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과 시선을 맞추지 마라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뒤바뀐 거짓이니

 

 

 

 

 

 

 

 

 

히나타는 종이 치자마자 책상 옆에 얌전히 걸려있던 가방을 낚아채듯 집어들고 교실을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지금은 4교시가 끝난 곳이었다. 교실을 빠져나가는 히나타를 클래스메이트들은 조금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심지어 가방까지 갖고 나가니 더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출장.

 

히나타가 이렇듯 서두르는 이유였다. 목적하는 곳으로 달려가면서 히나타는 어제를 다시금 회상했다. 시미즈의 일을 해결한 그 다음 날, 부활한 오이카와가 말했다. 출장이 뭔지 몰라 어리둥절하게 갸웃거리는 히나타에게 오이카와가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출장이란.

 

멤버들이 네 학교(여기서는 카라스노, 세이죠, 네코마, 후쿠로다니)를 제외한 바깥의 다른 학교로 나가는 것을 이르는 총칭. 이라는 듯 싶다.

뭐, 그래서 일어난 특이현상을 해결해주는 것까지도 그렇게 부르는 것 같지만. 일차적인 의미는 위의 의미가 맞다고 한다.

 

 

 

“바깥의 다른 학교!!”

 

 

 

히나타가 텐션이 높아진 이유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보이는 타교의 학생들과는 달리, 바깥의 학교에는 처음 가보는 히나타에게는 이것은 엄연히 말해 탐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직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랄까. 일로 인해 가는 거라지만, 그게 어딘가.

 

게다가 히나타가 걱정한 것이 말끔히 해결된 데에야 두 말 하기도 입 아픈 법이다. 출장에 대해 들으면서 4교시 끝나고 점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면, 교문 앞 길 건너목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나오라는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히나타의 머리에 물음표가 띄어진 것은.

 

 

 

“저기, 그럼 점심 시간에 밖으로 나가는 거예요?”

“그렇지. 내일은 그렇지만, 모레부터는 그냥 모이는 버스 정류장으로 나오면 돼- 아, 모레부터는 사복이면 되니까.”

“내일 오후 수업은요?”

 

 

 

히나타의 그 질문에 무엇을 말하고자 하려던 것인지 알아차렸는지 대답해주던 오이카와가 시선을 제각각 앉아있던 멤버들을 향해 돌아보았다. 그런 오이카와의 시선에 시선을 받은 다른 멤버들도 오이카와를 봤다가 스윽 히나타에게로 돌아갔다.

 

 

 

“출장일 경우에는, 수업은 듣지 않아.”

“에? 그럼 출석 일수 부족하잖아요? 수업 진도는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음, 그게 말이지- 그 부분은 말이야.”

“우리의 출장은,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 활동 취급이 되어있어.”

“사회 활동이요?”

“그러니까 말이야-”

 

 

 

학교 측의 허가를 받고 밖으로 나가는 거라는 말이야. 오이카와의 말을 뒤이은 아카아시의 덧붙임이었다. 잠시 갸웃거리며 그 의미를 이해하려했던 히나타는 곧 머리 위에 느낌표를 달은 듯한 얼굴로 변했다. 그 말은 즉, 전혀 영향이 가지 않는다는 말?

 

 

 

“괜찮다는 거예요?”

“맞아. 나가있는 동안에도 수업 일수는 채워지고, 그동안 듣지 못하는 수업일 경우에는-”

 

 

 

여기는 두 가지 패턴이 있지. 첫째, 나가있는 동안에 집합하는 학교측에서 우리의 진도에 맞춰 다음 진도 나갈 곳을 추가적으로 보충해주는 식으로 받는 대리수업 방식. 둘째, 우리는 보통 이 방법을 쓰는데. 멤버 누군가의 집에 모여서 서로 공부를 가르쳐주는 식으로 진도를 따라잡는 자가공부 방식.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네요?”

“그렇지- 우리 활동은 각 학교측과도 이야기가 되어 있어서, 우리 멤버들은 여기에 혜택 받고 있지.”

“단, 어떤 방식으로 하든 진도도 따라잡고, 수업 이해도도 높여야 한다는 과제가 있지만. 뭐어, 히나타도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우우……. 공부 쪽으로는 머리 잘 안 돌아가는데.”

 

 

 

조금의 불안은 있는 날이었지만 당장 오늘이 되자 그딴 건 아무려면 어떠냐 싶어졌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어떤 방식으로 공부하든 일단 그쪽으로는 걱정은 접어두자. 일단 전부 선배들이니까 모르겠는 부분은 물어보면 되잖아? 설마 모른 척 할까.

 

 

 

 

 

*

 

 

 

 

 

히나타가 교문 앞 길 건너목의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아직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뿐이었다. 그런데 다가가며 본 오이카와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것은 어딘지 이와이즈미도 그런 것 같았지만, 오이카와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무슨 일 있었나?

 

 

 

“오이카와상! 이와이즈미상!”

“오, 왔냐.”

“……치비쨩, 안녕.”

 

 

 

스마트폰을 내려보던 이와이즈미가 먼저 히나타의 인사를 받았다. 입술을 삐죽이며 무언가 불만이라는 듯 하던 오이카와는 조금 뒤에 인사를 해 왔다. 뭔가 오이카와의 어투에서도 숨겨지지 않는 불퉁함이 드러나고 있었다. 아니, 조금 다른 것이, 짜증?

 

 

 

“이와이즈미상, 이와이즈미상. 오이카와상 왜 저래요?”

“아…….”

 

 

 

히나타가 소리를 죽여가며 묻는 질문에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허공을 배회했다. 이내 한숨을 내쉬더니 이와이즈미가 히나타의 귓가에 대고 답을 해주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학교를 확인한 뒤부터 계속 저 상태다. 목적지인 학교? 히나타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길래 저러지.

 

 

 

“어딘데요?”

“…시라토리자와.”

“엣, 시라토리자와라면 명문이잖아요!”

“야!”

 

 

 

시라토리자와라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히나타가 무심코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이즈미가 그런 히나타를 말리려했지만, 이미 늦었다. 오이카와의 시선이 두 사람 쪽으로 향한 것이다. 왠지 모르게 오이카와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나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왜! 왜! 왜! 시라토리자와냐고!!”

 

 

 

그리고 폭발했다.

 

 

 

“아, 폭발했다.”

“왜에!!!”

 

 

 

폭발하다 못해 악을 쓰는 오이카와에 이와이즈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째서 백조(반어법이다) 놈들이야! 3학년이 되서 가게 된 첫 출장이 그 놈들이라니! 이럴 순 없어어어!!!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조용한 버스 정류장에 메아리 치며 울려퍼졌다. 그곳에서 사정을 모르는 히나타만이 멀뚱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이카와상은 시라토리자와랑 무슨 원수라도 진 건가.

 

히나타는 그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그리고 어찌어찌 시라토리자와로 향하는 버스 안. 히나타는 눈을 굴렸다. 오이카와는 버스가 점점 시라토리자와에 가까워지고 있음에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를 끌어안고 죽을 상을 짓고 있었다. 끙끙 앓는 모습에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상 함부로 말할 수도 없었다.

 

 

 

“오이카와상은 시라토리자와의 우시지마 와카토시라는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아.”

“에?”

 

 

 

히나타가 힐끔힐끔 오이카와를 바라보는 것을 봤는지 아카아시가 옆쪽에 다가와서 말해주었다. 히나타는 그 말에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었다. 우시지마 와카토시? 누구를 말하는거지? 그런 히나타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카아시는 잠시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 굳이 따지자면 사이가 좋지 않다기보다는 상성이 나쁘달까.”

“상성?”

“오이카와상과 우시지마상 말이야. 옆에서 보면 순전히 오이카와상이 우시지마상에게 열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열폭?”

“그 사람, 눈치가 없는거지. 눈치가 빠른 오이카와상과는 상성이 안 맞는달까. 성격적으로도 맞지 않고, 여러가지로 맞는 부분이 없던 듯해서. 이제 와서는 앙숙이라고 봐야할 정도.”

 

 

 

뭐야 그게. 히나타는 아카아시의 말을 들으며 얼이 빠졌다.

 

이와이즈미상의 성격과도 맞지 않아서 이와이즈미상도 현재에 와서는 우시지마상 싫어하는거지. 어느새 옆에 왔는지 켄마가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든 게임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와이즈미상 성격은 좀 다혈질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곧은 직선같지. 그 부분은 어떻게 보면 우시지마상과는 비슷한데.

 

 

 

“방향성이 달랐나 봐. 완전히 정반대. 그 탓에 오이카와상 만큼은 아니지만 이와이즈미상도 시라토리자와, 특히 우시지마상에 관련되면 좀 더 다혈질이랄까, 참지 않는다는 느낌.”

“이와이즈미상도?”

“뭐, 이유는 그것 말고도 더 있는듯 싶지만.”

 

 

 

켄마의 시선이 오이카와를 향해 돌아갔다. 켄마의 시선에 그쪽으로 같이 돌아간 히나타의 시선에는 오이카와가 있었다. 히나타는 머리 위에 다시 물음표를 띄웠다. 뭐지? 아아, 그런가. 옆에서 아카아시가 깨달았는지 이해했다는 듯이 느릿하게 끄덕였다.

 

 

 

“이와이즈미상과 우시지마상 사이에 오이카와상이 있는 느낌이지. 게다가 오이카와상 쟁탈전을 은근히 벌이고 있고.”

 

 

 

우리, 골치 아픈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어. 켄마의 말에 히나타는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해 갸웃거렸지만 아카아시는 켄마의 말에 딱히 부정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했다. 그러고보니 오이카와상과 이와이즈미상만으로도 벅찬 느낌인데 우시지마상까지 끼어들게 되면.

 

 

 

“좀 봐주라…….”

 

 

 

벌어질 상황을 예상했는지 아카아시가 힘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히나타는 아카아시와 켄마 사이에서 아직 자세한 상황을 알지 못해 갸웃거리고만 있었다. 문득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린 곳으로 시라토리자와의 학교 전경이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 타이밍이었다.

 

곧 시라토리자와에 도착한다.

 

 

※ 1년 전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는 외전입니다(현3학년이 2학년, 현2학년이 1학년 갓 입학한 시점)

※ 본편과 연관성 있는 외전으로, 전편과 이어집니다

 

 

 

 

 

 

 

 

 

 

-아카아시 side

 

 

 

 

 

입학식을 끝낸 일주일 뒤였다. 현재 아카아시는 <고민상담해결소>에 와 있었다. 딱히 아카아시가 원해서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신입생들이 부활동을 정하는 날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카아시가 이곳에 외 있는 이유라면 그래, 이끌렸다고 할 수 있었다.

 

오이카와에 의해서.

 

 

그렇게 오래 되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어쩌면 나름대로의 조짐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아카아시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시작은 이틀 전이었다. 그 삼일 전에 보쿠토와 처음 만난 아카아시는 본인만 모를 뿐인 기묘한 이끌림을 눈치채지 못했다.

 

보쿠토를 시작으로, 이미 이끌림은 시작되었다는 것을.

 

조금 더 정확히 하자면 입학식 날에 본 사람이 보쿠토임을 눈치채지 못한 채로, 그 이틀 뒤에 보쿠토와 마주쳤을 때부터. 이미 아카아시의 변환점은 찾아와 있었다.

 

 

입학식 후 5일째.

아카아시가 첫 만남이라고 생각했던 보쿠토와의 만남에서 3일째.

그리고 아카아시가 <고민상담해결소>에 오게 된 일주일인 지금으로부터 이틀 전.

 

그곳이 아카아시에게 있어서의 첫번째 분기점이었다.

 

 

별 거 없었다. 아니 정말 별 거 아니었을 일이었다.

 

그 날도 아카아시는 나름대로 후쿠로다니에 적응하며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카아시가 타교에 심부름을 갈 일이 있었다. 누구에게든 심부름을 시킬 수 있었지만 그 날은 어째서인지 아카아시가 그 심부름을 다녀올 상황에 놓여있었다.

 

심부름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무척 간단한 일이었다. 서류 몇 장을 네코마로 갖다주면 끝나는 쉬운 일이었다. 단지 가깝다고는 하나 네코마까지 가는 길이 짧지는 않다는 것이었지만. 아카아시도 그 점만 감수하면 금방 끝내고 올 수 있어서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심부름을 위해 네코마로 향했다. 문제는 네코마에 도착한 뒤 얼마 후에 일어났다. 심부름 때문에 온 아카아시를 들여보내고, 그렇게 네코마에 들어온 아카아시는 빨리 끝내고 후쿠로다니로 돌아갈 생각에 걸음을 서둘렀다.

 

아카아시에게 있어서 같은 부지 내였지만 네코마는 엄연히 타교였던지라 이왕 온 김에 심부름을 하며 조금 구경하고 가자는 심리가 문득 치고 올라왔다. 그렇게 다짐한 아카아시가 각 교무실을 들리며 서류를 돌리면서 시선을 굴리며 구경하던 중이었다.

 

 

 

“네코마엔 확실히 적응하고 있어, 켄마?”

 

 

 

문득 심부름을 내세워 네코마를 구경하던 아카아시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씩이지만. 들려온 물음에 같이 있는 듯한 인물이 그렇게 답하는 것도 들렸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아카아시가 걷던 그 앞쪽, 모퉁이를 하나 끼고 도는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저도 모르는 새에 그들의 대화를 귀기울여 듣고 있었다.

 

 

 

“이번에도 내가 있으니까 켄마가 하루 빨리 네코마에 적응하도록 도와줄게.”

“……응.”

“아아- 빨리 신입생들이 부활동 정하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는 걸. 켄마가 어디로 도망 못 가게 꽉 붙들어매고 있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쿠로랑 같은 부활동 할 거니까.”

 

 

 

쿠로라 불린 이의 언행은 제법 오해의 소지가 다분해 보였으나, 엄연히 다른 부활동에 가지 못하도록 하는 모양이라고 아카아시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담백한 성격의 아카아시는 대화를 듣고 오해 없이 이해하는데에 탁월했다. 그래서 보쿠토 때에도 오해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조금 더 참아, 쿠로. 그렇게 덧붙이는 켄마라 불린 이의 말에 쿠로라 칭해지는 이가 끄응 앓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대화를 들으며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사이가 좋네. 대화 양상으로 보자니 서로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인 것 같았다. 흔히 말하는 소꿉친구인가?

 

 

 

“켄마가 우리쪽에 오면 편할거야. 모두가 같으니까 말이야. 나도 포함해서.”

“나는 조금만 서 있어도 금방 피곤해지니까.”

“그래그래. 보기와는 다르게 켄마의 경우는 참 피곤하단 말이지-”

 

 

 

무엇에 대한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고는 하지 못했다. 왜인지 아카아시는 누군지 모르는 둘의 대화를 더 들어보고 싶었다. 아카아시는 조금 더 집중하며 대화를 듣고자 했다. 조금의 침묵 후에 켄마라 칭해진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심스러운 성격인 듯 조곤조곤한 목소리였다.

 

 

 

“그래도 쿠로를 만났던 건 다행이었어. 나랑 같았으니까 이해할 수 있었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구, 켄-마아. 얼마 없는 내 이해자였어 켄마는.”

“응, 나도. 쿠로가 내 이해자여서 좋았어.”

 

 

 

이해자? 아카아시는 뜬금없이 튀어나온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의문을 띄웠다. 그 탓에 아카아시의 궁금증이 조금 증가했다. 무엇에 대한 이해자라는 뜻일까. 앞 뒤 대화 상황으로 그것에 대해 알기에는 지금의 대화에서는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리고 대화도 그쯤에서 끝났다.

 

수업이 시작될 시간이라며 두 사람이 반으로 돌아가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아카아시도 서둘러 남아있던 심부름을 마저 끝내기로 하고는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심부름을 끝내고 후쿠로다니로 다시 되돌아온 아카아시였다.

 

이틀 전에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카아시는 아직 눈치채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상황은 그 다음날로 넘어간다. 이번에는 세이죠였다.

 

다시 심부름을 이유로 또 다른 타교인 아오바죠사이, 통칭 세이죠에 오게 된 아카아시는 이러다 카라스노까지 전부 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세이죠에 들어섰다. 이번에도 심부름을 이유로 쉽게 들어온 아카아시는 이번에는 한 눈 팔지 않고 재빨리 심부름을 끝내고 나오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교무실을 돌던 와중이었다. 심부름을 하고 있던 아카아시를 발견한 한 선생님이 곧 심부름을 끝내려는 아카아시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일단 타교이긴 하나 선생님이 부르신거니 아카아시는 별 의문점을 느끼지 못한 채 자신을 부른 선생님에게로 다가갔다.

 

 

 

“타교생에게 시키기에는 그렇지만, 나름 경험이 될테니까.”

 

 

 

그렇게 첫 운을 띄운 그 선생님은 작은 심부름을 하나 더 아카아시에게 시켰다. 이번에도 어려운 일은 아니고 별달리 거부할만한 이유가 없었던 아카아시는 겸사겸사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그렇게 아카아시가 향한 곳은 2학년의 한 교실이었다.

 

타교생이라 세이죠의 교실에 들어가기가 멋쩍다는 것을 교실 앞에 오고서야 깨달은 아카아시는 가만히 머리를 짚었다. 그렇게 아카아시가 서 있은지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교실 안이 조금 소란스러워진다 싶더니 예고없이 벌컥 앞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나오려다 문 앞의 아카아시를 발견했다.

 

잠시 시선이 맞았던 세이죠의 선배는-일단 2학년이니까- 아카아시를 훑어보다 곧 후쿠로다니 학생이라는 것을 알아본 듯 싶었다. 교실 안에서 뭐라 떠드는 것을 돌아본 선배는 한숨을 내쉬고는 복도쪽으로 나오며 앞문을 닫아버렸다. 그러자 교실 안의 소란이 조금 멀어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 타교생이 심부름 하는 경우는 없는데 어쩌다 하게 됐냐?”

“교무실에 심부름 왔다가 어쩌다보니요.”

“그래? 지금 들고 있는 게 네가 심부름 하려던 거지? 줘. 보아하니 우리 반에 심부름 온 듯한데.”

 

 

 

아카아시는 조금 놀랐다. 자신이 자료를 들고 있기는 했지만 한 번에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던 탓이었다. 아카아시를 향해 손을 내미는 선배에 아카아시는 별 말 없이 심부름 자료를 건네었다. 건네받은 자료를 한 번 본 선배의 시선이 아카아시를 향했다.

 

 

 

“1학년이냐?”

“아, 네.”

“후쿠로다니라.”

 

 

 

아카아시를 보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던 선배가 물었다. 그럼 너, 후쿠로다니의 보쿠토라고 알고 있냐? 순간 후쿠로다니가 아닌 타교의 선배에게서 보쿠토에 대한 물음이 나올 줄은 몰랐던 터라 아카아시는 조금 놀라서 바라보았다. 그런 긍정의 반응을 보인 아카아시에 선배는 웃었다.

 

 

 

“그 녀석이 뭐라고 찔러대든, 악의는 없을거다.”

“네?”

“그보다 그렇구나. 너구나.”

 

 

 

무언가 알았다는 듯이 아카아시를 바라봐오는 선배에 아카아시는 도리어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카아시는 상황을 알지 못해 그저 눈을 굴렸다. 뭐가 나라는 거지. 그런 아카아시를 보던 눈 앞의 선배가 손을 올려 아카아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것은 격려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후쿠로다니 후배, 나중에 네 이름을 알려달라고?”

 

 

 

그 말을 끝으로 세이죠의 선배는 다시 앞문을 열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아카아시는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영문을 알지 못해 눈을 굴렸다. 이름을 알려달라고? 나중에? 도저히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던 아카아시는 그렇게 심부름을 끝냈다.

 

그리고 아카아시는 후쿠로다니로 돌아왔다. 궁금증을 키운 채.

 

 

그리고 대망의 오늘. 그래 오늘.

 

시작은 당연하게도 보쿠토였다.

