의 자리로 돌아와 잔을 놓고 가지고 온 술을 따 따랐다. 적당한 양을 따른 뒤에 잔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 들이켰다. 아무리 어느 정도 도수를 낮췄다지만 기본적으로 도수가 쎄기 때문에 금새 칼칼함이 치고 올라왔다.

 

 

 

“다음번에는 저번처럼 다 같이 마시러 갈까나.”

 

 

 

딱히 취하고자 마시는 술이 아니었기에 오이카와는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들고 둥글게 돌렸다. 잔을 따라 안에 있는 술이 똑같이 돌았다. 그 모양새를 눈을 내리깔고 지켜보던 오이카와는 그대로 잔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소파에 편히 기대앉은 오이카와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눈을 굴린 오이카와는 양 손을 들어올려 마른 세수를 하며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오이카와의 머릿속에는 아까의 대화가 재생되고 있었다.

 

 

 

네가 나랑 같아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는 오이카와의 눈은 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

 

 

 

 

 

쿠로오는 제법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말단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고, 지금은 이곳에서 나름 높은 지위를 가진 쿠로오였으나 이제는 새로 들어오는 신입들을 도맡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대해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아마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이었고, 단지 그것을 자신이 맡게 되었을 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신도 신입이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문제라면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의 규칙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자잘한 문제들은 자신이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에 있었다. 한 두번이면 이해를 하겠는데 시도 때도 없이, 줄기차게 문제를 일으키니 아무리 쌩쌩한 쿠로오라도 얼굴 위로 피곤함이 깔리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해야 하니 금방이라도 인내심이 끊어질 것 같았다.

 

 

 

“쿠로, 조금 쉬어.”

“아, 켄마.”

 

 

 

그럴 때마다 어떻게 아는건지 켄마가 의무실에서 나와 쿠로오를 직접 찾아오곤 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쿠로오가 폭발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쿠로오에게 다가온 켄마는 손을 잡고 한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켄마가 이끄는대로 따라간 곳은 휴게실이었다. 켄마는 아무도 없음을 아는지 문을 열고 들어가 도로 닫고, 잠갔다. 그 뒤 휴게실 안에 놓여져 있는 간이 의자에 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앉아있던 쿠로오가 문득 켄마에게 안겼다. 신장도 덩치도 켄마보다 큰 쿠로오였으나 딱히 거부감도 없이 켄마는 안겨오려는 쿠로오를 마주 안아주었다. 품에 파고들려는 쿠로오의 등을 도닥여주던 켄마는 그 정도에 시선을 벽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쿠로오가 상당히 무리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캐릭터에 맞지 않게 어리광을 부려오는 쿠로오는 제법 오랜만이었다. 얼굴 위로 살풋 미소가 감돌았다.

 

 

 

“힐링 됐어, 쿠로?”

“응. 역시 켄마는 내 힐링제야.”

 

 

 

켄마가 내 옆에 있어서 다행이야. 이어지는 쿠로오의 말에 켄마 특유의 고양이 눈이 몇 번이고 깜박였다. 그런 켄마의 반응을 바로 앞에서 지켜본 쿠로오는 그저 웃었다. 지금 한 말에 거짓은 없었다. 이미 말 그대로의 의미였으니까. 굳이 왜곡할 필요도 없는 직선적인 의미의 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이 했기에 켄마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속을 내보인 적이 적은 편이었기에.

 

 

 

“오늘따라 솔직하네.”

“그런가? 스트레스 받을대로 받다가 제대로 힐링 받아서 그런가보지.”

“쿠로 어리광 오랜만에 봤어.”

“어른이 하면 역시 이상하지, 그거.”

“아직 젊잖아.”

 

 

 

큭큭 웃어버리는 쿠로오에 켄마의 작은 타박이 사정없이 날아왔다. 무엇이 그렇게 놀라운 것인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켄마를 바라보는 쿠로오는 미처 자각하지 못하던 것을 겨우 안 것처럼, 그렇게 보이는 표정이었다. 우리 삼십줄도 안 됐거든. 많아봐야 대학생 나이이면서 그런 걸 따져. 이어지는 팩트 폭력에 쿠로오는 멍하니 있다가 성대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쿠로오로서는 켄마가 그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리고 이걸로 알았다. 켄마도 쿠로오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말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말에서, 그 어투에서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그래 보이지 않아도 코즈메 켄마라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사실 하나를 안 것만 해도 쿠로오는 지금 이 생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굳이 알리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신뢰관계는 이미 옛적에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쿠로는 바보지.”

“이번엔 반대로 디스하는 거야?”

 

 

 

마지막은 끝까지 좋은 말은 해주지 않는 켄마와 그런 모습에 어딘가 풀죽는 쿠로오였다.

 

 

우리는 그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조용한 공간이었다.

 

블라인드가 쳐져 있는 어딘가의 건물 중 하나의 자그마한 방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어딘가의 높은 직책으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이 있는 인물은 블라인드 쳐진 창문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그 앞에 있는 개인 책상 위에 양 손을 얽히고는 턱에 댄 채로 눈 앞의 인물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 앞의 인물에게 그런 시선을 받은 그 상대방은 똑같이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묘한 침묵이 그들 사이에 감돌았다.

 

 

 

“후우.”

 

 

 

그리고 그 긴 침묵 속에서 겨우 한숨을 내쉬는 이. 시선을 받으며 서 있던 쪽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일정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무너졌다. 다만 그 한 번의 한숨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된 듯 무겁기 짝이 없었다. 어딘가 불만스러운 듯, 체념한 듯, 그도 아니면 단순히 귀찮아하는 듯도 들렸다. 그러다 결국 이내 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건지 제법 거칠게 뒷머리를 쓸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받아들이드록 하죠, 이번 일.”

 

 

 

끝내 그 입에서 나온 대답은 긍정이었다.