 

모든 수업을 끝마친 뒤의 청소 시간이었다. 아카아시도 청소를 하던 와중이었는데 어딘가를 가려고 했던 보쿠토가 그런 아카아시를 발견한 것도 그 순간이었다. 오오? 아카아시잖아! 위에서 들려오는 나름 익숙한 보쿠토의 목소리에 아카아시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1층에 있는 아카아시에 비해 보쿠토는 2층의 창가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보쿠토상.”

“아카아시 안녕! 청소 중이야?”

“네. 그러는 보쿠토상도 청소 시간 아닌가요?”

“당연히 우리도 청소 시간이지! 그런데 오늘은 내가 일이 있어서 빠졌어!”

“하아. 그러시구나.”

 

 

 

역시 아카아시 너무 담백해. 보쿠토가 처음 그 말을 했을 때처럼 웃었다. 아카아시, 도와줄까? 웃던 보쿠토가 그렇게 묻자 아카아시가 보쿠토를 보며 말했다. 보쿠토상 일 있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잠깐 도와줄 시간 정도야 있지. 도와줄까? 왠지 보쿠토의 도와주겠다는 말이 약 올리는 것처럼 들려왔다.

 

 

 

“아뇨. 괜찮아요.”

 

 

 

왠지 보쿠토상이 나서면 청소가 더 힘들어질 것 같거든요. 아카아시는 그 말을 내뱉지 않았다. 말을 했을 때 보쿠토에게서 어떤 반응이 돌아올 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예상을 벗어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보쿠토는 그런 의미에서 훌륭할 정도로 멋진 브레이커였다. 물론 반어법이다.

 

 

 

“에이.”

“도대체 어디에서 실망할 곳이 있는 건가요.”

 

 

 

보쿠토의 반응에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보쿠토의 세계를 아카아시가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려운 듯 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니까.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어쩌다 정확하게 찔러온다. 그것을 아카아시는 삼일 전에 처음 만났을 때 파악해버렸다.

 

 

 

“아카아시.”

“네?”

 

 

 

학교 생활 재밌게 하고 있어? 문득 물어오는 보쿠토의 말에 빗질을 하던 손이 멈칫거리며 멈추었다. 응? 아카아시이- 그래. 딱 지금처럼 말이다. 재촉해오는 한 층 높은 곳에 있는 보쿠토를 아카아시는 어딘가 멍한 느낌으로 올려다보았다. 이 사람은 왜 자꾸. 아카아시는 시선을 땅으로 내리며 답했다.

 

 

 

“다른 아이들하고 같다고 생각해요.”

“흐음? 다른 아이들 말이지.”

“…….”

“있지, 아카아시는 말이야.”

 

 

 

아카아시의 대답에 눈을 굴리던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어딘지 모르게 혼자 사는 것 같단 말이지.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는 찔리는 곳이 있는 탓에 침묵했다. 아니아니,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그렇게 말하는 보쿠토에 아카아시는 가만히 생각했다. 오해는 하지 않아요.

 

 

 

“그냥, 아카아시는 뭐든지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말해본 거니까.”

“…….”

 

 

 

그거 힘들다구?

 

보쿠토가 그렇게 말한 순간 아카아시가 가지고 다니던 종이 하나가 생각났다. 보쿠토와의 첫 만남에서 남겨두고간 그 종이. 아카아시의 생각이었지만 두번째로 발견했던 글은 아마 지금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보쿠토는 첫 만남부터 확실하게 무언가를 건들여오고 있었다.

 

 

 

“별로 만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런 말하기는 때가 아닌 걸 아는데.”

“?”

“뭐라고 해야 하나. 아카아시는.”

 

 

 

지금 이 자리에 제대로 서 있는거야?

 

보쿠토의 물음에 아카아시는 무언가 대답하려다가 말았다. 정말 보쿠토는 이상하다.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인데 보쿠토는 마치 아카아시의 마음을 전부 눈치챈 듯이 사정없이 찔러들어왔다. 제대로 서 있냐고? 그렇게 묻는다면 아카아시는 답할 말이 없었다.

 

아카아시 자신도 잘 모르니까.

 

 

 

“현실감 별로 없지 않아? 붕 떠있는 감각이지?”

“그건….”

“솔직히 나는 아카아시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 이제 겨우 몇 번밖에 만나지 않았는 걸.”

“…….”

“그래서 나는 그런 아카아시가 궁금해.”

 

 

 

어떤 아이인지 말이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후배로서가 아니라 아카아시라는 사람 그 자체로 궁금하다는 얘기.

 

이어지는 보쿠토의 말에 문득 시선을 들어 바라보면 어렵지 않게 마주치는 시선. 어딘지 아카아시를 몰아붙이려는 듯 해보였던 보쿠토였으나 보쿠토는 창틀에 팔을 걸친 채로 한 손을 턱에 괴면서 아카아시를 보고 있었다. 웃으면서.

 

 

 

“어…….”

 

 

 

마주친 시선에 아카아시가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슬그머니 다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보쿠토는 방금 전의 자세로 계속 아카아시를 보고 있었다. 웃는 얼굴. 그리고 바라봐오는 시선 속의- 왜인지 아카아시는 얼굴에 슬쩍 열이 몰리는 느낌을 받았다.

 

보쿠토는 명백하게 호의를 보내고 있었다.

 

진심으로 아카아시가 마음에 든 듯했다. 자신에게로 건네지는 생소한 호의에 아카아시의 무언가가 자극받았다. 아카아시는 눈을 굴리며 생각했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감각이었지만 어쩐지 알 것 같았다. 간질간질거리는 감각. 이건 쑥스러움이려나.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어보이는 아카아시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핥기식으로 보이는 면모였다. 아카아시는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카아시는 본래 감정이 무딘 아이였다.

 

그것을 아카아시도 알고 있었지만 자라면서 이미 그렇게 형성되어버린 인격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아카아시는 어린 시절, 또래 아이들을 지긋이 관찰했던 적이 있다.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아이들의 감정변화, 그것을 좀 더 정확히 알기 위해서.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카아시는 겉으로 변해나갔다. 그렇게 완성된 아카아시 케이지라는 소년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담백하긴 했지만 제대로 감정을 드러낼 수는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겉모습이었던 것은 가짜였다.

 

진짜 아카아시 케이지는, 생각보다도 더 감정에 무뎠고, 그 탓에 감정변화도 지극히 적었다. 그렇지만 감정이라는 게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단지 건드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느끼는 감정을 정의 내리지 않았다. 가짜는 곧 부서져버렸다.

 

한 경험을 계기로, 완전히.

 

그 경험에서 느낀 감정을 아카아시는 알고 있었지만, 굳이 정의내려 확인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것은 쓸쓸했고, 그리고 지독히도 추웠다는 것만 기억했다.

 

가짜가 부서진 아카아시는 진짜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가짜로서 내보였던 감정들까지 사라진 건 아니어서 나름 사람답게 살아왔다, 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밖에 만나지 않은 이 한 살 많은 선배인 보쿠토는 그런 아카아시를 알아보았다.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었다.

 

 

 

“이제 생각은 전부 정리됐으려나?”

“…전에 만났을 때부터 생각했던 건데요.”

“뭔데?”

“어떻게 아는 거예요?”

 

 

 

아카아시의 어이없는 감정이 전해져오는 듯해서 보쿠토는 소리내서 웃었다. 아하하. 웃지 말고요. 바로 들어오는 태클에 보쿠토는 정말 즐거운 듯 더 웃었다. 보쿠토가 웃으면 웃을수록 왠지 아카아시의 표정이 굳어져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정말 티가 안 나네- 보쿠토는 그렇게 생각했다.

 

 

 

“감이야, 감!”

“하?”

“아하하, 내가 장담하는 것도 뭐한데, 나는 감이 무척! 좋거든. 뭐 나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녀석들이 다 그렇게 말하더라고. 하도 그렇게 듣다보니 나도 이제는 그런가 하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어지는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가 눈을 깜박거렸다. 다른 녀석들? 저번에 말했지? <고민상담해결소>라고, 특이한 녀석들만 모여있는 곳이야. 보쿠토상 말고 더 있다고요?

 

 

 

“그거 무슨 뜻인데?”

“특이한 사람들이 더 있다는 것에 놀란거예요.”

“그치만 아카아시 정말 티 안난다. 주위의 분위기로 얼추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분위기요?”

“어엉. 뭐 눈치채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보쿠토의 말에 아카아시가 움찔했다. 하지만 곧 진정했다. 아무리 그래도 보쿠토가 거기까지 알 리는 없다는 것을 아카아시는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정말 감인지 뭔지, 보쿠토가 느끼는 게 생각보다도 넓은 편이라는 것에 아카아시가 보쿠토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났다.

 

그런데 보쿠토상. 왜? 일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시간 꽤 지났는데. 어엉? 아카아시의 말에 주머니에 넣어놓은 듯했던 스마트폰을 꺼내들고 시간을 확인한 보쿠토가 으어어억! 이라는 괴상한 비명을 질렀다. 늦었다아! 아카아시, 오늘은 이만 간다! 또 볼 수 있으면 또 보자!

 

태풍처럼 휘몰아치며 가버리는 보쿠토를 보며 아카아시는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보쿠토상은 피곤한 사람이구나. 보쿠토와 대화하느라 미뤄지던 청소를 마저 하는 아카아시였다. 나뭇잎들을 한 곳에 모으고 불을 붙여 소각했다. 재는 바람에 날아가 거름이 되겠지.

 

그게 오늘의 첫번째 상황이었다. 이때까지도 아카아시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상황은 그다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카아시에게 찾아왔다. 아카아시가 직접 <고민상담해결소>에 오게 한 계기. 그 계기. 청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아카아시는 교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멀찍이서 발견해버렸던 것이다.

 

오이카와를.

 

 

아카아시는 집으로 가기 위해 교문쪽으로 가던 것도 잊고 오이카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오이카와는 아직 교문을 나서지 못한 채 여학생들-심지어 타교 여학생들도 있었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아카아시가 오이카와에게 시선이 향한 것은 오이카와 주변의 여학생들 때문이 아니었다.

 

아카아시는 처음으로 경악했다. 뭐야 저게.

 

오이카와 주변의 여학생들도, 심지어 오이카와도 모르는 듯 싶었다. 아카아시는 그게 유령임을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저건 비정상이었다. 지금까지 아카아시가 유령들을 보면서 저 정도의 유령의 군세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저 상황은 말도 안 된다.

 

아카아시의 눈에는 오이카와 주변에 모여있는 수많은 유령들의 군집이 보였다.

 

저러고도 멀쩡할 수 있단 말이야? 아카아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눈 앞의 상황을 모른 척 하고 싶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숙이며 몸을 떨었다. 그 순간 그런 아카아시를 향해 오이카와의 시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아카아시는 그것을 모른 채 고민에 빠졌다.

 

 

 

“미안한데 이제 가봐야해서. 고마워, 과자 잘 먹을게-”

“가는 거예요, 오이카와상?”

“응. 소꿉친구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기다리게 만드는 건 미안하거든.”

 

 

 

그럼 모두 조심히 들어가야 해- 여학생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해주고는 왜인지 아카아시쪽을 향해 다가오는 오이카와였다. 들려온 대화 소리에 시선을 들었던 아카아시는 점차 다가오는 오이카와가 자신을 보고는 생글 웃는 것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웃는 게 굉장히 순해보이는 사람이었다.

 

 

 

“안-녕.”

 

 

 

보쿠토의 후배 군? 볼 일이 없다는 듯이 가볍게 말한 오이카와는 그대로 아카아시를 지나쳐갔다. 물론 뒤이어지는 말은 그렇지 못했지만. 오이카와는 그대로 지나쳐버린 아카아시를 흘겨보았다. 흐음, 그렇구나 그렇구나. 오이카와가 걸음을 떼며 입꼬리를 올려 빙그레 웃었다.

 

오이카와의 말에 잠시동안 쨍하니 굳어있던 아카아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오이카와가 저만치 걸어가버린 뒤였다. 여전히 오이카와의 주위에는 유령이 가득했다. 아카아시는 교문쪽에 시선을 주고는 오이카와가 걸어간 방향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까지가 아까까지의 이야기였다. 아카아시는 눈 앞의 상황으로 시선을 돌렸다. 웃고 있는 오이카와가 아카아시의 반대편에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아카아시와 나름 면면이 있는 이들이 두엇. 그리고 아직 누군지 알지 못하는 한 명까지. 아카아시는 한숨을 쉬었다.

 

이게 오이카와의 농간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한숨 쉴 필요 없다구, 아카아시군?”

“차라리 성만 불러주시죠, 보쿠토상처럼요.”

“흐음, 정 그렇다면야.”

 

 

 

그럼 보쿠토를 제외하고는 일단 각자 소개하지 않았지? 소개부터 할까. 오이카와가 뒤돌아보며 말했다. 그런 오이카와를 아카아시가 말렸다. 보쿠토상은 알지만 다들 저를 모르시니까 저부터 할게요. 그런데 오이카와상이었죠? 제 성은 어떻게 아는 건가요. 응? 그건 오이카와상의 비밀이야-

 

 

 

“보쿠토상이 말한 건가요.”

“뭐?! 나도 말한 적 없다구 아카아시!”

“맞아맞아. 봇군은 말한 적 없는 걸. 어디까지나 내가 알아낸거야.”

 

 

 

죄 없는 봇군 괴롭히지 말아줘? 봇군이라고 부르지 마! 어라어라, 싫었어? 그럼 어떻게 불러줄까? 필요없어! 예고 없이 시작되는 짧은 만담에 아카아시는 눈을 깜박였다. 보쿠토의 반응에 오이카와가 웃었다. 그렇게 오이카와가 웃는데 그런 오이카와의 등에 철퇴가 작렬했다. 으악!

 

 

 

“아프다구, 이와쨩! 왜 때리는 거야!”

“징징거리지 말고 제대로 못 하냐!”

“쳇쳇. 나쁜 이와쨩.”

 

 

 

얻어맞은 등을 문지르며 툴툴거리는 오이카와였다. 조금의 소란 후 상황이 진정되는 듯 싶자 아카아시가 소개를 시작했다. 아카아시 케이지. 알다시피 후쿠로다니 1학년입니다. 정중한 소개에 잠시 침묵이 그들 사이에 감돌았다. 그리고 오이카와가 두어번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난 오이카와 토오루고 세이죠 2학년이야. 이와쨩하고는 소꿉친구기도 하고.”

“이와이즈미 하지메. 세이죠 2학년.”

“흐음. 다음은 나지? 쿠로오 테츠로. 네코마 2학년.”

 

 

 

오이카와에 이와이즈미. 그리고 이어지는 쿠로오의 소개에서 아카아시는 기묘함을 느꼈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인데. 네코마라. 쿠로오 테츠로. 눈을 굴리며 생각을 하던 아카아시가 순간 쿠로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카아시의 시선을 받은 쿠로오는 의문을 표했다.

 

 

 

“왜?”

“혹시 쿠로 라고 불리던?”

“흠? 그걸 어떻게 알았어? 켄마의 친구?”

 

 

 

아니지, 켄마의 친구라면 내가 다 알고 있는 걸. 쿠로오는 의뭉스럽게 웃으며 그렇게 말헀다. 그에 아카아시는 확신했다. 아카아시가 네코마에 가서 들었던 대화를 나누던 두 명 중 한 명이 바로 이 쿠로오 테츠로였다. 게다가 이와이즈미는 세이죠의 심부름으로 만났었고 말이다.

 

 

 

“뭐, 다른 건 됐고.“

“?”

“있지- 아카아시도 ‘특이’를 가지고 있지?”

“!?”

 

 

 

난데없이 건네지는 오이카와의 말에 아카아시는 굳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카아시의 반응에 오이카와가 웃었다. 정답이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아카아시가 눈을 굴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았다. 왜인지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놀람이나 동요의 감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에 아카아시가 의문을 가질 때 폭탄이 터졌다.

 

 

 

“놀랄 거 하나도 없어. 왜냐면 우리들도 ‘특이’를 가진 능력자니까.”

 

 

 

오이카와가 아카아시를 보며 웃었다. 이와이즈미도, 쿠로오도, 그리고 보쿠토도 아카아시를 보고 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이 그렇게 아카아시를 보고 있었다. 아카아시의 시선이 오이카와에게서 이와이즈미, 쿠로오, 그리고 보쿠토에게 가 닿았다.

 

아카아시와 시선이 맞은 보쿠토는 그냥 웃어주었다.

 

 

 

“우리랑 같이 하지 않을래, 아카아시?”

 

 

 

건네진 보쿠토의 물음에 아카아시는 망설이는 듯 고개를 숙였다. 보쿠토는 웃으면서 아카아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잠시 뒤 아카아시의 손이 슬쩍 보쿠토의 손 위에 놓여졌다. 그 손을 잡아당긴 보쿠토는 얼떨결에 끌려온 아카아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왔어!

 

 

 

“네.”

 

 

 

그 모습을 모두가 지켜보았다. 아카아시를 보던 오이카와가 웃으며 외쳤다. 이와쨩, 핫초코!

 

 

 

 

 

 

그렇게 아카아시가 합류하고 삼일 후, 신입생의 부활동 신청 기간이 되자마자 쿠로오가 켄마를 끌고 들어옴으로서 또 1년이 시작되었다.

 

 

※ 1년 전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는 외전입니다(현3학년이 2학년, 현2학년이 1학년 갓 입학한 시점)

※ 이번 편은 일부 각자의 이야기로, 본편과 연관성이 있는 외전입니다

※ 조금의 시간차를 두고서 이어집니다

 

 

 

 

 

 

 

 

 

 

-오이카와&이와이즈미 side

 

 

 

 

 

입학식이 끝난 이틀 뒤, 부실의 응접실에서 뒹굴거리던 오이카와가 데굴데굴 굴러 소파에 앉아있던 이와이즈미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러그가 바닥에 깔려 있다지만 뒹굴 생각이 드냐. 그런 작은 타박에도 아랑곳 않고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발치에 다다라서 내려다보는 이와이즈미를 올려다보았다.

 

 

 

“뭐냐.”

“두 명.”

 

 

 

두 명이야, 이와쨩. 예고없이 한 손으로 2를 나타내게 한 뒤 이와이즈미를 향해 내보이는 오이카와였다. 잠시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시선을 마주쳐오는 이와이즈미에 오이카와가 웃었다. 작년이랑 같냐. 아니지, 작년이랑은 다르잖아. 우리 둘도 포함하면 작년엔 네 명이지.

 

 

 

“적네.”

“이번 년도에는 없을 수도 있었는 걸. 두 명이면 나름 많은거야.”

“한 명은 이미 만났다고 했지?”

“응, 쿠로오 소꿉친구라던 그 애.”

 

 

 

느낌은 나쁘지 않았는데, 사람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것 같더라구. 오이카와의 말에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응접실 바깥의 풍경으로 향한다. 그래서 어떤 능력?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가 바닥에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키며 처음보다는 높아진 시선에서 올려다보았다.

 

 

 

“거야 모르지.”

“모른다고?”

“아무리 나라도 거기까지는 모른다구. 이와쨩은 나를 뭐로 보고 있어? 치트캐?”

“정말 몰라?”

“정말 정말~”

 

 

 

오이카와의 반응을 보던 이와이즈미는 사실이라고 느꼈다. 오이카와가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가끔 이런 면을 보여 한 번에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일상으로 삼는 녀석은 아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숨기는 건 많은 녀석이었지만.

 

 

 

“그럼 다른 한 명은?”

“아직 본 적은 없어.”

“어딘데.”

“후쿠로다니.”

 

 

 

보쿠토한테 맡겼냐?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가 눈을 굴렸다. 확실히 후쿠로다니는 보쿠토의 관할이었지만.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에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다시 오이카와를 향했다. 왜? 이와이즈미의 그 물음에 오이카와는 미소지었다.

 

 

 

“이미 이어져있어.”

“뭐가.”

“우리랑, 아직 만나지 못한 그 아이랑.”

“이미 엮였다는 얘기냐?”

 

 

 

보쿠토는 감이 좋으니까. 오이카와의 말에 이와이즈미는 납득했다. 확실히 감 하나는 무시 못하지. 그렇게 말한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향해 물었다. 네가 감지한 그 두 명, 우리쪽으로 올 것 같냐. 오이카와는 그저 두루뭉술하게 웃었다. 어떨 것 같아, 이와쨩.

 

 

 

“내가 어찌 아냐.”

“한 명은 당연하지만 들어오겠지. 다른 한 명은 역시 좀 애매하네.”

“그거 역시 네코마 쪽이냐.”

“지금도 쿠로오가 극성이던데. 그 애 제법 귀찮을텐데도 쿠로오 옆에 잘도 붙어있단 말이지.”

“어쩐지 동질감이 느껴지는 걸.”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가 샐쭉한 표정으로 눈을 흘기듯 바라보았다. 그런 오이카와의 표정을 본 이와이즈미는 알기는 아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뭐야 이와쨩! 나 귀찮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걸 이제 알았냐, 쿠소카와. 오이카와상 쇼크.

 

 

 

“애매한 쪽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냐?”

“그쪽도 무슨 능력인지 모르는데. 섣불리 나섰다가 거리를 두려고 하면 답이 없고.”

“작년엔 안 그랬잖아. 보쿠토랑 쿠로오 때는.”

“그 둘한테는 정공법이 답이었으니까! 이번 애들은 꽤나 섬세한 것 같다구.”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끙끙 앓는 오이카와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는 이와이즈미였다. 이와이즈미가 소파에 앉아있고 오이카와가 바닥에 앉아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있어서 위치가 딱 알맞았던 탓이었다. 일정하게 두드려지는 머리 위에 얹어진 손의 느낌을 오이카와가 얌전히 받아들였다.

 

4월, 아직 벚꽃이 만개해있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아카아시 side

 

 

 

 

 

입학식 날의 예고 되지 않았던 혼자만의 만남을 뒤로 하고 본격적으로 후쿠로다니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지내는 건 모든 신입생들이 겪는 현상이었다. 특히 그 점은 거의 대부분이 서로 안면이 없는 초반, 한 달 동안은 익숙해지는데에 사용한다.

 

아카아시도 이 점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는데 특히 아카아시는 여기에서 항상 문제를 겪고는 했다. 아카아시의 특이성 탓에 주의깊게 보지 않는다면 살아있지 않은 존재에게 말을 걸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탓에 입학식이 끝난지 삼일째 되는 오늘도 소모된 신경에 금방 피곤해졌다.

 

 

 

“차라리 볼 수 없었으면 좋았을 걸.”

 

 

 

피곤해. 학교에는 유령들이 얼마 없기는 했지만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 안 그러려고 해도 저절로 시선이 향하고는 했다. 의식적으로 무시하려고 하는 탓에 배는 더 소모된 신경이 휴식을 외치고 있었다. 후쿠로다니 교정 한 켠에 위치한 벤치에 털썩 주저앉은 아카아시가 피곤한 눈을 문질렀다.

 

 

 

“하아.”

 

 

 

머리를 뒤로 숙여 벤치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채인 아카아시는 잠시간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혼자 있으려니 사방이 고요해 한껏 긴장하고 있던 몸에 힘이 풀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졸음이 쏟아지는 것도 같았다. 눈을 깜박이던 아카아시가 완전히 눈을 감고 늘어지던 타이밍이었다.

 

 

 

“일어나라구, 후배님.”

 

 

 

그런 말소리가 들려온 직후 아카아시의 한쪽 뺨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아왔다. 그것이 생각보다도 더 차가워서 잠에 빠지려던 아카아시의 정신이 퍼뜩 깨어났다. 화들짝 놀라며 눈을 뜬 아카아시의 눈 앞에는 막 자판기에서 꺼내들었는지 물기가 아직 생생한 음료가 누군가의 손에 들려있었다.

 

살짝 멍한 정신에 음료를 계속 보고있다가 아카아시의 시선이 음료를 들고 있는 누군가의 손을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아카아시의 시야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벤치에 앉아 있는 아카아시의 옆에서 내려다보는 형태로 시선이 맞은 상대는 그런 아카아시를 보며 웃고 있었다.

 

소리내어 웃던 상대가 들고 있던 음료를 아카아시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건네진 음료를 받아든 아카아시는 멀뚱히 손 안에 들어온 음료에 시선을 주었다. 아카아시의 옆에 있던 상대는 반대쪽으로 와 아카아시가 앉아있는 벤치의 남아있던 공간에 털썩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날씨도 좋은데 이런 날 잠이나 자는 건 아쉽잖아?

“어…….”

“그렇지 않아?”

 

 

 

그렇게 물으며 아카아시를 향해 돌아보는 상대에 아카아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아시의 긍정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웃는 얼굴이 밝았다. 손에 들고 있던 또 하나의 음료를 따 벌컥벌컥 마신 뒤에-다 마시지는 않은 듯 일부 액체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시선이 다시 아카아시를 향했다.

 

 

 

“이번에 들어온 1학년이지? 어때, 후쿠로다니는?”

“어….”

 

 

 

갑자기 날아든 질문에 아카아시가 잠시 망설이며 눈을 굴렸다. 그러다 저쪽에 만개한 채로 있는 벚꽃나무가 그런 아카아시의 시야에 잡혔다. 그리고 입학식 날의 광경이 떠오른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벚꽃나무와, 그 아래 가만히 서 있던 사람.

 

 

 

“나쁘지 않아요.”

“흐음?”

“특히, 교정의 벚꽃길이 마음에 들었을까요.”

 

 

 

아카아시의 말에 눈을 두어번 깜박이던 상대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맞아. 나도 거기를 제일 마음에 들어해. 올해로 두번째로 보는 광경이거든. 만개한 게 굉장히 예쁘지. 상대의 말에 아카아시의 시선이 상대를 향했다. 올해로 두번째면, 현재 2학년인가요?

 

 

 

“맞아. 올해로 2학년이지.”

 

 

 

상대의 말에 아카아시가 말했다. 선배셨네요. 별 뜻이 담기지 않은 아주 담백한 말에 상대가 다시 웃었다. 아카아시는 그런 상대를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웃을만한 포인트는 없었는데 왜 웃는 것인지 몰랐다. 그런 아카아시의 반응을 알았는지 상대가 웃던 것을 멈추었다.

 

 

 

“나 너처럼 담백한 녀석 처음 봐. 그래서 재밌어.”

 

 

 

여전히 얼굴에는 웃음을 짓고 있는 채였다. 상대의 재밌다, 라는 감정이 선명히 전해져와서 아카아시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아카아시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대가 아카아시를 보며 물었다. 후배는 이름이 어떻게 되나? 상대의 물음에 아카아시가 어렵지 않게 답했다.

 

 

 

“아카아시. 아카아시 케이지에요.”

“아카아시란 말이지. 좋아, 난 보쿠토! 보쿠토 코타로다!”

 

 

 

그렇게 통성명을 나눈 아카아시와 상대, 보쿠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직 다 마시지 않았던 음료를 들고 있던 손으로 아카아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찌보면 선전포고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되었으나 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 어딘지 엉뚱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말이었으니까.

 

 

 

“생각 있으면 <고민상담해결소>로 와 봐!”

 

 

 

너에게 꽤나 좋은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그럼 다음에 보자구, 아카아시! 보쿠토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남아있던 음료를 마저 마시고 휙 던진 빈 통이 간이 휴지통에 쏙 골인했다. 점점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된 보쿠토가 간 곳을 빤히 보던 아카아시가 아직 마시지 않은 음료를 보았다.

 

잠깐 대화했던 것 같았는데 음료의 겉에 맺혀있던 물방울들이 다 증발해버린 뒤였다. 음료를 보던 아카아시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보쿠토가 앉아있던 자신의 옆자리. 몰랐는데 그곳에 작은 무언가가 놓여져 있었다. 손을 뻗어 그것을 집어들고는 확인했다.

 

 

 

네가 외롭지 않게 되기를!

 

 

 

그것은 마치 아카아시를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타인의 온기에 아카아시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것을 빤히 보던 아카아시는 그 아래쪽에도 무언가가 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제법 작은 글씨였다. 아카아시는 슬쩍 눈을 찌푸리며 그것을 확인했다.

 

 

 

그거 꽤나 슬프다구?

 

 

 

두번째의 글은 마치 혼잣말처럼 몰래 써놓은 듯 보였다. 본인도 모르는 새 쓴 듯 한쪽 구석에 숨기듯 적힌 그것에 아카아시의 시선이 박힌 채로 떨어지지 않았다. 아카아시가 손을 들어 심장께를 지긋이 눌렀다. 이상한 사람. 짧은 만남이었지만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무딘 감정들을 일깨우고 있었다.

 

손에 닿아있는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아카아시는 다시 보쿠토가 적은 듯한 그 종이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러다 작은 의문이 들었다. 보쿠토가 이것을 놓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대체 언제. 게다가 정확히 아카아시를 향해 말하는 것 같은 말에 우리가 언제 만난 적 있나 생각이 들었다.

 

아카아시는 신경이 쓰이는 종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카아시는 몰랐지만 그 움직임은 소중한 무언가를 다루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손에 들려있던 보쿠토가 준 음료를 까 마시기 시작했다. 아카아시의 무언가를 자극한 보쿠토 때문에 제법 성급하게 마셨다.

 

이상한 사람. 아카아시는 다시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의 호감이 싹터있었다.

 

4월, 벚꽃의 계절이었다.

 

 

 

 

 

 

 

 

 

 

-켄마&쿠로오 side

 

 

 

 

 

“쿠로, 끈질겨.”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켄마는 나름 진땀을 빼고 있었다. 입학식을 하면서 켄마가 정식으로 네코마에 소속되자마자 쿠로오로부터의 끈질긴 러브콜이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쿠로오 자신이 하는 부활동에 대한 러브콜이었다.

 

학교에서도, 심지어 집에서도 찾아와서.

 

 

 

“같이 하자, 켄마.”

“쿠로……. 알고 하는 말이야?”

 

 

 

아직 신입생들의 부활동 가입 시기 아닌 거. 알아.

 

 

 

“그리고 여기, 1학년 교실인데.”

“그것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켄마, 같이 하자니까?”

 

 

 

켄마가 아무리 말해도 쿠로오는 들어먹질 않았다. 이미 쿠로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신경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탓도 있었다. 현재 쿠로오는 수업이 시작하기 전이라서인지 켄마의 반에 들어와 켄마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응? 켄마. 나랑 같이 부활동 하자.”

“하아…….”

 

 

 

자신을 붙들고 늘어지는 쿠로오에 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쿠로가 부탁하지 않아도 할 거긴 하지만 이런 전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당연하게 쿠로오를 따라갈 켄마였지만 적어도 부활동 가입 시기에 들어가려고 마음 먹고 있었어서 지금의 쿠로오의 행동은 상정 외였다.

 

그런 켄마에게 구세주가 등장한 것은 그 때였다.

 

 

 

“쿠로오!!”

 

 

 

문득 들어본 적 있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쿠로오의 시선이 켄마에게서 앞문쪽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작년에 쿠로오를 가르친 담임 선생님이 서 있었다. 오오, 선생님! 켄마네 담임이세요? 우리 켄마 잘 부탁드려요~ 능청스레 당부의 말을 전하는 쿠로오였다.

 

 

 

“쿠로오!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야? 넌 이제 2학년이잖아!”

“에헤이~ 뭘 그런 걸 따지고 있어요. 켄마한테 부활동 같이 하자고 권유하고 있는 건데요.”

“너도 알테지만 지금은 부활동 가입 시기가 아니야. 뻔히 알면서 지금 왜 그러고 있어?”

“켄마는 이미 제가 찜했으니까요~”

 

 

 

건드리는 사람이 없어야 하지 않겠어요? 사악하게 웃는 쿠로오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그런 쿠로오의 모습에 옛 담임은 한숨을 내쉬었다. 권유하더라도 그렇게 계속 달라붙어서 한다면 누구든 부담이 되는 거 뻔히 알면서 그러는 거잖아, 너는. 너무 저에 대해 잘 아시는 거 아니예요 선생님?

 

 

 

“너한테 당한 게 얼마 되지 않았잖아!”

“그걸 당했다고 표현하시다니, 나름 느셨네요~”

“에휴, 말을 말자.”

 

 

 

생글, 이윽고 체념하는 듯하자 쿠로오가 웃었다. 아싸 또 이겼다. 좋은 기분을 띄우고 있는 쿠로오의 표정을 보던 켄마의 현 담임이기도 한 여성은 쿠로오를 불렀다. 쿠로오. 그에 쿠로오의 시선이 따라왔다. 왜요, 선생님? 여성은 켄마를 한 번 본 뒤에 하고 싶은 말을 내보냈다.

 

 

 

“거리감을 조절 못하면 아마 상처 입힐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적당히 하도록 해.”

 

 

 

여성의 말에 웃던 쿠로오의 입매가 미묘하게 굳는다. 여성은 그 표정에 쿠로오가 깨닫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씁쓸해 보이는 웃음이 쿠로오의 얼굴 위에 떠오른다. 알고 있어요 선생님. 이미 충분할 정도로 깨닫고 있는 실정이니까요.

 

켄마가 선 바깥으로 나올 생각이 없음을 질릴 정도로 잘 알고있는 쿠로오였다.

 

 

 

“그럼 수업 전에 가볼게요. 켄마, 이따 보자.”

 

 

 

켄마의 머리를 한 번 스윽 쓰다듬듯이 훑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쿠로오가 반을 빠져나갔다. 켄마가 보고 있음을 알고 있을 텐데도 쿠로오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켄마는 쿠로오가 훑은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쿠로오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켄마는 눈치 빠르게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이유도 나름 알고는 있을 터였지만 켄마는 시선을 돌렸다. 언제나처럼의 외면이었다.

 

쿠로오는 켄마의 반을 나서 본인에게 배정된 반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켄마 너는 언제쯤이면 외면하지 않아줄까. 쿠로오의 표정이 무미건조해졌다.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생각을 거듭하던 쿠로오가 문득 발을 멈추어섰다.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나는 쿠로오 테츠로라고 하는데, 너는?’

‘……코즈메, 켄마.’

 

 

 

문득 켄마와 처음 만나던 날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일로 인해 이사를 온 날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어린 마음에 두근거리면서 집이 정리되는 것을 보다가 나온 참이었다. 옆집으로 들어가려던 켄마를 발견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또래처럼 보이는 켄마에 한달음에 옆집으로 달려갔었다.

 

이름을 밝히고 아직 모르던 켄마의 이름을 물었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던 시절이라 갑자기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아무리 또래라고 해도- 제법 당황스러웠는지, 켄마는 정말 긴 시간동안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았었다.

 

기다릴 수 있다고. 기다릴 수 있어. 좀처럼 답하지 않던 켄마에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되뇌고 있을 무렵, 드디어 켄마가 이름을 말해주었었다. 아무래도 눈치를 살피다 자신의 옆집에 이사를 오는 것을 발견했고, 쿠로오가 처음 보는 아이라 옆집에 이사온 가족의 아들이라는 걸 안 모양이었다.

 

그 당시에는 쿠로오도 켄마가 자신과 같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솔직히 쿠로오는 자신의 특이에 대해 싫어하는 편이었고, 그 당시에는 그것이 더욱 절정을 찍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래서 켄마는 처음에 그것을 읽어냈음에도 한참동안 거기에 대해서 묻지 않았던 것일테다.

 

그리고 쿠로오가 시간이 지나 켄마의 특이를 알게 되고, 애써 묻지 않았음을 안 순간 마음이 확 쏠렸던 것이었다. 그렇게 쿠로오는 켄마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쿠로오의 마음고생이 절찬리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쿠로오가 예전 일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정말 피를 말리는구나. 이미 유효기간은 한참 전에 지났는데도 아직 쿠로오는 현재진행중이었다. 도저히 켄마에게서 다른 이에게로 시선이 돌아가지 않았다. 자신을 바짝 말리고 있는 켄마가 뭐가 좋다고 자신이 이러고 있는 것인지.

 

쿠로오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4월, 고민이 휘몰아치는 벚꽃의 계절이었다.

 

 

 

 

 

 

 

 

 

 

-보쿠토 side

 

 

 

 

 

길을 걷다가 분명 입학식 날에 보았던 적이 있는 후배가 벤치에 드러눕듯 뻗어있는 것이 보였다. 여차하면 충분히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갈 수 있었지만 오히려 보쿠토는 그 후배를 발견한 순간, 자판기에서 음료를 두 개 뽑아들고는 다가가는 쪽을 택했다.

 

혹시 오다가다 만날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써두고 가지고 다니던 종이의 유무를 확인한 보쿠토가 얌전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잠들려는 후배의 뺨에 갓 뽑아와 생각보다도 차가운 음료를 갖다대었다. 음료의 차가움에 놀란 후배가 화들짝 놀라며 깨어나는 것을 보며 보쿠토가 웃었다.

 

생각보다 귀여운 후배인 걸.

 

이후 그 후배의 옆에 앉아서 조금 대화를 나누었다. 후쿠로다니에 대해 물었을 때 무엇을 본 건지 잠시 말이 없던 후배는 곧 나쁘지 않다는 대답과 함께, 벚꽃길이 마음에 든다고 말해왔다. 후배가 떠올렸을 입학식 날을 같이 떠올린 보쿠토가 웃으며 후배의 말에 긍정했다.

 

그 벚꽃을 보고 있으면 왜인지 시선이 떨어지지 않지. 나는 특히 그런 면이 더 두드러지니까.

 

 

 

“올해로 두번째면, 현재 2학년인가요?”

“맞아. 올해로 2학년이지.”

“선배셨네요.”

 

 

 

이어진 대화에서 보쿠토는 생각보다도 이 후배가 더 담백하다는 것을 알았다. 생김새에서 어느 정도 유추해보기는 했지만 단정한 느낌이었지, 담백할 줄은 몰랐던 터였다. 보쿠토는 점점 더 이 후배가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나 너처럼 담백한 녀석 처음 봐. 그래서 재밌어.”

 

 

 

그 말은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다. 후배의 반응은 어딘지 멈칫거리는 곳이 있었지만 보쿠토는 신경쓰지 않았다. 이 후배가 외로운 것을 감추고 있다는 것은 첫 만남에서 알았다. 같으니까 알 수 있었다.

 

외로움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그 외로움의 깊이는 같을 것이라고 보쿠토는 감이지만 알 수 있었다. 보쿠토가 교정의 벚꽃길을 좋아하는 것은 그 외로움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곳에 똑같이 외로운 후배가 나타난 것이다.

 

보쿠토는 이것이 나름의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후배는 이름이 어떻게 되나?”

 

 

 

그 물음은 순전히 호의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기특하게도 후배는 그 질문을 따로 이상하게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곧 서로 통성명을 하면서 보쿠토는 후배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아카아시 케이지. 아카아시구나. 곧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전해줄 메시지를 제가 앉았었던 자리에 놓으며 <고민상담해결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결정은 어디까지나 아카아시의 몫이었다. 거기까지 참견할 권리는 보쿠토에게 없었다.

 

아카아시를 벤치에 남겨두고 그 곳을 벗어난 보쿠토는 이제는 제 나름의 보금자리가 되어버린 <고민상담해결소>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원래 보쿠토는 부활동에 가려고 하던 도중이었던 것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현재 있는 멤버들이 보쿠토를 반겨주었다.

 

아카아시가 찾아온다면, 여기가 보금자리가 되어줄 거라고 보쿠토는 생각했다.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4월, 벚꽃에 생각을 담은 날이었다.

 

 

※ 1년 전 시점의 이야기를 다루는 외전입니다(현3학년이 2학년, 현2학년이 1학년 갓 입학한 시점)

※ 이번 편은 켄마와 아카아시의 이야기로, 본편과 연관성이 있는 외전입니다

 

 

 

 

 

 

 

 

 

 

-켄마 side

 

 

 

 

 

“후-”

 

 

 

이제 제법 따뜻해졌지만 아직 아침저녁으로는 좀 쌀쌀함은 남아있어 켄마는 일찍 집을 나서며 손을 모아 입김을 불었다. 잠깐뿐이겠지만 손이 약간 따뜻해지는 게 느껴졌다. 오늘은 나름 켄마에게 중요하다면 중요한 날이었다. 그도 그럴 게 오늘은 켄마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그 첫 날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사 놓았던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입학식이지만 가방을 메고 걸음을 재촉하던 켄마가 몇 걸음 걷지도 않고 문득 멈춰섰다. 켄마는 가만히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켄마의 바로 옆집으로 그 집에는 켄마에게 있어서는 오랜 소꿉친구인 쿠로오의 집이었다.