 

 

 

 

 

***

 

 

 

 

 

뭉게뭉게 퍼져나가는 것은 담배연기였다. 입술 끝에서 떨어질락 말락 하며 아슬하게 담배를 물고 있는 인물은 딱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바닥을 치는 모양이었다. 담배 끄트머리를 솜씨 좋게 베어물고 있는 도중에도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담배에서 나오는 연기는 멈출 줄 몰랐다. 그런 상대에게 볼 일이 있어 왔던 다른 이도 생각 없이 방문을 열었다가 방 안 가득한 담배연기에 순간 멈칫했을 정도였다.

 

 

 

“오이카와.”

“…응?”

 

 

 

한창 담배를 피우는데에 열중하느라 누가 들어온지도 몰랐던 듯 의아한 반응이 돌아오는 것에 상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뭐가 또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방 안에 놓여져 있던 푹신한 소파 위에 편하게 걸터앉아 있던 오이카와라 불린 이의 고개가 문이 있는 뒤쪽으로 돌아가 상대를 확인했다. 방 안 가득한 담배연기 때문에 시야가 조금 흐릿한 게 흠이었지만 누군지 확인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아, 쿠로짱이다.”

“그래, 나다.”

 

 

 

방을 방문한 이가 누구인지 확인한 오이카와가 다시 고개를 원상복귀하며 마저 담배를 피웠다. 다시 뒤통수만을 보여준 채로 담배연기만 뿜어대는 오이카와에 쿠로짱이라 불리운 상대, 쿠로오 테츠로는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어떻게 보면 파트너보다도 더한 독종이었다. 담배연기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까지 방 안 가득 차 있는 것은 반기지 않는 쿠로오는 빨리 용무를 끝마치고 힐링을 받으러 가고 싶었다.

 

 

 

“다음 임무 배달 왔다.”

“…흐응. 대애-충 그럴 거라 생각했어.”

 

 

 

응, 이라며 뒤로 손을 내민 오이카와에 쿠로오는 다가가서 내밀어진 손 위에 들고 온 몇 장의 자료를 올려주었다. 건네진 자료를 훑어보는 모양새가 상당히 대충이었다. 딱 보아도 건성이라는 느낌이었으니 말 다한 거 아니었을까. 반응으로 봤을 때도 시원찮았는데 진짜 뭔 일 있었나보네. 쿠로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료를 보는 오이카와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방 밖으로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고 인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오이카와는 보고 있던 자료를 앞에 있던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그리고 오른쪽의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 안에서 굴려댔다. 굴리면 굴릴수록 점차 짜증났던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왼손으로 물려져 있던 담배를 빼내어 집어들고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 담배를 줄창 피워대서인지 나오는 한숨마저도 희뿌옇게 보이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그 상태 그대로 몸만 뒤로 눕히며 소파에 몸을 파묻는 느낌으로 기대었다. 주사위를 굴리고 있는 오른손을 그대로 들어 소파 등받이 위에 누운 머리의 이마 위에 가볍게 놓았다. 손 안에서 굴려지는 주사위의 감각이 간접적으로나마 오이카와에게 전해져 왔다. 달각달각거리며 움직이는 주사위 소리가 놓여진 손의 위치 때문에 왼쪽 귓가에서 선명하게 울렸다. 오이카와는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역시 나한테는 주사위가 안정이라니까.”

 

 

 

담배연기가 가득한 조용한 방 안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소리만이 울렸다.

 

 

 

 

 

***

 

 

 

 

 

오이카와에게 임무를 전달해준 쿠로오는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도 가볍게 어떤 곳을 향해 걸어갔다. 이곳에 있으면서 그 누구보다도 쿠로오 본인에게 힐링제가 되어주는 이가 있는 곳. 의무실이었다. 문 옆쪽의 벽에 붙어있는 명패를 확인하고는 노크도 없이 벌컥 열어젖히자 그 안에는 쿠로오가 찾던 이와 함께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상대를 확인한 쿠로오가 눈을 조금 동그랗게 떠재꼈다.

 

 

 

“오야? 이거이거, 이와이즈미가 아닌가.”

 

 

 

쿠로오를 확인한 의무실 안쪽에 있던 두 사람의 표정은 극명하게 갈렸다. 한쪽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반겨주었고, 쿠로오에게 이와이즈미라 불린 이는 대놓고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들어오지는 않고 문 바깥쪽에 있던 쿠로오는 뒷모습이나마 보이는 이와이즈미의 상태를 훑어보고는 그 견적을 뽑아내었다. 아까의 오이카와의 반응을 보아 분명 이것 때문이었음이 분명했다. 어쩐지 심기가 불편해보이더라니 당연한 반응이었던 것이다.

 

이와이즈미 하지메와 오이카와 토오루. 가히 최강조합이라 할 만한 파트너 관계였다. 근거리가 이와이즈미라면 당연하게 중장거리는 오이카와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으니 그 실력은 두말해야 입 아프다. 이번에 두 사람이 받은 임무가 좀 까다로웠던 것은 있었지만 그리 어려움은 없었을 텐데. 그런데 오이카와는 멀쩡하고 이와이즈미만 의무실 상태라는 건 임무 도중 뭔가 일이 있었다는 게 되는 것이다.

 

 

 

“뭐야 그거. 궁금한 걸.”

“궁금한 것도 많다.”

 

 

 

무심코 본심이 밖으로 튀어나오자마자 반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 대응을 들으며 언제까지고 밖에 서 있을 수도 없어 의무실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당연하겠지만 의무실 안에는 각종 약품 냄새가 났다. 슬금슬금 그들에게 다가오는 쿠로오를 못마땅한 기색으로 보던 이와이즈미는 곧 눈을 슬그머니 반쯤 접었다. 다가온 쿠로오에게서는 대체 어디에서 묻혀가지고 온 건지 모를 담배냄새가 진하게 베어있었다.

 

 

 

“여기 오기 전에 어디 갔다왔냐?”

“네 파트너에게.”

“하?”

 

 

 

쿠로오의 말에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와 결국 큭큭 웃었다. 이렇게까지 다친 적이 없었던지라 본인은 전혀 몰랐던 상황이겠지만 그것이 쿠로오에게는 웃길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파트너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모르는 것에. 조금 유쾌해졌다. 갑자기 웃는 쿠로오에게는 당연히 이와이즈미에게서 좋은 반응을 끌어낼 수는 없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이와이즈미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해갔다.