 

켄마보다 한 살이 많은 쿠로오는 항상 켄마보다 무엇이든 먼저 경험하면서 켄마가 올 1년동안 기다려주고 있었다. 사교성이 적은 켄마에게는 쿠로오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마치 켄마가 넘어지지 않고 똑바로 올 수 있게 길을 다져놓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후암.”

 

 

 

그런 의미에서 말하는 거지만 오늘만큼은 옆에 쿠로오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입학식 날에는 먼저 입학해 재학생 칭호를 달고 있던 쿠로오가 신입생들을 맞아주어야 한다며 좀 더 일찍 가서 학교로 찾아올 켄마를 기다리고 있고는 했다.

 

그런 쿠로오 탓에 켄마도 평소에 아침잠이 많아 일어나기 힘들어 하면서도 각 학교에 입학하던 입학식 날만큼은 졸린 것을 떨쳐내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쿠로오를 보러 좀 더 일찍 집을 나서고는 했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고, 아마 그것을 쿠로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쌀쌀한 날씨에 손이 시려워지자 켄마가 교복 위에 걸치고 나왔던 외투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손에서 걸리는 무언가. 그것을 꺼내든 켄마가 얌전히 접혀있던 것을 펼치자 작은 학교 안내 팜플렛이 시야에 들어왔다. 쿠로오가 1년 전에 건네주었던 것이었다.

 

본래 켄마는 선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작년에 쿠로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었는데, 그 이유가 쿠로오와 켄마가 입학한 학교에는 다른 3개의 학교가 함께 옹기종기 모여 부지 안에 총 4개의 학교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 폭이 넓었던 켄마였지만.

 

쿠로가 있는 곳이 내가 있을 곳인 걸.

 

켄마는 쿠로오가 그 팜플렛을 건네주면서 해주는 각 학교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이미 머리 한구석에서는 그런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그리고 쿠로오가 먼저 간 네코마에 입학하기 위해 중학교 3학년이었던 켄마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켄마도 네코마에 입학했다.

 

 

 

 

 

*

 

 

 

 

 

졸음을 매단 켄마가 이제부터 다니게 될 고등학교가 있는 교문 앞에 다다랐을 때에는 신입생을 맞이할 재학생처럼 보이는 이들은 있었지만 갓 입학한 신입생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켄마는 평소라면 생각 못할 정도로 일찍 나왔던 것이다.

 

그나저나 쿠로는 어디 있지.

 

교문의 주위에 모여 있는 각각의 교복을 입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쿠로오를 찾기란 꽤나 어려웠다. 게다가 켄마는 기본적으로 타인과 눈을 마주치는 일이 극단적으로 적은 탓에 켄마가 먼저 쿠로오를 찾기란 꽤나 요원해 보였다. 켄마가 그렇게 눈을 굴리고 있을 때였다.

 

켄마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이가 있었다. 켄마보다 키가 큰 후쿠로다니 학생이었다. 입고 있던 교복으로 그것을 알아본 켄마는 그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평소의 켄마라면 좀처럼 생각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아니 ‘읽을 수 있기에’ 시선이 향한 것이다. 그 학생은 성큼성큼 걸어 학교 안쪽으로 들어갔다.

 

특이하네.

 

그 학생과 나중에 만나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켄마는 다시 쿠로오를 찾는데에 집중했다. 키도 큰 주제에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여기 없는 걸까. 그 특이한 닭벼슬 머리는 눈에 안 띌래야 안 띌 수가 없는데. 결국 켄마가 쿠로오를 찾는데에 지쳐 먼저 들어가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 켄마!”

 

 

 

켄마가 찾던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주자 저 앞쪽에서 교문 앞에 서 있던 켄마쪽을 향해 쿠로오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 뒤쪽에서 타교의 교복을 입은 누군가가 쿠로오를 부르는 것 같았지만 쿠로오의 시선은 켄마에게 고정된 채였다.

 

 

 

“쿠로.”

“미안미안. 여기서 켄마를 기다리려고 했는데, 조금 일이 있어서 안쪽에 있을 수밖에 없었어.”

“괜찮아.”

“일찍 나왔을 텐데, 졸리지 않아? 괜찮아?”

 

 

 

쿠로오의 걱정에 켄마는 쿠로오를 올려다보았다가 눈을 내리깔며 머리를 두어번 끄덕였다. 조금 졸리긴 했지만 살짝 찬 바람 덕분에 졸음은 어느 정도 가신 뒤였다. 그래. 다행이네. 긍정에 쿠로오가 웃으며 켄마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 슬슬 쓰다듬었다. 켄마는 그저 눈을 굴리고 있었다.

 

 

 

“쿠로-오!”

“아.”

“뭐하는 거야! 우리 아직 해야할 거 많거든?!”

 

 

 

그러던 와중 낯선 인물이 다가왔다. 켄마가 확인한 상대의 교복은 세이죠였다. 새하얀 흰색 마이가 눈에 확 띄었다. 켄마가 눈을 올려 상대의 얼굴을 잠깐 확인하는데, 그들에게 다가왔던 켄마가 모르는 타교의 인물이 쿠로오의 옆에 있던 켄마를 발견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잠시간 켄마와 상대의 시선이 맞닿았다.

 

 

 

“쿠로오, 누구?”

“아아, 이쪽은 코즈메 켄마. 내 소꿉친구이기도 하지.”

“흐응? 소꿉친구, 말이지.”

 

 

 

상대의 궁금증에 쿠로오가 켄마를 소개했다.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은근히 까다롭게 사람을 가리는 편인 쿠로오가 켄마를 소개하는데에 아무런 저항이 없자 켄마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약간 솟아올랐다. 쿠로오의 소개에 다시금 시선이 켄마에게로 돌려졌다.

 

 

 

“켄마, 이쪽은-”

“아아, 됐어 됐어. 내가 직접 할 테니까.”

“그렇다면야 뭐.

 

 

 

쿠로오가 켄마에게 상대를 소개해주려는데 상대쪽에서 먼저 가볍게 손을 흔들며 만류했다. 얼마 보지는 않았지만 행동 자체는 가벼워 보였다. 살랑살랑. 하지만. 켄마는 자신을 바라봐오는 상대의 시선에서 묘한 감각을 받았다. 왜인지 육식이나 잡식과 앞에 놓여져 있는 초식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켄마 자신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나는 오이카와 토오루! 쿠로오와는 부활동의 동료일까? 응, 그런 거라고 받아들여주면 고-맙겠어.”

 

 

 

느슨해보이지만 의외로 빈틈이 없는 사람. 그것이 켄마가 오이카와에게서 느낀 첫 감상이었다.

 

오이카와의 그 시선은 켄마를 볼 때 뿐만이 아니라 쿠로오에게도 향했는데, 쿠로오는 그 이유를 알고 있는지 별달리 거기에 대해서 터치하지는 않았다. 오이카와는 잠시 쿠로오와 켄마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무언가 생각하는지 눈을 굴렸다. 얼마 되지 않아 한쪽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고쳐들며 오이카와가 말했다.

 

 

 

“켄마는 이번 신입생이지?”

“그렇지.”

“그럼 역시 쿠로오 네가 안내해. 켄마로서도 아마 아는 사람이 안내해주는 게 안심될테구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뒤돌아 학교 쪽으로 들어가려는 오이카와였다. 그리고 저 앞쪽에서 누군가를 발견했는지 오이카와가 뛰기 시작했다. 이와쨩! 오이카와가 누군가를 부르는 듯 하자 저 앞에서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듯했던 이의 시선이 오이카와를 향해 돌아갔다. 쿠소카와!

 

곧 다가온 오이카와를 향해 그렇게 말하며 사정없이 한 대 후려치는 또 다른 상대방에 오이카와가 얻어맞은 등에 손을 얹으며 아파 이와쨩! 거리며 징징거렸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보고 있던 쿠로오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어쩔 수 없는 녀석들 같으니라구.

 

 

 

“쿠로.”

“왜, 켄마?”

“오이카와상은 뭐랄까,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이네.”

“그렇지? 하여간 특이한 녀석이야.”

 

 

 

켄마의 말에 긍정하며 쿠로오가 눈을 굴렸다. 그렇지만 켄마가 어떻게 느꼈든간에, 나쁜 녀석은 아니니까. 쿠로오의 말에 켄마의 시선이 쿠로오를 향했다. 알고 있었어? 모를 수가 없지. 그렇지만 정말 악의는 없으니까. 이어지는 쿠로오의 말에 켄마가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특이하다고 하니까.”

“응?”

“쿠로가 오기 전에, 그런 특이한 사람 한 명 더 발견했었어.”

“정말? 누구?”

“후쿠로다니 교복이었는데, 나랑 같은 이번 신입생 같았어.”

 

 

 

입학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신입생 맞을 거야. 켄마의 말에 쿠로오가 머리를 긁적였다. 켄마 네가 신입생이라고 알았다면 보쿠토 녀석은 아닌가보네. 쿠로오의 말에 켄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쿠토? 응. 보쿠토 코타로라고 하는 녀석이 있어. 후쿠로다니야.

 

 

 

“후쿠로다니.”

“그 녀석이랑 나, 그리고 아까의 오이카와, 오이카와가 이와쨩이라고 부르던 이와이즈미. 이렇게 넷이서 지금의 부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동료지.”

“부활동? 그러고보니 나 쿠로가 하는 부활동에 대한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

“아아. 그도 그럴 게.”

 

 

 

이번의 부활동은 ‘특이’의 범주에 들어가니까 말이야. 인상을 쓰며 그렇게 말하는 쿠로오에 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았다. 이해력이 빠르고 눈치도 일반인보다 월등히 빠른 켄마가 쿠로오의 말 속에 숨겨진 뜻을 못 알아들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거, 사실?”

“의심의 여지 없이 진실.”

 

 

 

켄마의 확인을 요구하는 말에 말을 돌려주며 쿠로오가 말했다. 잠시 지금의 상황에 멍때리던 켄마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슬금슬금 쿠로오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쿠로 진짜 괜찮은건가. 그런 켄마를 알아챈 쿠로오가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괜찮아.”

“하지만 쿠로. 쿠로는,”

“정말 괜찮아 켄마. 녀석들의 ‘특이’에 대해 전부 전해듣고 결정한거야.”

 

 

 

쿠로는 쿠로의 ‘특이’를 싫어하잖아.

 

켄마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쿠로오가 먼저 선수치듯 말했다.

 

어떻게 안 건지 오이카와가 먼저 다 떠벌리면서 권유했거든. 그 옆에서 경악하던 보쿠토의 표정을 켄마 네가 봤어야 했어. 이와이즈미는 그런 오이카와에 완전히 체념한 듯 헀고. 이어지는 쿠로오의 말에 켄마가 눈을 깜박였다. 그럼 쿠로가 제일 늦게 합류했어?

 

 

 

“내가 제일 늦었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동시라고 하는 게 좋고, 보쿠토를 끌어들인 뒤 나한테 왔거든.”

“저기, 쿠로. 오이카와상과 이와이즈미상을 한 세트처럼 묶고 있는데, 정확히 어떤 관계야?”

“그 녀석들? 우리랑 같은 소꿉친구 관계라던 걸. 유치원 시절부터 줄곧 함께였다고 했어.”

“소꿉친구.”

 

 

 

켄마는 아까 전 쿠로오가 오이카와에게 자신을 소개했을 때 내보였던 오이카와의 반응을 생각했다. 흐응? 소꿉친구,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오이카와의 시선은 켄마가 정의 내렸던 것과는 살짝 달랐다. 의미심장한 것은 같았으나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달랐다.

 

그 때는 무슨 감정으로 켄마를 봤던 것일까.

 

 

 

“켄마. 쌀쌀하니까 핫초코 하나씩 받자.”

“응.”

 

 

 

쿠로오를 따라 교문 한 켠에 있던 핫초코를 가져갈 수 있는 부스로 가서 하나씩 잡아들었다. 찬 바람에 일부 얼었던 손이 따뜻한 핫초코의 열기에 점차 녹아갔다. 추위가 한 층 물러가는 느낌에 켄마가 핫초코가 든 종이컵 채로 한차례 몸을 떨었다. 따뜻해.

 

양 손으로 종이컵을 쥐고 있던 켄마가 핫초코를 한 모금 입안에 머금었다. 몸이 녹아. 노곤노곤해. 그런 켄마에게 시선을 주며 자신의 핫초코도 한 입 마신 쿠로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켄마랑 같이 구경할만한 게 어디에 있으려나.

 

 

 

“여튼, 켄마가 일찍 온 만큼 둘러볼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 가 볼까?”

“아, 응.”

 

 

 

쿠로오가 학교 구경을 시켜주려는지 켄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켄마는 당연하게 내밀어진 쿠로오의 손을 잡았다. 설렘과 불안이 공존하는 고등학교 생활이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켄마는 이후 상황이 어떻게 변할 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지금은 봄이었다.

 

 

 

 

 

그리고 켄마가 쿠로오의 안내에 교문 안으로 들어서던 시간보다 빨랐던 그 때.

다른 쪽에서, 또 다른 하나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4월, 아직 벚꽃은 지지 않았다.

 

 

 

 

 

 

 

 

 

 

-아카아시 side

 

 

 

 

 

“오늘이구나.”

 

 

 

오늘은 아카아시가 후쿠로다니에 입학하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아카아시는 그 사실이 기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조금 회의적이었다. 아니 조금 많이. 그 이유는 다른 누구보다도 아카아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후쿠로다니는 아카아시 본인이 원한 학교였다.

 

그런데 그런 후쿠로다니에 다닐 수 있게 되었는데도 기쁘지 않은 것은 어쩌면. 아카아시는 방을 나와 집안을 둘러보았다. 집안은 아카아시를 제외하고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현재 아카아시가 생활하는 이 집은 아카아시 명의로 된 집이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자취였다.

 

사람의 온기가 잘 닿지 않는 집은 서늘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아카아시는 본인의 특이성 때문에 그것을 더욱 극대화하며 느끼고는 했다. 이 집에도 나름 누군가가 있기는 했다. 단지 살아있지 않을 뿐. 아카아시는 이 집에 있는 유령을 보았다. 아카아시의 눈에는 살아있는 사람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할아버지, 오늘 입학식이에요. 저도 이제 고등학생이네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아카아시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유령은 아카아시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가 있는 곳을 향해 꾸벅 인사하며 아카아시가 집을 나섰다. 등 뒤에서 할아버지가 아카아시를 배웅해 주었다. 아카아시는 할아버지가 짓는 안쓰러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걸음을 서둘렀다.

 

할아버지께는 참으로 죄송스러웠다. 아카아시의 특이성 탓에 옆에 있어줄 수 있었으나 결코 아카아시에게 간섭할 수는 없었다. 아카아시가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를 한 아카아시를 따라왔다. 혼자 있을 아카아시가 걱정된 것이었겠지만.

 

그 탓에 아카아시가 더욱 혼자라는 것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아직 동이 떠오른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학교를 향해 걷는 길가에는 사람들이 얼마 없었다. 그걸 노리고 일찍 나온것도 있었지만. 아카아시는 무언가에 쫓기듯 서둘러 걸었다. 그렇게 얼마동안 걷자 저 멀리 교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문을 확인한 아카아시의 발걸음이 차츰 느려졌다.

 

역시 많네.

 

이른 시간인데도 부지런하기도 하지. 아카아시는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아카아시의 눈에는 사람과 다름없는 이들이 주위에 널려있었다. 이런 상황에는 역시 무시가 제격이었다. 아카아시는 그들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으며 교문을 향해 걸어갔다.

 

 

 

“…….”

 

 

 

그렇게 아카아시가 교문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교문 앞쪽에 가만히 서 있는 누군가가 얼핏 아카아시의 눈에 띄였다.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에 살아있는 사람임을 알아차린 아카아시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며 슬쩍 확인했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지 머리를 숙인 채로 눈을 굴리는 소년이었다.

 

아카아시는 그 소년에게서 어떤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카아시는 몰랐다. 아카아시의 주위에는 아카아시와 같은 특이성을 가진 사람이 없었기에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아카아시가 교문 안으로 들어가 후쿠로다니가 있는 곳으로 가던 와중 그 곁을 지나가는 이가 한 명.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는 것에 저도 모르게 시선이 돌아간 아카아시는 곧 자신이 시선을 주었던 그 소년에게 다가가는 이를 볼 수 있었다. 소년 뿐만 아니라 그 옆의 인물도 아카아시 입장에서는 어떤 느낌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알지 못하는 이상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아는 아카아시는 별 미련 없이 발을 돌렸다. 후쿠로다니를 향해 가면서도 아카아시는 그 두 명이 신경 쓰였다. 왜 이러지. 이런 적이 없는데. 언제나와 같은 표정이었지만 아카아시는 처음 겪는 일에 내심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휘둘리며 후쿠로다니로 가는 교정에 다다랐을 때였다.

 

 

 

“아.”

 

 

 

아무런 감탄사가 느껴지지 않는 놀람 뒤에는 작은 두근거림이.

 

후쿠로다니의 교정 앞에는 벚꽃나무가 길게 늘어서있는 벚꽃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벚꽃나무 아래에서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는 이가 한 명.

 

만개한 벚꽃 아래에서 그 인물은 웃고 있었다.

 

얼굴 위로 얌전히 내려앉은 검은색이 섞여있는 회색 머리와 함께 그 표정이 아카아시의 시야 안에 한 눈에 들어왔다. 원래라면 조금 더 컸을 눈을 반쯤 접은 그 눈동자가 오히려 더 반짝거렸다. 얼굴에 매단 웃고있는 입매는 어딘가 개구쟁이처럼 보이게 했다.

 

누군지 알지 못하는 그 인물은 나무 가득 피어난 벚꽃이 사랑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한가득 짓고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순간 넋 놓고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카아시를 혼란스럽게 했던 두 사람에게서 느꼈던 느낌이 이 순간만큼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화폭에 넣어놓으면 꽤나 멋들어질 것 같단 생각이 문득 치고 올라왔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아카아시는 급하게 주머니를 뒤져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카메라 기능을 키고 눈 앞의 장면을 화면 안에 담아냈다. 찰칵. 세로로 찍었던 아카아시는 생각했다. 한 장 더 찍자. 찰칵. 이번에는 벚꽃길과 그 뒤의 후쿠로다니 학교의 일부분도 함께 들어오도록 찍었다.

 

지금의 광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스마트폰의 사진을 빤히 보던 아카아시는 세로로 찍었던 사진을 충동적으로 배경화면으로 지정했다. 한 벚꽃나무와 그 아래 있는 누군지 모를 후쿠로다니 사람. 하지만 아카아시의 예상대로 굉장히 느낌이 좋았다.

 

어느새 아카아시의 안에서 회의적이던 감정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기대감이 채웠다.

 

 

 

“괜히 다가가서 날 발견하면 저 분위기가 깨질 것 같네.”

 

 

 

괜히 방해하고 싶지 않은 아카아시는 어렵지 않게 결정을 내리고 몸을 돌렸다. 아직 시간도 이르니 조금 더 다른 쪽을 둘러보고 오는 게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카아시는 왔던 길을 일단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근데 왜인지 조금 아쉬운 걸.

 

문득 드는 아쉬움에 아카아시가 한쪽 뺨을 긁적였다. 나는 그 사람이 자신을 눈치채주기를 바란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아카아시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럴리가 없지. 무엇보다도 전혀 모르는 타인이잖아.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며 아카아시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계속 뒤를 돌아보고 있다는 것을 아카아시는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벚꽃나무 아래에서 활짝 핀 벚꽃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보쿠토는 문득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끝에는, 뒤도는 누군가의 모습이. 금방 뒷모습만 보이게 되었지만 슬쩍 보였던 얼굴이 보쿠토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외로운 아이네. 보쿠토는 가만히 생각했다.