 

 

 

“진정해. 그러다 사람 하나 잡겠다.”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쿠로오에 이와이즈미는 지금 자신이 다친 상황만 아니라면 당장에 쥐어팼을거라며 속으로 화를 눌러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이즈미가 알기로는 이 정도로까지 진한 담배향은 그 누구도 이곳에서는 피우지 않았다. 가끔 입이 심심할 때나 두어 개 피우지, 누가 이렇게 금방 죽을 정도로 담배를 독하게 피워대는지 그 주인공을 상상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그런데 그 범인이 오이카와라니, 전혀 금시초문의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묻고 있잖아, 검은 고양아.”

“네 파트너의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아.”

“담배가?”

“그래. 오이카와 방에 들어가니까 방 전체가 담배연기에 파묻혀 있었다.”

 

 

 

물론 본인이 피운 건 확실했다구. 담배가 떡하니 입에 물려있는데 모를 수가 없었지. 이어지는 쿠로오의 말에 이와이즈미의 표정이 점차 알쏭달쏭하게 변해갔다. 그런 이와이즈미의 반응을 보던 쿠로오는 그 반응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어서 묘했다. ‘우리들’ 치고는 알기 쉬운 편이었던 이와이즈미의 생각을 모르게 되는 날이 찾아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쿠로오는 결국 이것도 재미라며 웃었다.

 

 

 

“이전 임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불편?”

“짜증이 났다고 할까, 불만이 있다고 할까. 한가지 확실한 건, 그 모든 걸 담배 피우면서 속으로 쌓아두고 있다는 거지.”

“…….”

“조심해라, 이와이즈미. 그렇게 되면 언제 폭발할 지 모른다.”

 

 

 

오이카와를 무슨 폭탄물 보는 듯이 말하지 마라. 충고이나 결코 그렇게 들리지 않음에 순간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으나 이와이즈미는 그냥 입을 다물고 침묵을 선택했다. 그리고 다친 곳에 꼼꼼히 치료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무실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안의 두 사람에게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고는 한쪽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 방향에 있는 장소들 중 하나를 알아챈 쿠로오는 결국 폭소했다.

 

 

 

“쿠로, 타이밍 나빴어.”

“아- 미안, 켄마. 설마 의무실이라는 공간에 이와이즈미가 있을 줄 몰랐지.”

 

 

 

바로 날아오는 타박 섞인 목소리에 쿠로오는 금새 꼬리를 말고 얌전해졌다. 코즈메 켄마. 그들이 있는 곳의 의사 비스무리한 존재였다. 그리고 쿠로오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힐링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어딘가 기력이 없어보이는 켄마지만 그 솜씨만은 이곳의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만큼 켄마는 이곳에서 없으면 안 될 존재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들의 특성 상 다치는 환자들은 끝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켄마, 이리 와.”

“잠깐 가운 좀 벗고.”

 

 

 

직책이 직책이라 켄마는 항상 의사들이 입곤 하는 흰색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항상 이렇게 권유해 올 때마다 가운을 벗었던 켄마는 이번에도 그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운을 벗으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소와는 달랐다. 가운을 벗기 위해 움직이는 켄마의 손목을 붙잡아 끌어당겨 품에 안착시켜 안았다. 키가 작은 편인 켄마는 쿠로오의 품 안에 딱 알맞게 들어왔다. 쿠로오가 아래에 보이는 켄마의 머리 위에 얼굴을 묻었다.

 

쿠로오에게 안겨진 켄마는 등 뒤로 느껴지는 타인의 체온에 노곤한 숨을 내쉬었다. 아까 이와이즈미를 치료하느라 한껏 긴장했었던 몸에서 힘이 빠졌다. 몸 앞쪽으로 단단하게 둘러진 쿠로오의 양 손에 켄마는 확실하게 안심하고 있었다. 켄마는 그저 쿠로오를 따라 이곳에 들어왔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그 선택을 한 것을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이곳에서 쿠로오가 숨 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쿠로, 담배 냄새 나.”

“응, 미안.”

 

 

 

그래도 이곳에서도 이곳 나름의 일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

 

 

 

 

 

“고양아-”

 

 

 

다음 날. 아침 댓바람부터 오이카와는 누군가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디 한 군데도 놓치지 않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오이카와는 진짜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것 같았다. 구석진 곳, 어딘가의 방들, 그 외 기타 장소 등등. 입 아프게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장소들을 돌아다니는 오이카와에게서는 알 수 없는 압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제 손에서 굴리고 놀던 주사위 두개는 양쪽 귓가에 귀걸이로 걸려 있었다.

 

 

 

“고양아-”

“고양아-”

“고양아-”

 

“어딨니, 고양아.”

 

 

 

그렇게 고양이를 부르며 돌아다니던 끝에 드디어 찾아다니던 고양이를 발견한 오이카와의 발걸음이 주저없이 그쪽으로 향했다. 얼굴 위에는 기본으로 깔고 다니던 스마일을 내걸고 오이카와는 서서히 그 고양이에게로 착실히 다가갔다. 그럴 떄였다. 그 본인이 위험을 감지했는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가오는 오이카와를 발견했다.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묘한 위기감을 느꼈는지 도망가려는 상대의 어깨를 급히 잡아채었다.

 

 

 

“어디 가, 쿠로짱?”

“오, 오이카와?”

“응, 오이카와 상이야.”

 

 

 

이미 오이카와임을 확인한 쿠로오였지만 재확인 차 되물을만큼 지금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되었다. 분명 오이카와는 웃고 있는 게 분명하건만 뒤쪽에서 은근하게 느껴지는 압박감이 절대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시끄럽게 경고를 때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오이카와에 쿠로오는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벗어나려고 했으나 오이카와는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꽉 잡아오는 힘에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쿠로짱, 나한테 뭔가 할 말 없는걸까?”

“하, 할 말?”