 

우리 학교인 걸 보니 이번 신입생인 듯 싶은데, 우리쪽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걸. 감이 누구보다도 좋았던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그들과 같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챘다. 그리고 보쿠토는 학교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노래처럼 흥얼거렸다.

 

보쿠토치고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가사였다.

외로운 아이야. 외로운 아이야. 너는 누구니.

 

 

이후, 아카아시만 기억하는 진짜 첫 만남이었지만, 사실은 보쿠토도 아카아시를 발견했다는 작은 비밀 이야기.

 

1. 회복한 오이카와

 

 

 

 

 

“오, 정말 멀쩡해졌네?”

“앗. 맛층, 맛키! 어서 와아~”

 

 

 

마츠카와와 하나마키가 오이카와의 반에 들어섰을 때 보인 것은 본인의 책상 위에 걸터앉아서 반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그들을 발견한 오이카와였다. 정말 반갑다는 듯이 생글 웃으며 손을 흔들며 반기는 오이카와에 서로 마주본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오이카와 토오루는 기본 이런 녀석이었다.

 

 

 

“그제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더니?”

“에헷☆”

“에헷☆은 무슨 놈의 에헷☆이냐. 그러다 이와이즈미한테 맞는다?”

“이와쨩한테는 이미 맞았어! 맛층은 오이카와상이 또 이와쨩한테 맞았음 좋겠다는 거야?”

 

 

 

가볍게 놀려먹는 마츠카와에 오이카와가 망충한 표정을 지으며 에헷☆거렸다. 그에 마츠카와가 이와이즈미를 들먹이며 놀리자 오이카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술을 삐죽대고는 툴툴거렸다. 그런 오이카와의 어린 반응에 하나마키가 한숨을 내쉬었다. 불쌍한 이와이즈미.

 

 

 

“이와이즈미의 고생을 알아야 해.”

“나도 알아! 이와쨩이 나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거! 나도 매번 이와쨩 고생시키는 거 안다고!”

 

 

 

하나마키의 말이 오이카와 안의 어떤 스위치를 건들였는지 오이카와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그런 오이카와의 반응에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는 잘못 건들였음을 알았으나 오이카와는 무언가 억울한지 계속 목소리를 키우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오이카와?”

“나도 이와쨩한테 면목 없다는 거 아는데….”

 

 

 

중얼거리던 오이카와의 의식이 어제로 날아갔다. 아카아시가 제법 일찍 일을 해결한 것 치고는 오이카와는 그 날 저녁이 다 되어서야 이와이즈미의 집의 이와이즈미 본인의 방 안에서 눈을 뜰 수 있었다. 눈을 뜬 게 오랜만이라는 듯 조금 뻑뻑한 느낌에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이와이즈미의 침대 위에 얌전히 누워있던 오이카와의 위에서 이와이즈미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침대 옆에 서서 오이카와의 얼굴 위로 머리를 숙인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 더 시선을 마주본 채로 눈을 두어번 더 깜박이던 오이카와가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이, 이와쨩. 에헤, 오랜만. 하하.”

“이제 일어났냐.”

“으응.”

 

 

 

일어났으면 됐다.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쓰는 이와이즈미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잠을 못 잔 듯 피곤이 내려앉은 얼굴과 붉게 충혈된 눈이 그제야 오이카와에게 보였다. 눈을 굴리던 오이카와가 곧 깨달은 듯 이와이즈미의 침대 위에서 내려와 떨어져 있던 이와이즈미의 팔을 잡고 끌었다.

 

밀듯이 눕혀 오이카와가 누워있던 자리에 이와이즈미를 눕힌 오이카와는 그제야 만족한 듯 웃었다. 그런 얼굴을 보던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에 이게 아닌가. 아니야 이와쨩 잠 안 잤을 게 분명하니까 이게 맞아. 오이카와가 스스로 자문자답하고 있을 때였다.

 

 

 

“기력 보태고 있었지 너.”

“엣.”

“모든 거 알고 오늘까지라고 한 거지.”

“…….”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그런 오이카와를 올려다보던 이와이즈미가 눈을 감았다가 뜨며 피곤함을 애써 한 층 무시하고는 입을 열었다. 오이카와는 이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말리지 않았다. 막고 싶지도 않았지만.

 

 

 

“네가 모르는 게 있을 리 없잖아.”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는 웃었다. 그저 웃었다. 양 입꼬리를 올려 미소처럼 보일 그것을 유지한 채 이와이즈미를 바라봤다. 이와이즈미는 그런 오이카와를 보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여기선 언제나처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나. 그렇게 이와이즈미가 생각했을 떄였다.

 

 

 

“응, 맞아.”

“어?”

“맞다고, 이와쨩. 내가 긍정하길 바란 거 아니었어? 언제나처럼의 회피가 아니라.”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말이냐? 이와이즈미의 표정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음을 알아챈 오이카와가 이번에도 웃었다. 변하지 않을 것처럼 웃던 올라간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와 오이카와에게서는 낯선 무표정이 얼굴 위에 자리하는 것을 이와이즈미는 똑똑히 보았다.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이걸’ 가지고 있는 이상, 내가 모르는 건 있을 수 없는 걸.”

 

 

 

낯설은 것이 분명한 오이카와의 무표정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이와이즈미는 낯설다고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언젠가의 기억 속의 오이카와도 무표정이었으니까. 바로 지금의 이 무표정. 오이카와가 진짜로 감정을 숨기고 싶을 때 짓던 표정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마 지금은 울음이겠지.

 

 

 

“오이카와.”

“그래서였잖아? 보쿠토와 쿠로오를 찾아낸 것도.”

 

 

 

‘이거’ 때문이었지. 오이카와가 잠시 실소를 머금었다가 다시 무표정으로 무장했다. 이와이즈미는 이틀 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 해야 했다. 왜 너냐. 어째서 너여야만 했던 거냐. 오이카와가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곳은 서로의 집 뿐이었다.

 

 

 

“이와쨩의 생각대로, 나 다 알고 있었어.”

“오이카와.”

“기력 보탠 것도 맞아. 내 기력을 소모해서 휘말려버린 두 사람을 죽지 않게 막고 있었어.”

“…….”

“내가 눈에 띄여버린 탓에 불행하게 말려든 거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

“이와쨩이 나 걱정해줄 것도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 언제나 이와쨩은 나 때문에 휘말렸으니까 뭐라고 할까.”

“오이카와.”

“응. 그거다.”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면서 머리를 숙여버리는 바람에 오이카와의 표정을 알지 못하게 된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부른 순간, 뭔가 혼자서 납득했는지 이와이즈미를 보는 오이카와였다. 드러난 오이카와의 표정에 이와이즈미가 무언가를 감지하기도 전에 침대에 달라붙은 오이카와가 한 발 빨랐다.

 

 

 

“이와쨩한테 면목 없는 걸.”

 

 

 

오이카와의 말에 순간 힘이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짜증이었다. 침대 위에 팔을 놓고 얼굴을 댄 채로 이와이즈미를 보고 있는 오이카와를 향해 베고 있던 베개를 집어 그 얼굴을 향해 날렸다.

 

 

 

“뭐야 이와쨩!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어!”

“이 쿠소카와가! 그딴 데에 신경쓸 시간 있으면 걱정할 일을 만들지를 말던가!”

“나도 이와쨩 걱정시키고 싶지 않은데 상황이 그렇게 안 돌아가잖아!”

“그리고 심각한 얘기하다가 왜 그리로 튀는 건데! 논점이 어긋나잖아!”

“그렇지만 오이카와상은 기본적으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분위기 싫어하는 걸!”

 

 

 

결국 그 이후 그대로 헤어져버렸다. 아아 이와쨩 너무해. 오이카와상은 오이카와상 나름대로 이와쨩을 걱정해서 한 말인데. 이와쨩에게 면목 없는 건 진짜인데. 오이카와상의 진심을 이와쨩이 무시해버렸어. 그리하여 오늘 아침에도 따로따로 온 상황이었다. 이와쨩 미워!

 

오이카와의 반응에 마츠카와와 하나마키가 서로를 보며 머리를 저었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둘이 똑 닮았다니까. 마츠카와와 하나마키는 오이카와에게 오기 전에 이와이즈미의 반을 보고 온 참이었다. 머리를 감싸쥐며 끙끙 앓던 이와이즈미를 본 둘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뭐, 이와이즈미도 알기야 하겠지. 너희 인연 질기잖냐.”

“그래그래.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면서.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오이카와.”

“뭐야, 맛층, 맛키. 너희가 그렇게 반응해서 닭살 돋았잖아.”

 

 

 

진심으로 충고해줬더니 나온 격한 반응에 마츠카와와 하나마키의 정의의 철권이 오이카와의 머리 위에 사이좋게 떨어졌다. 악! 아프잖아! 맛층, 맛키, 뭐하는 거야! 셔럽. 입 다물어, 오이카와. 징징거리는 오이카와에 자비 없는 하나마키와 마츠카와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는 그들 나름대로 화해했다.

 

오늘도 평화로운 세이죠 3학년들이었다.

 

 

 

 

 

 

 

 

 

 

2. 부실에서

 

 

 

 

 

“할로, 모두!”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부실에서 오이카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이 꽤나 오랜만이라고 생각되었다. 히나타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오이카와를 반겼다. 오이카와상! 정말 다 나았네요! 안녕, 치비쨩. 당연히 다 나았지! 오이카와상은 무적이에요?

 

 

 

“무적은 무슨, 일이나 안 키우면 다행이지.”

“뭐야 이와쨩! 내가 일부러 키우는 것도 아니고, 먼저 사건에 말려들어간 적은 없잖아!”

“한 번 빼고.”

“윽. 그래, 한 번 빼고.”

 

 

 

평소와 같이 나누눈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의 만담 아닌 만담에 겨우 모두의 얼굴에서 안도가 스쳤다. 자신들이 아는 오이카와였다. 기본적인 그들의 생활 리듬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모두들 각자의 일을 하며 평소처럼 지내려던 와중이었다.

 

 

 

“이번엔 크게 신세졌으니까! 모두 뭔가 먹고 싶은 거 없어?”

 

 

 

오이카와의 한 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모두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오이카와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런 오이카와가 무엇을 할 지 눈치챈 이와이즈미가 바로 말했다. 난 당연히 튀김두부.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가 웃으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럼 전 간장달걀밥이요!”

“애플파이…….”

“어이, 그건 간식이잖아. 꽁치 소금구이.”

“그건 쿠로오 너도 별 다를 거 없네! 고기!”

“보쿠토상도 남말할 처지는 못 되네요.”

“그러는 아카아시는 뭐 먹고 싶은데?”

“…유채겨자무침이요.”

 

 

 

모두의 의견이 훌륭하게 갈리자 오이카와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폭소했다. 그러다 무언가에 생각이 미친건지 전원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알겠어. 나한테 맡기라구. 올라가 있어~ 오이카와는 그렇게 말하고는 1층 저 너머로 사라졌다.

 

 

 

“너희들 그거 아냐?”

“뭐를?”

“우리들, 먹고 싶은 음식 밥과 반찬, 그리고 간식으로 사이좋게 갈렸다.”

“에.”

“물론 그것들 전부 각자가 좋아하는 거지? 나도 그렇지만.”

 

 

 

어? 이와이즈미의 말에 모여있던 그들은 서로 시선을 맞추었다. 이와이즈미의 말대로였다. 그들이 말했던 음식들로 딱 한끼 식단처럼 만들 수 있을 법한 조합이었던 것이다. 우선은 오이카와의 말대로 올라가 있기로 했다. 오이카와가 향한 곳을 한 번 본 이와이즈미도 곧 올라갔다.

 

 

 

“완성~”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오이카와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익숙한 고기의 냄새에 보쿠토가 벌떡 일어났다. 고기! 오이카와가 들고 온 쟁반 위에는 주문했던 것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것에 모두의 시선이 오이카와를 향했다.

 

 

 

“어? 왜 그렇게 봐?”

“대체 어디서 만들었어?”

“1층.”

“뭐?”

“1층에 주방 있잖아. 거기서 재료 갖고서 만들었는데. 근데 잘 만들어진 건지 모르겠다. 뭐, 하기에는 고기가 제일 쉬웠지만. 굽기만 하면 되잖아?”

 

 

 

오이카와가 그렇게 말해도 얼떨떨하게 바라보는 모두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오이카와가 깨달은 듯 했다. 주방 있는 거 몰랐어? 여태까지도? 그에 일제히 긍정을 표하는 이들이었다. 이와쨩 모두 몰랐대! 그걸 어떻게 아냐. 기본적으로 우리 주방은 안 쓰잖아. 아.

 

 

 

“뭐, 이제라도 알았으면 됐지! 먹어 먹어!”

 

 

 

그렇게 오이카와가 재촉하는데 누군가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그 소리에 오이카와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는 확인했다. 뭔가를 확인하는 듯 이것저것 만지는 듯했던 오이카와가 막 먹으려는 멤버들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에 의문을 품는 멤버들을 보며 오이카와가 웃었다.

 

 

 

“뭐야, 뭔데.”

“갑자기 그렇게 웃지마. 불안하잖아!”

“무슨 일인데요.”

 

 

 

그들의 물음에 오이카와의 웃음이 더욱 깊어진다. 먹으려던 음식을 집어든 채로 바라보고 있는 멤버 하나하나의 면면들을 쭉 둘러본 오이카와의 시선이 히나타에게로 돌아갔다. 갑자기 자신에게로 향한 오이카와의 시선의 의미를 알 수가 없어 물음표를 띄우는 히나타였다.

 

 

 

“‘출장’이야. 치비쨩은 처음이지?”

 

 

시미즈는 갑자기 히나타들이 집으로 찾아와서 조금 놀라긴 했으나 그들의 목적-가보를 잠시 빌려간다는 것-을 밝히자 잠깐 망설이는 듯 했지만 흔쾌히 건네주었다. 시미즈는 가보를 건네주며 말을 덧붙였다. 지금은 부모님이 안 계시니까 괜찮은데.

 

 

 

“그리 긴 시간동안 빌려주지는 못할 것 같아. 오늘 중으로는 돌려주는 거지?”

“그렇게까지 시간을 잡아먹지는 않을 거예요. 늦어도 저녁 전까지는 돌려드리러 다시 올게요.”

“그래? 그렇다면 잘 부탁할게.”

“네.”

 

 

 

시미즈에게서 가보를 받아든 아카아시가 말했다. 그 길로 시미즈와 헤어지고 그들은 어디로 가야할지 장소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으나 배가 고파진 히나타가 굶주린 배를 쓰다듬으면서 잠시 종식되었다. 그런 히나타를 보던 아카아시가 한차례 화제를 전환했다.

 

 

 

“그럼 밥부터 먹고 시작할까요. 배고프면 의욕도 안 나는 법이니까요.”

“우우…. 죄송해요, 밥을 안 먹고 나왔더니 배고파요.”

“뭐, 그렇게까지 신경쓸 필요는 없는데. 우리도 일단 기본적으로 안 먹고 나왔으니까.”

“그럼 어디로 가서 뭘 먹을까나-”

 

 

 

아카아시의 말에 히나타가 눈을 반짝였다. 역시 아카아시상은 친절하고 상냥해! 타교이긴 하지만 아카아시상을 알게 된 데에는 정말 행운일지도! 갑자기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반짝거리는 눈빛에 아카아시가 조금 부담되는지 시선을 다른 쪽으로 슬그머니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켄마가 두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히나타는 기본적으로 1학년이고 막내니까 잘 챙겨줘야지. 곁에 다가온 켄마에 히나타가 여전히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켄마랑도 친구! 히나타가 조금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켄마를 끌어당겼다.

 

 

 

“켄마, 뭐 먹을…….”

“오? 뭐야, 무슨 일인데? 이야, 귀엽네- 응, 귀여워.”

 

 

 

평소 입이 짧은 켄마를 챙기려던 쿠로오가 뒤돌아보며 말하다가 굳었다. 그런 쿠로오의 옆에서 배를 채울 곳을 찾던 보쿠토가 그런 쿠로오의 반응에 뭔 일인가 하고 뒤를 돌아보고, 오? 하고 소리를 내더니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들고는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뒤쪽에서는 히나타가 양쪽에 켄마와 아카아시를 끌어당겨 그 사이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평소와 같지만 당황스러움이 드러나는 켄마와 아카아시 사이에서 히나타만 좋은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쿠토가 좋다고 사진 찍은 것이고.

 

 

 

“사이 좋네. 보기 좋은 걸.”

“하아.”

“켄마의 사교성 부족은 너도 알고 있잖아? 냅둬, 친해지게.”

“그건 나도 당연히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고 신경이 안 쓰이는 게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을 꾹 눌러참는 쿠로오였다. 그런 쿠로오를 옆에서 지켜보던 보쿠토가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켄마도 문제지만 네 놈도 만만찮게 문제 있다고는 생각 안 드냐? 보쿠토는 열리려는 입을 애써 닫았다.

 

 

 

“그러는 보쿠토, 너는 어떤데?”

“엉? 나 말이야?”

“넌 아카아시하고 어쩌고 싶은데?”

 

 

 

언젠가는 물어볼거라고 생각했던 물음에 보쿠토의 시선이 쿠로오에서 히나타에게 붙잡혀 있는 아카아시에게로 향했다. 히나타에게 잡혀 켄마와 함께 쩔쩔매지만 자연스럽게 어린 히나타를 배려해주고 있는 아카아시였다. 물론 그 쩔쩔맴은 겉으로 티가 나지 않지만.

 

 

 

“난 괜찮아.”

“괜찮다고?”

“나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어.”

 

 

 

그 시절에 비하면 기다리는 것쯤이야 별 거 아닌 일이니까. 보쿠토의 시선이 들려 아카아시에게서 넓게 펼쳐진 하늘로 돌려졌다. 보쿠토가 숨긴 말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챈 쿠로오였지만 굳이 터치하지 않았다. 자신도 멤버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들이 있었으니까.

 

<고민상담해결소>의 모두는 각자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 비밀이 있다. 그걸 알면서도 모인 멤버들이었다. 첫 시작은 오이카와, 뒤따르듯 이와이즈미가, 그리고 보쿠토, 쿠로오, 그렇게 1년. 아카아시, 그 얼마 뒤 켄마. 그렇게 1년. 그리고 올해, 히나타.

 

 

 

“보쿠토.”

“엉?”

“얼마 되지 않았지만 히나타가 들어왔잖아.”

“어엉.”

“나 생각한 적 있다. 히나타가 저렇게 보여도 뭔가 사연 있지 않을까 하고.”

“…….”

“우리들처럼.”

 

 

 

히나타에게 시선을 주다가 보쿠토를 보며 끝말을 내뱉은 쿠로오에, 보쿠토가 멀뚱히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도 생각했었냐. 나도 생각을 해봤었는데 말이지. 보쿠토의 말에 쿠로오가 피식거리며 웃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오이카와가 첫 스타트를 끊었지.

 

 

 

“오이카와 연쇄 작용이냐?”

“그게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들지? 켄마야 그렇다 친다고 해도.”

“여기서 히나타까지 사연이 있었다 같은 전개가 되면.”

“오이카와 퀄리티.”

 

 

 

푸핫. 본인이 먼저 오이카와 연쇄 작용이니 뭐니 말했지만, 보쿠토의 오이카와 퀄리티에 쿠로오는 참지 못하고 뿜었다. 맞는 말이잖냐? 뭐든지 스타트는 오이카와였잖아. 솔직히 나하고 널 끌어들인 것도 오이카와였잖아? 이어지는 보쿠토의 말에 쿠로오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2년 전, 현재 3학년인 그들이 아직 파릇파릇한 1학년이었던 시절. 타교였던 보쿠토와 쿠로오를 먼저 찾아왔던 것은 오이카와였다. 눈에 띄는 능력은 아니라 지켜보고 있었어도 알 수 없었을텐데 오이카와는 정확하게 보쿠토와 쿠로오에게 다가왔다.

 

 

 

‘안녕! 보쿠토 코타로 본인 맞지? 같이 부활동 해보지 않을래?’