“응, 할 말. 나한테 무언가 해야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꽉 잡고 있던 손을 풀어내었다. 느낌상 그 할 말을 들을 때까지 붙들고 있을 듯 했는데 금새 풀어주니 묘한 긴장감이 달렸다.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는 하나 상당한 악력으로 붙잡혀 있던 어깨가 은근히 뻐근해 근육이 놀라지 않게 느릿하니 돌리며 쿠로오가 뒤에 있는 오이카와를 향해 돌아보았다. 오이카와는 쿠로오가 다시 도망가려고 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어렵지 않게 눈을 맞춰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쿠로오는 눈을 굴렸다. 어디 보자. 오이카와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로 봐서는 자신이 상당히 무언가를 잘못한 모양이었다. 생각을 과거로 되돌리던 쿠로오는 순간 떠오르는 잔상에 설마 싶어 오이카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어제의 일이 있지 않던가. 하지만 그게 과연 오이카와가 이렇게까지 나올만한 일이던가. 쿠로오는 그것을 짐작할 수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있지? 나한테 할 말.”

 

 

 

그리고 쿠로오가 무언가를 짐작한 것을 눈치챈 듯 기가 막힌 타이밍에 다시 되묻는 오이카와에 쿠로오는 내심 식은땀을 삐질 흘릴 수밖에 없었다. 기막힐 정도로 눈치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한 거 아니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짐작이 있는 것이 맞지만, 그 이후에 어떤 대화가 오갔기에 앞뒤 따지지도 않고 이렇게 나오는가는 듣지 않았기에 쿠로오는 알지 못했다.

 

 

 

“이와이즈미가 뭐라 했어?”

 

 

 

쿠로오의 물음에 오이카와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바로 튀어나올 말이 있음이 분명한데 오이카와는 오히려 침묵했다. 잠시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쿠로오와 마주본 채이던 오이카와는 오른손을 들어 귀걸이로 달고 있던 주사위 하나를 쥐고 놀기 시작했다. 잠시 시선을 내리깐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던 오이카와가 이윽고 다시 쿠로오와 시선을 맞췄을 때에는 이미 무언가가 변해 있었다.

 

 

 

“고양아-”

 

 

 

오이카와의 말에 쿠로오가 흠칫했다. 고양아. 쿠로오를 향해 오이카와가 그런 명칭으로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쿠로짱. 언제나 쿠로짱이었는데 처음으로 불린 그 생소한 명칭에 쿠로오는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심장이 뛰는 것이 생생했다. 제법 나른한 음성으로 늘어지는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는 명백하게 협박이 섞여있었다. 그것을 모를 정도로 쿠로오는 둔하지 않았다.

 

 

 

“이와짱에게 쓰잘데기 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쿠로짱.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줘?”

 

 

 

그 말을 끝으로 오이카와는 굳어있는 쿠로오의 잡았던 곳과는 반대쪽 어깨를 두어번 가볍게 두드리고는 그렇게 멀어져갔다. 대체 어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지금 당한 일종의 화풀이는 원래라면 이와이즈미에게 갔어야 했다는 것을 쿠로오는 알아챘다. 힘내라는 느낌으로 두드려진 어깨가 왠지 모르게 굉장히 무거웠다. 애꿎은 화풀이 대상이 될 정도로 자신이 만만하다는 건가.

 

 

 

“골치 아픈 두 녀석 사이에서 나만 고생하지, 나만.”

 

 

 

 

어쩐지 하루를 시작하는 이른 아침임에도 최악의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마피아조 (우선 결정된 인물) ◀

 

→ 이와이즈미 하지메

→ 오이카와 토오루

→ 쿠로오 테츠로

→ 코즈메 켄마

 

 

 

[하이큐]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을 한다

 

 

 

“죽여.”

 

끝이 나지 않을 듯한 무거운 침묵 속에서 겨우 비정한 한마디가 떨어져 내렸다. 높이가 있는 계단 위의 단상 위에 서 있던 인물은 서늘한 눈매를 띄우고서 아래쪽에 주저앉혀져 등 뒤로 양손을 묶인 채 결박되어 있는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린 시선과 마주본 상대는 다시금 내리깔린 침묵 속에서 서서히 입꼬리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 그리고 광소(狂笑)했다.

그 웃음은 자조였고, 애석함이었고, 끝내 닿지 못한 애달픔이었다.

 

우정이기를 바랬건만 이것은 일말의 애정이었다.

한 사람 대 한 사람으로서.

그렇기에 가질 수 있었던 한줌의 애정.

 

끝이 다가와서야 자각할 수 있는 자신에게 조금 평소의 눈치 좋음은 어디다 내팽개친 것이냐고 따져 묻고 싶어졌다.

죽음 따위야 무서울 것 없지만.

죽는다면 너와는 더이상 친구가 아니게 되는 건 싫은걸.

마지막이니까, 조금의 투정은 용서해줄래?

 

“좋아해.”

 

 

 

 

 

조직AU/ALL CHARACTER/일상범죄물/추리/달달 첨가/로맨스X/일부 초능력

 

! ATENTION !

전체적으로 공통된 사항은 아래 ↓

 

 

 

※하이큐 스레입니다.

→몇몇 인물은 이쪽[오컬트] 관련 관계자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각자 개별적으로 다른 이야기가 존재합니다만.

→거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푸는 것은 상당수 뒤쪽에 등장할 예정입니다.

 

※한쪽에 치우치는 것은 되도록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만.

→어쩔 수 없는 편애, 애정 학교에 대한 설정이 다수 존재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애정 학교로 가득한 곳들 : 까마귀, 푸른잎, 고양이, 올빼미

 

※대개 오컬트 요소 듬뿍듬뿍인 이야기 위주로 돌아갑니다.

→그에 따른 오컬트 관계자로 설정된 캐릭터의 활약이 듬뿍 들어갑니다.

 

※오컬트 관련자로 설정된 캐릭터들은 서로의 정체를 모릅니다.

→정확히 하자면 《서로의 정체가 밝혀지는 스레》 이전까지는 이름이 아닌 고정닉으로만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전원 배구 관계자이기도 하기에 언젠가는 전부 만난다는 설정이 추가될 예정입니다.

→애니판의 내용을 빌려 서로 학교끼리 친하거나, 연습경기, 합숙, 대회에서 만났던 적이 있다면 현실에서도 안면은 존재합니다. 단지 서로가 스레에서도 알고지내는 사이라는 것을 모를 뿐입니다. 그리고 이쪽 관련이라는 것도 모릅니다.

 

※CP 발언은 없을 예정입니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번외격 적인 스레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본편에서는 최대한 CP적인 요소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작가 개인적인 설정이나 그에 따른 여러 요소들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 CHARACTER ◀

모든 설정이 밝혀진 이후, 작성 예정 ↓

 

 

 

1.

 

 

 

 

 

◆ 스레 모음 ◆

이후 작성될 모든 스레 목록 작성 ↓

 

 

 

# 현재(고등학생)

 

 

 

# 과거(초등학생~중학생)

 

 

 

 

 

♥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카라스노 채널을 시작합니다 ♥

 

 

집으로 돌아온 시라부는 속에서 들끓는 열에 평소라면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거칠게 마이를 벗어던졌다. 아니 그렇게 끌려나온 것 치고 오늘은 정말 별 일 없었다. 그저 몇 가지 물음과 본인이 의심 가는 물건이 있으면 내일 가지고 오라는 것 뿐으로 끝이었으니까.

 

수업 시간도 그다지 뺏지 않아 그 수업 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조금 듣지 못하기는 했지만 그 정도야 시라부에게는 그냥 넘어갈 정도의 양이었으니까. 문제는 시라부를 향한 오이카와의 태도였다. 애초에 시라부가 오이카와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경향이라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몰랐지만.

 

1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주제에, 그 태도는 뭐냐고!

 

시간상으로는 보통 수업의 1교시의 절반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안에서 몇 번이고 폭발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늘이 짧게 끝난 것은 그들 쪽의 1학년 후배 때문이었다. 아직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그 1학년은, 이번이 첫 출장이라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말로는.

 

그러니까 그들에게 시라부는 고객이면서도, 그 후배에게는 고객과 동시에 첫 일을 배우는 경험치가 되는 셈이었다.

 

 

 

“마음에 안 들어…….”

 

 

 

<고민상담해결소>에 대해서는 시라부도 겉으로 드러난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기본 사항인 겉껍데기 말이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고, 무엇을 해결하는지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단지 얼핏 도는 소문으로 짐작할 수 있을 뿐이라, 조금의 호기심은 존재하고 있었지만.

 

 

 

“열 받아.”

 

 

 

문제는,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고민상담해결소>라고 하면, 멤버 전원을 떠올리기는 하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고민상담해결소>를 문제 없이 돌리고 있는 것은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은근히 떠도는 소문 중에는 이런 것이 있었다. 지금의 멤버를 모은 것이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이야기.

 

오늘 본 1학년은 아직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오이카와 본인의 수완으로 자신쪽으로 끌어들인 것은 확실했다. 현재 3학년인 이들은 특히나. 시라부가 동경하는 우시지마가 오이카와에게 관심을 두는 것도 그런 이유가 가장 컸다. 천재는 아니라도 숨겨진 인재를 찾아내는 재능.

 

오이카와의 그 점에 주목했을 뿐이었다.

 

고, 시라부는 생각하고 있었다. 오이카와의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오이카와는 그런 모여든 사람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조금 비유를 격하게 해보자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본인이 그렸던 결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재주가 탁월했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사기 같은데, 오이카와는 생각보다도 더 했다. 그리고.

 

시라부는 인정했다. 어딘가, 정말 미미하기는 하지만 자신과 오늘 본 오이카와는 닮은 부분이 있기는 했다. 물론 그것이 오이카와 토오루에 대한 호감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굳이 따진다면 이것은 동족혐오에 가깝지 않을까 싶은 감정이었다.

 

섞일 수 없다.

 

 

 

“섞일 생각도 없지만.”

 

 

 

시라부는 어쩐지 지치는 감각에 침대에 체중을 실어 앉았다. 조금 멍한 눈빛으로 천장의 형광등을 올려다보던 시라부는 문득 시선을 돌려 책상 위의 한 켠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말했던 의심 가는 물건이라면, 시라부에게도 하나가 존재했다. 지금 시라부의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카메라.

 

사진 찍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니라, 시라부에게 있어서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지만. 작년 시라부가 시라토리자와 학원에 들어가게 된 기념으로 부모님이 장하다며 사다준 카메라였다. 딱히 그 카메라가 의심 가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냥 넘어가기에는 조금 찜찜한 것도 있었다.

 

시라부가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건 결코 몇 번 되지 않았다. 사람을 찍을 생각은 없었던지라, 보통 찍는다면 풍경을 찍는 편이었던 시라부였지만 이상하게 카메라로 찍을 때는 왜인지 사람이 찍히고는 했다. 보통은 시라부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어떤 때는 같은 학교 학생이기도 했다.

 

찍는 장소에 따라 찍히는 사람도 바뀌는 것 같았지만, 시라부는 그것에 딱히 의문점을 품고 있지는 않았었다. 사진 찍는 순간에 어린아이가 달려오는 바람에 흔들리듯 찍히는 경험이야 누구든지 한 번 쯤은 해보지 않던가. 시라부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는.

 

며칠 전이었을까, 시라부는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어쩌면 찍을 때마다의 패턴으로 사람이 찍혔고, 학교 내에서 찍었던 거라서인지 찍힌 것은 시라부와도 안면은 있는 2학년의 누군가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이 터졌다. 찍힌 그 2학년이 돌연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 이야기를 사고를 당한 2학년과는 다른 반이었던 시라부는 소문이 흘러흘러 조금 늦게 접하게 되었다. 그 소문을 듣고서 시라부가 느낀 오싹함이란. 소문을 접한 그 당일 집에 와서는 카메라를 집어들어 보았지만 별 다른 이상은 없었다.