‘쿠로오 테츠로, 맞지? 우리랑 같이 부활동 해보지 않을래?’

 

 

 

서로 그 무렵을 회상하고 있었는지 문득 시선을 돌리다 마주친 쿠로오와 보쿠토는 웃어버렸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었던 오이카와는 옆에 이와이즈미를 데리고 그들을 찾아왔다. 처음은 보쿠토, 그리고 이후 쿠로오를 찾아와 그렇게 말해왔다.

 

별 특징적일 게 없는 말이었지만, 오이카와는 타교인 그들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며 권유했다. 그게 조금 인상깊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순하게 웃는 오이카와의 표정은 덤으로 딸려왔다. 그 웃는 얼굴에 끌렸던 걸까, 아니면 어딘가 비슷한 상처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을까.

 

결국 각자 오이카와에게 권유받고 얼마 뒤, 그들은 <고민상담해결소>로 발걸음을 했다. 그렇게 2년.

 

 

 

“몰랐는데, 제법 시간이 지났네.”

“그러게. 우리도 이제 여름방학이 지나면 본격적으로 졸업반 취급이겠지. 쳇.

“아쉽지 않냐?”

“당연한 걸 묻지 마.”

 

 

 

너도 나도 아쉽기는 했던 거구나. 어쩐지 입 안에 감도는 씁쓸함에 쿠로오는 입술을 축였다. 그런 쿠로오를 보던 보쿠토도 아예 고개를 돌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정이 들었다는 것에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었다. 가져본 적이 없으니까 더욱.

 

 

 

 

 

*

 

 

 

 

 

집에 전화하고 온 이와이즈미는 옹기종기 붙어있는 세 사람과 그들이 보고 있는 쿠로오와 보쿠토쪽으로 시선을 주었다가 혀를 찼다. 애들이 끼어들 틈이 없잖냐. 아주 저들 세계에 빠졌어. 무엇 때문에 저렇게 된 것인지 눈치챈 이와이즈미가 후배들쪽으로 다가갔다.

 

 

 

“저 녀석들은 냅둬라.”

“아, 이와이즈미상. 오이카와상은요?”

“오늘까지는 충분히 버티려나보다. 정확하긴 하니까. 여튼 어여 배 채우고 시작하자.”

 

 

 

뭐 먹을테냐? 이와이즈미의 말에 히나타가 간단히 먹어요! 라며 눈을 굴리더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을 가리켰다. 저기서 먹어요! 확인한 이와이즈미가 가자며 앞장섰다. 가면서 쿠로오와 보쿠토를 툭툭 쳐 정신을 차리게 만드는 것은 덤이었다.

 

 

 

“어서오세요!”

 

 

 

점원의 말을 들으며 한쪽 구석자리로 향했다. 각자 먹고 싶은 걸 주문하고 결제한 뒤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카아시가 뭔가 눈치챘는지 그들이 앉아있는 자리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직 주문한 음식은 나오지 않은 탓에 모두의 시선이 아카아시를 향했다.

 

 

 

“잠깐만요.”

 

 

 

아무도 그들쪽으로 시선을 주지않음을 확인한 아카아시가 그렇게 말한 뒤, 시미즈에게 받은 뒤에 주머니에 넣어둔 가보를 꺼내 그들 사이의 탁자 위 한가운데에 그것을 놓아두었다. 들었던대로 시선을 잡아끄는 것 같다고 가보를 처음 보는 켄마와 보쿠토가 그렇게 생각했다.

 

얌전히 놓여있는 가보에 시선을 두던 아카아시가 슬슬 위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시미즈에게 받을 때까지만 해도 없었던 무언가가 아카아시의 눈에 명확하게 보이고 있었다. 어딘가 갔다온건가. 왜인지 화가 나 있는듯한 느낌인데. 뭐 상관없나. 차라리 이 참에 해결해버리지 뭐.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 주위를 살펴보는 악령에 아카아시가 집에서부터 준비해 온 부적 몇 개를 늘어놓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부적이었지만, 악령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부적에게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어떤 무형의 기운에 악령의 시선이 아카아시쪽을 향해 돌아갔다.

 

 

 

“……자, 놀아볼까.”

 

 

 

아카아시가 누구인지 알아챈 악령이 순식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난폭해지려는 순간에, 동요하지 않은 아카아시가 본인의 앞에 늘여놓은 부적 중 하나에 손을 대며 조금 위로 밀어놓는다. 아카아시의 손에 닿은 부적에서 옅은 빛이 일렁거리며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잠시 단절시켜 놓았어요. 아무리 날고 기어도 깨트리는 건 불가능해요.”

 

 

 

아카아시의 말에 온갖 흉포한 기운이 아카아시를 향해 살기를 내비쳤다. 그렇지만 아카아시는 표정에 일말의 변화도 없었다. 아카아시는 태어나면서부터 유령을 보면서 함께 자라온 아이였다. 착한 유령이든, 나쁜 유령이든 전부 보아왔고 그만큼 경험했다. 이런 것쯤이야 얼마든지 겪어봤다는 거다.

 

아카아시의 독단으로 지금 해결하는 거지만, 역시 처음 봤을 때보다 기운 자체가 강해졌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죄없는 사람들로 인해 강해진 힘.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이런 식으로 탈취하듯 빼앗는 것은 아카아시가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 탓에 아카아시는.

 

 

 

“난 궁금한 게 있어요. 처음에 했던 말, 그건 무슨 뜻인가요?”

 

 

 

분명히 이 악령은 말했다. 아카아시에게 이런 능력이 없었다면 결코 들을 수 없었던 말. 오이카와를 향해 던져졌던 말은 아카아시가 가장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왜인지 그것이 오이카와에 대한 의문을 푸는데에 아주 중요하게 작용할 것 같았다.

 

 

 

“오이카와상에게 분명 말했죠. ‘하계에 있을만한 것이 아닌 진귀한 것’. 당신이 기생하고 있던 시미즈씨의 가보를 말한 게 아니야. 분명하게 당신의 말은 오이카와상을 향해 있었어.”

 

 

 

말해요. 당신은 오이카와상의 무엇을 알고 있죠?

 

하지만 아카아시의 말은 악령에게 닿지 않았다. 다만 오이카와에 반응할 뿐이었다. 짜증과 분노로 인해 이성을 날려버리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혀를 차며 처음 발동했던 부적의 옆에 있던 다른 부적에 손을 대고 이번에도 조금 위로 밀었다. 두번째의 부적도 옅은 빛을 내며 빛났다.

 

 

 

“죄송하지만, 제 앞에서는 아무 소용 없어요. 강하게 나가는 것에는 취미가 없지만, 필요하다면 감수하고서라도 저는 합니다.”

 

 

 

제 능력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어요?

 

슬쩍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여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내뱉는 아카아시는 평상시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처음에 발동했던 부적 그 반대쪽의 또 다른 부적을 집고 밀어 올리며 아카아시 본인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악령을 향해 올려다보던 아카아시가 그대로 웃었다.

 

 

 

“나는요, 정말 왠만하면 넘어가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번은 안 될 것 같네요. 이미 많이 휘말렸으니까요.”

 

 

 

당사자인 시미즈씨, 오이카와상, 그리고 네코마 선생님 한 분과 후쿠로다니의 제 반 친구. 이 이상 방치해 놓기에는 뒤탈이 많을 것 같아서요. 오늘을 기한으로 시미즈씨와 오이카와상의 신변에 좋지 않은 일이 닥친다니까. 어쩔 수 없으니 해결해야죠.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이에요.”

 

 

 

보통이라면 모두의 앞에서 보여주겠지만, 제 분위기가 바뀌는 건 아무도 몰라요? 영광으로 아세요.

 

아카아시의 그 말을 끝으로 마지막 세번째 부적이 빛을 냈다. 그러자 연쇄 작용처럼 맨 처음의 부적과 두번째 부적이 서로 빛내는 것을 키우며 악령의 주위를 감싸듯이 둘러쌌다. 아카아시는 분위기가 바뀌어 있는 채로 웃었다. 물었던 것에 대한 대답은 듣고 싶었지만 아쉽네요.

 

막처럼 생긴 것에 갇힌 악령이 당황한 듯 했지만 여전히 빛나는 것을 멈추지 않는 부적에 의해 점점 눈부시게 빛나는 막이었다. 제가 고생한 분만큼 되갚아 드리는 거예요. 그렇게 말한 아카아시가 주머니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입 안에 넣었다.

 

 

 

-노릴거야…….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녀석도…….

 

 

 

이제 슬슬 악령과 이별을 할 타이밍이라 입 안의 사탕을 굴리며 아카아시가 손을 흔들던 와중이었다. 의식이 돌아오고 모든 게 끝날 때쯤 마지막으로 내뱉어진 말이 담고 있는 사실에 놀라서인지 아카아시는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뭐? 잠깐!

 

아카아시가 무언가 말하려던 도중 악령이 가둬져 있던 막이 폭발하듯 빛을 내뿜고는 사라져버렸다. 그러고나니 주위의 소리가 아카아시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일어난 적이 없던 아카아시가 자리에 서 있음에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분명 해결했음에도 찜찜함이 남은 아카아시가 자리에 털썩 앉으며 입 안에 아직 남아있던 사탕을 깨부숴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그러고 있던 와중에 각자가 주문했던 음식들이 나왔다. 앞에 놓여진 자신 몫의 햄버거의 포장지를 벗겨내 한 입 베어문 아카아시가 모두에게 알렸다.

 

 

 

“해결했어요.”

“언제?”

“방금 전에요.”

 

 

 

그럼 이제 오이카와상 낫는 거예요? 시미즈상도 문제 없고요? 아카아시의 말에 히나타가 다행이라는 듯이 물어오는 말에 긍정한 아카아시는 다시 한 입 베어물며 눈을 굴렸다. 아무래도 악령에게 들었던 것은 지금 당장은 비밀로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그런 찜찜한 말만 하고 사라져버려서 아카아시는 식사를 하면서도 도저히 먹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아카아시는 이와이즈미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고 있었지만 안심한 게 눈에 보이는데 굳이 말해서 뒷맛이 나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일단 말하지 말자.

 

 

오이카와는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곳을 벗어나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외부로 돌아갈 타이밍을.

 

하지만 외부 상황을 알고 싶다고는 하지도 않았는데 보여주는 것은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오이카와는 보는 사람도 없기에 마음껏 투덜거렸다. 순 제멋대로라니까. 그렇게 하다가 너 나한테 미움받는 수가 생긴다? 가볍게 협박도 해보았지만 변화는 없었다.

 

하여튼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째서 외부 상황을 보여주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여주는데 안 볼 수도 없는 것이라 결국 오이카와는 영상처럼 떠오른 그것을 향해 시선을 주는 수밖에 없었다. 아 이거 또 시침떼야겠네. 오이카와상은 아무것도 몰라요~

 

그렇게 외부의 상황을 영화를 감상하는 느낌으로 시청하고 있던 오이카와는 마지막의 아카아시와 이와이즈미의 대화에 경악했다. 아니 이와쨩! 내가 어디 있는지 비유를 그렇게 하면 어떻하라고! 아니 굳이 말하자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지만! 엄연히 다르지 않아?!

 

이와이즈미의 말에 아카아시가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했음은 분명했지만, 아니 그 비유도 맞으면서 틀리니까! 한 번 설명해주었던 것을 그렇게 말하면 어쩌나. 이와이즈미가 생각하기에 그 비유가 가장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오이카와는 예감했다.

 

내심 피곤해지겠네.

 

그리고 아카아시를 보내고 이와이즈미가 한 말을 전해들은 오이카와는 침묵했다. 이와쨩은 졸업 전에 전부 알려주고 싶은 거구나. 이와쨩이 그렇게 다짐한 것이라면, 오이카와상도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볼게. 여기는 솔직히 그렇게 하기 가장 편한 공간이기는 하니까.

 

이와이즈미가 자신을 본인의 집에 들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외부와의 영상은 끝났다. 내일까지 해결할 수 있으면 눈 뜨면 이와쨩의 방 안이겠구나.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오이카와는 눈을 감았다. 생각해봐야 할 것이 중대한 사안이라 고심해봐야 할 것 같았다.

 

잘 자 모두. 잘 자 이와쨩.

 

 

 

 

 

*

 

 

 

 

 

다음날이었다. 전 날 각자 나름대로 준비를 끝마치고 학교 교문 앞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휴일이라 교문도 학교도 닫혀있었지만 역시 모이기에는 학교가 제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등교하는 날이 아니니 각자의 옷은 평소와는 다르게 사복이었다.

 

 

 

“히나타가 집이 가장 멀던가?”

“아까 전에 톡 왔었는데 이미 절반쯤은 와 있었다고 했어요.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

“시미즈의 집, 히나타가 알아놨다던가?”

그 가보를 잠시 빌려야할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제 직접 물어봤다던데요.”

 

 

 

멤버로 받아들인 거 잘한 듯 싶어요. 아카아시가 그렇게 덧붙였다. 아카아시의 옆에서 대화를 나누던 보쿠토가 눈을 굴리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 히나타를 멤버로 넣자고 한 거, 아카아시였지? 그 보쿠토의 물음에 아카아시의 시선이 옆에 있는 보쿠토에게로 돌아갔다.

 

 

 

“뭐 히나타의 체질 문제도 있었지만, 이제와서 말해보자면요.”

 

 

 

느낌이었지만 히나타가 필요할 것 같았어요.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시선에 몇 번 눈을 깜박였다. 곧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울 듯한 보쿠토에 아카아시가 신발코로 바닥을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우리 모두에게요.

 

 

 

“히나타가?”

“보쿠토상은 느껴본 적 없어요? 히나타가 없었을 당시와, 히나타가 있는 지금.”

 

 

 

엄연히 분위기가 달라요. 그 전이 나빴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 놀랐거든요. 히나타가 부실에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변하는 게. 아카아시는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려 바닥을 치고있는 신발쪽을 내려다보았다. 저는 그런 거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뭐랄까, 생소했어요.

 

아카아시는 어릴 적을 기억한다. 아기 때부터 아카아시의 주변은 언제나 추웠다. 진짜로 추웠다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주변에서 부모님을 제외하면 따뜻한 것들이 없었다. 살아있지 않은 것들, 유령은 어디를 가든 언제나 아카아시의 주변에 널려있었다.

 

아기 때는 울었었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울던 아카아시 때문에 나름 걱정도 많이 끼쳤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아기 입장에서는 유령이 뭔지 모르니까 그저 차가운 투명한 것들이 자신의 주위에 한가득 있으니까 정체를 모르는 무언가라고 생각해서 더 울었던 것도 있었다.

 

자라면서 생각을 하고 사고를 회전시킬 수 있게 되면서는 더이상 울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자신이 보이지 않는 척을 하면 무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아카아시가 지금의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이 시절의 연장선이었다.

 

그리고 그건 아카아시가 그렇게 지내던 날 중 하루였을 뿐이었다.

 

 

 

“괜찮아.”

 

 

 

과거를 회상하고 있던 와중 들려온 보쿠토의 목소리에 차츰 의식을 현실로 되돌리던 아카아시였다. 보쿠토의 손이 아카아시의 머리 위에 얹어져서 슬슬 쓰다듬었다. 앞뒤 상황을 알 수 없는 아카아시가 나름 의문을 띄운 얼굴로 보쿠토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아카아시는 착한 아이인 걸!”

 

 

 

아. 설명할 수 없는 느낌에 아카아시의 몸이 떨렸다. 눈 앞에서 보쿠토가 웃고 있었다. 동그란 눈동자가 반쯤 접히고 그 안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를 반쯤 내보이며 웃는 모습이 개구쟁이를 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을 보고 있자니 묘하게 익숙했다.

 

아카아시의 머릿속 한 켠에서 한 장면이 저절로 떠올려지듯 생각났다. 아카아시는 저 웃는 얼굴을 본 기억이 있었다. 후쿠로다니 교정에서, 한가득 피어있던 벚꽃길 아래에서, 가만히 서서 올려다보고 있던─알지 못하던 누군가의 모습.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쓰다듬을 받으면서 조용히 굳었다. 그거 보쿠토상이었- 아카아시의 기억이 맞다면 보쿠토와의 첫만남은 아카아시가 기억하던 것보다 조금 더 앞이었다. 물론 아카아시 혼자만 기억하는 첫만남이었지만. 그 때의 인물이 보쿠토가 맞다면 보쿠토는 자신을 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상황도 알지 못하면서 아카아시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적절하게 말해온다. 그 점이 내심 치사하지만.

 

 

 

“전 어린애가 아니라구요, 보쿠토상.”

“그렇긴 하지만. 보통 아카아시는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아서 걱정이란 말이지!”

 

 

 

나라도 좋다면 얼마든지 응석부려도 좋다구? 받아줄테니까! 이런 게 선후배의 특권이지! 그렇게 덧붙이며 아카아시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리는 보쿠토였다. 간만에 선배다웠을까나? 보쿠토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선배 역할 해줘야겠지.

 

혼자 만족해하는 보쿠토와는 달리 아카아시는 다른 의미로 침묵했다. 보쿠토는 알지 못하고 한 말이었겠지만. 조금 아프긴 아프네. 아카아시는 보쿠토 모르게 가만히 손을 심장께에 대보았다. 보쿠토의 말이 콕 하고 박혀버린 것 같았다. 선후배의 특권이라. 그렇네, 선후배지.

 

각자가 느끼는 기분에 서로 다른 곳을 보고있던 것도 잠시, 곧 저쪽에서부터 쿠로오가 켄마의 손을 잡아 이끄는 형태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보쿠토도 그 모습을 봤는지 그쪽을 향해 시선을 주었는데 보자마자 보쿠토답지 않게 혀를 찼다.

 

 

 

“저 불쌍한 놈. 쟤네들은 언제 관계가 발전하려나 모르겠다! 답답해!”

“에, 보쿠토상 알고 계셨어요?”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지 않냐. 솔직히 켄마는 쿠로오가 데려온거나 마찬가지니까.”

“아아, 그러고보니. 근데 그건 데려온 게 아니라 끌려온 거 아닌가요?”

“이거나 그거나. 의미는 같은데 뭘. 아카아시는 알아서 찾아왔잖아.

“아아, 그건. 우연히 보게 된 오이카와상 때문이었죠.”

 

 

 

보쿠토와 아카아시가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에 쿠로오와 켄마가 그들과 합류했다. 이제 남은 건 거리가 먼 히나타와 비슷비슷할 이와이즈미였다. 오이카와는 현재 상태 때문에 오지도 못할테고. 아카아시가 두 사람에게 톡을 한 번 더 보냈다.

 

 

 

“켄마. 고양이 습성 좀 버리면 안 되겠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쿠로. 아침에 내가 약하다는 거 알면서.”

“쿠로오 너, 방금 켄마 데려온 모습이 꼭 억지로 데려가려는 것 같아서 납치처럼 보였다구.”

“아니 왜!? 대체 어디가? 어디가 그렇게 보이는거냐.”

 

 

 

아직 잠이 덜 깼는지 하품하는 켄마를 보며 보쿠토가 느낀 그대로를 쿠로오에게 말했다. 애써 힘들여서 끌고왔더니 돌아오는 납치범 소리에 쿠로오가 어이 없어하면서 묻더니 스스로 OTL 자세를 취했다. 스스로 말하면서 스스로 데미지를 입은 듯했다.

 

 

 

[켄마 : 우리 오기 전에 무슨 일 있었어?]

 

 

 

눈을 굴리던 켄마에게 아카아시가 포착된 것은 그 직후였다. 켄마의 눈에는 평소와 같아보였지만 조금 가라앉은 아카아시의 분위기가 보였다. 뭔가 일이 있었나보네. 그런 생각으로 아카아시에게 보낸 톡은 켄마 나름의 걱정을 담고 있었다.

 

 

 

[케이지 : 그렇게 큰 일은 없었어. 교문 앞에서 무슨 일이 있겠어.]

 

 

 

흐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아카아시의 톡에 켄마의 눈이 아카아시를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보쿠토쪽으로 굴러갔다. 보쿠토도 왠지 아카아시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는 것을 눈치챘는지 안 그런 척 하면서 계속 시선을 주고 있는데 평소라면 알아차렸을 아카아시는 반응이 없었다.

 

역시 무슨 일 있었네. 저렇게 티를 내고 있는데 이상하게 아카아시도 알지 못한단 말이지.

 

 

 

[켄마 : 케이지도 바보네.]

[케이지 : 무슨 뜻이야?]

[켄마 : 쿠로도 바보인데, 케이지도 바보야.]

[케이지 : 뭔지는 모르겠지만 쿠로오상과 같은 취급?]

[켄마 : 전부 바보야.]

 

 

 

그래. 전부 바보지. 켄마는 스스로 아카아시에게 한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도 바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어제의 작은 파문은 아직 켄마의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자신도 무언가를 외면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외면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대로 끝까지 쿠로랑 같이 있고 싶은걸.

 

켄마는 스마트폰에서 아직 좌절하고 있는 쿠로오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있지, 쿠로. 쿠로도 나랑 계속 같이 있고 싶어? 내년이면 쿠로는 대학생이 되어버리는데, 나는 아직 고등학생인걸. 그럼 또 헤어지잖아. 초등학교에 올라갈 때도, 중학교에서도, 그리고 고등학교에서도 쿠로가 먼저 기다려줬는데.

 

쿠로가 나랑 같은 학년이면 좋았을텐데.

 

나는 항상 먼저 간 쿠로를 따라잡아야 하는 걸. 아무리 쿠로가 먼저 가서 나를 기다려준다고 해도. 그러면 쿠로, 초등학교 떄도,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내가 쿠로가 있는 곳까지 갈 때까지 기다리는 1년. 쿠로는 먼저 가서 1년동안 나 기다리는 거 안 지겨웠어?

 

 

 

“으아아- 늦었다아!”

 

 

 

저 멀리서 맹렬히 달려온 히나타가 멤버가 모여있는 곳까지 한달음에 다가와 바닥에 드러누웠다. 다행히 전체적인 옷 색깔은 검은편이었으나 바닥의 먼지가 묻지 않는 것은 아닌데도 히나타는 그대로 숨을 고르는데만 집중하는 듯했다. 모여있던 이들의 시선이 히나타에게 가 꽂혔다.

 

나름 진한 청바지에 검은색의 후드를 입은 히나타는 바닥에 눕는 바람에 후드 뒤에 딸려있던 모자가 눌려 히나타의 머리를 일부 감춰버리고 있었다. 역시 1학년이라 귀여웠다. 숨을 다 골랐는지 상체를 벌떡 일으킨 히나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와이즈미상은 아직이에요?”

 

 

 

 

 

*

 

 

 

 

 

모두는 우선적으로 시미즈의 집에서 그 가보를 빌려오기로 했다. 그리하여 시미즈의 집을 알고있던 히나타가 앞장 서서 모두를 이끌듯 걸어나가고 있었다. 히나타가 이와이즈미를 찾은 그 얼마 뒤, 히나타가 온 방향쪽에서 이와이즈미가 와서 오이카와를 뺀 전원이 합류한 뒤였다.

 

 

 

“이와이즈미, 잠 못 잤어?”

“오늘이 되는 시점에 본격적으로 위험해지기 시작해서. 그거 지켜보느라 수면 부족이다. 해결하면 잠부터 자야겠어.”

“오이카와도 고생이네. 어제보다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었냐?”

“기력이 빠지고 있다면 설명이 되냐?”

 

 

 

쿠로오의 물음에 답하던 이와이즈미의 말을 듣던 아카아시는 앞에서 걸어나가고 있는 이와이즈미를 보았다.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말대로 이와이즈미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그보다 간과할 수 없는 말을 들은 게 중요했다.

 

 

 

“기력이 빠지고 있다고요?”

“어. 하여간 그 놈의 고질병이 문제야. 고치려고 해도 고쳐지질 않으니.”

“상황이 나쁘잖아요. 기력이라 하면 사람이 움직이는데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라구요.”

 

 

 

어제와는 달리 더 나쁜 상황인데 오히려 태평하시네요.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어딘지 비꼬듯 나간 아카아시의 말에 이와이즈미가 시선을 뒤로 돌리며 바라봐왔다. 오이카와 녀석이 지금 뭐라할 지 확신할 수 있는데, 뭔지 말해줄까. 예?

 

 

 

“믿고 있어, 너희들.”

 

 

 

별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제 히나타가 말했던 것과 같지. 그렇게 덧붙이며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그들의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있는 히나타에게로 돌아갔다. 이와이즈미는 히나타를 보며 이번 일이 일어나기 전 날을 떠올렸다. 히나타의 사건을 해결한 다음 날, 결정 내리기 전.

 

 

 

“아카아시, 네가 히나타를 멤버로 하자고 건의한 뒤였어.”

“아, 그 때요.”

“오이카와에게 들어서 나도 그 때에는 히나타의 능력과 체질을 안 뒤였는데, 솔직히 말해 그 얼마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나름 반대하는 입장이었거든.”

“엣, 그랬어?”

“아카아시가 그렇게 건의하긴 했지만, 오이카와도 나랑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그런데? 왜, 오이카와는 너랑 의견이 달랐던 거야? 그렇게 묻는 보쿠토에 이와이즈미는 히나타를 바라봤다. 먼지를 털어낸 검은색 후드를 머리에 써서 조금씩 밖으로 삐져나온 밝은 주황색의 머리카락만이 보일 뿐이었지만, 그 뒷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오이카와가 그러더라.”

“뭐라고?”

“‘히나타가 들어오면 변할 것 같아. 변할 수 있을 것 같아.’”

“에.”

“‘변하는 건 어쩐지 무섭지만,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아. 응, 괜찮을 거라고 믿어.’”

“…….”

“…….”

“오이카와는 그 순간 결정한거야. 변하고 싶다고. 녀석이 결정했는데, 나라고 못할 것도 없지.”

 

 

 

이와이즈미의 말에, 그리고 오이카와의 말에 그들 사이로 짧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각자만의 상처가 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꺼내들지 않을 뿐이지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 사이에서 누구보다도 빨리 오이카와가 말한 것이다. 본인도 적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변할 수 있다고, 그런 오이카와를 존중해 이와이즈미도 무언가를 결정했다. 침묵 속에서 서로 시선을 맞추던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히나타를 향해 돌아갔다.

 

괜찮을까. 괜찮아질 수 있을까. 변할까. 변할 수 있을까.

 

모두의 마음 속에서 그 물음이 되풀이되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에게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를 전해준 히나타는 여전히 발걸음도 가볍게 걸어나가고 있었다. 그들보다 작은 그 뒷모습을 보고있자니 확실히 무언가가 변화하고 있었다.

 

 

 

“곧 도착이에요!”

 

 

 

그 때 뒤돌아본 히나타가 외쳤다. 그리고 곧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음에 뭔가 잘못됐나 싶어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쩔쩔매는 히나타에 누군가가 먼저 웃었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곧 웃음이 모두에게 전염되듯 퍼졌다.

 

왜 웃는 거예요! 각자의 스타일대로 웃는 모두에 히나타가 얼굴을 붉히며 빼액 소리쳤다. 그런 히나타의 반응에 웃음이 폭소로 번졌다. 소리쳐도 안 먹히는 듯 싶자 삐쳤는지 히나타가 양 뺨 가득 공기를 넣어 부풀렸다. 아무리 어려도 자신들과 고작 1, 2년 차이인데 정말 귀여운 후배였다, 히나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심각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들은 잠시간 그 모든 것을 잊고 짧지만 평화로운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히나타는 좌불안석이었다. 기묘한 느낌이 두 번 어느 정도 텀을 두고 느껴진 뒤에 확인하니 어째 오이카와의 상태가 조금이지만 더 나빠져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직일까. 아직인걸까. 모두들 빨리 와 주었으면. 히나타의 시선이 수시로 벽시계로 향했다.

 

이제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15분. 아슬아슬했다.

 

히나타는 다시 한 번 수건을 갈아주었다. 아무리봐도 오이카와는 수건을 갈아줄 때에만 잠시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다시 악화된 상태로 돌아가버리지만 말이다. 히나타가 울상인 얼굴로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히나타의 주위에 이렇게까지 아팠던 사람이 없었어서 내심 불안했다.

 

오이카와가 애써서 알려준 덕분에 이번 일이 해결되면 낫는다지만 그 때까지는 계속 이 상태일 것 아닌가.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나빠질테고. 이 상황에서 불행 중 다행은 아마 내일이 휴일이라는 것일까. 내일이 끝날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지만 그게 조금은 위안이었다.

 

대체 몇 번이나 벽시계에 시선을 주었던 것일까. 히나타가 또 벽시계에 잠시 시선을 주었는데 문 밖에서 여러 명의 발소리가 울렸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히나타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에 있는 문으로 달려가서 문 밖의 인물보다 먼저 벌컥 열었다.

 

 

 

“늦었어요!”

“하?”

“빨리 빨리!”

 

 

 

히나타가 급히 바로 문 밖에 서 있던 이와이즈미를 잡아 끌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 있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이와이즈미가 순순히 히나타에게 이끌려 들어섰다. 그 뒤를 이어 나머지 멤버들도 응접실 안으로 들어섰다. 히나타가 이와이즈미를 오이카와가 누워있던 소파쪽으로 끌어갔다.

 

 

 

“뭔 일 있었냐?”

“이거요!”

 

 

 

히나타가 가리킨 것은 오이카와가 누워있던 소파 앞쪽의 탁자 위였다. 그곳에는 그들이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흰 종이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이와이즈미의 눈빛이 변했다. 오이카와쪽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상태가 나쁜 얼굴로 잠들어 있는 채였다.

 

 

 

“깨어났던거냐?”

“전부 나가고 나서, 아마 모두가 부실 건물을 전부 빠져나갔을 타이밍에 한 번 깨어났었어요.”

“이건 오이카와 녀석이 전하려 했던거고?”

 

 

 

히나타는 이와이즈미의 말에 열심히 끄덕였다. 역시 오래 알고 지내서인지 척 하면 척이구나. 이와이즈미는 탁자 위에 놓여져 있던 종이를 집어들고는 내용을 확인했다가 처음부터 미간을 구겨버렸다. 슬그머니 오이카와쪽으로 시선을 주었으나 한 번 한숨을 쉬는 것으로 어떻게든 짜증을 억누르는 듯 보였다.

 

 

 

“타임 리미트가 내일이냐, 쿠소카와. 정말 시간 없구만.”

“역시 그건 내일까지라는 건가요.”

“오늘 내일 빡세게 몸 굴려야겠군. 쿠소카와, 고생시킨 대가는 낫고 나서 반드시 받아낸다.”

 

 

 

그렇게 말하며 이와이즈미가 잠들어 있는 오이카와의 수건이 올려져 있는 이마를 가볍게 툭 쳤다. 바꾼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수건은 아직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손에 묻어난 물기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쳐 왔다. 시선을 돌리니 아카아시였다.

 

 

 

“밴드 붙이셔야죠. 두 번이나 그었잖아요.”

“아아. 고마워.”

 

 

 

아카아시가 건네준 밴드를 받고 이와이즈미가 들고 있던 종이를 아카아시에게 건넸다. 의아해하며 건네진 종이를 받았던 아카아시가 종이에 쓰여진 내용에 이와이즈미를 바라보았다. 이와이즈미는 혼자서 밴드를 붙일 수 없어서인지 히나타가 대신 왼손 검지에 붙여주고 있었다.

 

붙여진 밴드에 슬쩍 베어나오는 피가 번져 붉게 물들어갔다. 이와이즈미는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지 그 모습이 평소와 달리 멍해보였다. 피. 이것 때문에 오이카와가 울었고, 선택했고, 각오까지 했었다. 이와이즈미가 알게 되었을 때 분명 화 낼거라고 생각했을 텐데도.

 

그럼에도 오이카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이와이즈미를.

 

그랬으니까, 네가 각오했으니까. 이와이즈미 자신도 그때, 능력이 처음 발현됐던 중 3의 졸업반 그 중 모든 게 바뀌었던 그 하루오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오이카와를 놓지 않기로. 옆에 붙들어 메고 있기로. 분명 오이카와도 그런 생각으로 벌였던 일이었을 것이다.

 

 

 

“이거 오이카와상이?”

“맞아요! 말하기 힘든 듯 했지만 끝까지 알려주려고 했어요! 그리고 분명,”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늦지 않게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문득 이와이즈미의 귓가에 아카아시와 히나타의 대화가 들려왔다. 어느 새 아카아시쪽으로 갔는지 히나타는 아카아시의 앞에서 대화하고 있었다.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히나타의 말에 저절로 그쪽으로 돌아갔다. 헤헤 웃는 히나타를 보고 있자니 처음 의뢰하러 왔던 히나타를 본 그 날 밤이 생각났다.

 

분명 오이카와는 말했다.

히나타는 햇빛이야. 따뜻하고 반짝반짝해.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아.

 

그 날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집에 잠시 들렀다 집으로 돌아왔었다. 오이카와의 집에 있었던 그 짧은 시간에 직접 들은 장난 따위는 들어있지 않았던 오이카와의 말. 그 말. 오이카와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망설이면서도 결국 입을 열어 말을 이었었다.

 

그런데 슬픈 건 왜일까. 히나타는 뭐든지 용서해줄 것 같아서 나는 히나타가-

 

그러고 싶지는 않은데 조금 거북해.

 

오이카와는 그 날 그렇게 고백하며 울었다. 웃으면서도 울었다. 아니 울지 않았지만 분명 울고 있었을 것이다. 난처하게, 그리고 난감하게 한쪽 눈을 슬쩍 찡그리며 입꼬리를 올려 웃던 너는, 그렇게 울고 있었다. 아마 오이카와는 히나타를 보는 순간부터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괜찮다는 말로 아슬아슬하게 버텨온 오이카와.

괜찮다는 말로 정말 괜찮은 일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히나타.

 

대척점에 있다는 말로도 부족한 반대되는 두 사람의 성향은 무너지기 쉬웠던 오이카와쪽이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것을 이해한 그 순간 이와이즈미는 지금 그들이 있는 공간이 오이카와의 집임에 안심했다. 괜찮다. 오이카와는 자신과 싸웠던 중 3때 깨끗하게 털어냈다.

 

질질 끄는 성미가 있는 오이카와였지만 떨쳐냈던 것에까지 미련을 끌고 가는 성정은 되지 못했다. 그 생각에 실수는 없었던 듯 이후 오이카와는 히나타에게도 멤버들을 대하는 듯이 대하곤 했다. 여전히 종종 남들은 이해 못할 괴짜짓을 해대고는 하면서.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오이카와. 사실 그 날에 네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 알 것 같다.

 

이와이즈미는 여전히 잠들어있는 오이카와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정말 네 말대로였어. 진짜 히나타는 뭐든지 용서해줄 것 같아. 이와이즈미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실소를 내뱉었다. 어쩐지 조금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오이카와 너도 그럴까. 이런 기분이었냐.

 

 

 

 

 

*

 

 

 

 

 

“그러나저러나 이대로라면 시간 없잖아? 이와이즈미, 알고 있었어? 그래서 서두른거야?”

“너희가 말했잖아. 그리고 봤잖아. 일이 벌어지기 전에 해결을 봐야 했었는데.”

 

 

 

수업이 끝난 방과 후였다.

 

을 굴리던 보쿠토가 이와이즈미에게 물었다. 그에 혀를 차며 맘에 안 드는 듯 불만을 내보이는 이와이즈미였다. 가지고 있었던 종이를 켄마에 건넨 아카아시가 대화에 참여하려는지 두 사람쪽으로 다가왔다. 오이카와가 말하고 히나타가 받아적었다는 종이를 보니 궁금한 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근데 이와이즈미상.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냐.”

“대답, 해주실 건가요?”

“일단 들어나보자.”

 

 

 

확답은 아니지만 완전한 거절은 아닌 것에 만족하며 아카아시는 그 종이를 보고 생각났던 궁금증들을 정리했다. 그래봤자 몇 가지 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이것을 묻는다고 답해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워낙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어야지.

 

 

 

“오이카와상은 그 가보에 대한 것만 알고 있을 텐데요. 이번에 벌어진 사건은 어떻게 아는 건가요?”

“그거 물어볼 거라고 생각했지만, 미안. 그건 말해줄 수가 없다.”

“뭐, 저도 왠지 그럴거라고 생각했어요. 방금 그 물음을 가장 숨기려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었던 거지만, 역시 넌 보통이 아니구만. 그걸 막연히 눈치 깠다는 거잖냐.”

“그렇다고 해도, 눈치로서는 켄마만큼은 아니지 않을까요.”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아카아시가 작게 웃었다. 숨긴다고 숨겼는데 이미 눈치채고 있던 켄마였다. 그것도 아카아시가 자각하기 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다니. 그게 가능한데 어째서 본인의 일에는 그렇게 무관심한지. 이제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는 실상이었다.

 

 

 

“어째서 아는 건지는 넘어가고, 두 사람이 살아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괜찮지만 타임 리미트가 내일까지라니.”

“아마 조금 더 길었어도 모레까지였을거다.”

“모레요?”

“오이카와 녀석이 원하면 모레까지는 가능하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거다. 모레까지 늘려버리면 영향받고 있는 오이카와 녀석만 손해니까.”

“어째서요? 역시 이번 일, 대가가 발생하는거죠?”

“오이카와 녀석이 중학교 때 말해준 적이 있어. 자기가 영향받는 것을 늦출 수도, 빠르게 만들 수도 있는 방법이 있다고.”

 

 

 

이와이즈미의 말에 근처에 모여서 듣고 있던 모두의 사이에서 잠깐의 동요가 일어났다. 늦출 수도, 빠르게 만들 수도 있다면 지금의 오이카와는 후자쪽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확실했으니까. 이런 쪽에 그나마 지식이 있던 아카아시가 빠르게 정신 차리고는 물었다.

 

 

 

“뭔데요? 설마 지금 사라진 사람들하고 관련이 있는 거예요?”

“정확히 봤네. 아마 지금 사라진 그 두 사람은 조금이나마 힘이 있었을 거다. 많지 않아도 좋아. 그 약간 존재하던 힘을 그 가보에 붙어있던 놈이 이용해은거야.”

 

 

 

이와이즈미의 말에 아카아시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잠깐, 잠깐 있어보자. 방금의 이와이즈미상의 말에서 유추해볼 수 있는 게 있지 않나. 오이카와상이 분명 그 가보의 주인인 시미즈씨는 안전하다고 했다는 건 반대로 위험할 수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고 한다면.

 

 

 

“그럼 노리는 건.”

“오이카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아카아시가 말한 것을 이와이즈미가 냉큼 받았다. 믿지 못하겠는 마음을 알아차린 듯 이와이즈미가 다이렉트로 진실을 날렸다. 이 상황에서 알아차렸으면서도 도망은 용서 못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밝혀진 사실에 듣고 있던 히나타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째서 오이카와상이 노려져요? 그래서 시미즈 선배가 안전하다고 한 거예요?”

“내 생각인데, 오이카와가 한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오류가 있다고 본다만.”

 

 

 

이와이즈미의 말에 히나타와 의식이 없는 오이카와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히나타가 물은 두 가지 물음 중 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오이카와가 노려지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이와이즈미는 하지 않았다.

 

 

 

“오류?”

“그 시미즈라는 여자애도 위험하지 않은 건 아닐 걸. 물론 당장 내일까지는 안전하겠지만. 모레가 되면 어찌될 지 모르지.”

“그런…….”

“내일까지는 안전하다는 건, 당장 위험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해결하면 탈이 나지 않기 때문인가요?”

“역으로 뒤집으면 오이카와 녀석이 위험하다는 거지.”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중으로 이번 일 해결해야 해. 지금도 나름 오이카와 녀석 무리하고 있을 게 틀림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소파 위에 눕혀져 있는 오이카와를 향해 시선을 주는 이와이즈미였다. 그리고 보쿠토에게 시선을 주는 아카아시였다.

 

 

 

“뭐 그럼 보쿠토상. 부탁드릴게요.”

“어엉. 알았어! 내일까지 완벽하게 해 놓을게! 나만 믿으라구 아카아시!”