 

사진도 잘 찍히고, 이상하게 집에서 찍으면 평범하게 찍히고는 했지만.

 

밖에서 카메라를 이용해 찍으면, 사람이 찍히는 것의 빈도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무리 시라부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려하지만,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고 있었다. 시라부의 시선이 카메라의 렌즈에 고정된 채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

 

 

 

 

 

코즈메 켄마는 시선에 예민했다. 그것은 어릴 적부터 변함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고, 본인도 그 시선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하고는 했다.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켄마 자체가 원래부터 그런 성격이었던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켄마는 지금, 누군가의 시선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서 나름 서두르려는데, 옆에 있는 쿠로오는 그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지 천하태평했다. 켄마는 그런 쿠로오에 시선을 주지 않고 눈동자를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상한 것은 시선이라고 생각되는데, 조금 다른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느껴지는 것에 비해, 지금 켄마가 느끼는 시선은 무언가 한 번 가려진 상태에서 켄마를 주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등줄기가 싸한 것에 켄마가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었다. 이건 정말 사람의 시선인가. 켄마는 정확하게 장담할 수 없었다.

 

 

 

“뭐야, 켄마. 추워?”

 

 

 

켄마가 몸을 떤 것을 본 건지 쿠로오가 물어왔다. 쿠로오를 보던 켄마는 고개를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걸었다. 쿠로오는 의문에 갸웃거렸지만 켄마가 걸어가니 자신도 얼른 따라붙어 옆에서 걸었다. 등 뒤로 따라붙는 듯한 불쾌한 시선에 켄마의 걸음이 조금씩 쳐졌지만 쿠로오는 눈치채지 못했다.

 

예정대로 사복 차림으로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한 그들은 다시 시라토리자와에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에서는 왜인지 시선이 따라붙지 않아 켄마는 조금 안심하며 쿠로오의 어깨에 기대었다. 왠지 아침부터 별로 없는 체력이 팍팍 깎여나가는 느낌이었다.

 

 

 

“피곤해?”

“응.”

“또 밤늦게까지 게임 붙잡고 있었지.”

 

 

 

미안. 켄마는 사과했다. 아침에 켄마가 느낀 시선을 설명하기에는 그 원인을 몰랐기에, 켄마는 차라리 평소처럼 게임을 밤새 해서 잠이 부족한 것으로 하기로 했다. 당연컨데 이 때 켄마가 부정했었으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 지 그건 누구도 몰랐다. 이 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켄마는 결단코 모르고 있었다.

 

 

 

 

 

*

 

 

 

 

 

시라토리자와에 다시 방문한 그들은 즉시 시라부의 반으로 가기로 했다. 어제 의심 가는 물건이 있냐고 물었을 때, 일단 확실하지는 않지만 있기는 하다고 했기에 가는 발걸음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2-4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라부는 얌전히 자기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들이 온 것을 보고 시라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업 종 치고 아직 들어오지 않으면 불려서 나갔다고 전해달라며, 옆자리의 친구로 보이는 소년에게 부탁하고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들고 다가왔다. 나가자고 눈치를 주고는 밖으로 나가는 것에 주저는 없었다.

 

시라부는 잠시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일단 사용하지 않는 빈 교실 하나에 들어갔다. 그런 시라부의 뒤를 따라 들어간 멤버들은 제각각 취향대로 자리를 잡았다. 잠시 바깥에 사람이 지나가는지 확인하던 시라부는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빨리 끝낼 요량인지 가져온 것을 즉시 그들에게 보였다.

 

그것은 아무 문제 없는 듯해 보이는 새 것 처럼 보이는 카메라였다.

 

 

 

“어때, 아카아시?”

“글쎄요, 미묘한데요? 이게 뭐지.”

 

 

 

시라부가 보여준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멤버들이었다. 아카아시의 대답에 확실치는 않다고 생각하던 중, 켄마의 시선이 카메라에 닿았다. 카메라의 정면쪽에 서 있었던 켄마는 시선에 잡혀든 카메라의 렌즈를 보다 오싹하고 올라오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급히 그 자리에서 떨어졌다.

 

심장이 불길한 느낌으로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켄마는 누가 볼 새라 급하게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마이의 소매로 닦아내었다. 아까 아침에 느껴진 시선은. 문득 깨달은 어떤 사실에 켄마는 다급히 시라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켄마를 보고 있던 시라부의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시라부와 시선이 맞은 켄마는 변화를 전부 목격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하지만 켄마 혼자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아마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켄마는 눈치 빠르게 깨달았다. 켄마는 쿠로오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쿠로는 어쩌지.

 

 

 

‘내가 옆에 있을게, 켄마. 내가 있어줄게.’

 

 

 

과거에 쿠로오가 켄마에게 건넸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떠올리자 상황은 심각해질텐데 이상할 정도로 안심되는 느낌이 컸다. 켄마에게 있어서 쿠로오 테츠로는 빼놓을 수 없는 파츠 중 하나였다. 그 사실만으로도 무서움이 희석되고 있었다. 막을 수 없다고 해도.

 

켄마는 결심했다. 마음을 다잡고는 느리게 심호흡 했다. 괜찮아. 나에게는 모두가 있어.

 

쿠로가 있어.

 

아직까지 시라부의 카메라를 두고 이것저것 의견을 교환하던 멤버들을 보며 켄마는 평상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아직은 아니야. 조금 더. 그들이 알고 있는 코즈메 켄마의 디폴트 모습으로. 쿠로가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로 되돌아가야. 켄마는 눈을 감았다가 느릿하게 떴다.

 

그 때에는 이미 켄마는 평상시와 같았다. 의심할 건덕지가 전혀 없을 정도로.

 

 

 

“이상은 느껴지는데, 딱잘라 말하기에는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네요.”

“보쿠토도 마찬가지?”

“으음- 위험은 있지만 그다지 크지는 않다는 느낌일까?”

“그럼 괜찮은 걸까요?”