 

 

 

할 일이 많은 관계로 오늘은 이것으로 이만 해산하기로 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에게 맡기고 내일을 대비해 준비를 철저히 하기로 했다. 하나 둘 응접실을 나서고 곧 남은 사람은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 그리고 나가려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멈춰선 아카아시 세 명뿐이었다.

 

 

 

“이와이즈미상. 하나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말해봐.”

“오이카와상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뜬금없이 오이카와의 행방을 묻는 아카아시였지만, 이와이즈미는 아카아시의 물음을 듣자마자 오이카와를 향했던 시선을 곧장 아카아시에로 돌렸다. 무언가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아카아시의 시선도 이와이즈미를 향했다.

 

 

 

“이것도 안 되는 물음인가요?”

“…아니, 이건 알려줄게. 오이카와는 지금,”

 

 

 

마음 속에 있어.

 

 

 

“어떻게 알았냐?”

“분명 오이카와상은 여기 있어요. 오이카와상의 영혼도 분명 여기에 있는데, 존재하고 있는데요.”

 

 

 

달라요. 보자마자 알겠더라구요. 흔한 일반인보다도 영혼이 안쪽에 위치해있어요.

 

 

 

“그래서 물어본거예요. 이런 사람은 없거든요. 가능성 중 하나로 오이카와상 자체가 이곳에 있으면서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가정해본거예요. 틀릴 가능성도 낮은 건 아니었지만요.”

“대답을 해주긴 했는데 정확한 답변이 아니라 미안하구만.”

 

 

 

머리를 긁적이며 면목없다는 듯한 이와이즈미에 아카아시는 슬며시 웃었다. 괜찮아요. 어쩌면 곤란한 질문이었을텐데 나름대로 정답에 가깝게나마 답해주셨잖아요. 지금은 이걸로 만족할게요. 하지만 만약 오이카와상이 괜찮다고 하면 그 때는 전부 말해주실래요? 그래. 네가 그렇다면야.

 

 

 

“혹시 그 특이성 때문인가요?”

“틀리다고는 하지 않으마.”

 

 

 

잠시 입을 다물었던 아카아시가 묻는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린 이와이즈미가 답했다. 씁쓸해하는 이와이즈미를 보던 아카아시는 그럼 이만 가볼게요. 내일이 결전이니까요. 라고 말하며 응접실을 벗어났다. 손을 흔들어 아카아시를 배웅하던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내쉬었다.

 

 

 

“오이카와. 지금의 넌 듣지 못하겠지만 다짐 하나 말해봐도 돼냐?”

 

 

 

나와 네가 감춘 것들, 우리 졸업 전에는 멤버들에게 전부 말해주고 싶다만. 너도 동의하냐?

 

오이카와는 여전히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채로 말이 없었다. 몸 위에 얌전히 놓여진 한쪽 손을 잡고서 이와이즈미는 생각했다. 나는 너를 지킬거다. 예전에 네가 나를 ──주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너를. 그러니까 이번 일 해결하면 하루 빨리 평소대로 돌아와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이와이즈미는 부실에서 좀 더 먼 네코마 먼저 가기로 정한 뒤, 걸음을 서둘렀다. 타임 리미트를 알지 못하는 게 조금 뼈 아프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오이카와 녀석이 눈을 뜨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라 애초에 미련은 가지지 않는 게 좋았다. 그래도 아쉽긴 한데.

 

 

 

“이와이즈미, 능력 쓸 거야?”

“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확실히 정의 내리는 게 좋지 않겠어?”

 

 

 

그렇게 대답하는 이와이즈미를 보던 쿠로오는 눈을 굴렸다. 이미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다 알아차린 것 같은데 말이지. 지금 상황은 이와이즈미 나름의 배려라는 것을 눈치 챈 쿠로오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정말 재밌는 녀석들이야- 그렇게 생각하는 쿠로오의 눈빛은 어딘가 무미건조했다.

 

 

 

“……?”

 

 

 

3학년들의 조금 뒤쪽에서 따라 걷고 있던 와중, 아카아시는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이 진동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확인해보기 위해 꺼내들었다. 맨 처음 보이는 화면 액정에는 톡이 하나 와 있었다. 켄마로부터 온 것을 확인한 아카아시는 바로 옆에 있는 켄마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자신의 스마트폰에 시선을 주고 있던 켄마가 아카아시의 시선을 느낀건지 슬쩍 시선을 맞추어 왔다. 잠시 시선이 마주치고 켄마가 손을 들어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대화로보다는 톡으로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는 듯해서 아카아시도 결국 본인의 스마트폰으로 다시 시선을 향했다.

 

그들이 하는 톡은 현재까지는 3개가 있었다. 멤버 전원이 정보를 공유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그룹톡, 3학년들끼리 대화하는 3학년톡, 그리고 2학년인 켄마와 아카아시가 주로 사용하는 2학년톡. 켄마가 톡을 보내온 곳은 당연하게도 2학년톡이었다.

 

아, 히나타도 그룹톡 알려줘야겠는걸. 그리고 1학년이 히나타 혼자니까 우리 3명이서 쓸 톡도 하나 만들어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켄마가 보내온 톡을 확인한 아카아시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뻔했다. 당혹스럽다고 할까, 아카아시는 켄마의 톡을 빤히 바라봤다.

 

 

 

[켄마 : 케이지. 혹시 보쿠토상 좋아해?]

 

 

 

답장을 해야 함에도 도저히 손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움직여보려 했으나 어떻게 해도 손은 자판 위에서 맴돌기만 할 뿐, 떨어지지 않았다. 켄마의 톡을 다시금 확인하고 아카아시는 자신들보다 조금 앞서있는 3학년들, 그 중에서도 보쿠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멍했다. 주변의 소리도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아무렇지 않으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는 것쯤은. 자신은 2학년인 반면 보쿠토는 3학년이었다. 아무리 길어도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자신답지 못하게 내심 초조함이 몸을 감싸왔다.

 

어떻게든 들키지 않으려 하고 있었으나 아마 이대로 시간이 흘러 보쿠토가 곧 졸업할 때가 다가온다면. 아카아시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할 지 감히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보쿠토를 보내줘야 한다는 마음과 보쿠토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할 것이라는 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케이지 : 어떻게 알았어?]

 

 

 

결국 아카아시는 숨기지 않았다. 숨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숨기는 건 자신답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냥 평소대로 담담하게 답장을 보냈다. 오히려 누군가에게, 그것이 켄마라고 할지라도 긍정했음에 아카아시는 더욱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보쿠토를 좋아하고 있음에.

 

제법 긴 기다림 끝에 아카아시에게서 온 답장에 켄마는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긍정. 뭘까, 이건. 아카아시가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본 켄마의 안에서 무언가가 술렁거리고 있었다. 술렁술렁. 그 소란이 커지기 전에,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전에 켄마는 외면했다.

 

머리 아픈 건 싫어. 눈치채고 싶지 않아.

나는 이대로가 좋아.

 

켄마는 아카아시에게 톡을 보내려 자판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면서도 켄마는 쿠로오의 뒷모습을 곁눈질하듯이 슬쩍슬쩍 바라보고 있었다. 쿠로는 어려워. 쿠로오 테츠로라는 존재는 켄마에게는 한없이 어려웠다. 그렇게 느끼는 것을 쿠로오도 분명 알고 있을 텐데도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켄마는 그것이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부러웠다.

 

 

 

[켄마 : 얼핏 눈치는 채고 있었을까.]

[케이지 : 정확히 하자면 내가 확실하게 자각하기 전이었지?]

[켄마 : 부정하진 않을게.]

[케이지 : 부정하지 않아줘서 고마워.]

[켄마 : 궁금해서 묻는데, 어째서 보쿠토상을 좋아하게 됐어?]

 

 

 

켄마가 보내온 톡에 아카아시의 시선이 옆에 있는 켄마에게로 돌아갔다. 켄마는 스마트폰을 들고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알아차린 건 아닌 것 같은데 관심이 생긴 건가? 아카아시는 켄마를 보고 있던 시선을 돌려 앞쪽에 있는 쿠로오에게로 돌렸다. 쿠로오상 고생하시네요.

 

 

 

[케이지 : 의외인걸. 거부하지는 않는 거야?]

[켄마 : 거부해야 할 이유가 있어? 누구를 좋아하든 그건 어디까지나 좋아하는 본인 마음인걸.]

[케이지 : 어쩐지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정말 의외로 들려.]

[켄마 : 어째서?]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이로써 쿠로오에 대한 애석함이 올랐다. 쿠로오가 켄마를 좋아함으로서 모르는 곳에서 고생 아닌 고생을 하고 있음을 켄마의 물음에서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던 아카아시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외면은 좋은 게 아닐 텐데.

 

 

 

[케이지 : …뭐, 그건 됐다 치고. 내가 보쿠토상을 좋아하게 된 계기라.]

[켄마 : 두근두근, 이라고 해야 하는 곳?]

[케이지 : 그리 특별하다고 할 만한 건 없는데. 그냥 어느 순간 저절로 깨닫게 됐다고 할까. 그 사람 밝아서 사람들 시선은 잘 끌어들이는 편이긴 하니까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으니 말 다한 거 아닐까.]

[켄마 : 확실히 보쿠토상은 밝지. 밝다 못해 호들갑스럽고 시끄럽지만 그게 활력소가 되니까.]

 

 

 

별로 두근거리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반응해주는 켄마의 톡에 답장해주던 아카아시가 순간 신랄하게 날아든 켄마의 톡에 순간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급히 손으로 막았다. 켄마의 말은 모두 맞지만 그 중에서도 하나가 시야에 박혀들었다. 활력소. 그 말대로 지치지 않는 활력소였다, 보쿠토는.

 

 

 

[케이지 : 하하. 응, 정말 그래. 깨닫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일정 이상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지는 않았었지. 확실히 보쿠토상은 옆에 있다보면 귀찮아지는 사람이기는 하니까 말이야.]

[켄마 : 확실히 케이지는 더 그랬던 것 같아. 같은 학교의 선후배, 그리고 같은 부활동을 하는 동료 그 이상으로는 보쿠토상을 대하지 않았지.]

[케이지 : 그치만 나 자신도 일말의 가능성이나마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이게 과연 선후배, 그리고 동료로서의 행동인가. 그게 아니라면 자신이 보쿠토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라던가.]

[켄마 : 자각하지는 않았었지만 저 어딘가에서 가능성은 두고 있었다는?]

[케이지 : 그렇지 않을까. 나 솔직히 깨닫고 나서도 이제야 자각했다는 생각은 했지만, 내가 보쿠토상을 좋아한다는 그 감정에 혼란을 시작으로 하는 그 어떤 부정적인 감정은 느끼지 못했으니까. 아, 이제서야 자각했구나. 그 생각뿐이었었지.]

[켄마 : 그렇게 느꼈다면 정말 특별한 것은 없었던 모양이네.]

 

 

 

평소대로 반응하는 켄마에 아카아시는 잠시 망설였다. 자신이 괜한 간섭을 하는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그저 제자리걸음인 켄마가 걸렸다. 켄마가 계속 이대로라면 안 된다는 것을 아카아시는 알았다. 어떤 식으로든 켄마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아카아시는 자판을 두드렸다.

 

 

 

[케이지 : 그런 켄마 너는 어떤데?]

[켄마 : 응? 나?]

[케이지 : ]

 

 

 

 

 

*

 

 

 

 

 

네코마에 도착한 뒤에는 곧장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부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무단침입이 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교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서 쿠로오가 안내해주는 자리로 곧바로 향했다.

 

문제의 사라진 선생님의 자리 앞에 서게 된 이와이즈미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집어 꺼내들었다. 그것은 가장 작은 크기의 접이식 잭 나이프였다. 이와이즈미의 뒷쪽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들을 한 번 돌아본 이와이즈미가 바로 왼손 검지 끝마디를 잭 나이프로 살짝 그었다.

 

작게 난 검지의 상처에서 피가 몽글몽글 나오기 시작하자 이와이즈미는 그것을 아래로 향했다. 어느 정도 뭉쳐서 그 크기를 키우던 피는 얼마 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작된다. 이와이즈미의 말에 뒤쪽에 있던 아카아시가 평소에 쓰던 것과는 다른 흰 부적을 손에 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피는 그대로 스며들더니 이와이즈미의 아래쪽에 기하학적인 무늬를 그리며 크기를 키워나갔다. 이와이즈미만 들어갈 정도였던 무늬는 아카아시가 가지고 있던 흰 부적이 빛을 내뿜자 좀 더 크기를 키우더니 모두가 들어갈 정도의 크기가 되어있었다.

 

크기를 다 키운듯한 바닥의 무늬는 순간 빛을 뿜었다가 그대로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모두가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대로 모든 동작이 멈춘 채 시간도 멈추었다. 점심시간이 된지 25분째 되던 타이밍이었다.

 

 

 

“켄마. 괜찮아?”

 

 

 

귓가에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켄마의 정신이 깨어났다. 멍하니 있던 시야에 초점이 잡히고 빛이 돌아왔다. 잠시 눈을 깜박거리던 켄마가 약간 숙이고 있던 머리를 들었다. 눈 앞에 있던 쿠로오의 몸이 전체적으로 살짝 흐릿하게 번지듯 보였다. 아마 자신도 그런 상태겠지.

 

 

 

“전부 깼지? 이제 말했던 시간대보다 조금 앞으로 돌린다.”

“이와이즈미상. 그러지 말고 이왕 능력 발휘하셨으니 아침부터 보죠. 솔직히 정확한 시간대는 알지 못하잖아요.”

“게다가 시간도 멈춰있는 채잖아? 조금 느긋하게 보자구, 느긋하게~ 지금은 오이카와의 상태 악화도 멈춘 채 일테고.”

 

 

 

이와이즈미의 말에 아카아시와 보쿠토가 말했다. 아카아시의 말에 속으로 긍정적으로 반응하던 이와이즈미의 시선이 보쿠토에게로 돌아갔다. 아카아시를 따라 말했다가 왠지 노려보는 듯한 이와이즈미의 시선을 받은 보쿠토는 영문을 알지 못해 얼굴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 녀석은 예외다.”

“헤?”

“오이카와 녀석은 예외라고. 그 녀석 지금 순간에도 아주 조금씩이겠지만 상태 악화는 계속되고 있을 거다.”

“어째서요? 이와이즈미상의 능력엔 예외가 있을 수 없을 텐데요?”

“내 능력도 오이카와 녀석한테는 만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카아시는 자신에게 잘못은 없지만 실수했다고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와이즈미가 굉장한 기세로 착잡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두 사람 사이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들 같으니. 그래도.

 

 

 

“이유는요? 안 통한다는 걸 어떻게 알아요?”

“경험해 봤었으니까. 오이카와 녀석에게 내 능력이 통하지 않을 때는 오로지 녀석이 음기에 눌렸을 때 뿐이었으니까. 아무리 멈춰도 조금씩 조금씩 악화는 진행됐다.”

“멈출 수 있는 수단은 없어요?”

“녀석이 음기에 노출되었던 계기. 이번 일 같은 경우에는 그 가보일까. 거기에 붙어있던 걸 해결할 수 있으면 그 녀석은 자연히 낫는다. 그러니까 빨리 해결해야 해. 시간 없으니까.”

 

 

 

아카아시는 이와이즈미가 초조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지금의 말에 한 치의 거짓은 없겠지만, 이와이즈미가 초조해야할 일이 있던가. 오이카와의 상태 악화는 이미 일어난 일이니 어찌할 수 없다고 한다 해도. 아니면 거기에 뭔가 다른 게 있나?

 

이와이즈미가 급하게 네코마와 후쿠로다니에 오기로 한 것은 두 사람이 사라져버린 이야기를 한 직후였다. 그것에 어떤 이유가 있다면. 이와이즈미는 분명 이것이 오이카와의 상태 악화를 유발시키는 것이라고 했었다. 5일에 일어날 증상이 3일만에 나타난 오이카와.

 

법칙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현상에는 어떠한 것에든 대가가 필요한데. 대가? 설마? 라는 생각으로 아카아시가 이와이즈미를 보았을 때에는 이미 시간을 움직이고 있었다. 예정보다 빨리 진행되는 증상. 사라진 사람들. 거기에 평소와 다른 이와이즈미.

 

 

 

“골치 아프네요.”

“엉?”

“골치 아파요. 정말 감당하기 벅찬 사람들이에요.”

 

 

 

보쿠토상은 그러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옆에 있던 보쿠토를 돌아보며 당부하는 아카아시였다. 평소와 별 다를 것 없이 바라봐오는 아카아시였지만 예민하게 평소와 다름을 눈치챈 보쿠토는 순간적으로 눈매를 바꿨다가 원상복구하고는 평소대로 힘차게 몇 번이고 끄덕거렸다.

 

 

 

“걱정 말라구 아카아시! 내 후배인 아카아시는 내가 잘 보살펴 줄테니까!”

“아? 아니아니, 오히려 제가 보쿠토상을 보살펴드리고 있는데요?”

“에에엑??”

 

 

 

보쿠토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아카아시가 사정없이 태클을 걸었다. 아카아시의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보쿠토는 그랬던 거냐는 뜻을 가득 담은 채 기겁하면서 아카아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안심했다. 평소의 아카아시로 돌아와 있었다. 역시 아카아시는 평소대로가 좋아! 안심할 수 있어!

 

싱글싱글 웃는 보쿠토와 그런 보쿠토를 본 아카아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을 뒤쪽에서 보던 켄마는 애써 쿠로오 쪽으로 시선을 주지 않았다. 아카아시가 마지막에 보내온 톡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어서 그 생각만으로도 벅찬 상태였다.

 

왜 그런 내용을 보낸거지?

 

뭔가를, 알아챈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켄마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부정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나는 숨기는 거 없어. 쿠로는 소꿉친구인 걸. 소꿉친구는 소꿉친구야. 그런 식으로 외쳐도 어딘가 불안해진 켄마는 계속 손에 들고 있었던 스마트폰을 꼭 쥐었다.

 

 

 

“켄마?”

 

 

 

자신을 불러오는 쿠로오의 부름에 켄마는 내심 화들짝 놀라며 머리를 들자 쿠로오의 시선이 똑바로 맞닿아왔다. 평소의 눈이지만 어딘가 걱정을 담고 있는 눈이 켄마 자신의 얼굴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쿠로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어디선가 이상한 물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정말?

 

쿠로는 소꿉친구야. 다시 한 번 그렇게 확정짓고 나자 그 물음은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지만 왜인지 술렁거림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였다. 대체 나한테 뭘 바래. 켄마는 순간 자각하지 못한 채로 눈 앞의 쿠로오에게 그렇게 물을 뻔했다. 하지만 그 전에 쿠로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켄마, 안색 안 좋은데 우리는 좀 쉴까? 솔직히 우리 능력은 필요 없으니까.”

 

 

 

쿠로 바보. 애써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평소대로 자신을 걱정하고 나서는 쿠로오가 켄마는 어딘지 못마땅했다.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종종 쿠로오가 스스로 상처받는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켄마로서는 쿠로오의 배려심이 오히려 쿠로오 자신을 더 상처받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자신 한정, 한없이 약해지는 쿠로오가 상처받지 않게 이기적이기를 바라면.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되면 켄마 자신은 쓸쓸해질까. 아니면 설령 쿠로오가 상처 받더라도 계속 이대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좋은 걸까. 켄마는 알 수 없었다.

 

 

 

“아니, 괜찮아 쿠로. 확인은 해야지.”

“그래.”

“……있지, 쿠로.”

“왜?”

“아니야, 아무것도.”

 

 

 

내가 어떤 대답을 해야 했어?

 

아까의 이상한 물음에 답한 답변에 대해서 문득 의문이 들었다. 쿠로는 소꿉친구. 정말 그게 진짜 내가 생각하는 정답이었을까. 아까의 아카아시가 보내온 마지막의 톡이 다시금 생각났다. 그 물음은 어째서 물어본걸까. 아카아시의 눈에는 뭐가 보였던 걸까. 나는 그 톡에 왜 멈칫했지.

 

 

 

[케이지 : 켄마 너는 쿠로오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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