“그건 아니겠지. 이상은 느껴지는 거잖아? 무언가가 따로 개입하고 있을 경우도 있으니까 대비는 해두는 편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 시라부가 말없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본 것은 켄마가 유일했다. 멤버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나온 켄마는 시라부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달렸다. 현재의 멤버 중에서도 체력이 없는 켄마였지만 시라부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힘껏 내달렸다.

 

 

 

“허억, 헉….”

 

 

 

켄마가 시라부를 찾은 것은 학교 건물 뒤편의 조금 구석진 자리였다. 시라부를 찾느라 달려서인지 체력이 바닥난 켄마가 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막아야 했다. 여기서 시라부를, 아니 저것을 막아야 했다. 숨을 고르고, 켄마는 다가갔다.

 

시라부는 켄마의 위치에서 뒤를 돌아보고 있는 채였다.

 

켄마가 시라부의 뒤에 거의 다다랐을 때, 시라부의 어깨를 잡으려던 켄마였지만 시라부가 뒤도는 것이 더 빨랐다. 그리고 켄마는 미처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 시라부에게 있는 것에 눈을 크게 떴고, 그리고, 나지막히 생각했다. 쿠로. 그리고 그대로 암전되었다.

 

 

 

 

 

카메라의 셔터음과 순간적인 빛이 켄마의 바로 앞에서 터졌다.

 

 

시라토리자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한 생각은 막연히 상상하고 있던 것보다도 더 컸다는 감상이었다. 학교의 전경을 시야에 담자마자 오이카와는 성대하게 혀를 찼다. 어쩐지 라는 감각으로 아카아시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히나타는 아직 그 반응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일단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자자, 그럼 들어가보실까-”

 

 

 

그 말에 겨우 시라토리자와 학원 안으로 들어섰다. 아마도 재작년이나 작년에 온 적이 있는 듯한 선배들을 따라가면서 히나타는 이곳저곳으로 눈을 굴렸다. 점심부터 해결할까.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듯했던 쿠로오가 그렇게 말하고 곧 방향을 틀었다.

 

앞에 가는 선배들이 방향을 틀자 히나타도 따라서 방향을 바꿔 쫄래쫄래 뒤따라갔다. 자신들의 학교 부지만큼이나 크고 넓은 학교의 모습을 둘러보면서 히나타는 한 군데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조금 길게 걸었다고 생각한 곳에서 모두의 발걸음이 멈췄다.

 

눈 앞의 건물에서 음식 냄새가 솔솔 풍겨오는 것이, 아무래도 식당 같았다.

 

 

 

“이번에도 이야기 되어 있겠지?”

“되어 있어야지! 아니, 되어 있겠지!”

“출입증은?”

“가져왔다구!”

 

 

 

3학년들이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 허기가 진 히나타는 고픈 배를 쓰다듬었다. 식당 앞에서 왜 시간을 끌고 있는 거지. 배고픈데. 가뜩이나 점심 먹고 나서도 아니고 점심 먹기 전에 버스 타고 긴 시간 이동해 온 지라 히나타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뭔가 먹을 거!

 

 

 

“선배들, 식당 앞에서 그렇게 떠들 체력 있으시면 일단 점심부터 먹죠.”

 

 

 

그런 히나타를 발견한 건지 아카아시가 직구로 말을 건넸고, 서로 작게 아웅다웅하던 3학년들은 그제야 후배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배고파하는 히나타를 발견했고, 서로 시선을 맞추던 3학년은 그제서야 식당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히나타는 다행이라며 급히 쫓아 들어갔다.

 

식당 안은, 당연하겠지만 시라토리자와 학생들과 몇몇 교사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들어가자 보인 시라토리자와 학생들에 재빠르게 오이카와는 경계했다. 언제, 어디서 우시와카와 마주칠 지 몰랐으니까. 그리고 한쪽에 마련된 자리가 눈에 띄였다. 그곳으로 3학년들은 걸어갔다.

 

곧 아카아시와 켄마도 뒤를 따랐고, 그 모습을 보고 히나타도 얼른 쫓아갔다. 하나의 식탁 위에는 <고민상담해결소 일동>이라는 알림판이 놓여져 있었다. 그곳에 앉은 히나타는 눈을 굴렸다. 자신들의 학교에 타교생이 온 것에 익숙하다는 듯 시선을 주고 자기 할 일을 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이 극명하게 갈렸다.

 

아마 전자쪽이 최소 2, 3학년이고 후자쪽이 자신과 같은 1학년인 모양이었다. 켄마는 이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듯이 머리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카아시와 3학년들은 깔끔하게 무시. 아니, 오이카와는 무시하기는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히나타, 뭐 먹을래?”

“엣? 메, 메뉴 같은 거 없나요?”

“아. 여기는 각자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르는 뷔페식이거든. 일단 가 볼래?”

“아, 네!”

 

 

 

겐네진 아카아시의 말에 히나타가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고 켄마는 쿠로오를 흘긋 보고는 같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히나타랑 같이 가려는 모양새에 쿠로오는 그러라고 승낙하듯 손짓을 했다. 그것을 보고 켄마는 히나타와 아카아시와 함께 저 앞쪽으로 걸어갔다.

 

식당의 앞이라고 할 곳에 도착하니 왠 기계 같은 컴퓨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을 보니 갖가지 음식 종류가 있었다. 그것을 보고 히나타는 이해했다. 뷔페식이란 건 이거구나. 그러니까 각자가 이 컴퓨터에서 고른 음식을 본인이 가져가는 식인 것 같았다.

 

종류는 많았다. 히나타는 제법 고민하며 메뉴를 고르기 위해 이것저것 만져보았다. 밥 종류에, 국도 있었고, 반찬, 사이드 메뉴로 후식에, 디저트까지. 쭉 둘러보다 보니 머리 위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러다가 못 고를지도.

 

무슨 음식이 있는지 살필 때마다 히나타의 머리 위에서 과부하가 걸렸는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듯한 상황에 아카아시와 켄마는 시선을 마주쳤다. 이럴 때는 가장 기본적인 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었다. 그것을 아직 히나타는 모르는 듯해, 켄마가 컴퓨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못 고르겠으면, 가장 기본이 좋아.”

“기본?”

“기본 정식 말이야.”

 

 

 

그리고 켄마가 누른 것은 밥과 국, 그리고 몇 가지 영양소가 골고루 있는 반찬이 그려져 있던 정식이었다. 아카아시도 그것으로 하려는지 켄마와 같은 것을 누르는 것을 보고, 히나타도 결국 같은 걸로 고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정식이 영양소가 균형있게 잡혀있으니까 말이다.

 

메뉴를 고르는데만도 지친 히나타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로 돌아오자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3학년들은 웃음을 참고 있었다. 확실히 자신들도 처음에 시라토리자와에 왔을 때에, 똑같이 경험했었던 탓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작년의 아카아시와 켄마도 같았다.

 

 

 

“여기는 메뉴가 너무 많아요…….”

“푸핫.”

 

 

 

결국 참지 못하고 뿜은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의 철퇴가 내려졌다. 아팟!! 오랜만에 겪는 기분에 조금 감상에 잠겨들어가는데, 이번에는 3학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점심 고르고 올게. 그 말을 하고서는 메뉴를 고르기 위해 서로 뭉쳐서 향했다.

 

 

 

“그러고보니, 저희 점심 돈 내야하나요?”

“괜찮아, 쇼요.”

“에.”

“우리가 출장을 나와서 써야하는 돈은 기본적으로 출장 나오는 학교 측에서 대주니까. 우리가 출장을 나온 뒤에 쓰는 돈은 전부 각 학교 측에서 해결해주고 있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시라토리자와 학원 개인의 돈으로 해결되는 셈이지. 아카아시의 설명에 히나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기본 요금 같은 것은 출장 온 학교 측의 통장 잔고에서 돈이 빠져나간다고 이해하면 되는 셈이었다. 처음부터 걱정할 필요 따위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곧 3학년들도 메뉴를 골랐는지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잠시간 수다를 떨다가 각자가 고른 메뉴가 나와 가져와서는 겨우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평소 부실에 있는 것처럼 조용히 먹은 뒤에는 식판을 가져다놓고 식당을 느릿하게 빠져나왔다.

 

 

 

“다행히 우시와카쨩은 없었구나…….”

“우리보다 점심 빨리 먹었겠지. 3학년이잖아.”

“그럼, 가 볼까. 이번 당사자를 만나보러.”

 

 

 

그리고 향하는 곳은 슬슬 수업을 시작하려 하고 있는 교실동이었다.

 

 

 

 

 

*

 

 

 

 

 

똑똑. 점심 시간이 끝나고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 문득 앞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막 수업을 진행하려던 이번 교시의 담당 선생님은 의아해하면서 앞문을 열었다. 그리고 연 앞문 바로 앞에는 웃고 있는 낯선 타교의 남학생이 한 명. 그 뒤로 몇 명인가 더 보였다.

 

 

 

“막 수업이 시작되려는 참에 죄송합니다만~ 학생 한 명 좀 데려갈 수 있을까요?”

 

 

 

생글, 웃는 얼굴이 상큼했지만 완전히 안심하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가장 앞에 있는 저 인물 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얼핏 보이는 이들도 마찬가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것인지 잠시 멈칫거린 선생님을 확인한 인물이 교복 주머니에서 네모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고민상담해결소>에서 나왔습니다. 데려가도 될까요?”

 

 

 

아무래도 무언가 본인들을 증명하는 것이었나보다. 눈앞에 들이밀어진 것을 보고는 선생님이 군말 없이 비켜섰으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라며 교실 안으로 들어온 인물은 어쩐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인상이었다. 어디서 본 거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교탁이 있는 곳에서 둘러보던 이와 시선이 맞았다.

 

 

 

“거기 있는 시라부 켄지로 군. 이번 상담 고객은 당신이랍니다~”

 

 

 

에.

 

남 일처럼 생각하고 있다가 불려진 자신의 이름에 시라부는 당황스러움을 그대로 내비쳤다. 뭐야 이 상황은? 시라부는 영문을 알 수 없어서 아직 제자리에 앉아있는 채였다. 눈 앞의 인물이 생글 웃더니 손짓했다. 그러자 특이한 헤어의 두 사람이 교실 안으로 들어와 다가왔다.

 

 

 

“어?”

“쿠로쨩, 봇군. 조금 수고해줘!”

“아이여~”

“봇군이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오이카와!”

 

 

 

오이카와? 상큼한 얼굴로 한 말에 발끈한 쪽이 외친 이름에 시라부의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자신이 동경하는 그 사람이 원하는 인물. 오이카와 토오루. 시라부의 시선이 오이카와를 향했다. 시라부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한 것을 알았는지 오이카와는 앞문으로 나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시선을 주었다.

 

오이카와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앞문으로 나가버렸다. 한순간이었지만 마주친 오이카와의 시선 속의 의미를 알아차린 시라부는 으득, 하고 이를 갈았다. 그 사람의 관심을 독차지하면서도 그런 시선이라니. 시라부의 마음속에서 분함이라는 감정이 불 붙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의 관심을 받는 오이카와 토오루가 분했다. 자신의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자격지심은 좋지 않은데.”

“뭐?”

“아니야, 아무것도.”

 

 

 

먼저 가며 중얼거리듯 내뱉는 말에 옆에 있던 이와이즈미가 되물었지만, 오이카와는 쿠로오와 보쿠토에게 잡혀서 끌려나오듯 하는 시라부를 돌아보고는 앞서 걸어갔다. 그런 오이카와의 반응에 이와이즈미도 시라부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아아, 그런 의미냐.

 

오이카와의 말을 이해한 이와이즈미는 앞서나가고 있는 오이카와를 따라갔다. 자격지심이라면 우리쪽도 만만찮지. 그 대표주자가 굉장히 귀찮지만. 똑같은 것들끼리 만났다는 생각에, 이와이즈미는 나오려는 한숨을 참지 않았다. 잘 나가다가도 한 번씩은 꼭 삐끗하는 경우가 있는 오이카와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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